- 유머가 아닌 펌글, 영상 등 가볍게 볼 수 있는 글들도 게시가 가능합니다.
- 여러 회원들이 함께 사용하기 위해 각 회원당 하루 5개로 횟수제한이 있습니다.
- 특정인 비방성 자료는 삼가주십시오.
Date | 21/02/08 09:37:59 |
Name | 토끼모자를쓴펭귄 |
File #1 | 1.jpg (2.70 MB), Download : 51 |
File #2 | 2.jpg (3.35 MB), Download : 53 |
Subject | 능력대로 하면 공정한가? - 마이클 샌델 |
요약하자면 능력주의 관점이 만능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저런 말도 능력있는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해야 설득력있지, 나같은 놈이 하면 자기변명으로 보인다는 게 함정.. 3
이 게시판에 등록된 토끼모자를쓴펭귄님의 최근 게시물
|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굴욕을 정당화'
=
'승리와 패배에 합당한 이유가 있고 패자가 승복할 수 있는'
능력주의의 단점이라는게 곧 능력주의의 장점이죠.
그저 모든 것을 운으로 치부하고 승패를 운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은
빈익빈 부익부를 가중하고 사람들이 승패에 승복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
사람들을 불행하게, 불만족스럽게 만들어 조종하고 전복하기 위함이죠.
=
'승리와 패배에 합당한 이유가 있고 패자가 승복할 수 있는'
능력주의의 단점이라는게 곧 능력주의의 장점이죠.
그저 모든 것을 운으로 치부하고 승패를 운에 의존하도록 하는 것은
빈익빈 부익부를 가중하고 사람들이 승패에 승복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
사람들을 불행하게, 불만족스럽게 만들어 조종하고 전복하기 위함이죠.
능력주의를 채택하고 안하고는 사회의 정책일뿐이긴 한테, 채택하지 않으면 그 결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사람들이 굳이 능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연구, 새로운 발견, 새로운 도전이 줄어들고 그 결과 모든 종류의 발전이 둔화되겠죠.
경제성장률 0.5퍼만 떨어져도 난리가 나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그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하면 됩니다. 이론을 정립하고 대중을 설득시키고 정치가들이 의견을 수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게임마냥 바로 버튼 클릭하면 바뀌는 것이 아니니 바꾸는 것도 오랜 노력이 필요하고 바뀌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경제성장률 0.5퍼만 떨어져도 난리가 나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그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하면 됩니다. 이론을 정립하고 대중을 설득시키고 정치가들이 의견을 수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게임마냥 바로 버튼 클릭하면 바뀌는 것이 아니니 바꾸는 것도 오랜 노력이 필요하고 바뀌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풀영상을 보진 못했지만, 이 요약본의 결론은 결국엔 사람의 유도리에 맡겨야 한다는 거죠.
성공에는 능력과 운이 둘 다 필요합니다. 능력이 없다면 다가오는 운을 잡을 수도 없지만, 능력이 있다고 해도 운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역시 잡을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 한 사람 둘 다 이걸 이해하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인정하고, 좀 더 겸손해질 수 있고 자신에게 운을 제공해준 사회에 좀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언젠가 다가올 수 있는 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좀 더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거고요.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고...ㅋㅋㅋ
성공에는 능력과 운이 둘 다 필요합니다. 능력이 없다면 다가오는 운을 잡을 수도 없지만, 능력이 있다고 해도 운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역시 잡을 수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 한 사람 둘 다 이걸 이해하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인정하고, 좀 더 겸손해질 수 있고 자신에게 운을 제공해준 사회에 좀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언젠가 다가올 수 있는 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좀 더 능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거고요.
하지만 현실은 그런 거 없고...ㅋㅋㅋ
저는 제가 이 정도라도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결혼 + 육아하고) 먹고 사는게 제 능력보다 운빨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능력주의에 대한 당위성을 떠나 저 짤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능력주의에 대한 당위성을 떠나 저 짤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하게 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나친 능력주의에 대한 또다른 비판지점으로, 그 누구도 행복해지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지적도 있더군요.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범재를 대체하는 사회가 되면서, 밀려난 범재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절대 소득이 감소하게 되면서 당연히 불행해집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천재들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100인분, 1000인분의 역할을 해내는 능력자들은 부를 거머쥐게 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심한 압박으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 일중독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거죠.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미국 기업과 사회의 ... 더 보기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범재를 대체하는 사회가 되면서, 밀려난 범재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절대 소득이 감소하게 되면서 당연히 불행해집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천재들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100인분, 1000인분의 역할을 해내는 능력자들은 부를 거머쥐게 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심한 압박으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 일중독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거죠.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미국 기업과 사회의 ... 더 보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나친 능력주의에 대한 또다른 비판지점으로, 그 누구도 행복해지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지적도 있더군요.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범재를 대체하는 사회가 되면서, 밀려난 범재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절대 소득이 감소하게 되면서 당연히 불행해집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천재들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100인분, 1000인분의 역할을 해내는 능력자들은 부를 거머쥐게 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심한 압박으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 일중독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거죠.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미국 기업과 사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지적이기는 합니다만.
이런 관점에서 행복해지는 것은? 기존의 부를 상속받은 한량들, 충분한 부를 획득하고 만족한 후 더이상의 가치 창출을 멈추기로 결정한 천재들. 그런 정도가 되겠지요. 능력주의가 사회를 움직이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들이 행복해지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것도 타당한 면이 있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범재를 대체하는 사회가 되면서, 밀려난 범재들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절대 소득이 감소하게 되면서 당연히 불행해집니다. 그렇다고 소수의 천재들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100인분, 1000인분의 역할을 해내는 능력자들은 부를 거머쥐게 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심한 압박으로 인해 과로와 스트레스, 일중독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거죠. 우리와는 조금 다른 미국 기업과 사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지적이기는 합니다만.
이런 관점에서 행복해지는 것은? 기존의 부를 상속받은 한량들, 충분한 부를 획득하고 만족한 후 더이상의 가치 창출을 멈추기로 결정한 천재들. 그런 정도가 되겠지요. 능력주의가 사회를 움직이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들이 행복해지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것도 타당한 면이 있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능력주의가 성장률은 올린다고 담보하지 않아요 조직행동론등이나 관련학문에서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뛰어난 직원을 짤랐는데 오히려 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등의 논문도 많습니다.
오히려 능력주의는 성장을 위한 좋은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한 공정을 위한 좋은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공정이 진짜 공정이냐는 의문이 드는거고
오히려 능력주의는 성장을 위한 좋은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한 공정을 위한 좋은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공정이 진짜 공정이냐는 의문이 드는거고
능력주의에 대해 오해가 많군요. 능력주의는 생각만큼 성장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과를 내는 직원을 짤랐다든가. 스톡옵션을 준다든가 능력에 따른 성과급을 준다든가가 생각만큼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논문도 많아서 사실 미국에서 그런 능력주의 성과에 대해 회의적이어서 오히려 정확히 비례해주는 옵션들이 많이 사라졌죠.
그럼에도 불과하고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 옵션이 여전히 대세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잔존해있고 그렇다면 왜 그러냐는 질문이 있는데 대체할 제도를 못 찾아서에 가깝습니다. 능력주의가 생각보다 과대평가받는 건 다들 아는데 근데 그럼 뭘 할까에 대해 이걸 대체할만한 시스템을 못 찾고 시간이 흐르고 그러니 시간이 흐른만큼 현 세대들은 이게 당연하다고 인식되어온 것에 가깝죠.
그럼에도 불과하고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 옵션이 여전히 대세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잔존해있고 그렇다면 왜 그러냐는 질문이 있는데 대체할 제도를 못 찾아서에 가깝습니다. 능력주의가 생각보다 과대평가받는 건 다들 아는데 근데 그럼 뭘 할까에 대해 이걸 대체할만한 시스템을 못 찾고 시간이 흐르고 그러니 시간이 흐른만큼 현 세대들은 이게 당연하다고 인식되어온 것에 가깝죠.
뭔가 오해하시는거 같은데 능력주의가 성과가 발생한다면 그 논리가 있어야하고 그 논리가 별로 생각만큼 없다는거죠. 샌델이 설명하는 내용에 가깝긴 합니다. 샌델이야 공동체주의 철학가라 철학적으로 풀어내서 그렇지 실체적으로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이나 승자우선주의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패배감과 허무의식, 그리고 과한 경쟁심으로 이어져서 조직 전체의 효율을 낮춘다는 겁니다.
100명중 5명이 성공해서 들어간 회사라고 하더라도 5명들 중 1명이 성공할 수 있고 4명이 패배감과 박탈감으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 더 보기
100명중 5명이 성공해서 들어간 회사라고 하더라도 5명들 중 1명이 성공할 수 있고 4명이 패배감과 박탈감으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 더 보기
뭔가 오해하시는거 같은데 능력주의가 성과가 발생한다면 그 논리가 있어야하고 그 논리가 별로 생각만큼 없다는거죠. 샌델이 설명하는 내용에 가깝긴 합니다. 샌델이야 공동체주의 철학가라 철학적으로 풀어내서 그렇지 실체적으로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이나 승자우선주의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패배감과 허무의식, 그리고 과한 경쟁심으로 이어져서 조직 전체의 효율을 낮춘다는 겁니다.
100명중 5명이 성공해서 들어간 회사라고 하더라도 5명들 중 1명이 성공할 수 있고 4명이 패배감과 박탈감으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1명이 2명의 몫을 하더라도 4명이 100명 5명으로 뽑힐만큼의 본래의 4명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기업 전체의 효율성이 낮아지고 그러한 승자우선주의로 인해 정보 교류와 협력이 생각보다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10년이 넘게 조직행동론 등에서 이미 유구하게 통하는 이야기긴 합니다. 근데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아직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시스템이 개발되지 않아서 있는거 쓰자에 가깝죠.
100명중 5명이 성공해서 들어간 회사라고 하더라도 5명들 중 1명이 성공할 수 있고 4명이 패배감과 박탈감으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1명이 2명의 몫을 하더라도 4명이 100명 5명으로 뽑힐만큼의 본래의 4명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기업 전체의 효율성이 낮아지고 그러한 승자우선주의로 인해 정보 교류와 협력이 생각보다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실 10년이 넘게 조직행동론 등에서 이미 유구하게 통하는 이야기긴 합니다. 근데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아직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시스템이 개발되지 않아서 있는거 쓰자에 가깝죠.
논리적으로 그렇다는 추측을 할 수 있는데 실체적으로는 인과관계를 지닌다고 보기도 어렵죠. 그냥 그럴 것이다라는 추측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갈뿐. 사실 이부분에 대한 지적은 아담스미스부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해온 부분이라
능력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OK지만, "얼만큼" 이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말 그대로 winner takes all 입니다. 근데 그게 정당한가요?
삼국지를 예로 들어봅시당.
유비가 조조보다 꿀리는게 뭐가 있나요?
배경이 꿀리죵..ㅋㅋ 근데 그러면 배경도 능력에 포함되는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지원을 많이 받고 경험치 알아서 많이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니까요.
그러면 그건 공정한가?
물론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가 있지만, 그건 소수고, 개천에서... 더 보기
지금은 말 그대로 winner takes all 입니다. 근데 그게 정당한가요?
삼국지를 예로 들어봅시당.
유비가 조조보다 꿀리는게 뭐가 있나요?
배경이 꿀리죵..ㅋㅋ 근데 그러면 배경도 능력에 포함되는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지원을 많이 받고 경험치 알아서 많이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니까요.
그러면 그건 공정한가?
물론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가 있지만, 그건 소수고, 개천에서... 더 보기
능력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OK지만, "얼만큼" 이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말 그대로 winner takes all 입니다. 근데 그게 정당한가요?
삼국지를 예로 들어봅시당.
유비가 조조보다 꿀리는게 뭐가 있나요?
배경이 꿀리죵..ㅋㅋ 근데 그러면 배경도 능력에 포함되는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지원을 많이 받고 경험치 알아서 많이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니까요.
그러면 그건 공정한가?
물론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가 있지만, 그건 소수고, 개천에서 뱀장어 정도 자란 인재가 있는데,
만약 큰 바다 속에서 자랐으면 뱀장어가 아니라 투명드라곤 정도 되었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도 비유하자면 하늘에서 태어날 때 영혼이 떨어지는데, 진짜 0,001도만 각도가 빗나갔어도
함경도 이북에서 주체사상 외우며 나무껍질로 연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혼자 내린 저만의 결론은,
1. 능력대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 OK
2. 하지만 그 대우에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있고,
3. 대우를 받는 능력자는 본인의 행운을 즐기는 건 상관없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4. 자신에게 대우를 해주는 사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진흙속 보배가 빛을 볼 수 있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입니다.
지금은 말 그대로 winner takes all 입니다. 근데 그게 정당한가요?
삼국지를 예로 들어봅시당.
유비가 조조보다 꿀리는게 뭐가 있나요?
배경이 꿀리죵..ㅋㅋ 근데 그러면 배경도 능력에 포함되는가?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지원을 많이 받고 경험치 알아서 많이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니까요.
그러면 그건 공정한가?
물론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가 있지만, 그건 소수고, 개천에서 뱀장어 정도 자란 인재가 있는데,
만약 큰 바다 속에서 자랐으면 뱀장어가 아니라 투명드라곤 정도 되었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도 비유하자면 하늘에서 태어날 때 영혼이 떨어지는데, 진짜 0,001도만 각도가 빗나갔어도
함경도 이북에서 주체사상 외우며 나무껍질로 연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혼자 내린 저만의 결론은,
1. 능력대로 대우를 받아야 한다. OK
2. 하지만 그 대우에는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있고,
3. 대우를 받는 능력자는 본인의 행운을 즐기는 건 상관없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4. 자신에게 대우를 해주는 사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진흙속 보배가 빛을 볼 수 있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입니다.
개개인한테는, 특히 성공적인 이력을 밟아온 개개인한테는 그게 들어맞겠지만 개별적 성장과 조직의 성장은 다른 문제니깐요. 개별적 성장은 한계효용곡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특정시점 이상에는 성공에 대한 유인 보상도 역시나 한계효용곡선을 따라가는 측면이 커서 한계치에 도달합니다. 결국 성공한 개인의 경우 1)성장에도 2)보상에도 한계 비용이 높아집니다.
그에 반해서 낮은 성과를 도달한 개인이 좀 더 성과를 높이는데에 한계비용이 적고 효과가 더 크죠. 조직전체로 보면 효율은 높이는데는 그렇다면 이들을 끌어올리는 게 효과적인거죠. 여... 더 보기
그에 반해서 낮은 성과를 도달한 개인이 좀 더 성과를 높이는데에 한계비용이 적고 효과가 더 크죠. 조직전체로 보면 효율은 높이는데는 그렇다면 이들을 끌어올리는 게 효과적인거죠. 여... 더 보기
개개인한테는, 특히 성공적인 이력을 밟아온 개개인한테는 그게 들어맞겠지만 개별적 성장과 조직의 성장은 다른 문제니깐요. 개별적 성장은 한계효용곡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특정시점 이상에는 성공에 대한 유인 보상도 역시나 한계효용곡선을 따라가는 측면이 커서 한계치에 도달합니다. 결국 성공한 개인의 경우 1)성장에도 2)보상에도 한계 비용이 높아집니다.
그에 반해서 낮은 성과를 도달한 개인이 좀 더 성과를 높이는데에 한계비용이 적고 효과가 더 크죠. 조직전체로 보면 효율은 높이는데는 그렇다면 이들을 끌어올리는 게 효과적인거죠. 여기서 능력주의의 한계가 나타나는거구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포츠들은 좋은 선수 영입하고 못한 선수 내보내면 되지만 사회는 못한 선수들은 계속 비용, 리스크를 데리고 평생 안고 사는 존재니깐요. 결국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사회 전체 효율을 높이는데에서 고민 지점일수밖에 없죠.
그에 반해서 낮은 성과를 도달한 개인이 좀 더 성과를 높이는데에 한계비용이 적고 효과가 더 크죠. 조직전체로 보면 효율은 높이는데는 그렇다면 이들을 끌어올리는 게 효과적인거죠. 여기서 능력주의의 한계가 나타나는거구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포츠들은 좋은 선수 영입하고 못한 선수 내보내면 되지만 사회는 못한 선수들은 계속 비용, 리스크를 데리고 평생 안고 사는 존재니깐요. 결국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사회 전체 효율을 높이는데에서 고민 지점일수밖에 없죠.
제일 하지말아야하는태도가 그럼 이거말고 답있어? 하면서 폐쇄적으로 구는거같아요. 보통 이런태도는 특히 능력주의가 자신에게 수혜적인사람들이 더 강하고요. 사회적으로 대안은 이론만 필요한게아니고 실험과정에서도 찾아나가는 일종의 복잡성있는 충돌들의 결과물에 가까운데 이런태도가 이미 대안을 말살해버림. 실험을 사회가 어떻게 감당하고 대안을 찾기위한 비용을 서로 어떻게부담할지를 거부한다면 능력주의에대한 합당한 비판앞에서 능력주의가 내게 유리하다고 믿는다고 말해야함. 그게 뭐 효율적이라거나 공정하다거나 하는 근거는 많이 훼손됐는데 계속 그걸 ... 더 보기
제일 하지말아야하는태도가 그럼 이거말고 답있어? 하면서 폐쇄적으로 구는거같아요. 보통 이런태도는 특히 능력주의가 자신에게 수혜적인사람들이 더 강하고요. 사회적으로 대안은 이론만 필요한게아니고 실험과정에서도 찾아나가는 일종의 복잡성있는 충돌들의 결과물에 가까운데 이런태도가 이미 대안을 말살해버림. 실험을 사회가 어떻게 감당하고 대안을 찾기위한 비용을 서로 어떻게부담할지를 거부한다면 능력주의에대한 합당한 비판앞에서 능력주의가 내게 유리하다고 믿는다고 말해야함. 그게 뭐 효율적이라거나 공정하다거나 하는 근거는 많이 훼손됐는데 계속 그걸 그런이유로 실드치는건 의도적인 정치적 외면이죠. 대안을 만들라고는 할 수 없지만 대안을 위한 시도들이 자신들에게 실기스라도 내는순간 괴성을 지르는 사람들은 사회의 체제에 운좋게 맞아떨어진 시대에 태어나 산다는 것에 대한 겸손함을 거부하는거죠. 비슷한 맥락으로 시장주의나 능력주의나 옹호론자들은 특정시점에서의 대안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인식에대한 절단을 하고 논의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어느쪽이든 변화를위한 열린자세와는 거리가 멀고 안정적인 시스템에 인사이더가되기위한 방법만이 중요한거죠. 어쩌면 보수주의란 시스템의 안정적인 구성원이되는 방법이 안정성이있어야하고 불안한 시스템 외부에게는 긍휼함으로 베푸는 상하계층의 명징함을 가장 편안히느끼는거같기도해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AI시대는 다가오고 현 시대의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점은 많이 보이는데 깔끔한 대안 이론은 나타나지 않았고 모르겠네요.. 먼 미래에 이 과도기를 후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냥 과도한 보상은 세금으로 사회로 다시 환원시키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이면 해결 됩니다. 그 정도에 따라 좌파 우파가 나누어지는거죠..
한편으로는 그런 해결법을 알아도 고치기 힘든것이 사회적 공감대도 쉽지 않지만, 자본엔 국경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이유가 상속세가 올바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속세가 높으면 자본을 외국으로 빼돌리기 때문이거든요...
결국 인간의 이기심이 있는한 유토피아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해결법을 알아도 고치기 힘든것이 사회적 공감대도 쉽지 않지만, 자본엔 국경이 없다는 것입니다..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이유가 상속세가 올바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속세가 높으면 자본을 외국으로 빼돌리기 때문이거든요...
결국 인간의 이기심이 있는한 유토피아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 고쳐가고 있죠.
민주주의 체제의 범위 내에 존재하는 수없이 다양한 구조와 제도들에 드러나듯 민주주의는 계속 진행중인 실험이에요.
끊임없는 반론에 저항하거나 수용하면서요.
그에 비하면 능력주의는 근대 이후 꽃길만 걸어왔다고 해도 될 정도죠.
민주주의 체제의 범위 내에 존재하는 수없이 다양한 구조와 제도들에 드러나듯 민주주의는 계속 진행중인 실험이에요.
끊임없는 반론에 저항하거나 수용하면서요.
그에 비하면 능력주의는 근대 이후 꽃길만 걸어왔다고 해도 될 정도죠.
https://www.ted.com/talks/alain_de_botton_a_kinder_gentler_philosophy_of_success?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더 보기
https://www.ted.com/talks/alain_de_botton_a_kinder_gentler_philosophy_of_success?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관련해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알랭 드 보통의 테드 강연입니다.
----- 강연내용 -----
성과주의 사회란 뭔가요?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재능과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아무것도 그걸 막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문제는, 정말 우리 사회가 위로 오를만한 사람이 올라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아주 고약한 생각까지도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회의 밑바닥으로 갈 만한 사람들이 밑바닥으로 가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에서의 위치는 우연이 아니라 각자가 자초한 마땅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실패의 충격은 더 가혹해집니다.
아시다시피 [중세 영국에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unfortunate.불운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행운의 축복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란 거죠.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최하층의 사람을 만나면 이들을 몰인정하게도 "loser.실패자"라고 부릅니다.] 불운한 사람과 실패자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죠. 이는 지난 400년간 사회가 변화하였으며, 삶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변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있죠.
우리가 잘 나가고 있다면 이건 고무적이지만 아니라면 타격이 크죠. 최악의 경우 [이런 상황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분석에 따르면 자살율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개인주의적 선진국의 자살율이 높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본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극도로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인정하지만 실패도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중략)
저는 단지 [우연성이 성공과 실패의 과정에 포함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너무 모든 것의 정당성만을 강조하기 때문이에요.] 정치가들은 항상 정의에 대해 말하죠. 저 역시 정의를 믿습니다. 단지 실현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정의를 추구해야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건 우리가 누구와 만나든, 그들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간에 우연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할 거란 사실입니다. 저는 단지 그 우연성을 충분히 고려하자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폐쇄적이 돼버릴 수 있어요.
----------
관련해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알랭 드 보통의 테드 강연입니다.
----- 강연내용 -----
성과주의 사회란 뭔가요? 성과주의 사회에서는 재능과 열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아무것도 그걸 막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생각입니다. 문제는, 정말 우리 사회가 위로 오를만한 사람이 올라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아주 고약한 생각까지도 함축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회의 밑바닥으로 갈 만한 사람들이 밑바닥으로 가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삶에서의 위치는 우연이 아니라 각자가 자초한 마땅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실패의 충격은 더 가혹해집니다.
아시다시피 [중세 영국에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unfortunate.불운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글자 그대로 행운의 축복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란 거죠.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 최하층의 사람을 만나면 이들을 몰인정하게도 "loser.실패자"라고 부릅니다.] 불운한 사람과 실패자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죠. 이는 지난 400년간 사회가 변화하였으며, 삶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변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더 이상 신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있죠.
우리가 잘 나가고 있다면 이건 고무적이지만 아니라면 타격이 크죠. 최악의 경우 [이런 상황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분석에 따르면 자살율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개인주의적 선진국의 자살율이 높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본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극도로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인정하지만 실패도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중략)
저는 단지 [우연성이 성공과 실패의 과정에 포함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너무 모든 것의 정당성만을 강조하기 때문이에요.] 정치가들은 항상 정의에 대해 말하죠. 저 역시 정의를 믿습니다. 단지 실현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정의를 추구해야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건 우리가 누구와 만나든, 그들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간에 우연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할 거란 사실입니다. 저는 단지 그 우연성을 충분히 고려하자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폐쇄적이 돼버릴 수 있어요.
----------
아마도 센델은 고대 폴리스와 같은 사회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자유' 시민은 모두 생산활동에 매달리지 않고도 생계 및 품위유지가 가능하고, 그런 시민들이 공동체 정신을 갖고 '공화국' 의 공동선을 위해 토론하고 봉사하는 그런 공화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물론 역사적으로 그런 이상적인 폴리스가 실존했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모든 시민들은 동등하니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몫을 분배받고 추첨제로 돌아가면서 공화국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 사회 말이죠.
문제는 그런 고전고대적 이상향이 현대사회에 적절한 것이냐인데, 글쎄요 ... 더 보기
문제는 그런 고전고대적 이상향이 현대사회에 적절한 것이냐인데, 글쎄요 ... 더 보기
아마도 센델은 고대 폴리스와 같은 사회를 이상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자유' 시민은 모두 생산활동에 매달리지 않고도 생계 및 품위유지가 가능하고, 그런 시민들이 공동체 정신을 갖고 '공화국' 의 공동선을 위해 토론하고 봉사하는 그런 공화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물론 역사적으로 그런 이상적인 폴리스가 실존했는지는 별개의 문제겠지만..) 모든 시민들은 동등하니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몫을 분배받고 추첨제로 돌아가면서 공화국을 위해 봉사하는 그런 사회 말이죠.
문제는 그런 고전고대적 이상향이 현대사회에 적절한 것이냐인데, 글쎄요 결국에는 현실적으로 센델의 이상주의적 공화주의는 적당히 두루두루 나눠먹자는 타협주의가 될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동기부여라는 점에서 바람직할지... 또 시민으로서의 공적 지위만이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닌데, 센델식 유토피아에서는 직업에서의 성장과 성취가 주는 달성감이 과소평가되진 않을지.. 그러니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메리토크라시가 정답이냐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동기부여라는 점에서는 순기능이 있지만 지금같은 저성장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탈락한 자를 지나치게 양산하는게 문제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결과에의 승복도 패자가 다른 길을 모색해서 패자부활을 노릴 수 있을때나 성립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1명의 성공이 너무나도 많은 사회적 울분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능력주의에 기반해 인센티브를 보장하면서도 탈락자들에게 납득가능한 플랜b를 제공하는게 관건이라 봅니다.
문제는 그런 고전고대적 이상향이 현대사회에 적절한 것이냐인데, 글쎄요 결국에는 현실적으로 센델의 이상주의적 공화주의는 적당히 두루두루 나눠먹자는 타협주의가 될 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합니다. 동기부여라는 점에서 바람직할지... 또 시민으로서의 공적 지위만이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닌데, 센델식 유토피아에서는 직업에서의 성장과 성취가 주는 달성감이 과소평가되진 않을지.. 그러니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메리토크라시가 정답이냐 하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동기부여라는 점에서는 순기능이 있지만 지금같은 저성장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탈락한 자를 지나치게 양산하는게 문제입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결과에의 승복도 패자가 다른 길을 모색해서 패자부활을 노릴 수 있을때나 성립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1명의 성공이 너무나도 많은 사회적 울분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능력주의에 기반해 인센티브를 보장하면서도 탈락자들에게 납득가능한 플랜b를 제공하는게 관건이라 봅니다.
성과주의 및 민주주의를 대체 할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것은 결국 리버테리어니즘(자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정부, 집단, 기업이든 결국은 성과주의와 민주주의 모델을 필요한 분야에 따라 선별적으로 취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듭니다. 성과주의와 민주주의는 개념이 간결하고 당위성에 맞게 운영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차 2차 세계대전 전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절대주의 및 전체주의가 훨씬 강한 시대였죠. 그에 비해서 영국의 권리장전 및 여러 가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 더 보기
그리고 어떤 형태의 정부, 집단, 기업이든 결국은 성과주의와 민주주의 모델을 필요한 분야에 따라 선별적으로 취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듭니다. 성과주의와 민주주의는 개념이 간결하고 당위성에 맞게 운영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차 2차 세계대전 전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절대주의 및 전체주의가 훨씬 강한 시대였죠. 그에 비해서 영국의 권리장전 및 여러 가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 더 보기
성과주의 및 민주주의를 대체 할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것은 결국 리버테리어니즘(자유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정부, 집단, 기업이든 결국은 성과주의와 민주주의 모델을 필요한 분야에 따라 선별적으로 취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듭니다. 성과주의와 민주주의는 개념이 간결하고 당위성에 맞게 운영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차 2차 세계대전 전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절대주의 및 전체주의가 훨씬 강한 시대였죠. 그에 비해서 영국의 권리장전 및 여러 가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 등이 우리가 누리는 현대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성과주의 및 민주주의에 몹시 취하게 됩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것이 여기에 맞죠.
성과주의와 민주주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둘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가지 구성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 비용이 가장 적은 축에 속하고 올라운드로 써먹기 좋은 형태라는 특징이 있을 뿐이죠.
리버테리언이 추구하는 자유는 비용이 큰 자유이면서, 자유도가 가장 적극적인 자유입니다. 우리가 보통 느끼는 freedom 그 이상이죠.
상호적으로 제도로 자유를 보장받으며, 저 높은 곳(논리)에서 봤을 때 마땅한 것을 마땅하게 두루 누리도록 하는 것이죠.
사실 동아시아처럼 liberty 개념이 없고 freedom도 빈약한 사회에서는, 마냥 서구 사회 등을 개방된 그러니까 열린 것이라 표현하죠.
Liberty는 적당히 보면 다들 무질서하고 관심도 없고 아무렇게나 하지만, 그 core를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자아와 주권들을 존중하는 개념이죠. 열려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되면 효율을 일부러 생각할 필요조차 없게 됩니다. 효율을 찾는 것은 비효율이 있을 때, 찾는 것인데 마땅히 존중되는 상호 체제 내에서 그런 개념 자체가 필요없죠.
그리고 어떤 형태의 정부, 집단, 기업이든 결국은 성과주의와 민주주의 모델을 필요한 분야에 따라 선별적으로 취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듭니다. 성과주의와 민주주의는 개념이 간결하고 당위성에 맞게 운영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차 2차 세계대전 전의 세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절대주의 및 전체주의가 훨씬 강한 시대였죠. 그에 비해서 영국의 권리장전 및 여러 가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 등이 우리가 누리는 현대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성과주의 및 민주주의에 몹시 취하게 됩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것이 여기에 맞죠.
성과주의와 민주주의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둘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가지 구성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중에서 비용이 가장 적은 축에 속하고 올라운드로 써먹기 좋은 형태라는 특징이 있을 뿐이죠.
리버테리언이 추구하는 자유는 비용이 큰 자유이면서, 자유도가 가장 적극적인 자유입니다. 우리가 보통 느끼는 freedom 그 이상이죠.
상호적으로 제도로 자유를 보장받으며, 저 높은 곳(논리)에서 봤을 때 마땅한 것을 마땅하게 두루 누리도록 하는 것이죠.
사실 동아시아처럼 liberty 개념이 없고 freedom도 빈약한 사회에서는, 마냥 서구 사회 등을 개방된 그러니까 열린 것이라 표현하죠.
Liberty는 적당히 보면 다들 무질서하고 관심도 없고 아무렇게나 하지만, 그 core를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자아와 주권들을 존중하는 개념이죠. 열려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되면 효율을 일부러 생각할 필요조차 없게 됩니다. 효율을 찾는 것은 비효율이 있을 때, 찾는 것인데 마땅히 존중되는 상호 체제 내에서 그런 개념 자체가 필요없죠.
고대 폴리스라고 해서 능력주의가 없던 건 아니죠. 고대일 수록 잘 싸우는 전사나 자산이 있는 귀족이 능력을 인정받아 고위직에 오르는 게 더 쉬웠던 걸 생각하면.
제가 생각할 때는 결국 능력주의를 이야기 할 때 '능력'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떄문에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세상이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백년 전 까지만 해도 증기 기관은 소수의 열강만이 만들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증기기관은 선진국에서는 관광 목적 뺴고는 소멸한 기술이죠.
프로그래밍 언어만 해... 더 보기
제가 생각할 때는 결국 능력주의를 이야기 할 때 '능력'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떄문에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세상이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백년 전 까지만 해도 증기 기관은 소수의 열강만이 만들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증기기관은 선진국에서는 관광 목적 뺴고는 소멸한 기술이죠.
프로그래밍 언어만 해... 더 보기
고대 폴리스라고 해서 능력주의가 없던 건 아니죠. 고대일 수록 잘 싸우는 전사나 자산이 있는 귀족이 능력을 인정받아 고위직에 오르는 게 더 쉬웠던 걸 생각하면.
제가 생각할 때는 결국 능력주의를 이야기 할 때 '능력'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떄문에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세상이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백년 전 까지만 해도 증기 기관은 소수의 열강만이 만들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증기기관은 선진국에서는 관광 목적 뺴고는 소멸한 기술이죠.
프로그래밍 언어만 해도 요즘에는 C++이니 파이선이니 하지만 결국 여전히 많은 미국 금융기관에서 지금은 별로 사용 안 하는 코볼을 쓰던 것 때문에 난리가 났던 적이 있고요. 요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능력이 매우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능력주의를 주도하는 이들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 우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게 문제라 봅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결국 능력주의를 이야기 할 때 '능력'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하기 떄문에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세상이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백년 전 까지만 해도 증기 기관은 소수의 열강만이 만들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증기기관은 선진국에서는 관광 목적 뺴고는 소멸한 기술이죠.
프로그래밍 언어만 해도 요즘에는 C++이니 파이선이니 하지만 결국 여전히 많은 미국 금융기관에서 지금은 별로 사용 안 하는 코볼을 쓰던 것 때문에 난리가 났던 적이 있고요. 요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능력이 매우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능력주의를 주도하는 이들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 우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게 문제라 봅니다.
절충적 방법이 충분히 가능하고 바람직하지요.
모든 것에 능력주의잣대를 들이대어서, 특히 객관적 지표에 의한 0.1점 차이까지 존중하는 줄세우기를 시행한 결과 소모적 군비경쟁이 발생을 했죠.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온갖 자격시험들(수능, 공무원 등등) 및 공기업 취업 시장에서의 스펙쌓기 경쟁 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자격시험에만 최적화된--정작 실무에서 바보될 수 있는-- 노력들을 강요받다 보니 사회적 낭비라는 실질적 피해가 발생을 했습니다. 더불어 심리적 피로감 또한 극도로 높은 상태이고 이것이 출산률에 반영된 상황입... 더 보기
모든 것에 능력주의잣대를 들이대어서, 특히 객관적 지표에 의한 0.1점 차이까지 존중하는 줄세우기를 시행한 결과 소모적 군비경쟁이 발생을 했죠.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온갖 자격시험들(수능, 공무원 등등) 및 공기업 취업 시장에서의 스펙쌓기 경쟁 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자격시험에만 최적화된--정작 실무에서 바보될 수 있는-- 노력들을 강요받다 보니 사회적 낭비라는 실질적 피해가 발생을 했습니다. 더불어 심리적 피로감 또한 극도로 높은 상태이고 이것이 출산률에 반영된 상황입... 더 보기
절충적 방법이 충분히 가능하고 바람직하지요.
모든 것에 능력주의잣대를 들이대어서, 특히 객관적 지표에 의한 0.1점 차이까지 존중하는 줄세우기를 시행한 결과 소모적 군비경쟁이 발생을 했죠.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온갖 자격시험들(수능, 공무원 등등) 및 공기업 취업 시장에서의 스펙쌓기 경쟁 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자격시험에만 최적화된--정작 실무에서 바보될 수 있는-- 노력들을 강요받다 보니 사회적 낭비라는 실질적 피해가 발생을 했습니다. 더불어 심리적 피로감 또한 극도로 높은 상태이고 이것이 출산률에 반영된 상황입니다.
절충안이란, 일정 커트라인을 제시하고 해당 인원에 대해 무작위 추첨을 돌리면 됩니다. 지금까지 이것이 사회적 납득 불가능했던 이유는 투명성에 대한 담보가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나마 사람들이 납득한 성공적 사례는 카투사 정도가 있지요. 미국이란 나라의 투명성에 대한 기대로 납득이 된 것이죠.
이제는 옛날 얘기라고 해야 될 것 같은데, 일본의 미라이공업이라는 회사가 생각이 납니다. 승진자를 누구로 할 건지를 이름 적은 쪽지를 선풍기에 날려서 우연히 가장 멀리 간 쪽지의 사람으로 했다는 기업이지요. 왜 그렇게 해도 기업이 안 망했는가 하면, '능력주의'라는 이름 하에 쓸 데 없는 능력을 키우지 않고 또한 조직원들이 그 절차가 투명했다는 것에 모두가 납득을 했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한계 또한 예상됩니다. 위에서 굳이 사기업은 제외하고 공기업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업무가 비교적 정형적이라 '일정 수준 이상의 커트'를 정하기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군인을 뽑는 카투사도 마찬가지지요, 군인이 하는 일은 정해져있으니. 대학 입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사기업에다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지요. 당장 5년, 10년 뒤에 회사가 무슨 새로운 사업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모든 것에 능력주의잣대를 들이대어서, 특히 객관적 지표에 의한 0.1점 차이까지 존중하는 줄세우기를 시행한 결과 소모적 군비경쟁이 발생을 했죠.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온갖 자격시험들(수능, 공무원 등등) 및 공기업 취업 시장에서의 스펙쌓기 경쟁 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자격시험에만 최적화된--정작 실무에서 바보될 수 있는-- 노력들을 강요받다 보니 사회적 낭비라는 실질적 피해가 발생을 했습니다. 더불어 심리적 피로감 또한 극도로 높은 상태이고 이것이 출산률에 반영된 상황입니다.
절충안이란, 일정 커트라인을 제시하고 해당 인원에 대해 무작위 추첨을 돌리면 됩니다. 지금까지 이것이 사회적 납득 불가능했던 이유는 투명성에 대한 담보가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나마 사람들이 납득한 성공적 사례는 카투사 정도가 있지요. 미국이란 나라의 투명성에 대한 기대로 납득이 된 것이죠.
이제는 옛날 얘기라고 해야 될 것 같은데, 일본의 미라이공업이라는 회사가 생각이 납니다. 승진자를 누구로 할 건지를 이름 적은 쪽지를 선풍기에 날려서 우연히 가장 멀리 간 쪽지의 사람으로 했다는 기업이지요. 왜 그렇게 해도 기업이 안 망했는가 하면, '능력주의'라는 이름 하에 쓸 데 없는 능력을 키우지 않고 또한 조직원들이 그 절차가 투명했다는 것에 모두가 납득을 했다는 분석이 있었습니다.
한계 또한 예상됩니다. 위에서 굳이 사기업은 제외하고 공기업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업무가 비교적 정형적이라 '일정 수준 이상의 커트'를 정하기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군인을 뽑는 카투사도 마찬가지지요, 군인이 하는 일은 정해져있으니. 대학 입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사기업에다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지요. 당장 5년, 10년 뒤에 회사가 무슨 새로운 사업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죠. 얼마나 섞을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운과 능력 이외의 제3의 잣대는 무엇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본문 말미에서 제시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작위 요소의 절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승자도 자신이 일정 커트라인을 넘겼다는 점에서만 제한적인 자만감을 가질 것이고, 패자도 무제한적 패배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커트라인을 넘겼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다는 합리적인 기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또다른 적용사례가 수능시험에서 한국사와 영어 능력에서 제한된 상대평가 혹은 절대평가를 도입했다는 점이 있네요. 모든 능력에서 무한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고 제도화했다는 의미가 있겠습니다.
본문 말미에서 제시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작위 요소의 절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승자도 자신이 일정 커트라인을 넘겼다는 점에서만 제한적인 자만감을 가질 것이고, 패자도 무제한적 패배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커트라인을 넘겼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다는 합리적인 기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지금 생각나는 또다른 적용사례가 수능시험에서 한국사와 영어 능력에서 제한된 상대평가 혹은 절대평가를 도입했다는 점이 있네요. 모든 능력에서 무한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고 제도화했다는 의미가 있겠습니다.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