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머가 아닌 펌글, 영상 등 가볍게 볼 수 있는 글들도 게시가 가능합니다.
- 여러 회원들이 함께 사용하기 위해 각 회원당 하루 5개로 횟수제한이 있습니다.
- 특정인 비방성 자료는 삼가주십시오.
Date 22/02/05 23:00:44
Name   김치찌개
File #1   1.jpg (235.4 KB), Download : 65
Subject   하버드 졸업 30주년 동문회에 다녀와서 느낀 것들.jpg


1. 인생을 계획한대로 살아낸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라도 ‘예정 없이 찾아오는’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2. 선생님이나 의사가 된 친구들이 대체로 행복해보였습니다.



3. 변호사들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거나 다른 직업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다만, 로스쿨 교수가 된 친구들은 대체로 직업에 만족했습니다. (2번에서도 언급했듯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비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금융권에서 일한 친구들은 그동안 모은 재산을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친구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직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직종을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많인 꿈꾸는 분야는 예술이었습니다.



5. 예술 관련 분야에서 일한 친구들은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큰 성공을 거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6.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총동문회 직전에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재산이 많을수록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7. 같은 설문조사 결과 하버드 84학번 동문이 가장 채우고 싶은 욕구는 수면욕이었습니다. 잘 자는 일은 섹스나 돈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8.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애창곡인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Burning Down the House’가 1학년 기숙사에 울려 퍼졌는데, 다들 35년 전을 생각하며 즐거워했습니다.



9. 신입생 때 부끄러움을 가장 많이 타던 친구들이 신기하게도 동창회 간부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번 동문회를 성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10. 이혼한 친구들은 대체로 이혼한 뒤의 삶에 만족했습니다.



11. 그러나 원치 않은 이혼을 한 친구들은 이혼한 뒤 삶이 훨씬 힘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12.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친구들은 결혼 후 어느 시점에 부부 관계가 성숙한 관계로 접어드는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친구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상담받던 중 답답한 마음에 “나도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야!”라며 소리 질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연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자기를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로 아내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건 남편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며 그 부족한 점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부대끼는 부부는 종종 이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13. 대부분의 친구들이 젊은 시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에 대해 사사건건 비판했는지를 생각하면 놀랍도록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14. 어느덧 쉰을 넘은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자주 썼습니다. 동창회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가깝고 친한 사람에게만 아껴서 쓸 수 있게 쟁여놓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아낌없이 나눠줘도 사랑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가 들며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5. 84학번 동문 중에는 하원의원(Jim Himes)도 있고, 토니어워드를 받은 뮤지컬 감독이자 연출가(Diane Paulus)도 있으며, 우주에 다녀온 사람(Stephanie Wilson)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이나 성취와 관계없이 파티나 강연, 토론에서 하게 되는 말, 찾게 되는 가치는 대체로 보편적인 가치로 수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 안식, 지적 자극, 훌륭한 리더십, 지속가능한 환경, 우정, 안정 같은 것들 말입니다.



16. 부모가 된 이들은 그 결정을 잘한 일이라며 만족해했습니다. 일부러 자녀를 낳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지 않을 것을 후회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17. 첫 신입생 기숙사 룸메이트와 술집에서 한잔하던 일을 30년 지나서 하니 훨씬 더 재밌었습니다.



18.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 오랜 친구네 집에서 자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물론, 새로 결혼하거나 같이 살 사람을 찾는 경우, 아니면 하룻밤 섹스를 즐길 파트너를 찾을 때는 집보다 호텔이 낫습니다.



19. 배우자가 있는 친구들 대부분은 동문회에 혼자 왔습니다.



20. 무릎, 엉덩이, 어깨가 성한 친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21. 얼굴에 나타난 혈색만 봐도 지난 30년 동안 누가 술을 많이 마셨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2. 대체로 여학생들의 외모가 남학생보다 준수했습니다.



23. 대체로 남학생들이 소득, 직장에서의 직책, 승진 면에서 여학생보다 성과가 좋았습니다. (믿기 어렵지만요!)



24.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우리의 삶에 꽤 큰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특히 제대로 된 보육 시설이 없고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전무하던 시절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했던 쪽은 대부분 엄마였습니다.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25. 하버드 메모리얼 교회의 종이 27번 울렸습니다. 1988년 졸업생 가운데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27명을 기리는 의미였습니다. 모두 숙연해진 우리는 앞으로 30년 동안 타종해야 할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리라는 숙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26. 학부 시절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던 친구들이 추도식에서 부르던 노래는 졸업 후 연습 없이도 마치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던 것처럼 합이 척척 맞았습니다. 심지어 그사이 곡이 편곡돼 예전에 부르던 노래와 달랐는데도 말이죠.



27. 쉰이 넘으면서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기숙사 룸메이트 한 명은 1984년에 내가 했다는,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어떤 일을 이야기하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한 친구는 5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하버드 동문 인명록에서 내가 병원 응급실에 갈 때 우버 합승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글을 읽었다며 다음 번에는 구급차를 탈 수 있게 자기가 돈을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려는 친구를 향해 나는 웃으면서 당분간 응급실 갈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 말만이라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28.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 친구가 해준 말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나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하버드 15학번으로 입학했다가 지난해 여름 숨진 딸의 장례식에 상주로 선 엄마가 나와 동문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미처 꽃피우지 못하고 살지 못한 나날들에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우리 아이가 누구보다도 눈부시고 찬란하게 살아낸 21년을 기억하고 감사할 겁니다.”



29.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한 이도 있고, 여전히 그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한 이도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동문회에서 30년 전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장 행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 한 명은 건강 관련 회사를 경영하다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며 얼굴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돼 동문회에 온 친구를 본 나는 반가운 마음에 “우리 이렇게 만났네!”라고 격하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우리는 계속해서 포옹하고 따뜻하게 웃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이 사라지겠지만, 이렇게 함께 있기에 그 또한 치러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30. 사랑만으로 모든 걸 치유하고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사랑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17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5538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키우는 강아지 순위 7 하트필드 18/12/14 4021 2
34299 문신이 마음에 안들때 없애는 법.jpg 9 Bergy10 18/10/19 4021 4
22308 ???: 언주야~ 보고 있니~ tannenbaum 17/05/10 4021 0
39421 러시아 대학살이 뭔가요? 1 사나남편 19/07/17 4020 2
37340 최근 버닝썬 승리 군입대에 대한 한 미국인의 쓴소리 5 Darwin4078 19/03/10 4020 0
622 신길동 매운 짬뽕.jpg 3 김치찌개 15/06/24 4020 0
56266 하버드 졸업 30주년 동문회에 다녀와서 느낀 것들.jpg 7 김치찌개 22/02/05 4019 17
51060 우리나라 낙지가 온건파로 보이는 미얀마 국영방송 17 닭장군 21/03/29 4019 1
2958 [유튭] 2015 미스코리아 진선미 래시가드 수영복 프로필 촬영 12 위솝 15/10/01 4019 1
51501 듣고 싶은 말 23 케이크 21/04/26 4018 0
28155 인텔에 잡힌 외계인. 우분투 18/01/06 4018 2
50352 진돗개는 사실 비상벨이었다.history 2 Schweigen 21/02/13 4017 0
38938 자신의 미모에 도취된 여자들 2 tannenbaum 19/06/16 4017 1
31576 김정은과 트럼프가 문서 세 개에 서명한 이유 15 알겠슘돠 18/06/12 4017 17
12176 길거리에서 모르는 여성과 키스 시도 4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6/02 4017 0
464 블본좌?.jpg 3 영원한초보 15/06/18 4017 0
49677 여행계획 스타일 22 케이크 21/01/06 4015 0
30275 국민가수 닐로 19 tannenbaum 18/04/16 4015 0
19780 대령에서 별(준장) 진급할때 특이하게 하향되는점.jpg 5 김치찌개 17/02/15 4015 0
38110 솔직히 펀치 날아오는거는 어깨 보면 대충 피할 수 있지 않아요? 2 17 Darwin4078 19/04/23 4014 3
18992 메이드인 차이나 스티커의 진실 1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1/24 4014 0
609 건물주의 횡포에 울분을 터뜨리는 세입자.jpg 6 darwin4078 15/06/23 4014 0
28660 [엑셀 33] PHONETIC 함수로 이메일 주소 모두 취합하기.jpg 1 김치찌개 18/01/29 4013 0
20209 극혐 꼰대들의 근황.jpg 14 김치찌개 17/03/04 4013 0
8264 군대의 흔한 설정샷 1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1/27 4013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