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게시판입니다.
Date 15/10/27 17:30:41
Name   No.42
Subject   \'답\'이 없는 과금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사업모델에 따라서 금전적인 지출을 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있으나, 이런 게임들 역시 광고를 보아야 한다는 식으로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게임의 과금은 유저들을 그저 '호갱님'으로 만드는 방향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유형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그런 방향이 보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는 한국 게임에서 더욱 두드러지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경험한, 그 가운데서 지극히 기형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몇몇 사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돈은 썼지만 남는 것이 없다.

'가챠'라는 형식이 있습니다. 동전넣고 빙글빙글 돌려서 뽑는... 아재들은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한 번 씩은 다 해봤을 그것을 말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챠도 그 무대를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왔지요. 문제는 이 가챠라는 것은 '운빨'에 모든 것을 거는 형태라는 겁니다. 신나게 동전을 넣고 수십번을 뽑아도 운이 나쁘면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았던 그 가챠가 게임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죠. 때문에 각종 게임에서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열심히 돈을 쓴 유저들은 단순히 운이 나쁘다는 이유로 돈과 시간만을 날리고 정작 남는 것은 없는 거지같은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게임은 디지털 콘텐츠이다보니, 이 가챠의 확률을 서비스 제공자 측에서 손쉽게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세부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지요.) 이런 가챠류의 과금 형태를 개인적으로 최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게임이 아니라 도박에 가깝지요. 도박은 신나게 패라도 돌리고 게임을 즐기다가 돈을 날리지만, 가챠류는 그저 아이템 까보다가 돈이 증발하는 것이라 더욱 안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가챠류 과금을 내던진 게임의 경우, 가챠를 통한 수집이나 획득이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TCG 형식의 게임 등이 특히 그렇지요. 이런 말같지 않은 과금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는 축에서는 돈을 어느 정도 쓰면 운이 없어서 원하는 거 못먹었더라도 어느 정도의 보상을 보장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하스스톤에서 원하는 전설을 못먹어도 나온 거 갈아서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것... 정도가 있겠죠. (하스스톤은 가챠류 중에선 가장 바람직한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 확률도 그렇고...) 하지만 '그딴 거 없다'는 게임도 퍽 많죠. 온라인이든 모바일이든 어느 정도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가챠류 과금은 그저 안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2. 밑 빠진 게임에 돈을 부어라.

세계가 열광하는 LOL은 업데이트가 거듭되면서 챔피언 간의 밸런스가 끊임 없이 조정되고, 메타가 바뀌고 있습니다. 때문에 소위 '대세'라는 챔프가 변하고 새로이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사실, 이 게임은 이런 면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롤에서는 새로운 챔프를 구매할 때 부담이 지극히 적은 편입니다. 나머지는 유저가 게임을 하며 그 챔프에 익숙해지는, 게임 내에서 게임을 통해서 '놀면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죠. 그런데 어떤 게임은 이런 과정을 오로지 과금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모바일 RPG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븐나이츠'를 한 번 보겠습니다. 이 게임은 원하는 영웅을 획득하여 성장시키는 데에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합니다. 그 과정이 당연히 과금을 통해서 크게 쉬워질 수 있지요. 한 때 이 게임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결투장에서 물리공격 면역 캐릭터들이 대세로 군림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면역 영웅들을 육성하는 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상위 유저들의 육성이 완료될 때 쯤에, 면역을 무시하고 공격이 들어가는 관통이라는 옵션을 장착한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유저들은 다시 돈과 시간을 들여서 관통 영웅들을 육성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통조차 무시하는 횟수 제한 면역을 장착한 영웅들이 나왔습니다. 그 후에는 한 번 공격에 여러번의 공격을 가하는 영웅들이 나왔죠. 이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서 뭘 육성하면 그걸 제대로 누리기 전에 다시 다른 영웅을 육성해야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잡으려면 과금이 없이는 정말 힘듭니다. 그것도 한 달에 몇십만원 단위의 헤비한 과금이 필요하죠. MMORPG 정액 요금처럼 일정한 수준의 지출로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답은? 역시 안하는 게 답이라는 생각입니다.


3. 오빠 한 번 믿어봐.

예약판매라는 것이 있답니다. 말 그대로 아직 나오지 않은 게임을 미리 돈주고 구매하는 겁니다. 뭐, 이런 저런 특전을 내밀어서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이건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예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영화가 희대의 망작이면 돈만 날리는 겁니다. 심지어 예약판매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 발매될 DLC 무료 혹은 할인' 그냥 영화 하나 예매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개봉될 시리즈에 대해서까지 돈을 지불하는 거죠. 이게 몇 편까지 개봉될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즉, 돈 주고 살만한 게임인지 쓰레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DLC가 얼마나 발매될 지, 그 DLC들이 괜찮을 지 않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사라는 거지요. 말만 들어보면 왜 사나 싶지만, 신기하게도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작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인지 클라우드 펀딩의 개념인지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적당한 과금은 게임을 더욱 게임답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도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믿음이지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저는 PS1으로 게임을 하던 시절에 불법개조를 하여 소위 '복돌이'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SFC 시절이나 PS1 초기에는 학생이 게임 타이틀 정품 하나 구매하는 것이 퍽 부담스러웠습니다. 몇 만원씩 하는 '게임'을 사는 게 눈치도 보이거니와, 자금 마련에도 시간이 걸리죠. 때문에 벼르고 별러서 타이틀을 하나 사면 그 타이틀로 정말 '뽕을 뽑았습니다.' 게임을 하나 하기 시작하면 엔딩은 물론이요, 숨겨진 요소들까지 죄다 꺼내서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놓지 않았습니다. 일단 비싼 돈 주고 산 그 타이틀 말고는 할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복돌이 생활이 시작되면서 이게 크게 바뀌게 됩니다. 전에 타이틀 하나 살 돈으로 타이틀을 열 개, 스무 개 살 수 있게 되니까 별의 별 걸 죄다 사서 늘어놓고는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하게 되더군요. 덕분에 엔딩을 보는 게임마저 크게 줄어들고, 그냥 겉만 핥고 마는 게임들만 엄청 쌓여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용돈 모아서 SFC 팩 하나 사고 그걸로 몇 달을 버티던 그 시절이 게임하는 재미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사용했던 그 돈은 지금 생각해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화폐가치의 변화를 고려하고라도- 그 몇 배가 되는 지불하고도 얻는 것은 오로지 짜증뿐인 이상한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변한 것이 게임인지 혹은 늙어버린 제 자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LOL은 봇전만 하고, 브론즈 랭크에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전 챔프나 스킨을 가끔씩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돈을 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스스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할 때는 어느 정도 과금을 꼭 하고 있습니다. 역시 돈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판14의 정액 요금을 결제했습니다. 돈을 지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 문자를 보면서 아깝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 돈이 내 주머니에서 나간 만큼 즐거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지요.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제게 어느 정도 답장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이게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문득 이런 게임이 특별해 보이는 것이 29년 게임 유저로서 매우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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