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입 인사를 남기는 공간입니다.
Date | 15/10/25 04:02:55 |
Name | 뤼야 |
Subject | 제2장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 |
꿈은 두번째 인생이다. - 네르빌 <오렐리아>- 당신은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들어갔습니다. 익숙한 물건들 사이에, 당신의 냄새와 추억이 배어 있는 시트와 담요 안에 자리를 잡았지요. 익히고 알고 있는 베게의 부드러움을 머리로 느꼈고, 옆으로 돌아누워 다리를 배 쪽으로 끌어올리고 이마를 숙이니, 베게의 차가운 부분이 빰을 시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곧, 잠이 들 것이며, 당신을 휘감는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 모든 것을 잊을 겁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잊을 겁니다. 우월한 자들의 무자비한 힘, 경솔했던 말, 바보 같은 짓, 제시간에 끝내지 못한 일, 몰이해, 배반, 불의, 무관심, 당신을 비난하거나 비난할 사람, 재정적 곤란, 빠르게 흐르는 시간, 끝없는 기다림, 당신이 닿을 수 없는 물건과 사람, 당신의 외로움, 당신의 수치, 당신의 패배, 당신의 초라함, 당신으 고통, 재앙(이 모든 재앙)을 잊을 겁니다. 잊을 거라는 기대가 당신을 위로합니다. 당신은 조용히 기다립니다. - 오르한 파묵 [검은책] 중에서 - 안녕하세요. 아는 분들은 알고 모르는 분들은 모를 뤼야입니다. 홍차넷에 처음 가입할 때도 저는 파묵의 [검은책]의 한 장을 통째로 인용했는데, 재가입에도 파묵을 떠올렸네요. 제 닉네임인 '뤼야'는 [검은책]의 히로인입니다. 그녀는 맑시스트인 첫번째 남편과의 이혼 후에 사촌인 갈립과 결혼을 했다가, 배다른 오빠인 제랄과 어느날 갑자기 사라집니다. 갈립은 어느날 무심한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마치 잠깐 볼 일이 있어 외출을 한 듯한 아내 뤼야의 흔적을 찾아 오래된 도시 이스탄불을 헤매기 시작합니다. 홀수의 장은 갈립의 이야기가, 짝수의 장은 제랄이 신문에 쓴 칼럼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의 중반부터 갈립은 자신이 숭배하고 선망했던 칼럼작가이며 사촌인 제랄을 대신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며 점점 그와 동치됩니다. 언뜻보면 폐륜으로 가득한 이 세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파묵은 '나 자신이 되기'라는 실존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인간이 자기자신이 될 수 있는지 혹은 될 수 없는지를 발견한 19세기의 한 왕자의 이야기를 제랄이 쓴 칼럼의 형식으로 후반부에 도입하기도 하고요. 어쩌면 제랄은 갈립이 어린시절부터 동경해 마지않던 사촌형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갈립의 분신이랄 수도 있고, 또 다른 자아일 수도 있고, 또는 갈립자신일 수도 있지요. 위에 인용된 장은 짝수의 장인 제랄의 칼럼 중 일부입니다. 하나하나가 황홀한 단편들이지요. 제 소개는 별로 할 것이 없습니다. 경력이 단절되어 백수로 지내는 동안 더욱 열심히 소설을 읽었고, 잠시 마라톤에 빠져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여섯끼를 먹으며 운동을 하다가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적이 있습니다. 경력이 단절된 이후에는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며 지냅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 먹는 것, 품평하는 것 모두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제 업장을 내는 것이 꿈입니다. 현재는 싱글이고, 무지막지하게 나이차가 많이 나는 연하의 애인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운동을 쉬었는데 요새 보충제 하나를 먹고 회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쯤에는 다시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도록 몸을 만들려고 운동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뤼야님의 최근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