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다르긴 한데, 응급실 있을 적 보호자가 전혀 없던 지주막하 출혈 환자가 와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변 대학병원은 보호자가 없으면 전원을 안받기에 이대로 여기서 어찌해야하나 멘붕이었습니다.
마침 외래에 동네 주민이 들려 환자의 주소를 알게되었고, 직원이 집에가서 전화번호부로 아들 연락처를 알아내 그로 아들과 연락 후 대학병원에 전원 보냈고 후일 무사히 퇴원했다고 들었습니다.
시골의 나쁜점도 많이 경험하고 있지만, 위 경우는 외려 시골이라서 저런게 가능했기에 좋은 결과가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응급실 파견나갔을 때 사연 하나 적어볼게요.
아침 8시 응급실에 119구조대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받으시는 분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셨죠.
길가에 쓰러지신 것을 모셔왔는데 응급실에 도착하셨을 당시에는
자발호흡, 맥박, 의식 다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다행히 핸드폰을 갖고 계셔서 할머니께 연락을 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청력이 안 좋으셔서 잘 알아듣지를 못하시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는데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XX병원으로 빨리 오세요."
"응?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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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응급실 파견나갔을 때 사연 하나 적어볼게요.
아침 8시 응급실에 119구조대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받으시는 분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셨죠.
길가에 쓰러지신 것을 모셔왔는데 응급실에 도착하셨을 당시에는
자발호흡, 맥박, 의식 다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다행히 핸드폰을 갖고 계셔서 할머니께 연락을 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청력이 안 좋으셔서 잘 알아듣지를 못하시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는데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XX병원으로 빨리 오세요."
"응? 뭐라고?"
이 광경을 보시던 응급실 수간호사 선생님이 경찰 지구대에 연락을 하시더군요.
한시간 정도 지난 뒤 할머니가 오셨는데 할아버지는 이미 생의 끈을 놓으신 뒤였습니다.
조용히 남편의 얼굴에 손을 대고 흐느끼시는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더군요.
파견 기간동안 이런 일들을 몇번 더 겪었습니다.
인사 없는 이별의 현장을 보는 것이 환자 많을 때 업무강도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병원 행정직으로 재입사 하기 전) 대학 종합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간호부로 일하셨는데... 특히 응급실에서 근무하실 때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하루에도 수 차례 씩 자녀 또래 아이들이 사고나 병으로 실려오고, 그중 일부는 병실로도 집으로도 가지 못하는걸 잊을만 하면 두 눈으로 목도하셨어야 했으니까요. 어린 제가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TV 채널에서 아이들이 사고 당하는 장면이나 아파하는 장면만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지금은 어렴풋이 느끼는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