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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길 아직도 해야 하나, 싶지만,
1-(-1)=2 부터 가르쳐야 했던 고 3시절 짝을 떠올리면 이런 설명이 아직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1)=2 부터 가르쳐야 했던 고 3시절 짝을 떠올리면 이런 설명이 아직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죄밉사사라고 말하는 순간 사실은 죄에만 관심있고 사람에는 관심이 없다는 걸 자백하는 거지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오래도록 관찰하고 이해해야하는데 관심이 없으니 어디 그게 되나...
성서 시대 사람들의 동성간 동침에 대한 이해라고 해봐야 성조기 휘날리는 꼴통 신자 1보다 낫지 않을 거고 딱 그 수준의 관점에서 판정해서 써제낀 걸 텐데 현시대에 그걸 전거로 삼는 건 순환논리에 가깝다는 거죠. 고양이가 거울에 대고 친구에게 그루밍 해주는 격
모든 개념에는 시간표가 있어요. 그래서 '그 시대에 맞는 사랑과 연애가 있'었다고 하는 것보다는 해당시대의 문헌에 보이는 개념중에 오늘날의 '사랑'에 해당하는 것과 '연애'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지만 그것들과 오늘날의 '사랑'과 '연애'는 실은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게 보다 더 정확한 언명이에요. 예컨대 논어를 펴서 愛자가 나왔다고 해서 그게 현대의 담론장에서 '사랑'이라는 표딱지를 달고 유통되는 개념과 같은 것이냐고 한다면 실은 무척 다른 것과 같아요. 그래서 해석이 필요한 거구요. 당장 오늘날 우리말로 사랑과 연애라고하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유연애를 통한 애모라는 관념이 수반하지만 다윗에게서 이와 같은 자유연애관을 읽으려고한다면 그냥 시대착오 아니겠어요.
본문 결론부 핵 공감입니다.
[... 그러나 자신들의 혐오를 성경이나 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월권이자 불경이다. 그것은 신을 쪼잔한 차별주의자로 만들고, 혐오를 신앙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예수는 동성애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 그를 살해한 것은 교리 전문가인 사제와 율법학자들이었다.]
[... 그러나 자신들의 혐오를 성경이나 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월권이자 불경이다. 그것은 신을 쪼잔한 차별주의자로 만들고, 혐오를 신앙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예수는 동성애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다. 그를 살해한 것은 교리 전문가인 사제와 율법학자들이었다.]
제가 1984를 읽었을 때 감명받았던 것은 빅부라더가 아니라, 언어를 없애거나 조작함으로써 관념을 없애가나 조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유라는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다크메터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그것을 현대의 사랑이나 연애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쩌는 여자 보면 남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요. 그 당시에 아드레날린이 뭔지 모르고 이러한 감정이 한눈에 반했다라는 것을 모른다 할 지라도요.
시간표는 있으나 그것은 인지의 시간표이지 존재... 더 보기
그것을 현대의 사랑이나 연애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쩌는 여자 보면 남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요. 그 당시에 아드레날린이 뭔지 모르고 이러한 감정이 한눈에 반했다라는 것을 모른다 할 지라도요.
시간표는 있으나 그것은 인지의 시간표이지 존재... 더 보기
제가 1984를 읽었을 때 감명받았던 것은 빅부라더가 아니라, 언어를 없애거나 조작함으로써 관념을 없애가나 조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유라는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다크메터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그것을 현대의 사랑이나 연애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쩌는 여자 보면 남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요. 그 당시에 아드레날린이 뭔지 모르고 이러한 감정이 한눈에 반했다라는 것을 모른다 할 지라도요.
시간표는 있으나 그것은 인지의 시간표이지 존재의 시간표는 아닙니다.
동성애로 넘어가서, 동성과 하는 성적 행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존재했으리라 봅니다. 예전 고대 그리스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를 짝으로 부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 보면요. 마리텔에서도 나오죠.
예를 들어 동성애의 원인이 되는 genetic, epigenetic에 대해서 아직 모릅니다 (물론 이에대한 이야기 위험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후에 밝혀질 수 있지요. 존재하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대의 관점에서는 현대의 우리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curable genetic disease라면요? 이에대한 고찰은 오히려 엑스멘 영화를 통해 잘 다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현대의 사랑이나 연애로 표현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쩌는 여자 보면 남자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요. 그 당시에 아드레날린이 뭔지 모르고 이러한 감정이 한눈에 반했다라는 것을 모른다 할 지라도요.
시간표는 있으나 그것은 인지의 시간표이지 존재의 시간표는 아닙니다.
동성애로 넘어가서, 동성과 하는 성적 행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존재했으리라 봅니다. 예전 고대 그리스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를 짝으로 부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 보면요. 마리텔에서도 나오죠.
예를 들어 동성애의 원인이 되는 genetic, epigenetic에 대해서 아직 모릅니다 (물론 이에대한 이야기 위험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후에 밝혀질 수 있지요. 존재하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대의 관점에서는 현대의 우리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curable genetic disease라면요? 이에대한 고찰은 오히려 엑스멘 영화를 통해 잘 다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암흑물질과 자유는 존재론적 층위가 전혀 달라요. 물질은 인지하지 못해도 존재하지만 관념은 인지가 곧 존재예요. 아무도 인지하지 않을 때 그것은 없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어떤 관념을 인지(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그래서 존재하지 못한) 시점에조차 그것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모든 사학과 대학원생이 한번쯤 거쳐가는 실수예요.
관념의 세계는 인지가 곧 존재라는게 이해가 안되시면 일단
https://en.wikipedia.org/wiki/The_Social_Construction_of_Reality
이걸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관념의 세계는 인지가 곧 존재라는게 이해가 안되시면 일단
https://en.wikipedia.org/wiki/The_Social_Construction_of_Reality
이걸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연애가 19세기의 발명품이라는 건
https://en.wikipedia.org/wiki/Free_love
이게 나름 정리를 잘 했어요. 요즘 위키 좋네... 하지만 영문이 너무 길어서 압박. 그래서 찾아보니
https://hub.zum.com/ppss/7566
이런 것도 괜찮네요.
https://en.wikipedia.org/wiki/Free_love
이게 나름 정리를 잘 했어요. 요즘 위키 좋네... 하지만 영문이 너무 길어서 압박. 그래서 찾아보니
https://hub.zum.com/ppss/7566
이런 것도 괜찮네요.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저는 성경의 해석을 동성애 금지로 가는게 특별히 틀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뉴스 글쓴님처럼 동성애 옹호쪽으로 해석할수도 있겠죠.
둘다 가능하고 서로 누가 맞다고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때 문제는 동성애를 포용하고 있지 못한 틀린 성경해석이 아니고
성경이 2000년뒤의 현세에 지나치게 실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현재 상황입니다.
저는 성경의 해석을 동성애 금지로 가는게 특별히 틀렸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뉴스 글쓴님처럼 동성애 옹호쪽으로 해석할수도 있겠죠.
둘다 가능하고 서로 누가 맞다고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때 문제는 동성애를 포용하고 있지 못한 틀린 성경해석이 아니고
성경이 2000년뒤의 현세에 지나치게 실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현재 상황입니다.
좋은 글이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은 자가당착에 빠지는 문제가 있어요. 신이 쪼잔한 차별주의자인지 우린 알 수 없어요. 근본주의자의 쪼잔한 신이 실제에 더 들어맞는다면? 이란 질문에 답할 수 없는데, 이미 글쓴이는 자신의 신관을 글에 강하게 투영해버렸어요. 이 글은 그저, 근본주의 기독교와 반대편의 골을 깊게 만들 뿐이에요. 지금 필요한 해결책이 이쪽 방향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도 충분히 세속적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유태교, 이슬람교, 몰몬교와 기독교는 이미 다르죠.
충분히 세속적이라고 해서 현세 실생활에 영향을 안주고 있는건 아니에요.
말씀하셨듯,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충분히 세속적이면서도 현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거죠.
저는 아래 홍차의오후님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낙태에 반대한다고 해서 성경의 논리를 수용하고
동성애를 혐오한다해서 성경의 논리를 반대하거나 성경내에서 반대논리를 만들려고 하고 하는것 자체에 반대입니다.
꼭 그런건 아니더라도 성경내부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더 보기
유태교, 이슬람교, 몰몬교와 기독교는 이미 다르죠.
충분히 세속적이라고 해서 현세 실생활에 영향을 안주고 있는건 아니에요.
말씀하셨듯,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충분히 세속적이면서도 현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거죠.
저는 아래 홍차의오후님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낙태에 반대한다고 해서 성경의 논리를 수용하고
동성애를 혐오한다해서 성경의 논리를 반대하거나 성경내에서 반대논리를 만들려고 하고 하는것 자체에 반대입니다.
꼭 그런건 아니더라도 성경내부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 더 보기
저도 충분히 세속적인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유태교, 이슬람교, 몰몬교와 기독교는 이미 다르죠.
충분히 세속적이라고 해서 현세 실생활에 영향을 안주고 있는건 아니에요.
말씀하셨듯,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충분히 세속적이면서도 현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거죠.
저는 아래 홍차의오후님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낙태에 반대한다고 해서 성경의 논리를 수용하고
동성애를 혐오한다해서 성경의 논리를 반대하거나 성경내에서 반대논리를 만들려고 하고 하는것 자체에 반대입니다.
꼭 그런건 아니더라도 성경내부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해석도 반대입니다.
그냥 성경은 이제라도 손을 떼야합니다.
마치 스님들이 남들이 (심지어 신도가 고기를 먹는것에도) 간섭하지 않듯이
손을 철저히 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안에서 옹호논리를 찾는것 자체에 반대입니다.
본문은 성경안에서 옹호논리를 찾은건 아니고 동성애 옹호가 성경에 틀리지 않다 정도이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교리로 논하자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쪽에 손을 들어주고싶습니다.
그들끼리 그렇게 살면되겠죠.
유태교, 이슬람교, 몰몬교와 기독교는 이미 다르죠.
충분히 세속적이라고 해서 현세 실생활에 영향을 안주고 있는건 아니에요.
말씀하셨듯,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충분히 세속적이면서도 현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거죠.
저는 아래 홍차의오후님과 생각이 비슷합니다.
저는 기독교가 낙태에 반대한다고 해서 성경의 논리를 수용하고
동성애를 혐오한다해서 성경의 논리를 반대하거나 성경내에서 반대논리를 만들려고 하고 하는것 자체에 반대입니다.
꼭 그런건 아니더라도 성경내부 교리와 어긋나지 않는다는 해석도 반대입니다.
그냥 성경은 이제라도 손을 떼야합니다.
마치 스님들이 남들이 (심지어 신도가 고기를 먹는것에도) 간섭하지 않듯이
손을 철저히 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안에서 옹호논리를 찾는것 자체에 반대입니다.
본문은 성경안에서 옹호논리를 찾은건 아니고 동성애 옹호가 성경에 틀리지 않다 정도이지만, 그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교리로 논하자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쪽에 손을 들어주고싶습니다.
그들끼리 그렇게 살면되겠죠.
https://um-insight.net/perspectives/has-“homosexual”-always-been-in-the-bible/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인데
레위기등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arsenokoitai를 영어로 동성애로(homosexual) 번역하는건 상대적으로 근래의 일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이 번역이 보급화되기 이전의 다른 유럽 언... 더 보기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인데
레위기등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arsenokoitai를 영어로 동성애로(homosexual) 번역하는건 상대적으로 근래의 일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이 번역이 보급화되기 이전의 다른 유럽 언... 더 보기
https://um-insight.net/perspectives/has-“homosexual”-always-been-in-the-bible/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인데
레위기등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arsenokoitai를 영어로 동성애로(homosexual) 번역하는건 상대적으로 근래의 일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이 번역이 보급화되기 이전의 다른 유럽 언어들 (독어가 가장 자주 언급됩니다)에서는 arsenokoitai를 동성애가 (homosexual) 아니라 남자성인이 남자아이를 (child molesting) 성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번역했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 미국의 NIV 번역을 주도한 단체에서 독어성경이 발간되면서 homosexual로 번역된 독어 성경들의 시작이라는데
현대사회적인 동성애를 1세기 이전의 기독교인들이 몰랐던것은 물론이요,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1세기 이전의 동성성행위를 모르는 것도 동시성립하지 않나 싶습니다.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회자되는 이야기인데
레위기등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arsenokoitai를 영어로 동성애로(homosexual) 번역하는건 상대적으로 근래의 일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이 번역이 보급화되기 이전의 다른 유럽 언어들 (독어가 가장 자주 언급됩니다)에서는 arsenokoitai를 동성애가 (homosexual) 아니라 남자성인이 남자아이를 (child molesting) 성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번역했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 미국의 NIV 번역을 주도한 단체에서 독어성경이 발간되면서 homosexual로 번역된 독어 성경들의 시작이라는데
현대사회적인 동성애를 1세기 이전의 기독교인들이 몰랐던것은 물론이요,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1세기 이전의 동성성행위를 모르는 것도 동시성립하지 않나 싶습니다.
https://redtea.kr/?b=3&n=7427&c=103306
예를 들면, 상상의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명제가 그래요. 이집트의 파라오가 바빌론에 쇼핑하러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는 따져볼 문제죠 ㅎㅎ 고대 중근동은 소비낭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이세계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할 순 없어요. 또, (가능성이 현저히 낫지만) 설령 그들이 해외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케나톤이나 투탕... 더 보기
예를 들면, 상상의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명제가 그래요. 이집트의 파라오가 바빌론에 쇼핑하러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는 따져볼 문제죠 ㅎㅎ 고대 중근동은 소비낭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이세계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할 순 없어요. 또, (가능성이 현저히 낫지만) 설령 그들이 해외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케나톤이나 투탕... 더 보기
https://redtea.kr/?b=3&n=7427&c=103306
예를 들면, 상상의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명제가 그래요. 이집트의 파라오가 바빌론에 쇼핑하러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는 따져볼 문제죠 ㅎㅎ 고대 중근동은 소비낭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이세계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할 순 없어요. 또, (가능성이 현저히 낫지만) 설령 그들이 해외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케나톤이나 투탕카멘을 납치해서 바빌론과 페니키아와 중국과 인도를 보여줬다면 분명 생이 끝날 때까지 그 강렬한 경험을 잊지 못했을 거예요.
욕망은 욕망대로 있어요. 그것은 대개 우리의 인간됨에 기원하구요. 상상의 질서가 우리의 욕망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욕망이 상상의 질서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인간은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산업이 환상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은 그것조차도 우리의 인간됨에 뿌리박고 있다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요.
***
이게 선생님이 예전에 제 글에 남긴 댓글인데... 원댓글에서 관념은 인지가 곧 존재라고 하셨는데 동시에 과거에 쓰신 댓글에서는 욕망이 존재하는 이상 상상의 질서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규정한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이 두 댓글이 서로 모순이 아닌지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동성애와 같은 욕망은 과거에도 존재했을 것이고, 그럼 마찬가지로 지금과 유사한 형태의 동성애 역시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과거 중근동에서 소비낭만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역시 이세계로의 여행을 꿈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예를 들면, 상상의 질서가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명제가 그래요. 이집트의 파라오가 바빌론에 쇼핑하러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는 따져볼 문제죠 ㅎㅎ 고대 중근동은 소비낭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이세계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할 순 없어요. 또, (가능성이 현저히 낫지만) 설령 그들이 해외여행을 꿈꾸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케나톤이나 투탕카멘을 납치해서 바빌론과 페니키아와 중국과 인도를 보여줬다면 분명 생이 끝날 때까지 그 강렬한 경험을 잊지 못했을 거예요.
욕망은 욕망대로 있어요. 그것은 대개 우리의 인간됨에 기원하구요. 상상의 질서가 우리의 욕망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욕망이 상상의 질서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인간은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산업이 환상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은 그것조차도 우리의 인간됨에 뿌리박고 있다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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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선생님이 예전에 제 글에 남긴 댓글인데... 원댓글에서 관념은 인지가 곧 존재라고 하셨는데 동시에 과거에 쓰신 댓글에서는 욕망이 존재하는 이상 상상의 질서를 지금과 같은 형태로 규정한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이 두 댓글이 서로 모순이 아닌지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동성애와 같은 욕망은 과거에도 존재했을 것이고, 그럼 마찬가지로 지금과 유사한 형태의 동성애 역시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과거 중근동에서 소비낭만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역시 이세계로의 여행을 꿈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딴 이야기지만 ㅋㅋ..
https://cosmosmagazine.com/physics/dark-matter-may-not-actually-exist-physicists-suggests-testable-alternative/
과학에서 입자를 찾는 데 있어 인지는 좀 애매한 단어인데 암흑물질은 지금까지 직접관측하지 ... 더 보기
딴 이야기지만 ㅋㅋ..
https://cosmosmagazine.com/physics/dark-matter-may-not-actually-exist-physicists-suggests-testable-alternative/
과학에서 입자를 찾는 데 있어 인지는 좀 애매한 단어인데 암흑물질은 지금까지 직접관측하지 못했고 따라서 없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프리츠가 관측한 은하단의 움직임을 더 잘 설명해줄 모델이 있으면 암흑물질은 없을 수도 있죠. 사람이 관측결과를 잘못 해석하고 있었어요~ 사실 암흑물질은 없었어요 짜자잔 할 지도 모르고요.
현재는 관측불가능한 Theory상의 무언가에 대해 얘기할 때는 정말로 그게 없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해요. 그래서 어쩌면 자유와 암흑물질을 엮어서 얘기한다면 암흑물질이나 자유나 똑같이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허상일 수도 았다. 이런 말이 맞지 않나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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