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을 거쳐 근대과학이 모습을 갖춘 뒤에도 한동안 문과계 사람과 이과계 사람을 나누어 생각하지는 않았다. 뉴턴이나 보일과 같은 근대과학의 선구자들은 스스로 철학의 일종인 ‘자연철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도 인간의 앎을 기억에 대한 것(역사), 이성에 대한 것(철학), 그리고 상상력에 대한 것(문학)으로 크게 나누었는데 오늘날의 생물학과 많이 겹치는 자연사는 기억에 대한 학문으로 분류된 반면, 수학과 물리학은 철학의 하위 분야로 분류되었다. 오늘날 역사·철학·문학은 문과로, 자연과학과 공학은 이과로 나누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현대 대학의 원형이 확립된 독일의 대학 개혁도 문과와 이과를 나누지는 않았고, 오히려 전인적 교양(Bildung)의 일부분으로서 과학교육을 중시하는 편이었다.
한국의 문과와 이과 구분은 아무래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1918년 제2차 고등학교령에서 ‘고등학교는 문과와 이과로 나눈다’는 규정을 두고 문과와 이과를 각각 ‘갑류’와 ‘을류’로 나누었다. 당시 일본에는 서양의 근대문명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독일의 원어로 학문을 익혀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이에 따라 영어 문헌을 주로 읽는 학생들은 갑류, 독일어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을류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고등학교 본과 때부터 문과 갑류, 문과 을류, 이과 갑류, 이과 을류 등으로 나뉘어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뒷날 미국이 세계 학문을 지배하게 되면서 갑류와 을류 등 언어에 따른 구분은 사실상 의미를 잃게 되었지만,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학교제도에 남아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본 교육제도가 이식된 한국도 이 구분을 오늘날까지 답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