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8/07 07:38:35
Name   뤼야
Subject   태풍 너구리 오던 날


작년 여름, 아마도 7월 중순경이었을 겁니다. 일기예보를 통해 한반도가 태풍 너구리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여 제주 남부 먼바다와 제주 서부 앞바다는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지요. 먼바다와 앞바다... 일기예보에 사용될 정도로 '공식적인' 두 바다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내 눈 닿는 그 어디쯤 먼바다와 앞바다를 구분할 수 있을까? 일기예보를 들으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먼바다와 앞바다...그 경계가 모호하기에 제게 아름답게 들리는 단어입니다.

잠시 어부의 아내가 되어봅니다. 바닷가 어떤 허름한 집에서 라디오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웃의 고기잡이 배들은 발이 묶이고... '고기잡이 배의 발이 묶이다'... 이 말은, 과연 '앞바다/먼바다' 만큼이나 공식적이지만, 역시나 듣기 좋은 말이죠. 바람이 마구잡이로 불어서 심술궂은 유령들이 일으키는 소란인 듯 집안 곳곳이 시끄러워 집니다. 창문이 들썩이고, 문은 삐걱대며, 마당에 둔 물건들은 갑자기 영혼이라도 생긴 듯 절로 쓰러지거나 굴러다니기 시작합니다. 우리집 바둑이, 옆집 흰둥이 짖어대지요.

그럼 부스스한 얼굴로 잠이 깨어 마당으로 나서지요. 짖어대던 바둑이가 꼬리를 붕붕 흔들어 댈테고, 그런 녀석을 한참이나 쓰다듬어 주어야겠지요. 이런 날씨엔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갑자기 무력해진 나머지 좁은 집안을 뱅글뱅글 돌며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기도 하겠지요. 시야가 흐려져 먼바다는 보이지도 않을 테고요. 먼바다부터 앞바다까지 미친 듯이 출렁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오늘은 감자를 찌고 방구석에 자리를 펴고 누워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를 읽을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날, 차안에서 찍은 습기가득한 사진입니다. 앞바다도 먼바다일 뿐인 서울 한복판에서 풍랑주의보를 듣고, 사진을 한 장 찍고, 엉뚱한 상상을 한 날이었습니다. 정말 일하기 싫었어요. 당장 바람부는 바닷가로 달려가고 싶었죠. 이번 주만 잘 보내면 무시무시한 더위도 한풀쯤은 꺽인답니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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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글을 참... 뭐랄까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잘 쓴다 하기는 뭔가 표현이 부족하고... 포근하게? 따뜻하게? 아무튼 그렇게 쓰시는 것 같아요.
    연이은 새벽출근/심야퇴근으로 힘들었는데 왠지 글을 읽는 것 만으로 두피마사지 가볍게 3분 정도 받은 기분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저 좋아서 쓰는 글인데 기쁘게 읽어주시는 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두피맛사지값은 게시판에서 좋은 소식(기다리고 계시는 아기소식)으로 받을겁니다. 흐흐흐
    즐겁게 봤습니다. 사진한장에 이런발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내 감성은 어디갔을꼬..
    사진게시판에다 막찍은 사진 올리고 글로다 땜빵중입니다? 싱크님 사진 진짜 멋있더라고요... 특히 그 채색된 블럭담 옆에 바람개비있는 사진 있죠. 그 사진 제 컴에 저장해놨어요. 바탕화면으로 쓸라고요. 거기 꼭 가보고 싶어요.
    좋아요. 전 왜 서정주의 해일이 생각날까요.
    해일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 더 보기
    해일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아직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漁夫)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 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서정주 [질마재신화](1975) 중에서 -

    7월님 덕에 오랫만에 다시 읽어보니 좋네요. 이 시를 읽다보니 저는 또 백석이 생각나고요...
    쿰척쿰척파오후
    소나기 뚫고 길 가다가 눈앞에 번개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카페로 대피해서 이 글을 봅니다 흐흐
    놀란 가슴이 그나마 진정이 되네요 ㅜㅜ
    엄청 놀라셨겠네요. 저도 지척에 번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적 있는데 진짜 감당이 안되게 빛도 소리도 크더라고요.
    나를 골라 일어난 재난이 아니더라도, 내가 당한다면 그앞에서 얼마나 무력할까... 그런 생각했어요. 헐헐...
    많이 놀라셨겠어요. 안다치셔서 다행이고요.
    멋있어요
    멋있습니다
    멋있당께요
    멋있스무니다
    ㅋㅋㄱ 멋있어용
    멋있당께
    멋잇꼬롬
    멋있어요
    멋있습니다
    위의 계단 댓글조차도 멋이 있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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