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22/04/12 18:35:43 |
Name | [익명] |
Subject |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요. |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상황은 아닌지라(제가 누군지 아는 지인들에게는 더더욱), 익명으로나마 홍차넷에 물어봅니다. 익명이 익명이 아닐 거 같긴 하지만요. 질문을 올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못 찾았어요. 찾고싶어요. 그래야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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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진짜로요. 한 개인의 삶에 그냥 태어나서 사는거 말고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있어야 된다는 기대와 부담이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때가 많은 듯 합니다.
진짜로요. 한 개인의 삶에 그냥 태어나서 사는거 말고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있어야 된다는 기대와 부담이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때가 많은 듯 합니다.
이유나 목적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보편타당한 이유나 목적은 갖다 붙일 수 없는 것을 넘어 갖다 붙여서도 안 되며, 언급하는 것조차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읽었는데 거창한 사명 보다는 작은 이유를 많이 만들면 좋다고 합니다.
세탁소에 가서 분실물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라던가
탐라에서 본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내일 먹겠다. 라는 그런 이유라도 좋습니다.
세탁소에 가서 분실물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라던가
탐라에서 본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내일 먹겠다. 라는 그런 이유라도 좋습니다.
저는 행복해지려고요. 지난 주말에 가보니 꽃이 엄청 활짝 피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좀 느긋하게 신책하고 싶어요. 주말 아니면 집밥을 못먹는데 꾸덕꾸덕한 짜파게티가 너무 먹고 싶거든요. 따듯한 마가레트도 사먹고 싶고... 이건 내일 먹어야지. 일단 지금은 그렇습니다.
저는 살아 있는 이유가 죽는 게 무서워서입니다.
사는 게 괴롭지만 아직까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크네요.
사실 이런 답변을 바라고 쓰신 글은 아닐 것 같고,
위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삶의 이유는 본인이 만들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지금 고통스러운 일상을 그나마 버티게 하는 건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 누워서 쉬는 것 정도가 떠오르네요.
사는 게 괴롭지만 아직까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크네요.
사실 이런 답변을 바라고 쓰신 글은 아닐 것 같고,
위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삶의 이유는 본인이 만들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지금 고통스러운 일상을 그나마 버티게 하는 건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 누워서 쉬는 것 정도가 떠오르네요.
저도 이 말에 공감합니다.
인생은 뭘 하고 싶다, 뭐가 좋았다로 이어지는 점들의 연속이지 하나로 쭉 귀결되는 이유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거창한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더 나락으로 가더라구요.
작고 별거 아니고 이루기 쉽되 지나치게 본능적이지 않은 욕망들을 모아놓는 편이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 되는듯 해요.
인생은 뭘 하고 싶다, 뭐가 좋았다로 이어지는 점들의 연속이지 하나로 쭉 귀결되는 이유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거창한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더 나락으로 가더라구요.
작고 별거 아니고 이루기 쉽되 지나치게 본능적이지 않은 욕망들을 모아놓는 편이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 되는듯 해요.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인생은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저 길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줄을 알면 인생에서 괴로운 문제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립니... 더 보기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인생은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저 길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줄을 알면 인생에서 괴로운 문제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괴롭고 화나고 짜증나는 불행한 인생이 있고 즐겁고 가볍고 행복한 인생이 있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나가서 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눈으로 온갖 색깔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귀가 있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 이로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또 두 손이 있어서 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고 아직 두 다리가 멀쩡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내면 내 인생이 행복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하루 세 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먹는 것 말고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사는가?’ 하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물으세요. 사는 것은 그냥 사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살 수 있으니까요.
/법륜스님 말씀입니다.
다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괴롭고 화나고 짜증나는 불행한 인생이 있고 즐겁고 가볍고 행복한 인생이 있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나가서 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눈으로 온갖 색깔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귀가 있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 이로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또 두 손이 있어서 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고 아직 두 다리가 멀쩡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내면 내 인생이 행복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하루 세 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먹는 것 말고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사는가?’ 하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물으세요. 사는 것은 그냥 사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살 수 있으니까요.
/법륜스님 말씀입니다.
저도 이 말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놨었어요. 찰리 채플린이 제작한 영화에 나온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것은 빛난다를 읽고 참 좋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힘이 나는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었어요.
의미 또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즐거움을 미루는 것이 혹시 만성화되어 있으신 것은 아닐지요..?
부디 이미 쌓여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시는 상태가 아니시길.. (제가 그랬었어서요 ㅠㅠ)
무엇보다도 편안한 봄 밤 되셨으면 합니다.
모든 것은 빛난다를 읽고 참 좋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힘이 나는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었어요.
의미 또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의 즐거움을 미루는 것이 혹시 만성화되어 있으신 것은 아닐지요..?
부디 이미 쌓여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시는 상태가 아니시길.. (제가 그랬었어서요 ㅠㅠ)
무엇보다도 편안한 봄 밤 되셨으면 합니다.
10년 된 이 영화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내가 살아가기 위해 너를 낳았어".(http://m.cine21.com/news/view/?mag_id=69564)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는게 아닌가 싶네요. 그 과정에서 시시때때로 본인도 행복할 때가 있는 거겠죠.
대부분의 사람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사는게 아닌가 싶네요. 그 과정에서 시시때때로 본인도 행복할 때가 있는 거겠죠.
못 먹어본 새로운 맥주를 먹어보기 위해...
사실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씀드린 겁니다만, 사소한 것이라도 목표를 삼아서 살아가보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내일 나는 꼭 종로 맛집 어딘가를 갈꺼야" 같은 걸로 말입니다.
사실 반농담 반진담으로 말씀드린 겁니다만, 사소한 것이라도 목표를 삼아서 살아가보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내일 나는 꼭 종로 맛집 어딘가를 갈꺼야" 같은 걸로 말입니다.
삶은 이유가 아니고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적의 이유를 찾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사랑과도 같은 거죠.
너는 왜 오마이걸을 사랑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사랑과도 같은 거죠.
너는 왜 오마이걸을 사랑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사소한 것이 목표가 되고 즐거움이 될 때 더 큰 삶의 의미도 느껴지더군요. 생활의 작은 레고블럭들이 무너지면 '나는 누구, 여기 어디, 인생은 무엇'라는 질문이 절로 고개를 들고요.
삶의 이유는 모르겠고, 음.... 그냥 눈감을때 이정도면 충분하지 뭐. 나름 잘 살지 않았어? 하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삶이 너모 힘든데, 그속에서 기웃기웃 어떻게든 웃을 일들 만들고, 그게 삶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보다 내일이 좀 더 낫겠죠. 장기적 우상향!
해철옹이 그랬죠, 엄마 뱃속에서 그 경쟁을 뚫고 수정을 했을때 이미 목적을 이룬거고 우리는 지금 보너스 게임을 즐겁게 즐기면 된다구요.
작년부터 암 투병중인데, 항암하면서 너무 아파서 차라리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하다가도 몸 컨디션 올라오면 세상 모든게 다 크게 느껴지고 예뻐 보입디다. 여기 있으니 그냥 사는거고, 즐기는 거에요. 목적이나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그냥 픽하면 하루만에 죽을수도 있어요. 저한테 인생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네요.
작년부터 암 투병중인데, 항암하면서 너무 아파서 차라리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하다가도 몸 컨디션 올라오면 세상 모든게 다 크게 느껴지고 예뻐 보입디다. 여기 있으니 그냥 사는거고, 즐기는 거에요. 목적이나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그냥 픽하면 하루만에 죽을수도 있어요. 저한테 인생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네요.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 삶이고
삶의 이유를 찾을 이유가 없는게... 공허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공허함의 이유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 공허함이고,
공허함의 이유를 찾을 이유가 있는 것이 삶일까요?
삶의 이유를 찾을 이유가 없는게... 공허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공허함의 이유를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 공허함이고,
공허함의 이유를 찾을 이유가 있는 것이 삶일까요?
거창한 이유는 아니지만...
<취미로 쓰는 소설 하나 완결 내기>를 삶의 이유로 잡고 있어요.
이거라도 이 세상에 남기고 가야겠다, 이런 심정으로 말이죠.
괴로움과 공허한 마음을 글에 쏟고 나면 기분이 그나마 괜찮아지더군요.
<취미로 쓰는 소설 하나 완결 내기>를 삶의 이유로 잡고 있어요.
이거라도 이 세상에 남기고 가야겠다, 이런 심정으로 말이죠.
괴로움과 공허한 마음을 글에 쏟고 나면 기분이 그나마 괜찮아지더군요.
이럴 땐 종교 찬스가 필요하죠.
https://youtu.be/lwfPUFMzAx8
이유에 천착하면 답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공통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어떤 이유를 붙여도 끝은 동일하거든요. 필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죠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저를 위로해줬던 웃긴 노래가 있습니다
... 더 보기
https://youtu.be/lwfPUFMzAx8
이유에 천착하면 답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공통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어떤 이유를 붙여도 끝은 동일하거든요. 필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죠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저를 위로해줬던 웃긴 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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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종교 찬스가 필요하죠.
https://youtu.be/lwfPUFMzAx8
이유에 천착하면 답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공통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어떤 이유를 붙여도 끝은 동일하거든요. 필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죠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저를 위로해줬던 웃긴 노래가 있습니다
https://youtu.be/2N333YViYWc
괴로운 일도 가득했지만 결국 훗날 생각나는 것들은 즐거운 기억들이더군요. 생각이 너무 많아질때는 될대로 되라 라는 마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유명한 말 있잖아요 케세라세라? 좀 틀린가?
https://youtu.be/lwfPUFMzAx8
이유에 천착하면 답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공통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어떤 이유를 붙여도 끝은 동일하거든요. 필요한 것은 이유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죠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저를 위로해줬던 웃긴 노래가 있습니다
https://youtu.be/2N333YViYWc
괴로운 일도 가득했지만 결국 훗날 생각나는 것들은 즐거운 기억들이더군요. 생각이 너무 많아질때는 될대로 되라 라는 마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유명한 말 있잖아요 케세라세라? 좀 틀린가?
못 죽으니까요.
작년에 죽으려고 아파트 난간에 섰다가 깨달았습니다. 아직 난 살고 싶구나. 여기에 미련이 있구나.
괴로운 것도 슬픈 것도 죽지만 않으면 다 지나가더군요.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다 보면 힘든 마음도 좀 잊혀지고요. 그리고 잊으려고 찾아봤던 여러가지 일들이 결국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요.
작년에 죽으려고 아파트 난간에 섰다가 깨달았습니다. 아직 난 살고 싶구나. 여기에 미련이 있구나.
괴로운 것도 슬픈 것도 죽지만 않으면 다 지나가더군요.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다 보면 힘든 마음도 좀 잊혀지고요. 그리고 잊으려고 찾아봤던 여러가지 일들이 결국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요.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계속 시도하시면, 계속해서 대답 속에서 오류만 발견하고 점점 더 수렁에 빠지시게 될까 겁납니다. 왜냐하면 답이 없는 질문이거든요.
'인간의 생존', 또는 '인간이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당위성은 없습니다. 마그마가 굳어 우연히 생긴 현무암에 대해서, '이 현무암이 사라지면 옳지 않은 이유'같은건 존재하지 않듯이요. 두 전하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고, 여러개의 힘은 중첩원리가 적용되며, 폭포는 아래로 떨어지고, 물의 온도가 낮아지면 고... 더 보기
'인간의 생존', 또는 '인간이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당위성은 없습니다. 마그마가 굳어 우연히 생긴 현무암에 대해서, '이 현무암이 사라지면 옳지 않은 이유'같은건 존재하지 않듯이요. 두 전하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고, 여러개의 힘은 중첩원리가 적용되며, 폭포는 아래로 떨어지고, 물의 온도가 낮아지면 고... 더 보기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계속 시도하시면, 계속해서 대답 속에서 오류만 발견하고 점점 더 수렁에 빠지시게 될까 겁납니다. 왜냐하면 답이 없는 질문이거든요.
'인간의 생존', 또는 '인간이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당위성은 없습니다. 마그마가 굳어 우연히 생긴 현무암에 대해서, '이 현무암이 사라지면 옳지 않은 이유'같은건 존재하지 않듯이요. 두 전하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고, 여러개의 힘은 중첩원리가 적용되며, 폭포는 아래로 떨어지고, 물의 온도가 낮아지면 고체가 되는 등 자연의 모든 현상들은 가치중립적이죠. 인간의 생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짝수가 나와야 올바른 일인지, 아니면 홀수가 나와야 올바른 일인지의 답은 존재하지 않듯이, 인간이 자살하든 자살하지 않든, 옳고 그른건 없습니다. '인간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자연현상들과 마찬가지로 그 옳고 그름의 당위성이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 '인간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질문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자살은 『왜 옳지 않은가』' 라는 질문은 '농구공은 『왜 배고픈가』'와 같은 질문과 완전히 동일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입니다. 대답이 가능해지려면,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 '인간의 자살이 옳지 않은 이유'가 아니라, '인간은 『왜 일반적으로 자살을 싫어하는가』', '인간이라는 종류의 물체가 일반적으로 자살하지 않는 이유', '일반적으로 자살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 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대답이 간단합니다. 인간은 그냥 그런 특성, 다시 말해서 '살고 싶어하는 특성', '죽기 싫어하는 특성'을 띄도록 만들어져있는 물체이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원자들의 결합물질'이 존재합니다. 그 중 '인간'이라는 종류의 원자 결합물은, 그저 '죽고 싶지 않아하는' 성질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것 뿐입니다. 염기서열이라는 조직의 특정 부위가 특정 형태로 배열되어 있고, 그 특정배열에 의해 두뇌라는 조직이 특정 형태의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식물이라는 물체가 자외선을 향해 휘는 경향을 보이듯이 인간이라는 물체는 생존을 원하는 경향을 본능적으로 띄는 것 뿐입니다. 철저히 물리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번째로 해야하는 질문, 대답이 가능한 질문, 그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그나마 자신의 삶의 의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문, 그래서 현실적으로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이 질문 같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본능적인 생존의 본능, 자살을 하고싶지 않아하는 본능은 『언제 사라지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글쎄요, 이미 읽으신 책일 수도 있겠지만 빅터 프랑클이라는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삶의 의미가 전부 사라졌을 때' 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은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 수감자였는데요. 수용소에서 스스로 전기 고압선 장벽에 몸을 던져 자살하던 동료 수감자들을 여럿 보고서 어떤 사람은 생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고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싶어하는건지 비교도 해보고, 고민도 해보고, 분석도 해본 결과로 저런 대답을 내놓았답니다.
'삶의 의미'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 막연한 감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삶의 의미'라는 단어로 지칭하고자 했던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웃긴 유머를 보고 웃음이 터지게 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저 사람이 '삶의 의미'라는 단어로 지칭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서 '자신의 삶의 의지'와 관련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저러한 '삶의 의미'들을 잡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웃긴거 보고서 웃고요. 웃기 위해서 웃긴 것을 찾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찾으려고 시도하구요.
제 개인적으로는 '사랑'이랑 '공부할 때 느켜지는 쾌락'이 저에게 삶의 의미로써 제일 비중이 큽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보다 먼저 떠나게 된다면, 저는 그때는 살 자신이 없습니다. 작년에 스우파 재밌게 봤는데요, 그분들한테 춤이 삶의 의미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나에 해당되겠구요. 댓글을 읽어보니 종교와 먹을 것, 영화 등등을 얘기해주셨는데 그분들께는 그것이 삶의 의미인 겁니다.
'내가 왜 살아야지?' '내가 사는게 왜 올바른거지?' 라는 질문에 빠진다면, '농구공에 힘을 이 방향으로 가했을 때 농구공의 위치가 어떻게 변하지?' 'E field가 이런 분포로 띄어져 있을 때 전자의 위치는 어디에 어떤 확률로 존재하지?'와 같은 질문들과 달리 계속 대답 속에서 오류만이 발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재 같은 것에는 당위성이 없으니까요.
'인간의 생존', 또는 '인간이 자살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당위성은 없습니다. 마그마가 굳어 우연히 생긴 현무암에 대해서, '이 현무암이 사라지면 옳지 않은 이유'같은건 존재하지 않듯이요. 두 전하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고, 여러개의 힘은 중첩원리가 적용되며, 폭포는 아래로 떨어지고, 물의 온도가 낮아지면 고체가 되는 등 자연의 모든 현상들은 가치중립적이죠. 인간의 생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짝수가 나와야 올바른 일인지, 아니면 홀수가 나와야 올바른 일인지의 답은 존재하지 않듯이, 인간이 자살하든 자살하지 않든, 옳고 그른건 없습니다. '인간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자연현상들과 마찬가지로 그 옳고 그름의 당위성이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 '인간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를 찾는 것은 질문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자살은 『왜 옳지 않은가』' 라는 질문은 '농구공은 『왜 배고픈가』'와 같은 질문과 완전히 동일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입니다. 대답이 가능해지려면,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살하면 안되는 이유', '인간의 자살이 옳지 않은 이유'가 아니라, '인간은 『왜 일반적으로 자살을 싫어하는가』', '인간이라는 종류의 물체가 일반적으로 자살하지 않는 이유', '일반적으로 자살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이는 이유' 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대답이 간단합니다. 인간은 그냥 그런 특성, 다시 말해서 '살고 싶어하는 특성', '죽기 싫어하는 특성'을 띄도록 만들어져있는 물체이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원자들의 결합물질'이 존재합니다. 그 중 '인간'이라는 종류의 원자 결합물은, 그저 '죽고 싶지 않아하는' 성질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것 뿐입니다. 염기서열이라는 조직의 특정 부위가 특정 형태로 배열되어 있고, 그 특정배열에 의해 두뇌라는 조직이 특정 형태의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식물이라는 물체가 자외선을 향해 휘는 경향을 보이듯이 인간이라는 물체는 생존을 원하는 경향을 본능적으로 띄는 것 뿐입니다. 철저히 물리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그래서 세번째로 해야하는 질문, 대답이 가능한 질문, 그리고 개인의 입장에서 그나마 자신의 삶의 의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질문, 그래서 현실적으로 제일 중요한 질문은, 이 질문 같습니다. '인간의 이러한 본능적인 생존의 본능, 자살을 하고싶지 않아하는 본능은 『언제 사라지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글쎄요, 이미 읽으신 책일 수도 있겠지만 빅터 프랑클이라는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삶의 의미가 전부 사라졌을 때' 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은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 수감자였는데요. 수용소에서 스스로 전기 고압선 장벽에 몸을 던져 자살하던 동료 수감자들을 여럿 보고서 어떤 사람은 생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고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싶어하는건지 비교도 해보고, 고민도 해보고, 분석도 해본 결과로 저런 대답을 내놓았답니다.
'삶의 의미'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 막연한 감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삶의 의미'라는 단어로 지칭하고자 했던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웃긴 유머를 보고 웃음이 터지게 되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저 사람이 '삶의 의미'라는 단어로 지칭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 차원에서 '자신의 삶의 의지'와 관련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저러한 '삶의 의미'들을 잡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웃긴거 보고서 웃고요. 웃기 위해서 웃긴 것을 찾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찾으려고 시도하구요.
제 개인적으로는 '사랑'이랑 '공부할 때 느켜지는 쾌락'이 저에게 삶의 의미로써 제일 비중이 큽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보다 먼저 떠나게 된다면, 저는 그때는 살 자신이 없습니다. 작년에 스우파 재밌게 봤는데요, 그분들한테 춤이 삶의 의미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나에 해당되겠구요. 댓글을 읽어보니 종교와 먹을 것, 영화 등등을 얘기해주셨는데 그분들께는 그것이 삶의 의미인 겁니다.
'내가 왜 살아야지?' '내가 사는게 왜 올바른거지?' 라는 질문에 빠진다면, '농구공에 힘을 이 방향으로 가했을 때 농구공의 위치가 어떻게 변하지?' 'E field가 이런 분포로 띄어져 있을 때 전자의 위치는 어디에 어떤 확률로 존재하지?'와 같은 질문들과 달리 계속 대답 속에서 오류만이 발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재 같은 것에는 당위성이 없으니까요.
영원불멸한 것을 찾기 위해서...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집니다. 죽을때까지 의미가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혹은 죽고나서도 보람이 있는 삶의 목표,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찾은 것 같아요. 그것을 찾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더라구요.
사람이 태어나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집니다. 죽을때까지 의미가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혹은 죽고나서도 보람이 있는 삶의 목표,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찾은 것 같아요. 그것을 찾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더라구요.
삶의 이유가 없어요 ㅋㅋ
죽고싶은 생각이 요즘 많이 드는데 무서워서 못죽을거 아니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
절대 그럴일 없겠지만 국가에서 자발적 안락사(약물 등)가 허용된다면 3-6개월 휴식/정리의 시간을 갖은 뒤 고통없이 갈거에요.
당장 겪는 스트레스들, 이후에 계속 마주치게될 스트레스 등을 생각하면 살고싶지가 않아요. (미래 노후대비, 당장 사회 스트레스 등)
죽고싶은 생각이 요즘 많이 드는데 무서워서 못죽을거 아니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뿐...
절대 그럴일 없겠지만 국가에서 자발적 안락사(약물 등)가 허용된다면 3-6개월 휴식/정리의 시간을 갖은 뒤 고통없이 갈거에요.
당장 겪는 스트레스들, 이후에 계속 마주치게될 스트레스 등을 생각하면 살고싶지가 않아요. (미래 노후대비, 당장 사회 스트레스 등)
삶의 이유라..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일단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게 첫번째.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그걸 풀어줄 친구들도 있고, 술도 있고, 주말에 혼자 집에서 책을 볼때..?
아 그리고 아스날 경기 보면서 욕할때?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그걸 풀어줄 친구들도 있고, 술도 있고, 주말에 혼자 집에서 책을 볼때..?
아 그리고 아스날 경기 보면서 욕할때? (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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