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18/10/26 09:59:19 |
Name | [익명] |
Subject |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해답일까? |
회사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연봉이 늘어나기도 하고, 직급이 올라가며 나름의 권력도 생깁니다. 4천만원 벌면 5천 벌고싶고, 5천벌면 7~8천만원 벌고싶고. 팀장이 되어서 부하직원 다루다가, 부장되면 어떻게든 지위나 체면을 유지하려고 이런 저런 정치를 하고. 그렇게 작지만 자기권력을 어떻게든 유지하려하고, 얼마 안되는 재산을 불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는 걸 봅니다. 그러다 추해지는 모습도 보게되구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성장위주의 사회풍토의 기본이기도 하구요. 그런 소유와 확장, 번영의 반대 급부에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공수래 공수거, 불교에선 무소유 하라 하고. 기독교에선 욥처럼 재산이나 너의 모든 소유가 사라져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합니다. 조금 다르지만, 결국 재물에 집착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작게나마 권력을 가졌다가 그것이 박탈되거나 잃어버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갖는 권력이 진짜 뭣도 아니구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 될 수 있는 휴지조각같은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나니 두 가지 마음이 들었습니다. 1. 그럼 이 권력 이상의 것을 갖기 위해 개같이 열심히 해서 내 실력을 증명해서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자. 2. 소유는 집착을 만들고, 집착은 고통을 가져온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노력하고 결과에 만족하자. 1번은 너무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실력,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서서 나의 권력과 재산이 말한마디에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해보자. 근데 그렇게 되는 순간 또 다시 그것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지 않을까 싶고. 그 다음에 2번의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소유는 고통이니 집착하지 말자 라는 생각은 어찌보면 그냥 자위하는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 주저리 쓰니 길어지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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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2번은 그렇게 체념적이고 염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되, 섭섭한 결과에 대해서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말자는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개같이 노력하세요.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는 펼쳐보기전엔 모르는 법입니다. 다만 하다가 아무래도 안되는거 같으면, 그때는 접을 줄도 알아야합니다. 시작도 하기전에 접으란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압니다.
열심히 개같이 노력하세요.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는 펼쳐보기전엔 모르는 법입니다. 다만 하다가 아무래도 안되는거 같으면, 그때는 접을 줄도 알아야합니다. 시작도 하기전에 접으란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압니다.
성취욕 자체는 어느정도까진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씩 걸리는 사람이라면 직장과 더 가까운 집을 사거나
집과 더 가까운 직장을 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자세가 그 사람의 삶의 질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그냥 하루에 3시간씩 허비하는 것을 받아들이자.. 라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가능하지도 않을 겁니다.
문제는 어느정도의 삶의 질을 확보한 뒤에도 끝도 없이 남과 비교하며 위만 바라보는 것이겠죠.
(1인 기준) 월수입 세후 500정도까지는 수입의 증가와 행복도의 증가에 ... 더 보기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씩 걸리는 사람이라면 직장과 더 가까운 집을 사거나
집과 더 가까운 직장을 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자세가 그 사람의 삶의 질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그냥 하루에 3시간씩 허비하는 것을 받아들이자.. 라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가능하지도 않을 겁니다.
문제는 어느정도의 삶의 질을 확보한 뒤에도 끝도 없이 남과 비교하며 위만 바라보는 것이겠죠.
(1인 기준) 월수입 세후 500정도까지는 수입의 증가와 행복도의 증가에 ... 더 보기
성취욕 자체는 어느정도까진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씩 걸리는 사람이라면 직장과 더 가까운 집을 사거나
집과 더 가까운 직장을 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자세가 그 사람의 삶의 질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그냥 하루에 3시간씩 허비하는 것을 받아들이자.. 라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가능하지도 않을 겁니다.
문제는 어느정도의 삶의 질을 확보한 뒤에도 끝도 없이 남과 비교하며 위만 바라보는 것이겠죠.
(1인 기준) 월수입 세후 500정도까지는 수입의 증가와 행복도의 증가에 뚜렷한 관계가 있고,
그것보다 더 위로 가면 더 많은 연봉과 더 많은 행복이 딱히 큰 관계는 없다고 하더군요.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씩 걸리는 사람이라면 직장과 더 가까운 집을 사거나
집과 더 가까운 직장을 가기 위해 노력을 하는 자세가 그 사람의 삶의 질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그냥 하루에 3시간씩 허비하는 것을 받아들이자.. 라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가능하지도 않을 겁니다.
문제는 어느정도의 삶의 질을 확보한 뒤에도 끝도 없이 남과 비교하며 위만 바라보는 것이겠죠.
(1인 기준) 월수입 세후 500정도까지는 수입의 증가와 행복도의 증가에 뚜렷한 관계가 있고,
그것보다 더 위로 가면 더 많은 연봉과 더 많은 행복이 딱히 큰 관계는 없다고 하더군요.
http://mediaspider.joins.com/?art_id=A15101111314
원소스는 이건데, 인플레이션이나 국가 물가에 따른 조정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득-행복도 기울기는 분명히 완만해지고,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그게 500이든 5천이든)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완만한 수준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죠.
주 40시간 일하고 한달 200만원 vs 주 80시간 일하고 한달 4... 더 보기
원소스는 이건데, 인플레이션이나 국가 물가에 따른 조정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득-행복도 기울기는 분명히 완만해지고,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그게 500이든 5천이든)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완만한 수준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죠.
주 40시간 일하고 한달 200만원 vs 주 80시간 일하고 한달 4... 더 보기
http://mediaspider.joins.com/?art_id=A15101111314
원소스는 이건데, 인플레이션이나 국가 물가에 따른 조정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득-행복도 기울기는 분명히 완만해지고,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그게 500이든 5천이든)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완만한 수준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죠.
주 40시간 일하고 한달 200만원 vs 주 80시간 일하고 한달 400만원
이건 후자 고를 사람들이 꽤 많을 겁니다.
주 40시간 일하고 한달 200억 vs 주 80시간 일하고 한달 400억은 어떨까요.
후자 고를 사람이 아까 경우만큼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한달 20억도 아주 충분하니 주 40시간이 아니라 4시간만 일하겠다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요.
원소스는 이건데, 인플레이션이나 국가 물가에 따른 조정은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핵심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득-행복도 기울기는 분명히 완만해지고,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그게 500이든 5천이든)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완만한 수준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죠.
주 40시간 일하고 한달 200만원 vs 주 80시간 일하고 한달 400만원
이건 후자 고를 사람들이 꽤 많을 겁니다.
주 40시간 일하고 한달 200억 vs 주 80시간 일하고 한달 400억은 어떨까요.
후자 고를 사람이 아까 경우만큼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한달 20억도 아주 충분하니 주 40시간이 아니라 4시간만 일하겠다는 사람도 생길 수 있고요.
TOBY님 답변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있는데요.
제가 아는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짊어 졌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던 부자이고 잘생긴 청년(?) 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너의 전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라는 말에
주저하다가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TOBY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정답이 기독교라면.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물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으로 살아갈 때 행복감을 느끼는 기... 더 보기
제가 아는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짊어 졌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던 부자이고 잘생긴 청년(?) 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너의 전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라는 말에
주저하다가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TOBY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정답이 기독교라면.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물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으로 살아갈 때 행복감을 느끼는 기... 더 보기
TOBY님 답변 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있는데요.
제가 아는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짊어 졌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던 부자이고 잘생긴 청년(?) 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너의 전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라는 말에
주저하다가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TOBY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정답이 기독교라면.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물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으로 살아갈 때 행복감을 느끼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사시는 것으로 행복의 답을 찾으신건지요?
ps. 온전히 저의 생각이지만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에 행복이 있다는 것은 불교나 기독교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뭔가 <맨 프롬 어스> 에서 주인공이 불교철학을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기독교로 받아들였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것 같네요.
제가 아는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이 짊어 졌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던 부자이고 잘생긴 청년(?) 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너의 전 재산을 버리고 나를 따를 수 있겠느냐?' 라는 말에
주저하다가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TOBY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정답이 기독교라면.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물질이나 권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버리고 온전히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으로 살아갈 때 행복감을 느끼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사시는 것으로 행복의 답을 찾으신건지요?
ps. 온전히 저의 생각이지만 세속적인 가치에서 벗어나,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에 행복이 있다는 것은 불교나 기독교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뭔가 <맨 프롬 어스> 에서 주인공이 불교철학을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기독교로 받아들였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것 같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진리는 진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 파란약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가상공간에서 살았지만 사실은 갇혀서 기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가서 기빨리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라는거지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그 분의 계획이 있다면 그 흐름에 타는게 상식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기독교인들처럼 사는건 이상한거죠. 속는줄 알면서 속고 ... 더 보기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진리는 진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 파란약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가상공간에서 살았지만 사실은 갇혀서 기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가서 기빨리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라는거지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그 분의 계획이 있다면 그 흐름에 타는게 상식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기독교인들처럼 사는건 이상한거죠. 속는줄 알면서 속고 ... 더 보기
그렇다고 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진리는 진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 파란약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가상공간에서 살았지만 사실은 갇혀서 기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가서 기빨리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라는거지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그 분의 계획이 있다면 그 흐름에 타는게 상식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기독교인들처럼 사는건 이상한거죠. 속는줄 알면서 속고 사는 인생이 되는 셈이니까요.
긴가민가해서 일단 결론짓는 것을 유보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저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전제하에 상식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라는거지요.
물론 저도 생각이 왔다갔다 하면서 삶도 왔다갔다 하기는 합니다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리잡은 가치관들도 있어서 신앙 덕분에 고민과 불안을 덜고 안정감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나 자신을 버리고 사는건 아닌거 같구요. 나를 좀 더 올바르게 사랑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위의 매트릭스 비유로 다시 얘기해보자면... 가상현실속에서 기빨리고 사는게 진정 나를 위한건 아닌 것 같다라는거죠.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진리는 진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 파란약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가상공간에서 살았지만 사실은 갇혀서 기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 가서 기빨리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라는거지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그 분의 계획이 있다면 그 흐름에 타는게 상식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기독교인들처럼 사는건 이상한거죠. 속는줄 알면서 속고 사는 인생이 되는 셈이니까요.
긴가민가해서 일단 결론짓는 것을 유보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저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전제하에 상식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라는거지요.
물론 저도 생각이 왔다갔다 하면서 삶도 왔다갔다 하기는 합니다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리잡은 가치관들도 있어서 신앙 덕분에 고민과 불안을 덜고 안정감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나 자신을 버리고 사는건 아닌거 같구요. 나를 좀 더 올바르게 사랑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위의 매트릭스 비유로 다시 얘기해보자면... 가상현실속에서 기빨리고 사는게 진정 나를 위한건 아닌 것 같다라는거죠.
비슷 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을거 같네요.
기독교나 불교를 믿지 않는 3자 입장에서 보면 비슷할거 같아요.
근데 기독교를 믿는 제 입장에선 '어... 하나도 안 비슷한데?'라는 느낌입니다.
(제가 불교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집착을 버리고, 소유욕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보다 더 큰 것을 받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게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구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길을 열어주셨고,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단... 더 보기
기독교나 불교를 믿지 않는 3자 입장에서 보면 비슷할거 같아요.
근데 기독교를 믿는 제 입장에선 '어... 하나도 안 비슷한데?'라는 느낌입니다.
(제가 불교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집착을 버리고, 소유욕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보다 더 큰 것을 받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게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구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길을 열어주셨고,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단... 더 보기
비슷 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을거 같네요.
기독교나 불교를 믿지 않는 3자 입장에서 보면 비슷할거 같아요.
근데 기독교를 믿는 제 입장에선 '어... 하나도 안 비슷한데?'라는 느낌입니다.
(제가 불교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집착을 버리고, 소유욕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보다 더 큰 것을 받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게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구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길을 열어주셨고,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단순히 죄의 해결뿐 아니라 나를 하나님과 소통 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신분을 바꾸셔서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다. 그리고 그 나라는 죽어서 받는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라는게 제가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 보다 더 큰 것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었기 때문에 기꺼이 '이 부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하나님 뜻대로 잘 사용하겠습니다'라는 생각으로 집착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없는 삶이 가진 것 보다 더 근심이 없다' 정도의 생각이라면 그 명제에 동의 할 수 없어서 부를 내려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나 불교를 믿지 않는 3자 입장에서 보면 비슷할거 같아요.
근데 기독교를 믿는 제 입장에선 '어... 하나도 안 비슷한데?'라는 느낌입니다.
(제가 불교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집착을 버리고, 소유욕을 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보다 더 큰 것을 받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게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구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길을 열어주셨고, 믿음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단순히 죄의 해결뿐 아니라 나를 하나님과 소통 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 신분을 바꾸셔서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다. 그리고 그 나라는 죽어서 받는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라는게 제가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 보다 더 큰 것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었기 때문에 기꺼이 '이 부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하나님 뜻대로 잘 사용하겠습니다'라는 생각으로 집착 없이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없는 삶이 가진 것 보다 더 근심이 없다' 정도의 생각이라면 그 명제에 동의 할 수 없어서 부를 내려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만
1번이든 2번이든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고 뭐가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1번과 2번이 말로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이 겪는 삶에서는 항상 상충되고 갈등을 일으킨다기보다는 타협이 가능한 생각들일 것 같구요. 그 타협을 조화라고 부르든 중용이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변수는 1, 2 중 어떤 가치관을 택했는가 그 자체라기보다도,
1번이든 2번이든 1, 2에서 벗어나는 다른 가치관이든, 그 ... 더 보기
1번이든 2번이든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고 뭐가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1번과 2번이 말로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이 겪는 삶에서는 항상 상충되고 갈등을 일으킨다기보다는 타협이 가능한 생각들일 것 같구요. 그 타협을 조화라고 부르든 중용이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변수는 1, 2 중 어떤 가치관을 택했는가 그 자체라기보다도,
1번이든 2번이든 1, 2에서 벗어나는 다른 가치관이든, 그 ... 더 보기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만
1번이든 2번이든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고 뭐가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1번과 2번이 말로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이 겪는 삶에서는 항상 상충되고 갈등을 일으킨다기보다는 타협이 가능한 생각들일 것 같구요. 그 타협을 조화라고 부르든 중용이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변수는 1, 2 중 어떤 가치관을 택했는가 그 자체라기보다도,
1번이든 2번이든 1, 2에서 벗어나는 다른 가치관이든, 그 선택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인지, 지금 현재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지, 그 선택이 영향을 미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1번을 택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르고 어느 정도까지 성취해낼 것인가 기준점이 없다면 오르고 올라도 만족을 모를 것이고 목표 도달이 힘들어질 때 갈등을 겪을 것 같고
2번을 택하더라도 본인이 원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체념에 의한 결정이라면 후회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글쓴이님의 원래의 질문과는 다소 동떨어진 대답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의 행복감에는 개인의 가치관 그 자체보다도 가치관에 대한 태도, 삶에 대한 통제감이 더 중요하지 않나 하는 사견이었습니다.
1번이든 2번이든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고 뭐가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1번과 2번이 말로는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이 겪는 삶에서는 항상 상충되고 갈등을 일으킨다기보다는 타협이 가능한 생각들일 것 같구요. 그 타협을 조화라고 부르든 중용이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변수는 1, 2 중 어떤 가치관을 택했는가 그 자체라기보다도,
1번이든 2번이든 1, 2에서 벗어나는 다른 가치관이든, 그 선택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인지, 지금 현재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지, 그 선택이 영향을 미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1번을 택했을 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르고 어느 정도까지 성취해낼 것인가 기준점이 없다면 오르고 올라도 만족을 모를 것이고 목표 도달이 힘들어질 때 갈등을 겪을 것 같고
2번을 택하더라도 본인이 원한 결정이라기보다는 체념에 의한 결정이라면 후회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글쓴이님의 원래의 질문과는 다소 동떨어진 대답이 되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의 행복감에는 개인의 가치관 그 자체보다도 가치관에 대한 태도, 삶에 대한 통제감이 더 중요하지 않나 하는 사견이었습니다.
그 '어느 수준'이란게.. 월 500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세후 월x천 정도인데(5천 밑), 돈 벌수록 부족함을 더 느낍니다.
현실적으로 한달 2천5백 vs. 5천 하면 대부분은 5천입니다.
5천 vs. 1억도 1억이고요
1억 vs. 2억도 2억일겁니다.
말씀하신 한달 200억 vs. 400억일때... 저는 400억 할겁니다.
2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2400억 버는데
4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4800억 법니다.
자산 단위가 다릅니다.
물론 정년까지 다닐 생각은 아마도 없을 듯 하고요... 더 보기
저는 세후 월x천 정도인데(5천 밑), 돈 벌수록 부족함을 더 느낍니다.
현실적으로 한달 2천5백 vs. 5천 하면 대부분은 5천입니다.
5천 vs. 1억도 1억이고요
1억 vs. 2억도 2억일겁니다.
말씀하신 한달 200억 vs. 400억일때... 저는 400억 할겁니다.
2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2400억 버는데
4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4800억 법니다.
자산 단위가 다릅니다.
물론 정년까지 다닐 생각은 아마도 없을 듯 하고요... 더 보기
그 '어느 수준'이란게.. 월 500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세후 월x천 정도인데(5천 밑), 돈 벌수록 부족함을 더 느낍니다.
현실적으로 한달 2천5백 vs. 5천 하면 대부분은 5천입니다.
5천 vs. 1억도 1억이고요
1억 vs. 2억도 2억일겁니다.
말씀하신 한달 200억 vs. 400억일때... 저는 400억 할겁니다.
2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2400억 버는데
4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4800억 법니다.
자산 단위가 다릅니다.
물론 정년까지 다닐 생각은 아마도 없을 듯 하고요.
뭐가 다르냐면, 구입할 수 있는 땅이나 건물의 규모가 달라집니다.
제가 느끼는건 월 수입보다는 현재 보유한 자산에 따라 욕망이 조절되는 것 같습니다.
1년에 몇억 벌어봐야 사는거 똑같습니다.
1년에 10억 이상은 네트로 벌어야 그게 5년, 6년 쌓이면 사는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저 이론 제안한 사람이 노벨상 받았다고 해서 다 맞는 말도 아니고(노벨경제학상 받은 직후 자신의 논리를 부정하는 논문 발표한 사람도 있습니다.)
대중에게 신포도의 역설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워낙 유용하다 보니 유명해진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여전히 버는게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세후 월x천 정도인데(5천 밑), 돈 벌수록 부족함을 더 느낍니다.
현실적으로 한달 2천5백 vs. 5천 하면 대부분은 5천입니다.
5천 vs. 1억도 1억이고요
1억 vs. 2억도 2억일겁니다.
말씀하신 한달 200억 vs. 400억일때... 저는 400억 할겁니다.
2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2400억 버는데
400억으로는 1년 일해서 4800억 법니다.
자산 단위가 다릅니다.
물론 정년까지 다닐 생각은 아마도 없을 듯 하고요.
뭐가 다르냐면, 구입할 수 있는 땅이나 건물의 규모가 달라집니다.
제가 느끼는건 월 수입보다는 현재 보유한 자산에 따라 욕망이 조절되는 것 같습니다.
1년에 몇억 벌어봐야 사는거 똑같습니다.
1년에 10억 이상은 네트로 벌어야 그게 5년, 6년 쌓이면 사는게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저 이론 제안한 사람이 노벨상 받았다고 해서 다 맞는 말도 아니고(노벨경제학상 받은 직후 자신의 논리를 부정하는 논문 발표한 사람도 있습니다.)
대중에게 신포도의 역설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워낙 유용하다 보니 유명해진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여전히 버는게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저 논문 그냥 통계조사 한건데요..
국가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저 당시 통계로는 저랬다곤 해도 지금 통하라는 보장도 없구요.
저 논문 나오던 시절만 해도 미래에 대한 성장 희망이 크던 시기인데, 지금은 경제 자체가 전 세계적인 저성장이고 그게 뉴노멀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상황이 달라요.
예전 우리나라 고속성장기엔 중소기업 취업해서 미래를 보고 버텼는데
지금 그러라면 아무도 안 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달라요. 세상이 바꼈고요.
보고 느끼는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더 많이 벌고 싶어한다는 ... 더 보기
국가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저 당시 통계로는 저랬다곤 해도 지금 통하라는 보장도 없구요.
저 논문 나오던 시절만 해도 미래에 대한 성장 희망이 크던 시기인데, 지금은 경제 자체가 전 세계적인 저성장이고 그게 뉴노멀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상황이 달라요.
예전 우리나라 고속성장기엔 중소기업 취업해서 미래를 보고 버텼는데
지금 그러라면 아무도 안 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달라요. 세상이 바꼈고요.
보고 느끼는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더 많이 벌고 싶어한다는 ... 더 보기
저 논문 그냥 통계조사 한건데요..
국가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저 당시 통계로는 저랬다곤 해도 지금 통하라는 보장도 없구요.
저 논문 나오던 시절만 해도 미래에 대한 성장 희망이 크던 시기인데, 지금은 경제 자체가 전 세계적인 저성장이고 그게 뉴노멀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상황이 달라요.
예전 우리나라 고속성장기엔 중소기업 취업해서 미래를 보고 버텼는데
지금 그러라면 아무도 안 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달라요. 세상이 바꼈고요.
보고 느끼는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더 많이 벌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국가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데, 저 당시 통계로는 저랬다곤 해도 지금 통하라는 보장도 없구요.
저 논문 나오던 시절만 해도 미래에 대한 성장 희망이 크던 시기인데, 지금은 경제 자체가 전 세계적인 저성장이고 그게 뉴노멀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상황이 달라요.
예전 우리나라 고속성장기엔 중소기업 취업해서 미래를 보고 버텼는데
지금 그러라면 아무도 안 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달라요. 세상이 바꼈고요.
보고 느끼는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더 많이 벌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네 그니까 님이 보고 느끼는게 인간집단의 평균은 꼭 똑같이 느끼지도 않을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말을 왜 못받아들이시는지..
저는 업무량과 강도가 매우 적은곳 다니는데 직장동료들 중에서는 연봉 훨씬 많이주고 일 훨씬 많이시키는곳 버리고 온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아마 저같은 사람들이 모인곳이니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거겠죠? 그렇다면 soul님 주위에서도 soul님과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는 것일수도 있죠.
그리고 저성장에 따른 계급고착화가 오히려 계급상승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는 선택압이 될수도 있죠. 증명되지도 않은걸로 갖다붙이지 마세요..
저는 업무량과 강도가 매우 적은곳 다니는데 직장동료들 중에서는 연봉 훨씬 많이주고 일 훨씬 많이시키는곳 버리고 온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아마 저같은 사람들이 모인곳이니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거겠죠? 그렇다면 soul님 주위에서도 soul님과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는 것일수도 있죠.
그리고 저성장에 따른 계급고착화가 오히려 계급상승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는 선택압이 될수도 있죠. 증명되지도 않은걸로 갖다붙이지 마세요..
soul 님// 저 논문의 행복감애 대한 정의라는 것도 행복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정해 일률적으로 적용시킨게 아니라 조사대상자 개개인한테 니 인생 만족하냐라고 설문조사 때린거죠.. 때문에 저기 나오는 행복도도 당연히 조사대상자 개개인의 기준이 반영되는 것이고요.
저 연구결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내 주위 기준과 일반 평균의 기준이 좀 다르구나' 라고 넘어가면 될일이고
'내 주위는 아니던데? 연구가 틀렸네.' 라든가 (지금 님 논거가 '내 주위는 아니던데?'가 전부입니다) '쟤네들이 말하는 행복은 조막만한 만족감이지 진짜 행복이 아님. 저게 무슨 행복?' 이라고 할게 아니라는 것이죠.
저 연구결과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내 주위 기준과 일반 평균의 기준이 좀 다르구나' 라고 넘어가면 될일이고
'내 주위는 아니던데? 연구가 틀렸네.' 라든가 (지금 님 논거가 '내 주위는 아니던데?'가 전부입니다) '쟤네들이 말하는 행복은 조막만한 만족감이지 진짜 행복이 아님. 저게 무슨 행복?' 이라고 할게 아니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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