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15/12/10 06:05:51
Name   뤼야
Subject   [초속 5센티미터]가 전하는 첫사랑의 메세지


제가 구밀복검님이 진행하시는 팟캐스트 애청자라서 어제 새로 올라온 방송을 들었는데요. 어제는 대만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영화는 닥치는 대로 보는 스타일은 아니고 약간의 검증을 거치고 나서야 보는 편이라 이 영화 역시 보지는 않고 방송만 들었습니다. 구밀복검님 스타일이 마음에 안드는, 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작품에는 거의 말을 아끼다 마지막 즈음에 별한두개 적선하고(?) 악평과 함께 방송을 끝내는(크크크크크크) 스타일인지라 이 영화도 그리 좋은 평은 못받았네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방송 듣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첫사랑에 관한 좋은 영화 서사로 무엇이 있을까 하는 고민했는데 제가 기억해 낸 건 [초속 5센티미터]였거든요. 이 짤막한 애니는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 지라 어제 밤에 다시 한 번 보았는데, 이 작품은 지나간 첫사랑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주인공인 다카키를 통해 재구성해내는 한 인물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다카키는 [미지를 향해 계속해서 손을 뻗는 사람]인 것이죠. 다카키는 히카리를 향해 손을 뻗지요. 전학에 전학을 거듭하며 멀어지는 히카리를 향해 가서(눈오는 날 연착에 연착을 거듭해 작은 역에서 히카리와 조우하는 순간 폭풍눈물 ㅠㅠ) 결국 그녀와 잊을 수 없는 첫키스를 나누지만 다카키는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야할지 몰라] 이내 슬퍼진다고 고백하지요. 히카리와의 첫키스를 나눈 순간에 그에게는 운명 또는 자신의 정체성과의 짧은 일별이 이루어진 것이죠. 그에게 내려진 히카리의 물질성(또는 다카키의 미래)은 슬픔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카키를 짝사랑하는 카나에는 다카키가 [계속해서 미지의 무언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결국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는 생각을 접지요. 카나에의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이 에피소드에서 다카키는 매우 조숙하고 초연합니다. 평범하게 또는 느린 성장을 하며 짝사랑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 카나에에게, 그런 다카키가 어렵게 느껴졌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요.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다카키는 성장기로부터 자신이 희구해온 것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고 단지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쌓여 간다]고 고백하지요. 이 작품 전반을 통해 소급된 첫사랑을 둘러싼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히카리와의 짧은 키스를 통해 자신의 미래가 집약되어 다가온 거대한 슬픔과 카나에의 시점으로 이루어진 다카키의 정체성에 관한 재확인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이 완결되는 순간 다카키의 무력으로 집약될 것입니다. 일을 그만두고 길을 걷던 다카키가 편의점에 들어선 순간 나오는 음악 참 좋죠.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였던가요?

결국 우리의 과거란 하나의 단어를 둘러싼 희미한 기억의 이미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과거를 소급할 때 그 실체란 진실과는 거리가 있을 겁니다. 기억이란 시간을 꽤뚫어내는 진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저 희구하는 순간 새롭게 각색되는 서사이고, 이 서사에는 진실은 아닐지언정 자신이 자신에게 내린 어떤 선고와도 같은 텍스트가 입혀져 있지요. 그러므로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자한다면 우리는 종종 슬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카키처럼 현실과 어떤 괴리가 느껴질테니까요.

여러분들께 좋은 첫사랑의 서사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쓰고나니 질문이 너무 긴데요... 읽는데 괴로우시겠어요. 죄송합니당...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870 IT/컴퓨터설문조사 사이트 좀 추천 부탁드려요. 9 우리둘이 17/12/20 5005 0
12866 홍차넷홍차티콘에 필요한 이모티콘은? 33 흑마법사 22/01/20 5005 7
5881 진로이직이유로 연차 여러번 써야될때 13 Redemption 18/11/13 5006 0
7579 기타건조기를 삽시다 21 은목서 19/08/02 5006 0
12054 진로일상에서 삶이 벅차게 다가오는 순간,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2 [익명] 21/08/15 5006 0
587 문화/예술[초속 5센티미터]가 전하는 첫사랑의 메세지 17 뤼야 15/12/10 5008 2
6501 교육마나님이 초3병에 걸리셨습니다. 79 [익명] 19/02/09 5008 0
66 기타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 1 No.42 15/06/10 5009 0
6741 기타 내 본래의 성격이란 것이 있을까요? 19 곰돌이우유 19/03/11 5009 2
1305 철학/종교이슬람 전반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지는 게 좋을까요? 22 전기공학도 16/07/19 5010 0
10874 법률예전에 일했던 곳에서 제 명의를 도용한 것 같습니다. 23 [익명] 21/01/21 5010 0
2635 여행6월에 해외여행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휴양지 추천 부탁드립니다. 10 침묵의현자 17/04/11 5012 0
1007 의료/건강감기약 부작용중에 근육이 땡기는 것도 있나요? 4 Lionel Messi 16/04/19 5014 0
7531 경제자동차 구매에 관하여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20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9/07/25 5014 0
13457 연애이 상황에서 대시해보는 게 맞을까요? 31 [익명] 22/06/06 5016 1
179 여행순천 가족여행 질문 6 Yato_Kagura 15/07/23 5017 0
3380 IT/컴퓨터노트북 백팩 추천받고 싶습니다. 12 April_fool 17/09/18 5017 0
12696 의료/건강코로나 확진 후 백신 접종 관련 질문 드립니다. 6 행복한고독 21/12/16 5017 0
1058 과학 수학적, 논리적 사실은 "어떤 형태의 세계에서건 성립"하나요? 17 하늘밑푸른초원 16/05/09 5018 0
2782 게임PS4슬림 vs PS4 PRO 10 Dr.Pepper 17/05/16 5018 0
5089 IT/컴퓨터NAS의 HDD가 I/O Error를 발생합니다. 3 맥주만땅 18/07/20 5018 0
12777 기타버거킹 믿고 먹어도 될까요 특히 패티… 26 따뜻한이불 22/01/02 5018 0
7317 과학모터테스트 ->신호처리? fft? 토크리플? 질문입니다 3 쿠바왕 19/06/15 5020 0
10929 기타식기세척기를 가장 싸게 사는 방법은 뭘까요? 12 쉬군 21/01/30 5020 0
2608 IT/컴퓨터여러분이 아이폰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7 우분투 17/04/04 5021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