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20/03/07 23:32:51 |
Name | mime |
Subject | 여러분, 급한 질문입니다. 내기를 했어요 |
남친님이 자기 전에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더군요.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찾는 게 딱 얼라 같아요. 그래서 얘기를 해줬어요.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저는 개를 등장시키기로 합니다. 이것도 얼라 같죠.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탈리아 어느 공항에 중국인 가족들이 놀러갔다. 자기네가 키우는 개도 한마리 끌고 갔는데 중간에 개가 지겨워졌는지 맡겨놓은 개를 찾지도 않고 지네들끼리만 여행을 했다. 결국 그 개는 유기견이 되고 말았다. 그 공항에서는 이용객이 찾지 않은 개들은 모조리 살처분하고 있었고 치치도(이쯤에서 애인님이 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길래 대답해줬습니다)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품종이었다면 공항 직원들이 몰래 팔아먹을 생각이라도 했겠지만 치치는 차이니즈 믹스드 독이었을 뿐이니 별수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아주체나. 이름답게 집시 혈통인 그녀는 치치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개를 관찰하는 와중에 향신료가 발달한 나라에서 온 그 개가 후각이 아주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그녀의 건의로 개는 공항탐지견이 되어 루돌프 사슴코처럼 잘 먹고 잘 살았다네~~~~ 네 뭐 이 정도입니다 애인님은 불만이 많았는지 중간에 디테일을 더합니다. 아주체나는 치치를 몰래 빼돌려서 자기가 키우기로 합니다(원래 아주체나라고 하니까 엄청 싫어했는데 도리어 개작을 통해 더 아주체나스러워졌지요). 그래서 치치를 잘 돌보는데 치치가 자기 몸의 특정 부위를 킁킁대는 겁니다. 병원에 가보니 거기엔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아주체나는 치치 덕분에 목숨을 건집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주체나는 치치가 아주 영리한 개라는 걸 알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공항으로 의문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테러범이 공항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협박 편지였죠(무얼하라고 협박했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저도 안 물어봐서 모르겠네요). 공항은 마비 상태가 되어 직원들을 총동원, 폭발물을 찾지만 도저히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날도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한 아주체나는, 자신을 반기는 치치를 끌어안다가 문득 치치라면 폭탄을 찾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날 아주체나는 사장한테 건의를 해서 폭발물 수색에 치치를 동원합니다. 사장은 그깟 차이니즈 믹스드 독이 뭘하겠냐며 무시하지만 그래도 허락은 해줍니다. 늘 바쁘던 주인이 자신과 산책을 하는 게 기쁜지 여기저기 킁킁거리고 당당하게 똥을 싸며(물론 아주체나는 개보다는 덜 당당하게 똥을 치우며) 사방팔방 돌아다니던 치치는 문득 한 화분 앞에서 멈추고 그 밑을 계속 팝니다. 알고 보니 거기에 폭탄이 있었던 거죠. 이후 치치는 정식으로 공항탐지견이 됩니다. 이게 결말이고요. 애인님이 저 디테일을 신나게 늘어놓은 뒤, 제 이야기가 성의없다면서 기껏 얘기를 해줬는대도 잔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너와 내 이야기를 놓고 보면 내 쪽이 더 낫지 않냐, 일단 개를 살처분한다는 게 뭐랄까 동화스런 분위기에 이질적인 긴장과 위험을 불어넣지 않느냐, 메인 사건과 결말이 좀 시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고 도리어 시시한 걸 커버치려고 하는 네 디테일은 좀 클리셰 아니냐”라고 반박했습니다. 애인님은 클리셰인 건 동의하지만 그래도 제 것보다는 낫다는 입장이었고요 이제부터 질문인데 여러분이 보시기엔 우리 둘 중 누가 맞는 거 같나요? 이걸로 우리가 내기를 해서요. 빠르게 답변해주세요...라고 쓰려고 했지만 벌써 자는군요. 여튼 내기에 뭘 걸지는 안 정했고 이기면 내일 정해봐야겠습니다. 지면 조용히 삭제할 거고요 ㅋㅋㅋ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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