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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0/13 13:04:11
Name   BibGourmand
Subject   [미국 샌디에고] Junifer & Ivy - 미네이랑의 비극 (스압)
예전에 학회차 다녀왔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위치한 식당 리뷰입니다.
일종의 개인 아카이브로 쟁여놨던 것인데 가끔 하나씩 풀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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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of Restaurant: Juniper & Ivy
Location: San Diego, CA, USA
Date: Nov. 2016


  저 멀리 부자동네 La Jolla를 제외하면 Tripadviser 기준, Fine dining Big 5 안에 당당히 랭크된 곳이다. 게다가 꽤나 깐깐하다고 알려진 Zagat 에도 기사가 꽤나 나갔던 만큼, 믿을 만한 곳이라 판단했다. 적어도 파인 다이닝에서는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거의 들어맞는데, 이곳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문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문제가 딱 하나 있었는데, 홈페이지에서 본 것과 레스토랑에서 주는 것이 달랐다는 점이었다.



  아뮤즈 부쉬란 일종의 서비스다.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당연히 주는 것으로 생각되기는 하지만, 사실 주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메뉴다. 한 입 메뉴를 공짜로 제공하여 셰프의 솜씨를 뽐내고, 고객들에게 이어질 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일종의 예고편인 셈. 그렇기에 아뮤즈 부쉬는 훌륭해야만 한다. 본편이 재미없는 영화가 잘 만든 예고편 덕에 흥행에 성공할 수는 있어도, 예고편이 재미없는 영화가 성공하는 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의 ‘예고편’은 안 주는 편이 나았다. 쿠키로 빚은 동그랑땡 정도 되는 메뉴인데, 비주얼도 아쉽지만 맛이 더 큰 문제였다. 겉은 건조하고 속은 뻑뻑하다면 베이킹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초두효과 같은 심리학 용어를 굳이 들먹일 것도 없다. 의구심으로 시작한 식사가 마지막에 좋은 인식을 남길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뮤즈 부쉬의 불안함을 잠시 접어두고 푸아그라 버터를 얹은 버터밀크 비스킷으로 코스를 시작했다. Zagat에서 극찬한 메뉴이니 아마도 실패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교훈적인 요리였다. 슈퍼스타로 가득한 팀이 어떻게 망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서는 대충 이렇다. 개인기가 훌륭한 선수들이 모인다. 어떠한 이유로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할 핵심 플레이어의 폼이 떨어진다. 유기적인 연결은 사라지고, 개인기에 의존하는 단발성 플레이만 남는다. 개인기에는 한계가 있고, 팀은 모래알처럼 겉돌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침몰한다.
  여기도 개인기가 훌륭한 선수들이 모였다. 푸아그라 버터는 그 자체로는 훌륭했다. 훈연 향을 덧입히는 시도도 맛의 논리로나 비주얼적인 부분으로 보나 나쁘지 않은 시도였다고 본다. 하지만 팀의 주장 역할을 하는 비스킷이 망가지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미네이랑의 비극이 딱 그랬다. 핵심 공격수 네이마르가 부상으로 아웃, 정신적 지주 시우바조차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상황. 팀의 구심점을 잃은 선수들은 홈 팬들의 과중한 기대를 견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는 모두들 알다시피 7:1이라는 믿을 수 없는 스코어의 대패.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패배였다.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 ‘네이마르가 다치지 않았다면’ 같은 가정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대상이 요리라면 그런 가정은 의미가 있다. 결과가 똑같이 ‘망한 음식’일지라도, 생각이 없어서 망한 음식, 의도가 잘못되어 망한 음식, 의도는 좋았지만 의도를 달성하지 못해 망한 음식은 분명 다르다. 이 경우는 3번에 가까웠다.
  이상적으로는 비스킷에서 바삭한 겉표면과 부드러운 속의 식감 대조를 끌어내고, 비스킷이 제공하는 포근한 맛의 베이스에 훈연 향이 적절히 배어 든 버터가 녹아들어 맛의 포인트를 더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항상 다른 법. 두께가 과했는지 뻑뻑한 속살이 모든 밸런스를 망가뜨려 버렸다. 묵직한 질감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라 하더라도, 물 없이 찐 고구마를 먹는 느낌을 주어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퍽퍽한 질감 위에 푸아그라 버터는 무기력한 움직임만을 보이며 고립됐고, 훈연 향은 두꺼운 비스킷의 껍질을 뚫지 못하고 겉돌았다. 이 경기는 시작부터 끝장난 셈이다.



  이제 생선 요리로 넘어간다. Yellowtail(방어 계열) 회에다 소스와 샐러드를 간단히 얹고, 바닥에 나초를 깔아 낸 간단한 요리다. 이번에도 논리는 확실했다. 바삭한 비스킷 위에 부드러운 생선을 얹어 내는 것이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조합 아니던가. 바닷가 도시니 만큼 신선한 생선을 믿고 강하지 않은 소스를 쓴 것이나, 멕시코 국경이 코앞이니 나초를 써 보겠다는 발상도 논리적으로는 깔끔했다. 하지만 그놈의 나초가, 그놈의 나초가 일을 내고 말았다.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입니다.” 하나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약간의 소금맛과 바삭함만을 가진 중립적인 비스킷을, 강렬한 소금맛에 옥수수 칩의 고소한 맛이 폭발하는 나초로 바꾼 것이 패망의 포인트였다. 참치 뱃살 스테이크나 아귀 간 파테 정도라면 모를까, yellowtail 정도의 생선은 강렬한 나초 맛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생선은 가고 나초만 남았다. 나초를 빼고 나머지만 먹어보기도 했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맛의 중심이 없어 허전함이 느껴질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비스킷에 이어 2경기도 패배. 2연패로 망해가지만 우리에겐 아직 ‘패패승승승’이 남아 있으니 희망은 있다.

오리 콩피가 들어간 시저 샐러드가 대망의 3차전 메뉴. 뒤집기 한판을 위해서는 3차전 승리가 필수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논리적으로는 분명한 요리가 등장한다. 오리기름 드레싱에 오리 콩피가 맛의 중심을 잡고, 모난 것 없는 붉은 케일이 샐러드의 바탕을 이룬다. 너무 대중적이어서 재미는 없지만, 실패할 수 없는 옵션인 크루통을 더해 식감 대조를 끌어냈다. 조리에서 문제만 없다면 누가 봐도 평타는 칠 수 있을 조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다행스럽게도 패배는 면할 수 있었다. 소금이 좀 과하긴 했지만, 미국 음식의 특징이라 치고 넘어가자. 홈 어드밴티지는 인지상정 아니던가. 산뜻함이나 독특한 향기를 주는 채소를 조금만 더했다면 어땠을까? 케일은 분명 무난했다. 하지만 톡톡 튀는 무언가는 접시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리와 오리기름 소스가 꾸역꾸역 한 골 넣고, 케일이 열심히 드러누워 경기를 매조졌다. 명경기를 해서 이긴 게 아니라 침대축구를 해서 이겼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이제 1승 2패, 승점 3점.



이제 운명이 걸린 4차전. 돼지와 새우의 투톱이 이끄는 파스타가 그 주인공이다. 이탈리아 거리에 있는 곳이니만큼, 홈경기인 것처럼 잘 싸워주리라 믿는 수밖에.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인다. 가격을 생각해보면 좀 애매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불리함을 뒤집으려면 생 파스타라도 나와 줬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 잘 마른 파스타의 맛. 입 안에서 느껴지는 퍼스트 터치도 나쁘고 살짝 덜 익은 탓에 움직임도 뻣뻣하다. 이미 중원은 어렵다. 결국 투톱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제 역할을 다 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공은 둥글다지만, 기적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인 법이다. 상대 골문 앞에서 수비를 끌고 다녀야 할 두 공격수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뻔하고 둔탁했다. 각자의 개성은 있었다. 새우는 새우 맛을, 돼지는 돼지 맛을 내긴 했으니까. 하지만 이 둘을 묶어 줄 플레이메이커가 없었기에 둘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그나마 기대했던 식감 면에서도 명확한 대조를 느끼기 어려웠다. 차라리 왕새우나 랍스터를 1선에 세우고, 약간 부드럽게 조정한 돼지고기 라구 소스를 셰도우 스트라이커 위치에 놓았으면 괜찮았을지 모른다. 아예 자기주장이 강한 고깃덩어리 원톱에 진한 토마토 베이스 소스 조합이나, 왕새우 원톱에 크리미한 소스가 뒤를 받치는 클래식 조합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톱으로 놓기에는 뭔가 약하고, 셰도우로 놓기에는 뭔가 튀는 자원들을 투톱으로 세우는 바람에 새우도, 돼지도 빛나지 못했다.
  돼지고기 원톱일 때와 별 다를 바 없는 라구 소스의 무난한 오버래핑 역시 무난하게 막혔고, 2선에서 감칠맛을 부여해 줄 치즈 역시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무난하게 패배하며 1승 3패. 기적은 없었고, 예선 통과는 물건너가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 5차전. 이곳의 메뉴판엔 디저트 대신 "Last chance"라고 쓰여 있는데, 이름에 걸맞는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에 주문한 메뉴는 “Almond Joy" 였다.
  무난한 소프트 초콜릿에 적당히 거칠게 갈아 낸 아몬드로 간단하게 식감 대조를 끌어낸다. 하지만 거기까지. 코코넛 소르베는 산뜻함이 없이 둔탁했다. 초콜릿은 괜찮았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다. 각각의 맛이 강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자의 맛이 다른 맛에 부드럽게 녹아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세 종류의 맛이 데면데면하게 자기의 위치를 고수한다. 게겐프레싱을 바라는 것도 아니잖는가. 그래도 같이 뛰기는 해 줘야 하는데, 이들이 같은 팀인지도 의심스럽다. 결론은 1승 4패. 변명의 여지없는 예선 탈락이다.

  왜 졌을까? 일단 음식 외적인 부분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음식점 분위기는 훌륭했고, 서버들도 친절했다. 와인 리스트는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35년 묵은 보르도의 슈퍼 세컨드에, 20년 넘게 묵은 스페인의 그랑 리제르바, 20살을 향해 달려가는 전설적인 론 와인까지 나와 있었다. 젊은 와인들로는 와인 초보자인 필자도 이름을 아는 1급 밭, 특급 밭들이 즐비했다.
  문제는 ‘실제로 시켜먹는’ 메뉴에 있었다. 시켜먹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지는 ‘끝내주는’ 와인 리스트 말고, 일반적으로 많이들 시키는 글라스 와인 리스트는 특별하지 않았다. 나쁘다고는 못 하지만 그렇다고 좋다고도 할 수 없었다. 여긴 유명한 와인 산지인 나파와 소노마가 지척인 곳이다. 열심히만 찾는다면 이보다 좋은 리스트를 뽑아내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음식은 더 심각했다. 이게 양두구육의 훌륭한 예시다. 아래 사진들을 보라. 레스토랑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사진이다. 아래 사진의 음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위에 나온 음식이 나왔다면 대체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필자의 경우엔 음식점을 잘못 찾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저렇게 대단한 걸 만들 수 있는데, 위에 나온 걸 대신 팔았다면 그것도 문제고, 저렇게 대단한 걸 못 만든다면 굳이 저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것 자체가 사기다.


<이미지 출처: http://www.juniperandivy.com/p/menu.html> - 현재는 시간이 지나 사진들이 바뀜

  혹시 일부 메뉴만 그런 것 아니냐고 묻는 분이 있을까봐 부연하겠다. 첫 사진에서 보다시피 필자가 앉았던 자리가 주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바 자리였고, 모든 요리가 모여서 나가는 셰프 테이블 근처였다. 그리고 어떤 요리도 저와 같지 않았다.
  그나마 가능한 설명이라면, 평소에는 위와 같은 저가 메뉴를 팔다가, 특별한 날에 예약제로 운영되는 코스 메뉴에는 아래와 같은 고급 메뉴를 파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째, 위에 나온 음식들이 그리 싸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 아래의 음식을 만든 사람이 위의 것을 만들었다면 이것보다는 훨씬 나은 무언가가 나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사진의 음식을 만든 사람과 위에 나온 음식을 만든 사람이 정말 동일 인물인가? 그렇다면 -도저히 안 믿기지만- 정성의 문제요, 아니라면 관리의 문제다. 어느 쪽이건 심각한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분류: 하이엔드 캐주얼
평가: 평범한 동네 음식점
한줄평: 매우 훌륭하다. 못 먹는 것들에 한해서.
비고: 30년 묵은 유명 와인을 주문할 수 있다.
위치: https://www.google.ca/maps/place/Juniper+%26+Ivy/@32.7274985,-117.1712014,15z/data=!4m2!3m1!1s0x0:0x5bead8a029c74f5?sa=X&ved=0ahUKEwjItoXr2uzWAhUp3IMKHRBBAsoQ_BIIngEw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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