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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7/21 17:10:50수정됨
Name   SCV
Subject   나의 멘토들
안그래도 월도지만
오늘따라 더욱 더 한층 가열차고 격렬하게 월도가 되고 싶어서
몇 년만에 티탐에 글을 써 봅니다.

다른 부서로 옮겨온 상태에서, 이전 부서와 협업할 일이 생겼는데 그 컨택포인트가 예전 사수(멘토) 였거든요
둘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사수께서 예전보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흐뭇해 하시는걸 보며
아,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부족했던 커뮤니케이션 측면을 많이 길러주셨던 그 사수께도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념으로 인생을 살아오며 만난 멘토들에게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적어보려고요.
혹시나 하여 신상 관련된 내용은 최대한 적게 적어볼까 합니다. 아니면 바꿔서..


1. A 누님
통신 동호회에서 만난 A 누님은 고등학교 때 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취업 후에도, 제가 힘들고 바닥을 쳤던 순간마다 저를 일으켜 세워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제가 학창시절 공부에 지쳐 사람에 지쳐 방황할 때 "너는 어디로 벗어나고 어디로 뛰쳐나가도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고 돌아와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니 부디 마음이 다 풀릴 때 까지 실컷 방황하려무나" 라는 말씀을 주셔서 충분히 쉬고 고민할 시간을 갖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격려해주셨고..

취업 준비 중에 면접을 앞두고 엄청 불안에 떨고 있을 때는 "20대가 열정으로 산다면 30대는 확신으로 사는게 아닐까. 그러니 넌 이미 합격했다고 생각하고 직장 상사랑 첫 상견례 가는 것 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하고 와" 라는 한 마디로 제 불안을 한방에 날려주셨고..

기획일 하면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자책하다 못해 멘탈이 가루가 되어서 흩날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대체적으로 시간제약에 순응하고 공간제약을 넘나들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
결과를 앞당기려 하면 늘 큰 실수가 따르고, 행운은 느긋한 여유와 함께 온다.
당면한 현실적 공간에만 집중하면 곧 전혀 모르던 예상 밖 사실에 당황하게 된다."
라는 한 마디로 깨달음을 주셨죠..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로 절 키워주셨지만 저 세 개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 첫 직장 사수

음.. 사실 이분은 좋은 사수였냐? 라고 한다면 '좋은'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다소 애매한 점이 있는거 같긴 합니다.
다만 배울 점이 많은 사수였다고는 생각합니다.

자기는 사람에게 쉽게 곁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며 입사 한지 3개월만에 처음으로 밥을 사주시고 -_-...
인내심을 기른다며 동일한 보고서에 대해서 28번이나 반려를 해서 고통을 주시고 (물론 제가 잘못 한것도 있습니다만 자잘한거도 좀 많아서..  나중에 그리고 일부러 그랬다고 하시더군요.) 그랬지만

그래도 그분의 결벽증에 가까운 꼼꼼함 때문에 대략 100개가 넘는 보고서를 검토받는 동안 제 꼼꼼함이 엄청 길러져서 이후 직장생활 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네요.


3. 두 번째 직장 첫 부서 사수

이분은 정말..  멘탈 갑입니다.
제가 무언가 실수를 하거나 개삽질을 거하게 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가 사소한 것이든, 부서가 난리날 정도로 큰 것이든 일단 시작은 이렇게 하십니다.

"일단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수습할 수 있을지 정리해서 보고서를 제출해"

라고..

그래서 멘탈을 부여잡고 여러가지 대안들을 만들어서 가져가면 그래도 신입치고 이정도면 머리 좀 썼구나,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면 된단다 라던지 오 이런 방안으로 해결하면 되겠구나, 가져온 안 중에서 A 안으로 빨리 수습해라 라던지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수습하고 나면 어째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업무 매뉴얼에 뭘 추가 해야 하는지를 충분히 가르치시고 가이드를 잡아주신 다음,

그제서야 가볍게 혼을 내십니다.

나아아아중에 꽤 친해진 뒤에 왜 그렇게 했냐고 여쭤보니 자기도 신입일때 실수를 엄청 많이 해서 맨날 사수한테 불려가서 우는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후배가 오면 이렇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말고도 네 앞에 후배들도 이렇게 했는데 막상 이렇게 하니까 일 수습도 잘 되고 좋더라.. 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사람이 빡치면 화부터 내고 욕부터 나오기 마련인데 진짜 정말 대단하시다 라는 말 밖에 안나오더라고요. 여전히 업계인(?) 으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데 늘 멋지십니다.


3. 두 번째 직장 두 번째 사수

첫 번째 사수와는 팀을 옮기면서 헤어졌고, 두 번째 사수를 맞이합니다.

이 분도 저를 엄청 성장시켜주신 분인데, 항상 일을 할 때 산파법(?) 으로 일을 합니다. 단순히 이걸 해야 하니 뭘 해와라 이런 식이 아니고
"자 이제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일단 뭐 부터 해야 해?" 라고 시작을 하십니다. 사실 자기가 뚝딱뚝딱 하면 편할 일이거나 혹은 저한테 던지고 개삽질을 해오면 갈구면 그만인 일들도 저렇게 하나하나 다 학습을 시키면서 일을 시키십니다. 직무가 전혀 바뀌어서 말이 대리지 거의 인턴급 수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진짜 모든 일을 저렇게 꼬박꼬박 가르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어째서 그러셨냐고 물어보니 가르치는 맛이 있어서 그러셨다나... 생각해보니 다른 팀원들한테는 꽤나 엄하셨던거 같았네요. 현 직장에 같이 왔다가 먼저 다른 회사로 이직하셨는데, 거기 가셔서 저한테 오라고도 하셨는데 사정상 못 갔습죠. 현재도 가끔 밥 같이 먹으며 옛날 이야기도 하고 일로 와라 소리도 하시네요.

4. 세 번째 직장 첫 번째 사수
오늘의 이 글을 쓰게 한 사수입니다. 사실 이 분께 일적으로 배운건 많지 않았어요. 이때쯤에는 이 업무에 대해서는 거의 완성되어 있는 수준이었고 회사 정책이 다른 부분만 적응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사수를 붙여주더군요.
그런데 정말 그게 잘 되었다고 생각한게..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면 성격이 나오곤 하거든요. 사실 그러면 멘토 입장에서는 어디 감히 멘티가 눈을 세모낳게 뜨느냐! 라고 호통치시면서 갈굴만도 한데, 항상 그럴 때 마다 지하 커피숍으로 부르시면서 "니가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자 우리 앞뒤 상황과 이 일을 함께 멀리서 살펴보자" 라고 하시면서 모든 일과 사람에 대한 정황을 충분히 설명해주시고 "자 이제 알겠지?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니가 세모눈을 계속 뜨고 있을 수 있겠냐?" 라고 하시는데, 정말로 다 이해하고 나니 내가 그렇게 굴 만한 상황이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서 세세한 부분을 많이 가르쳐주셨어요.

언젠가 팀장이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팀원들 고과를 깎으려고 서로를 이간질 시켰을 때, 한쪽 파트는 내분이 나서 박살이 났지만, 사수는 저를 조용히 부르셔 "내가 너를 몇 년 봤는데, 니가 팀장이 말한대로 그런 식으로 이야기 했을리가 없다. 니가 이야기 한걸 정확하게 다시 이야기 해봐라. 니 입으로 들어야겠다" 라고 하시더군요. 다행히 팀장과의 면담을 다 녹음했었고, 그걸 들려드리니 "전혀 다른 뉘앙스구나.. 팀장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한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 했었다. 너한테도 내가 너에 대해서 이런 식(나쁘게 말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고 전했지?" 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제가 멘토를 두고 팀장에게 한 이야기는 그 사람이 나쁘다가 아니라, "피어 리뷰차원에서 니 사수의 보완점 부족한점 단점을 이야기 해라, 이야기 해야 서로 발전한다" 라고 팀장이 들들 볶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런 부분은 이랬으면 좀 더 좋았을거 같다" 라고 한걸 저희 사수에게 팀장이 "거봐라 얘도 니가 일을 개판으로 해서 프로젝트가 꼬였다고 하잖냐" 라는 식으로 전했다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고도 빡치기보다 먼저 일단 저화 대화를 시도하시려는 그 인내심이 너무나 대단했고, 저를 믿어주셔서 너무 고마웠고, 항상 소통 능력을 키워주시기 위해 계속해서 봐주시는 모습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직장 10년차를 넘어서 더 이상 사수를 둘 짬도 아니고 멘티를 둬야 할 짬이지만,
현 부서 특성상 멘토-멘티 관계가 형성될만한 상황은 아니어서 (사내 전문가 팀이어서 주니어 연차들은 채용을 아예 안하다 보니...) 멘티 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생길 저의 멘티들, 팀원들에게 저도 저런 멘토일 수 있을까? 늘 생각하고 반성하고 고민하게 되네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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