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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7/31 13:40:03
Name   Raute
Subject   만화 킹덤의 육대장군과 삼대천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킹덤은 하라 야스히사의 데뷔작으로 대장군이 되려는 진나라의 소년 '신'과 실권이 없는 어린 왕 '정'이 자신들의 꿈을 이뤄나가는 팩션입니다.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지라 자료의 부족으로 상당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풀어야 함에도 나름 힘있게 잘 끌고 나갔고 어느 정도의 캐릭터성도 확보해서 꽤나 지지층을 얻었죠. 저는 중간에 이목이 등장하는 시점까지만 봤고 이때만 해도 아는 사람들만 보는 작품이었던 거 같은데 요새는 메이저 중에서도 메이저로 꼽히는 거 같더군요. 고증을 썩 잘해둔 건 아니고 작가가 일부러 역사적 사실을 비튼 것도 있어서 등장인물들과 실제 기록하고 차이가 꽤 나는 편입니다. 그러나 팩션을 두고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니 아니니 따지는 건 의미 있는 일도 아니고 그냥 흥미를 돋우기 위한 역사 얘기만 해볼까 합니다. 역사물이니까 등장 인물은 굉장히 많지만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자료가 풍부한 인물은 많지 않기도 하고, 작중에서 이 9명이 워낙 대단한 걸물들로 묘사되고 있어서 이들에게만 집중하는 걸로. 마침 다들 과거의 인물이라 스포일러 문제도 없고요.


백기(白起)
공손기라고도 하며, 무안군으로도 불립니다. 천자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起翦頗牧 用軍最精이라고 우리말로 쓰면 기전파목 용군최정.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의 용병술이 가장 뛰어났다. 뭐 이런 얘기입니다. 때문에 저 4명을 묶어서 전국 4대명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3대/4대 시리즈가 그렇듯 딱히 공신력 있거나 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저 4명이 대단한 명장인 건 부정할 수 없는데, 그 중에서도 백기의 군공은 초월적입니다(육대장군 중 사기에 자기 열전이 있는 건 백기뿐입니다). 인간백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백기가 죽인 인명이 90만명 가량 됩니다(사상자가 기록되지 않은 전투들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나겠죠). 기전체의 특징이 나쁜 얘기는 안 써주고 공을 세운 것 위주로 쓴다고 하지만 패배한 기록을 찾을 수 없고 일단 전쟁 나갔다 하면 이기고 죽이고 함락하고 뭐 이런 얘기뿐입니다. 굵직굵직한 군공만 따지면 이궐에서 위-한 연합군을 대파해 24만을 죽이고 지휘관 공손희를 사로잡았고, 위나라 성 60여개를 점령하고, 초나라 수도 영과 그 일대를 평정했고, 화양에서 위-조 연합군을 격파하고 15만을 참수, 형성에서 조나라 5만을 또 죽이고, 장평에서 무려 45만을 죽입니다.

동양전쟁사는 서양과 달리 전투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는 편인데 장평대전은 그럭저럭 참고할 정도는 됩니다. 패배를 위장하여 적 대군을 유인한 다음 별동대를 통해 상대의 퇴로와 보급로를 동시에 끊어버렸고, 그대로 적진을 포위해 굶겨죽였습니다. 한편 이 포위망을 유지하기 위해 진나라에서 모든 성인 남자들을 징집해 전선에 파견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남북전쟁이나 1차대전이 최초의 총력전이라는 건 서양의 시각일 뿐 동양에서는 이미 전국시대부터 총력전을 행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이곤 합니다(애초에 총력전의 정의가 썩 매끄럽지 못한 편입니다). 조의 사령관 조괄이 전사하자 조군은 진에게 항복하는데, 백기는 조나라 사람들 못 믿는다고 250명만 남기고 모조리 생매장시킵니다. 이 대승에도 불구하고 백기는 범휴와의 정쟁 때문에 조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한 채 철군했고, 이후에는 조의 수도 한단 공격을 반대하고 군의 지휘도 거부합니다. 결국 이로 인해 소양왕에게 미움받고 자결하는데 죽으면서 장평의 학살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정리하면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삼진(조위한) + 초에게는 악몽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괴물이죠.


사마착(司馬錯)
백기를 제외하면 가장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인물. 소양왕의 아버지 혜문왕이 한과 전쟁을 할 것이냐 파촉으로 진군할 것이냐 고민을 했는데, 이때 사마착은 촉 정벌을 주장합니다. 이때 재상 장의는 한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혜문왕은 사마착의 손을 들어줬고, 사마착은 직접 군대를 몰고 가 촉을 점령합니다. 이때 이후로 촉은 진의 꿀멀티이자 초 침공루트로 쓰였죠. 촉후 영휘의 반란을 진압했고, 백기와 함께 위를 쳤으며, 나중에 초나라도 물먹입니다. 손자 사마근이 백기의 부장이었던 것도 그렇고 유일하게 혜문왕 시대부터 활동했던 걸 봤을 때 가장 연배가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사기를 쓴 사마천이 사마착의 후예입니다.


왕흘(王齕)
거두절미하고 사기집해에 의하면 왕기(왕의)와 왕흘은 동일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육대장군은 6명이 아니라 5명이란 거죠. 역시 열전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여기저기 이름이 꽤나 보이는데 먼저 장평대전의 발단이 된 진의 상당 점령은 왕흘이 한 일입니다. 그러자 조나라가 상당으로 군대를 보냈고, 왕흘이 염파를 상대합니다. 이후 진의 반간계 때문에 염파가 실각하고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 조의 사령관, 진은 몰래 파견한 백기가 사령관이 되어 장평대전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염파의 의도적인 장기전에 말려 왕흘이 고전했다라고 알려져있는데 정작 사서에서는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조군이 진군에게 고전하자 보루 쌓고 우주방어에 들어간 거고, 진이 보루를 점령하기도 했거든요. 조의 효성왕이 염파에게 불만이 있던 것도 싸움에서 계속 졌으면서 만회할 생각은 안 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고요. 뭐 왕흘이 염파를 못 이기니까 계략을 썼다기보다 진 입장에서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계략을 썼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튼 백기가 사령관이 되자 왕흘은 그 부장으로 종군합니다. 이후 철군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왕릉이 조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는데 영 지지부진하길래 장수를 교체합니다. 백기가 지휘를 거부해서 왕흘이 지휘했고, 위의 신릉군이 이끌고 온 연합군에게 밀려 회군합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위나라 영토를 쳐서 물먹이긴 했습니다. 이후 한 번 더 상당으로 밀고 들어갔는데 또 신릉군이 군대를 몰고 와 진의 몽오를 격파하면서 전진했던 진군을 뒤로 쭉 밀어버립니다. 그 뒤로는 진시황 집권 초에 장군이 되었다가 사망.


호양(胡陽)
여기서부터 존재감이 확 줄어듭니다. 앞서 백기 파트에서 언급한 화양지전은 백기 혼자 지휘한 게 아니라 2명이 더 있었는데 양후 위염과 객경 호양입니다. 호양은 위나라 전선에서 활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조나라와의 연여전투에서 조사에게 참패했고, 이를 끝으로 더이상 기록이 없습니다. 나무위키에서 왕흘이 조사에게 패했다고 적어둔 게 있는데 이게 아마 연여전투를 가리키는 거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한단에서 조나라의 지휘관이 이목이었다고 적은 것도 그렇고 왕흘 문서가 유독 오류가 많아요.


규(摎)
위와 한을 공격했고, 특히 한을 상대로 4만의 수급을 벱니다. 그게 끝. 사실 이것도 엄청난 전공인데 백기가 너무 대단해서...


염파(廉頗)
염파의 이야기는 사기 염파인상여열전에 나오는데 저 두 사람뿐만 아니라 조사까지 총 3명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막상 열전을 봐도 염파의 군공이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염파는 조의 명장이었다면서 제나라를 쳐서 그 공으로 상경이 되었다고 한 뒤 다짜고짜 인상여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염파가 '내가 군공이 많은데 인상여 따위가 혀를 잘 놀려서 내 위에 오르다니'라고 분노한 것을 보아 누락된 군공이 꽤 많을 겁니다. 조세가를 보면 염파가 상경이 된 시기와 인상여가 상경이 된 시기는 약 4년밖에 안 나거든요. 인상여를 욕하긴 하지만 화해하고 문경지교를 맺은 뒤 조나라의 간판장수로 위나라를 공격합니다.

다만 혜문왕이 죽고 그보다 못한 효성왕이 즉위하면서 꼬이는데 앞서 언급한 장평대전을 앞두고 반간계 때문에 실각하고, 나라가 망국 직전까지 몰린 뒤에야 복권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원래 혜문왕이 진 소양왕과 회담하러 갈 때 염파가 '30일 안에 못 돌아오시면 태자를 왕으로 세우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거죠. 그런데 그 왕자가 왕이 되고 나서 염파를 괄시했으니... 대장으로 돌아오자마자 조나라 잡아먹으려 달려든 연나라의 율복을 격파하고 반격을 가해 연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았고, 이후 위나라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불같은 성격이 결국 발목을 잡아서 새 왕인 도양왕이 악승(낙승)에게 지휘권을 넘기라고 명하자 이에 불복하고 오히려 악승을 공격해서 쫓아냅니다. 결국 위나라로 망명하지만 등용받지 못했고, 초나라까지 가지만 거기서도 딱히 군공은 못 세웁니다. 만화와는 달리 죽을 때까지 조나라 군대를 지휘하고 싶어했으나 곽개라는 희대의 간신이 염파의 복귀를 방해해서...


인상여(藺相如)
진나라의 효웅 소양왕을 세치 혀로 세번이나 물먹입니다. 먼저 소양왕이 혜문왕의 보물 화씨지벽을 탐내 진나라의 땅과 바꾸자고 거짓제안을 하는데 일단 보물을 줬다가 사기치는 거 같으니까 흠집난 곳 알려주겠다면서 되돌려받습니다. 두번째는 보물이니까 목욕재계하고 며칠 뒤에 받으라고 해놓고 조나라로 빼돌려서 물먹이고, 마지막 민지회맹에서는 혜문왕을 지켜내면서 삼연벙 아니 세 번 물먹인 거죠. 덕분에 조나라의 상경이 되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염파를 감복시키고 맺은 문경지교가 유명합니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치기도 했고, 장평대전에서 조사는 죽고 인상여는 병에 걸려있었다는 구절을 봤을 때 장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만 기록은 저 제나라 공격 말고는 없습니다.


조사(趙奢)
원래 세금 걷는 하급관리였는데 전국시대 사군자 중 한 사람이자 조나라 왕족이던 평원군 조승을 상대로 강직한 모습을 보여 추천을 받아 국가의 세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국세청장 노릇만 한 건 아니고 군을 이끌기도 했는데, 조나라와 진나라가 민지회맹을 하기 전에 이미 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침공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염파와 악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사는 진나라를 이길 수 있다며 출병하는데 연여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 공으로 염파-인상여와 동등한 반열에 오릅니다. 다만 그가 생전에 걱정했던대로 아들 조괄이 장평에서 나라의 운명을 말아먹고 말았죠. 전국책에는 평원군의 계책에 반대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아 조나라가 손해를 봤다는 일화가 있는데 통찰력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한편 후한의 복파장군 마원이 조사의 후예로 알려져있습니다. 다시 말해 삼국지의 마등과 마초 역시 조사의 후예라는 거죠.


간단히 정리하면
백기 - 중국사 통틀어 최고로 꼽히는 괴물
사마착 - 진나라의 패권 확보에 크게 기여한 인물
왕흘 - 능력이 있긴 한데 대단한 상승장군은 아니고 낭패도 겪은 인물
호양 - 1승 1패
규 - 기록이 별로 없음

염파 - 최강 진나라를 상대로 한 전과는 부족하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명장
인상여 - 천재적인 외교관이고 기록은 적지만 장수로도 활약한 문무겸장
조사 - 임팩트 있게 살다 간 명장


처음에는 육대장군만 썼는데 외출하고 돌아와서 조나라 삼대천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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