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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9/17 01:02:40 |
Name | kpark |
Subject | 패스트볼 |
1. 어원 - [패스트볼]의 원어는 [Fastball]입니다. 직역하면 [빠른 공]이 됩니다.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이 구종은 [직구]로 번역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 [직구]는 일본을 통해 수입된 단어라는 게 통설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공을 [ストレ―ト], 즉 [스트레이트]라고 합니다. 직선으로 쭉 뻗어 들어오는 공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같은 의미를 살려서 [まっすぐ], [맛스구]라고도 합니다. '똑바로'라는 뜻의 일본어입니다. - 하지만 패스트볼이 실제로 직선 경로로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공이 회전하면서 직선운동을 하기 때문에, 공기 저항에 의해 상하좌우로 경로가 변하게 됩니다. 그나마 요즘에는 이런 사실이 팬들 사이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 그래서 [패스트볼]을 [직구]라고 부르는 게 어폐라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직선으로 오는 공이 아니니까요. 대신에 원어 그대로 [패스트볼]이나 [빠른 공], [속구]란 단어를 정착시키려는 시도가 계속 있지만 잘 정착되진 않았습니다. 2. 종류 - 그런데 요즘 메이저리그를 보면 패스트볼이 한 종류가 아닙니다. 넓게 보면 한 5가지 종류가 [패스트볼]의 범주에 속합니다. - 공을 잡는 방법으로 나누면 [포심 패스트볼]과 [투심 패스트볼]이 있습니다. 전자는 흔히 말하는 [직구]입니다. 그런데 후자는 대놓고 직구이기를 거부하며 휘어지는 공입니다. 하지만 [패스트볼]답게 빠른 구종입니다. - 최근 한국 야구에서도 많이 보이는 [커터]와 [싱커]도 패스트볼의 직계에 속합니다. [컷 패스트볼], [싱킹 패스트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커터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중간에 속합니다. 싱커는 궤적 끝에서 살짝 땅으로 가라앉습니다. - [싱커]와 [투심]은 너무 비슷해서 다른 구종으로 분류해야 할 필요성이 의심될 지경입니다. 요즘엔 구속의 차이도 거의 없어요. - [스플리터]도 넓게 봤을 때 패스트볼의 한 계통입니다. 포크볼의 사촌입니다. 사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름이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이었습니다. 손가락 벌리고 던지는 패스트볼이란 뜻이지요. 벌렸죠? - 그렇습니다. 포심, 투심, 커터, 싱커, 스플리터... 다 넓게 봤을 때 [패스트볼]입니다. 3. 제구 - 패스트볼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가장 빠른 공]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투수가 가장 많이 던지는 공입니다(너클볼러는 제외). - 제일 많이 던지는 이유는 의외로 싱겁습니다. 컨트롤하기 제일 쉽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이거 모르는 팬들이 꽤 될 겁니다. - 아 물론 빨라서 타자가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닙니다. 사실 프로 1군에 뛸 정도면 어지간한 빠른 공은 한가운데로 오면 다 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추신수 선수가 명언 하나 했지요. [시속 95마일짜리 직구를 못치면 밥값 못한 기분이 든다]라고. - 투수가 못하면 팬들이 가끔씩 한마디 합니다. 변화구 좀 섞어서 던지라고요.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그런 말 보면 좀 답답했습니다. 야구가 게임도 아니고 말이죠. - 못 던지는 이유도 간단합니다. 컨트롤이 안되니까요. 류현진이 체인지업을 많이 던지는 건 그만큼 제구가 잘 되는 구종이기 때문입니다. 커브를 적게 던지는 건 반대로 제구가 잘 안돼서 입니다. - 한복판에 몰린 패스트볼은 타자의 연봉상승 촉매제입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패스트볼을 던지는 건, 변화구를 던질 때보다 그렇게 몰릴 확률이 적어서입니다. 누군들 한가운데다 던지고 싶겠어요? - 유희관이 시속 130km짜리 패스트볼로 먹고 사는 건 그만큼 컨트롤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4. 조화 - 패스트볼을 살리는 건 첫째로 컨트롤입니다. 패스트볼의 컨트롤. 둘째로 변화구입니다. - 야구 최초의 변화구, [커브]가 등장한 이래 패스트볼과 느린 변화구의 조합은 밥과 김치찌개의 조합만큼 찰떡궁합이자 정석적인 공략법이 됐습니다. - 네놈의 공격 패턴!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 알아내도 결과는 헛스윙 삼진입니다. 인생이 원래 그래요. - 반대로 변화구를 살리는 것도 [패스트볼]입니다. 주구장창 변화구 던져도 안 속아요. - 보리, 쌀, 보리보리보리 쌀쌀쌀! 만고의 진리입니다. 5. 양단 - 패스트볼만큼 사기치기 좋은 구종도 없습니다. 허를 찌르는 몸쪽 공, 타자를 우롱하는 높은 공, 바깥쪽 퇴근 존에 걸리는 꽉찬 공... - 이게 다 컨트롤이 되서 그렇습니다. 대류... 컨트롤이 최고다. - 반면 컨트롤이 안되고 받쳐주는 변화구가 없으면 타자에게 제일 쉬운 먹잇감입니다. - 한국인의 주식은 밥입니다. 살면서 밥 싫어하는 한국인 못 봤습니다. 마찬가지로 패스트볼 싫어하는 타자 없습니다. 6. 타이밍 - 물론 어지간히 빠른 공은 치기도 어렵습니다. 근데 프로 수준 가면 공 보고 치는게 아니고 눈감고 휘두르는 수준입니다. 레알. - 정확히는,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 공이 나오는 궤적을 보고 대충 타이밍, 예상 도착점을 그리고 휘두르는 거라고 합니다. -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막 미친듯이 라이징 라이징징 하지 않는 이상 궤도는 대충 맞는다 해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파울이나 헛스윙입니다. - 여하튼 패스트볼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투수들도 타자들의 메트로놈을 망가트리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변화구도 던지고, 타임도 요청하고, 일부러 느리게도 던져보고... 7. 공포 - 패스트볼의 또 다른 무기는 [공포심]입니다. 공기를 가르면서 날아오는 공은 상상외로 두려운 존재입니다. - 아까 패스트볼을 제일 많이 쓰는 게 컨트롤 때문이라고 했는데 죄송. 공포심도 그 이유에 한몫 합니다. - 머리 쪽으로 날아온 공에 맞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됩니다. 생각보다 벗어나기 많이 힘듭니다. 몸쪽에 맞는 것도 비슷하게 아픕니다. - 그래서 똑똑하고도 야비한 투수들이 이 공포심을 많이 써먹었다고 합니다. - 약쟁이가 되긴 했지만 성적만은 세계최강이었던 로저 클레멘스가 그 중 한 명입니다. 별명이 [헤드헌터]였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몸쪽 공을 쏴댔다고. - 돈 드라이스데일이란 전설적인 투수가 있습니다. ['타석에서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붙는 놈이 있으면 내 할머니라도 맞춰버리겠다.'] 명언입니다 명언... - 물론 보복구에 대한 두려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복구가 다 패스트볼인건 제구가 쉬워서 맞추기 쉽고, 맞췄을 때 아프니까...입니다. - 롯데 감독이었던 제리 로이스터는 투수가 공격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습니다. 몸쪽 공에 주저하는 모습이 보이면 마운드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지요. ['Fxxxing Inside!'] 8. 잡설 - 패스트볼은 사실 두 가지입니다. Fastball하고 Passed ball입니다. 이상하게 둘 다 우리말로 적을 땐 똑같이 적던데... 그래서 Passed ball은 보통 [포일]이라고 합니다. 알까기가 더 친숙하긴 합니다. - 구속을 처음 측정하기 시작한 뒤로 세계 최고 기록은 아롤디스 채프먼이 기록한 시속 105마일, 약 170km/h짜리 패스트볼입니다. 어후... - 류현진은 작년 평균 시속 90.9마일을 기록했습니다. 140이닝 이상으로 기준을 잡으니 72등이었네요. - 사실 야구장에서 제일 빠른 공은 투수가 던지는 게 아니고 타자가 친 공입니다. 올해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친 홈런이 시속 120마일, 약 시속 193km로 제일 빨랐습니다. 리얼리 리얼리 패스트 볼. - 저는 [빠른 공]을 썼다가 [패스트볼]을 썼다가 [속구]를 썼다가 [포심]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그날그날 기분타는 대로 씁니다. - [직구]도 씁니다. 다만 좀 진지하게 쓸 때는 안 씁니다. - 갑자기 생각나서 주저리주저리 해볼라고 쓴건데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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