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게시판입니다.
Date 15/09/19 01:57:31
Name   kpark
Subject   코글란의 슬라이딩은 왜 잘못됐는가
강정호가 쓰러졌습니다.

어제 새벽 강정호는 소속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에서 유격수로 출장했습니다. 그리고 경기 초반 병살타를 완성하기 위해 1루로 송구를 하던 중, 2루로 달려오던 1루 주자 크리스 코글란과 충돌해 넘어졌습니다. 코글란의 허벅지는 강정호의 정강이를 강타했고, 강정호의 무릎은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휘어졌습니다. 그 결과 강정호는 왼 무릎 내측 측부 인대 및 반월판 파열, 정강이뼈 골절이란 진단을 받았고, 수술로 인해 6~8개월 뒤에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MLB 팬들, 강정호의 팬들, 피츠버그의 팬들이 크게 동요했습니다. 코글란의 슬라이딩이 잘못된 것이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오고갔습니다.

긴 서두는 접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크리스 코글란은 과연 잘못된 행동을 한 걸까요. 저는 세 가지 각도에서 이 명제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규칙에 어긋났는가 : 아니오.
2루 주자의 슬라이딩에 대한 공식적인 규칙은 없습니다. 다만 넓은 범위에서 주자의 진로와 수비 방해에 관한 규칙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3피트 아웃'이나 '고의적으로 송구된 공을 건드리는 행위' 등에 대한 것들이 있습니다.

코글란의 슬라이딩은 공식 규칙에는 어긋나지 않습니다. 심판이 퇴장 명령 등을 내릴 수 없는 이유, 많은 이들이 '경기의 일부'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2. 악의적이었는가 : 아니오.
사실 객관적인 입증이 어려운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 고의라고 할 객관적인 이유가 없는 이상, 우리는 코글란의 슬라이딩이 악의를 갖고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솔직히 어지간히 싸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고의로 그런 슬라이딩을 할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3. 불필요했는가 : 예.
이 점이 제일 중요합니다. 코글란의 슬라이딩은 공식 규칙에 의하면 합법적인 행위입니다. 메이저리그의 관례에 비추어도 그렇습니다. 병살타 방지를 위한 슬라이딩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코글란의 슬라이딩은 누가 봐도 과도한 면이 있었습니다. 먼저 슬라이딩을 시작하는 타이밍이 상당히 늦었습니다. 코글란이 몸을 아래로 낮췄을 때 강정호는 이미 송구를 시작한 상황이었고,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박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강정호가 슬라이딩을 보고 점프해서 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수비수를 넘어트리기 위해(병살 방지를 위해선 수비수를 넘어트리는 게 당연합니다) 치켜든 발의 높이는 지나치게 높았습니다. 강정호의 정강이 아래 쪽으로 다리가 향했다면 골절이나 인대 손상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강정호의 균형을 무너뜨려 송구를 방해한다는 본래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을 겁니다.



4. 한 가지 더.

이번 사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건 중 하나는 2011년 5월 25일, 버스터 포지가 부상을 입었던 그 장면입니다.


당시 포지는 신인 포수로서 2010년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 홈에서 달려오는 주자를 막기 위해 블로킹을 시도하다가 한 쪽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규정 상 주자의 태클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강정호 사건과 같이 [그것이 야구다]라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앞날이 창창한 슈퍼스타의 부상은 메이저리그 전체의 여론을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포지 때도 같았습니다. 규칙 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자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달랐습니다. 주자가 [반드시 필요한] 동작을 행한 것임에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코글란처럼 태클이 너무 늦었던 것도, 발이 너무 높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코글란의 태클은, 포지의 부상을 불러온 그 태클보다도 더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이미 ESPN의 senior writer 버스터 올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잘못됐다고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규정이 잘못된 겁니다.




강정호 선수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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