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위험한 얘기일 수 있는데, \'오래된\' 어떠한 도그마를 가진 집단에서 자주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룰이 만들어질 시대에는 사실 인권이라든가, 개인이라든가, 권익 보호라든가, 이런 개념이 없거나 전제 자체가 달라서 그 시대에 그럭저럭 합리적으로 보이도록(최소한 내부에서는 합의되도록) 만들었고, 이 룰이 역사를 가지니까 룰 자체가 하나의 전제이자 도그마로서 권위를 가지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그게 다 개소리가 됐는데 막상 여기에 부응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고유성을 잃는 것 같고 뭔가 보수적이지 못한 것 같고 그러니까 이 룰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의 파편에 기대서 \'우리도 나름 합리적이라능!\'을 항변하면서 자멸하는 것이죠. \'왜 그래야하는가\'와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부단한 업데이트가 필수적인데 현실적으로 사람이라는게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어하지 않으니... 추가적으로 어차피 룰은 선수가 결정한다기보다는 직접적인 위험성에 노출이 거의 되지 않는 사람들이 결정하니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절감하지도 못하고, 선수들이야 뭐 룰에 반기를 들면 \'그럼 하지마\'라는 폭력적인 억압을 피할 수가 없거니와 애초에 운동선수라는 직종 자체가 비판적 사고를 상당 부분 거세당한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고... 이래저래 스포츠의 팬이면서도 모든 스포츠가 가지는 도그마화와 그로 인한 비합리성의 극대화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스템적 잘못을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하라고 배웠고 저렇게 해왔으며 저렇게 해와도 칭찬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높이 든 발이 이걸로 설명이 끝나지요. 그게 문제였다면 피해자든 제 3자든 \'코글란 발 각도 좁혔어야\' 얘기로 기사가 도배됐을 겁니다.
이 사건은 고의적일지언정 악의적이지 않은 사건이지, 악의적일지언정 고의적이지 않은 사건이 아닙니다. 코글란은 야구선수로서 비교적 최적에 가까운 선택을 했습니다. 강정호는 오히려 야구선수로서는 약간 아쉽지만 그래도 충분히 박수받을만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비극일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가 선수의 책임이겠습니까 룰과 시스템의 책임이겠습니까. 저 자리에 다른 훌륭한 선수를 넣었어도 결과는 크게 바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야구 룰이 왜 이렇게 되어 있는가도 좀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야구의 슬라이딩 견제는 유서깊은 행위입니다. 개중에는 날라차기도 있었고 스파이크 열심히 간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투수조지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1루 번트대고 걷어차기같은 건 아예 만화로도 나올 정도입니다. 그 동안 별 일이 없어서 묵인해온게 아니라, \'야구는 이 정도 폭력성을 감수해야돼 우리는 원래 마초적이고 거친 남자들이니까 하지만 신사지\'라는 모순적인 태도로 일관해왔기 때문입니다 야구인들이. 코글란은 그 야구인의 하나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