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게시판입니다.
Date 16/03/31 13:18:45
Name   kpark
Subject   볼티모어 입장에서 김현수 사건 바라보기
별 어려운 얘기를 쓰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 언론과 여러 게시판에서 '김현수 사건'을 선수의 시각, 선수 팬의 시각에서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로 구단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이렇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건의 실체에 더 정확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1. 지금까지 있던 일

(1) 2015/12/10, 볼티모어는 룰5 드래프트에서 탬파베이 마이너 출신의 조이 리카드(외야수)를 지명.

(2) 2015/12/23, 볼티모어는 한국 출신의 김현수를 2년 총액 700만 달러에 영입.

(3) 2016년 2월 중순 스프링캠프 시작. 김현수 팀에 합류.

(4) 이후 리카드와 김현수는 대비되는 성적을 기록하며 스프링캠프에서 분위기 반전. 주전으로 보이던 김현수의 입지가 점점 좁아짐.

(5) 3/26, '볼티모어가 김현수를 한국으로 되돌려보내는 방안을 찾고 있다'는 기사.

(6) 이후 약 5일 동안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로스터 제외가 기정 사실화.

(7) 오늘, 조이 리카드의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이 발표됨.


...............................................


2. 볼티모어의 판단은?

쉽게 말해서 '최소한 당장은 김현수를 메이저리그에서 쓸 수 없다' 입니다. 즉시전력감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사실 팬들이 이 대목에서 많이 공분했습니다. 기회는 충분히 줬냐, 6주만에 이렇게 내치는 게 말이 되냐...

맞는 말입니다. 아무리 비즈니스 관점에서 드라이하게 돌아가는 메이저리그라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이 급선회하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

대체자라는 조이 리카드 역시 트리플A 이상 마이너리그 경력이 부족한 선수고, 스프링캠프 시작 전까지만 해도 주전을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즉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김현수를 '포기하기로' 한 볼티모어의 결정은 지나치게 섣부르고, 쿨하기까지 합니다.

사도스키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팬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것도 이 지점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찌됐던 간에 볼티모어의 결론은 그것입니다. '김현수로는 안되겠다'.

그것이 스프링캠프에서 보인 미숙한 수비실력때문이든, 슬럼프인지 본 실력인지 알 길 없는 타격 성적 때문이든 간에

볼티모어의 최종 결정은 그것입니다.

[지금 최적의 선택은 김현수가 아니라 조이 리카드다.]



700만 달러나 들인 선수임에도 결론이 그렇습니다.

결국 구단은 700만 달러가 매몰비용이 될 가능성, 김현수가 다른 팀에 가서 비수를 꽂을지도 모를 가능성 등

이런 저런 기회비용을 다 계산해봐도 지금 김현수를 손절하는 선택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구단이 지는 것입니다. 선수 탓으로, 언론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잘못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tough decision)이라고 한 쇼월터 감독의 말은 허언이 아닙니다.


...............................................


3. 그렇다면 구단이 내려야 할 조치는?

일단 '김현수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넣지 않겠다!'라는 결정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구단에게 최선의 선택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김현수를 마이너리그에서 대기시키는 겁니다.

시즌은 깁니다. 162경기가 진행되는 도중 부상자가 나올 수도 있고, 김현수의 대체자로 선택한 리카드가 부진할 수도 있습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카드가 많을 수록 좋습니다. 김현수가 남아준다면 그 카드 중 하나가 될 것이고요.

거기다 700만 달러까지 들인 선수를 그냥 놓아주고 싶을 구단은 없을 겁니다.

볼티모어가 볼 때는 리카드가 잘해주면 좋고, 못한다면 그 때 김현수를 썼는데 몸값만큼 해준다면 좋은 거겠죠.

하지만 순순히 마이너리그 행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방출시키고,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구단이 강제로 붙잡을 수단은 없습니다.

결국 김현수를 만나서 단장과 감독이 했을 이야기는 이런 것이겠죠. (오글거리지만 대충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안타깝지만, 우리는 자네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서 배제하기로 했네. 자네에게 내놓을 선택지는 두 가지야.
하나는 우리 팀의 마이너리그에서 뛰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것. 우리 입장에서 더 바라는 시나리오지.
언젠가 메이저리그에서 자리가 생긴다면 자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다른 하나는 우리 팀을 떠나 다른 팀으로 가는 거네. 선수 하나를 잃는 게 우리에겐 좋은 일은 아니네.
하지만 자네가 생각하기에 다른 곳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리 해도 좋네.
물론 우리가 주기로 약속한 연봉은 받게 될거야.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자네가 마이너리그에서 있어줬으면 하네.
그렇지만 선택은 자네에게 달렸어. 이런 결말이 나게 되서 유감일세."

설명 없이 방출하기 보다는 계획과 남은 선택지를 설명하고 선택할 시간을 주는 것.

잔인하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최소한의 배려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히 해야할 일이긴 합니다...)




4. 아쉬운 점

메이저리그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라고들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루아침에 수 년을 뛴 구단에서 잘리기도 하고, 트레이드되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볼티모어는 작년 4선발로 뛴 미겔 곤잘레스를 방출했습니다. 별다른 잡음 없이 아주 드라이하게 이뤄진 결정이었습니다.

선수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받아들입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옆에 있던 동료가 사라지는데 감정적이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일처리는 아주 미숙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과정은 언론에 노출되는 일 없이도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미겔 곤잘레스처럼, 모든 결론이 난 후에 발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의든 아니든 '선수를 한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알아보는 중'이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리고 선수에게 마이너리그 행을 권유하는 과정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과 단장이 '그가 마이너리그 행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마치 모든게 기정사실화된 양 말입니다.



구단이 대화를 해야 할 대상은 언론이 아닌 선수와 에이전트였습니다.

보통 대화도 아니고 결론까지 도달하기 아주 어려운 대화입니다.

자신에 대한 판단이 너무도 짧은 기간에 이뤄졌다는 억울함, 있는지도 모를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좌절감 속에서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선수와 에이전트가 심사숙고를 하는 와중에 구단이 옆에서 입을 털어버리고 있으니 선수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상대의 계획에는 내가 없구나'라는 인상만 강하게 받을 것입니다.

이래서야 구단의 말을 선수가 신뢰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요. 마이너에 가면 버려질 뿐이란 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입니다.



거기다 김현수가 맺은 계약은 다년계약이고 액수도 많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편입니다.

이런 계약을 맺을 때는 일정 이상의 기회 제공을 기대하는 게 상식적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구단이 허공에 돈 날리는 일이 될테니까요.

그런데 이번 일은 크지는 않아도, 구단과 선수 간의 신뢰에 손상을 입히는 사건입니다.

안 그래도 최근 볼티모어는 덱스터 파울러, 요바니 가야르도, 그랜트 발포어, 닉 마카키스 등과 계약을 진행하면서 지나치게 깐깐하고 이해타산적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선수를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며 함께 할 인간이 아닌, 컴퓨터 시뮬레이션 상의 객체와 비슷하게 취급하는.

지금 볼티모어의 행보가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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