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살 때부터 초등 4학년 때까지 살던 동네 골목에서 우리 집 대문에서 왼쪽으로 세 번째 집으로 기억해요. 비슷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양옥이었는데 우리 집은 식구 여섯 명(많을 땐 일곱 명), 그 집엔 엄마와 딸 둘이 살았답니다. 꽤 잘 사는 집이었던 거죠. 딸은 저보다 두 살 위인데 우리 남매랑 골목에서 어울려서 놀기도 잘 놀고 초등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녔어요.

나중에 어른에게 들었는데 그 집 아주머니가 돈을 많이 번 재일교포 노인의 '한국인 첩'이었다고 하더군요. 재일교포 남성은 일본에 본처와 자식들이 있고, 한국에도 조상님들 제사를 위해서 처를 한 명 또 둔 거였다고 했어요. 노인은 일 년에 한두 번씩 한국에 와서 젊은 처와 어린 딸과 지내다 간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가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텐데, 무슨 이야기인지 한 50퍼센트나 이해했으려나? 그래도 그 뒤론 그 언니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슬픈 생각이 치밀고 조금씩 더 조심스러워지고 말을 아무렇게나 꺼내기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 언니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답니다. 말수가 적고 약간 가무잡잡하고 단정한 인상이었어요.

'무조건 기록해라'라는 말이 참 좋아요. 기록은 언제 어디서든 약자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무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