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기간 중 10명 인원 제한이 적용되는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3시간 운전해 켄트까지 갔던 개인 경험을 꺼냈다. 그는 부모를 잃은 엄마를 안아주지도 못했고 형제들과 악수도 못했으며 할머니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차 한 잔 마시지도 못한 채 다시 운전해 돌아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끝낸 그는 "총리는 내가 바보라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법을 지킨 사람이 바보인가?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자리에서 평의원이 당대표이자 총리에게 던진 이 질문은 상대적이다. 부패 지수가 높은 사회에...더 보기
장례식 이야기가 가슴을 찌르는군요.
봉쇄 기간 중 10명 인원 제한이 적용되는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3시간 운전해 켄트까지 갔던 개인 경험을 꺼냈다. 그는 부모를 잃은 엄마를 안아주지도 못했고 형제들과 악수도 못했으며 할머니 집에 들어가 가족들과 차 한 잔 마시지도 못한 채 다시 운전해 돌아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끝낸 그는 "총리는 내가 바보라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법을 지킨 사람이 바보인가?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자리에서 평의원이 당대표이자 총리에게 던진 이 질문은 상대적이다. 부패 지수가 높은 사회에서 이것은 완연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도덕과 원칙은 감상적이고 부차적인 가치요, 냉엄한 현실을 모르는 이상만 추구하는 언어로 취급된다. 대신 살벌한 권력 쟁탈식 언어가 지배하고 권력의 향방에 따라 움직인다.
반대로 부패 지수가 낮은 사회에서 위 질문은 놀라움, 분노, 부끄러움의 반의적 표현이다. 투명한 사회일수록 평의원과 당대표의 관계는 신념을 공유한 평등 관계이고 신뢰가 상하 관계를 성립시킨다. 수치스러움은 정책의 실패만큼이나 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