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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04/09 10:22:50 |
Name | 달씨 |
Subject | ‘벚꽃엔딩’은 연10억 벚꽃연금? 가격이란 무엇인가 |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245141 지금 우리는 가격을 결정하는 가치가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있을까요? 그 정의가 정당하게 '정의'로운 것일까요? 경제학은 계속 가치의 이야기를 바꿔가며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가치, 교환가치, 협상가치 그래서 가격은 끊임없는 의심의 대상입니다. KBS 서영민 기자의 가치있는 기사입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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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이미 가격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소비를 할 때 이 가격에 이 걸 사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죠.
가격은 그런 고민들의 결과로 자연스레 정해진 현상이죠.
자연..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이 정의와 관계없는 것 처럼 그 숫자는 정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념으로 가격을 왜곡하는 경우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 충분히 겪지 않았나요?
정의와 관계있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분배겠죠.
소비를 할 때 이 가격에 이 걸 사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죠.
가격은 그런 고민들의 결과로 자연스레 정해진 현상이죠.
자연..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이 정의와 관계없는 것 처럼 그 숫자는 정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념으로 가격을 왜곡하는 경우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 충분히 겪지 않았나요?
정의와 관계있는 것은 가격이 아니라 분배겠죠.
시장가치가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거예요. 하지만 그걸 왜곡했을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인류는 이미 수십년째 보고 있죠.
그리고 예시가 벚꽃연금인건 좀 별로네요.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고 있는 곡이고, 우리나라 가요사 손꼽히는 스테디 셀러인데 건물한두개 안될 이유가 뭔가요. 손흥민도 그렇고요.
오히려 이런식의 계층이동이 안되는 세상이 더 무섭습니다.
그리고 예시가 벚꽃연금인건 좀 별로네요.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즐겨듣고 있는 곡이고, 우리나라 가요사 손꼽히는 스테디 셀러인데 건물한두개 안될 이유가 뭔가요. 손흥민도 그렇고요.
오히려 이런식의 계층이동이 안되는 세상이 더 무섭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시장은 신이고 가격은 무적이다 라고 접근하면 곤란한 것이, 애초에 제도나 세금 같은 것도 모두 시장 교란작용을 하고, 무정부 세상에서 살게 아닌한 아주 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게다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게 모두 감당안되는 부작용을 낳는 건 아니고, 당연히 더 좋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가격에 옳고 그름을 부여해 교조적으로 접근하지 말란거지, 시장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기만 한 세상은 아닙니다.
질문에 답이 있습니다. 빈곤한 노인의 폐지줍기 노동에 우리가 더 높은 값을 치뤄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폐지줍기라는 행위 가격의 문제입니까, 빈곤한 노인의 삶에 대한 연민입니까? 빈곤한 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 삶의 질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당위에 방점이 있는 것이지, 그 분들이 수행하는 개별 노동 가격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제도처럼 간접적으로든 세금이나 최저임금처럼 직접적으로든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게 꼭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외의 방법도 존재하는 이상 가격 개입이 마땅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제에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어쨌건 나름의 효용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도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어 있지는 않고, 선진국 중에도 최저임금제가 없는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등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국가가 특별히 인간의 최소한이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지옥이거나 하지는 않으며 이미 짐작하시다 시피 어떤 면에서는 최저임금제가 있는 국가보다 우월한 면도 많습니다. 즉 최저임금제건 특정 노동에 대한 정부 보조건 그 외 다른 방법이건, 어떤 목표를 위해 사용되는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당위적인 것이 아님은 실증적으로 보여지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폐지줍는 노인들이 그 가격에 일하면서 힘들게 사는건 마땅하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님은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간접보조건 직접보조건 복지와 다양한 방법을 현명히 사용해 사회구성원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개별 방법론에서 당위를 동원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 뿐입니다.
같은 방식의 수익률계산이 아니죠. 수익률계산 방법은 같아요. 개인이 자유롭기 위해 만드는게 법인입니다. '법인투자비용을 상한으로 완전히'죠. 그래서 그 3억5천이 더더욱 위험은 공공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비리의 표상인거죠.
의도한 건진 모르겠는데, 기사에서 정당성과 타당성을 혼용(혹은 혼동)하고 있죠.
가격에 대해 말할 때는,
당위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논하기보단
현상을 보는 눈으로 타당성을 따지는 게 낫습니다.
기사 본문도 정당성 대신 타당성으로 고쳐 읽는 게 더 낫고요.
어찌보면 가격이 효율성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당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효율성이 선이라는 기준은 물론 효율성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의 선정에도 가치판단이 포함되니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윤리적 '당위'와 달리 공리公理로서의 '당위'를 얘기하는 거라, 반론은 아닙니다. ㅎㅎ)
가격에 대해 말할 때는,
당위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논하기보단
현상을 보는 눈으로 타당성을 따지는 게 낫습니다.
기사 본문도 정당성 대신 타당성으로 고쳐 읽는 게 더 낫고요.
어찌보면 가격이 효율성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당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효율성이 선이라는 기준은 물론 효율성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의 선정에도 가치판단이 포함되니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윤리적 '당위'와 달리 공리公理로서의 '당위'를 얘기하는 거라, 반론은 아닙니다. ㅎㅎ)
염전노예는 피해인의 장애와 가해자/지역사회의 착취와 은폐로 인해 발생한 일이지, 그 노동 가격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어서 발생한 일이 아닙니다. 누가 제게 만원짜리 제품을 2만원에 사라고 협박하며 강매했을 경우, 혹은 제가 보유한 2만원 제품을 1만원에 내놓으라고 강요했을 경우, 그 가격이 옳으냐 그르냐가 문제가 아니라 '강매'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는 그런 억지를 써봐야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므로, 그 억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수렴한 합의점일 뿐이고, 그 가격이 대다수의 구성원이 수용할 수 없는 가격이라면 해당 상품과 용역은 시장에 퇴출될 뿐입니다. 스웨덴 등 제가 언급한 국가들에서는 이런 시장원리를 통해 가격을 형성하고, 잘 운영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컨센서스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자사의 신제품을 블로그에 리뷰해달라고 고객들에게 요청합니다. 어떤 고객들은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습니까? 친구가 리모기님에게 본인이 쓴 소설을 한번 읽고 의견을 달라고 하는데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도덕적 잘못입니까? 만약 제가 리모기님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리모기님이 대가없이 제게 질문을 한 것은 비도덕적 요구입니까? 위의 내용들에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를 해야 도덕적인거죠? 이미 현 사회는 수많은 것들을 정량화된 기준 없이, 때... 더 보기
예를 들어 기업이 자사의 신제품을 블로그에 리뷰해달라고 고객들에게 요청합니다. 어떤 고객들은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습니까? 친구가 리모기님에게 본인이 쓴 소설을 한번 읽고 의견을 달라고 하는데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도덕적 잘못입니까? 만약 제가 리모기님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리모기님이 대가없이 제게 질문을 한 것은 비도덕적 요구입니까? 위의 내용들에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를 해야 도덕적인거죠? 이미 현 사회는 수많은 것들을 정량화된 기준 없이, 때로는 무료로까지 제공하며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큰 문제가 없이 작동하는 이유는, 시장이 알아서 수요 공급의 수렴점을 찾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300원에 염전 노예를 자처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그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심신미약자를 착취할 악당들은 세상에 실존하죠. 이들을 막을 수 있는건 가격이 아니라 관리 감독과 형사 제도이지요. 노예나 빈곤 노인이 불쌍한 거지, 염전 노동이나 폐지줍기 노동의 가격이 불쌍한게 아닙니다. 이 두개를 구분해야 한다고 위에서 이미 여러번 말씀 드렸습니다. 최저임금제건 가격보조건 세금이건 다 필요하면 할 수 있는건데, 당위가 되어야 할 어떠한 논거도 제대로 제시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냥 본인 생각에 도덕적이지 않다, 안 그러면 세상이 더 나빠질거다 라는 선언과 상상만 있을 뿐이지요.
물타기는 적당히 하시죠 ㅋㅋㅋ. 앞서 언급한 노동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생존과 직결된 차원에서의 이야기었습니다. 풀려난 염전 노예의 상당수가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더라고 하더군요. 시장이 그렇게 제대로 작동하면 되돌아갔을까요? 이걸 겉으로만 보면 자발적으로 계약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여지겠지요.
저는 그냥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가격 보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격에 당위가 없다는 것도 아무런 근거 없는 그냥 개인적 신념에 불과한 말이자나요. 저는 거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최저임금이나 공정무역 같은 반례를 들었을 뿐이고요.
저는 그냥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가격 보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가격에 당위가 없다는 것도 아무런 근거 없는 그냥 개인적 신념에 불과한 말이자나요. 저는 거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최저임금이나 공정무역 같은 반례를 들었을 뿐이고요.
물타기가 아니라 이해하실 수 있게 사고실험을 한거고, 잘 이해하셨네요. 리모기님이 말하는 도덕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 차원"에 대한 것입니다. 가격이 아니라요.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도 물론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다른 방법도 있다고 얘기 드렸습니다. 그래서 당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본인의 신념을 주장만 하지 말고, 저처럼 논거를 들어 당위인 이유를 설명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가격이 당위가 된다는 주장에 대해 할 수 있는 설명이, 나 말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만 반복해 말씀하시고 계시니 설득력이 없는거지요.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는 건 가격의 도덕적 기준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구체적 목적들이 있습니다. 가령 농수산업 가격에 개입하는 건 식량자족성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세금도 특정 산업의 육성이나 보호, 기타 효과 등을 목표하며 늘거나 줄입니다. 예컨대 담배값이 늘거나 유류세 할인을 받는 건 도덕과 무관합니다. 그나마 최저임금제 정도가 당위적 사상이 배경에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임금제가 필요하다는 것 있지요. 저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최저임금제도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더 보기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는 건 가격의 도덕적 기준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구체적 목적들이 있습니다. 가령 농수산업 가격에 개입하는 건 식량자족성을 유지하기 위함이고, 세금도 특정 산업의 육성이나 보호, 기타 효과 등을 목표하며 늘거나 줄입니다. 예컨대 담배값이 늘거나 유류세 할인을 받는 건 도덕과 무관합니다. 그나마 최저임금제 정도가 당위적 사상이 배경에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임금제가 필요하다는 것 있지요. 저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최저임금제도 그런 차원에서 의미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때 최저임금제는 말 그대로 수단일 뿐이며 최소한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필수요소가 아님을 제가 앞서 실예로 보여드렸습니다. 고속도로의 속도 제한을 80km로 하든 60km로 하든 독일처럼 무제한으로 하든 그 자체는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가사회가 필요 하다면 필요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겁니다. 최저임금제또한 마찬가지죠. 그 자체가 당위적인게 아니라, 그 사회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거나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당위인건 노동 가격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걸 자꾸 노동 가격과 동일시하시니까 엉뚱한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당위라는 단어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위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이라는 뜻이고, 필수불가결성을 요구 합니다. 그래서 윤리적 개념이기도 합니다. 가령 인권 같은 것을 우리가 당위로 받아들이는 건, 인권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적 개념이 아니고, 다른 목표를 위해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인권을 지키기 위해 특정한 수단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면, 그 수단도 사실상 인권에서 확장되어 동일시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수단 없이는 인권이 심각하게 저해된다면 그 수단도 인권과 함께 당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유의미하게 존재하면, 당위가 될 수 없습니다. 마땅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본인이 그렇게 신념을 가지시는 건 자유지만,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필수성에 대한 논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걸 제시하신 적은 없습니다.
리모기 님// 저도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만, 본질적으로 가격은 공급자의 고생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수요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더라도, 그것을 가치있다고 여기는 소비자가 없으면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폐지노동도 마찬가지 문제인데, 그 폐지 수거자체가 그리 생산성이 없기 때문에 값을 더 치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1천원 가치 노동에 2천원을 치루라고 하면, 값을 치룰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아무도 폐지를 사지 않겠지요.... 더 보기
리모기 님// 저도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만, 본질적으로 가격은 공급자의 고생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수요자가 수용할 수 있는 가치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더라도, 그것을 가치있다고 여기는 소비자가 없으면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폐지노동도 마찬가지 문제인데, 그 폐지 수거자체가 그리 생산성이 없기 때문에 값을 더 치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1천원 가치 노동에 2천원을 치루라고 하면, 값을 치룰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아무도 폐지를 사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가격을 높이는 방법은 (폐지 활용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부가 보조하는 것 뿐인데, 이 경우 노동의 생산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새로운 노동진입이 생기거나(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폐지노동에 뛰어듬), 정부가 보조해주니 일부러 폐지를 만들어낸다거나 무의미한 폐지수거업체를 차린다거나 하는 식의 시장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 비용 비효율은 국민 세금이 감당하는 구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가격개입보다는 직접보조 그러니까 그냥 빈곤노인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시장에도 긍정적일 것입니다. 위에서 제가 든 예시처럼,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고 삶의 질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저임 노동을 하건 무료 노동을 하건 그것이 인간의 존엄에 문제가 되지 않을테지요. 애초에 그런 상황에선 사람들이 구태여 개고생까지는 안 할테니까요. 그러니까 가격을 당위로 간주해 교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성이 제법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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