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뉴스를 올려주세요.
Date 24/07/12 20:54:56
Name   카르스
Subject   작은 스캔들만 가득한 기이하게 고요한 세상
최근 한국은 전례 없는 고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작은 사건은 계속되지만, 거대 사건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중략)

방금 말한 사례들의 성격과 전개 과정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 거시적 갈등과 대중 운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헤게모니 경쟁의 전형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관성과 체계성 없는 국가 제도는 사회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사회 전체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적대 전선을 형성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식의 거대 전선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평화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 참사와 노동 사고는 반복되고, 불평등은 여전하며, 삶의 공간은 온갖 분쟁으로 가득 차 있지만, 예전처럼 모두가 둘로 나뉘어 싸우지는 않는다. 이게 일시적인 소강상태인지, 영구적인 상태 변화인지는 알 수 없다.

유명인 스캔들은 끊임없이 터지는데, 그럴 때마다 소규모 전선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두 연예인이 사귀다가 이별하면 각자를 응원하는 팬덤 간 갈등이 발생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보통 사람도 이런 미시적 분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당신이 동네에서 ‘주차 빌런’을 만났다고 해보자. 과거에는 이런 개인사가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려면, 사회구조 일반을 대표하는 성격이 부여돼야만 했다. 하지만 요즘엔 다수의 공분을 끌어낸다면 무엇이든 공적 사건이 돼버린다. 연예인이 불륜 상대자의 악행을 폭로하는 것처럼 이제는 모두가 일상의 빌런을 규탄하고, 자신의 소규모 팬덤을 형성할 수 있다. 언론은 거기서 적극적 역할을 한다. 온라인 공간에는 잡다한 사연들이 떠돌아다니는데, 전통적인 주류 언론조차 그런 사연을 날 것 그대로 판매한다.

주요 의제가 다뤄지는 방식도 달라졌다. 불평등은 그 어떤 정치인도 피해갈 수 없는 거대 주제였지만, 이재명 후보의 당대표 출마선언문에는 불평등이라는 말이 단 한 번, 구색 맞추기로 나올 뿐이다. 당연히 불평등 해소를 위한 큰 공약도 없다. 이는 물론 정치인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 이제 불평등도 미시적 분쟁의 주제 중 하나가 됐다. 요즘 어린이 사이에 ‘개근 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이 다뤄지는 방식은 여느 ‘SNS 화제’나 ‘인터넷 논란’과 다르지 않다. 시민 개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경험담을 올리면, 다른 이들이 집단적 분노를 표현하고, 언론이 뉴스로 가공해 보도한다. 하지만 ‘공동체는 어떻게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사건은 ‘개인의 불쾌한 경험’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콘텐츠 상품으로 소비된 후 잊힐 뿐이다.

지금까지 말한 변화를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그대로 인정하자’고 말할 수도 없다. 앞서 말한 적대 전선과 대규모 대중 운동은 한국을 움직이는 동력이면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거시적 갈등은 제도의 실질적 변화보다는 상대 진영의 제거에만 몰두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조용한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과거의 동력이 새로운 동력으로 대체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안정기로 들어온 것인가, 변화의 동력 자체를 상실하고 있는 것인가?

출처: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202407121600021
========================================
세부 비평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습니다만,
한국에서 거시적인 갈등과 운동이 죄다 사라지고 미시적인 소규모 갈등만 남았다는 개론엔 더없이 동의합니다.

어떤 면으론 정말 이상하게 고요한 나라가 되었어요.
북미권이나 유럽에서 새롭고 위험한 거시적인 갈등요소가 생겨난 것과도 다릅니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555 IT/컴퓨터'거성모바일' 피해자 패소.."불법 보조금 계약은 무효" 6 tannenbaum 17/09/28 3900 0
18611 의료/건강에이즈·말라리아 치료제로 신종코로나 잡을까? 다군 20/02/12 3900 1
13258 사회전국 최악의 미세먼지 '숨이 턱턱'…"내년 6월까지 영향" 13 swear 18/11/07 3900 0
21211 경제WSJ "연준, 高인플레 회피 위한 선제적 금리인상 포기 검토" 2 다군 20/08/03 3900 0
22761 국제'전국민재난지원금' 일본서도 논란..100만원 받아 10만원만 소비 1 알겠슘돠 20/12/28 3900 1
24572 방송/연예'방랑식객' 임지호, 오늘(12일) 심장마비로 별세..향년 65세 1 swear 21/06/12 3900 1
23552 정치박영선 "'쫓아내라' 말 자체가 상처…가부장적 여성 비하" 17 나코나코나 21/03/10 3899 0
21271 사회전라선 익산∼여수엑스포역 간 KTX·일반 열차 운행 중단(종합) 3 다군 20/08/08 3899 0
16412 사회광복절: 강제징용 피해자 아들이 기록한 '재한일본인 처' 6 자공진 19/08/15 3899 11
31772 방송/연예양조위·유가령 부부,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과 만났다.."BIFF전 미리 잡은 약속" tannenbaum 22/10/12 3899 0
15657 정치전광훈: 제가 본회퍼가 되겠습니다. 9 기아트윈스 19/06/08 3899 0
31529 국제러 점령지 합병투표 압도적 가결…영토편입 수순 돌입 9 cummings 22/09/28 3899 0
38185 사회"완전 단전" 묵살 12분 뒤 감전사…유족에 남겨진 건 찢긴 작업복뿐 3 swear 24/06/15 3899 3
15659 경제MMT는 ‘돈 풀기’ 아냐…한국, 공공투자 늘려 가계빚 줄여야 2 메리메리 19/06/08 3899 0
16431 사회카니발 운전자 한달째 구속커녕.. 누리꾼 "꼭 논란 돼야 제대로 수사하나?" 8 tannenbaum 19/08/16 3899 2
30256 정치대통령·여당 지지율 '동반폭락' 41 매뉴물있뉴 22/07/08 3899 0
10037 정치靑 "文대통령, 김정은에 韓 억류자 6명 송환 요청"(2보) Credit 18/05/10 3899 0
33598 정치尹대통령 "日, 군국주의 침략자서 협력 파트너로 변해" 34 퓨질리어 23/03/01 3899 0
7489 정치홍준표 "文대통령, 영화보고 질질 울어···맨날 쇼만 해" 8 tannenbaum 18/01/15 3899 0
22342 경제"혈세로 조원태 경영권 방어" KCGI, 신주발행금지가처분신청 7 사악군 20/11/19 3899 1
17506 사회생활고에 2천500원어치 훔친 '장발장' 할머니..형사들 '온정' 4 grey 19/11/19 3899 3
11111 문화/예술이동욱·수지, 열애 4개월만에 결별.."연인→선후배" 3 나단 18/07/02 3899 0
26479 정치이재명, 기독교·불교계 만나 차별금지법 숙의·정청래 대신 사과 12 syzygii 21/11/08 3899 0
16241 사회100만 도시 특례시 추진에 지역구 끼워넣는 50만 도시 의원들 7 알겠슘돠 19/08/02 3899 0
6518 경제수험생들 멘붕 빠뜨린 '오버슈팅'..한은 직원도 6문제 중 2개 틀렸다 7 tannenbaum 17/11/24 3899 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