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7/22 15:40:33
Name   난커피가더좋아
File #1   P1160117.JPG (2.99 MB), Download : 22
File #2   사진찍기.jpg (1.57 MB), Download : 23
Subject   아버지와 사진과 나




이 글은 분위기상 어조를 '반말체'로 독백하듯 쓰는게 맞는 거 같아, 반말로 씁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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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별다른 취미가 없었다. 일본 지사에 근무하던 시절 비즈니스상의 이유로 골프를 좀 배우셨지만,

10여년 뒤 호주 지사장으로 다시 발령을 받기 전까지 한국에서 골프채를 잡으신 적은 없었다. 1980년대, 골프는 그런 스포츠였으니까.

장기나 바둑도 두지 않으셨고, 화투도 칠줄 모르셨다. 신문과 책을 좋아하는 양반이었고, 좋은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며 웃고 떠드는 그게 인생의 낙인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버지의 '취미다운 취미' 하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사진이었다.

당시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했겠지만, 지금처럼 출사동호회가 활발하게 있던 시절도 아니고 어차피 다들 '회사인'으로만 살던 시절이었던지라 사진기는 가족끼리

어디 여행가는 날 정도에 장농에서 나오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4학년때였나, 딱 한 번 출사의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펜탁스 SLR을 꺼내 들고  내게 올림푸스 똑딱이 필카를 손에 쥐어줬다.

그리고 떠났다.

회사 내 사진동호회 회원이셨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그때 빌린 차량은 '대현관광'이라는 작은 여행사의 버스였고, 삐걱삐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낡은 차였다. 그때 당시 우리 아버지를 '과장님'이라 부르던 많은 회사직원들도 함께 있었다.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른채 자동모드로(똑딱이 필카에 특별히 다른 모드가 존재했던거 같지도 않다) 멋진 풍경을 전혀 멋지지 않게 담아내고 있었고,

아버지는 노출을 조정하고 조리개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거였다. 그땐 당연히 그런거 몰랐다.) 풍경을 담고 있었다.

청풍명월 마을 사진 같은게 남아있는 거 보면 충청도 인근의 산자락을 다녔던 거 같다.

그 뒤에 아버지 회사 사진동호회에서는 작품전을 열었는데, 그중 산맥이 서로 겹쳐 묘한 정취를 자아내던 아버지의 흑백사진, 제목'운하'와 쓸쓸한 옛 기와집 마을을

담은 '청풍명월'이라는 두 사진이 전시됐고, 하나는 상을 받았다. 그 두 사진은 나와 내 와이프의 신혼집 거실 적당한 위치에 걸려있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사진기를 꺼내든 일은 자주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6년 정도가 지나 갑자기 돌아가셨으니, 그 두 사진은 유작이 돼 버렸다.

사진을 잊고 살았다. 아니 그냥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2009년인가 2010년, 캐논 550D의 대히트와 함께 젊은 여성들마저 DSLR을 목에 걸고 다니기 시작했고

나도 그 열풍에 하나 장만을 했지만(우연히도 맘에 들어 장만했던 내 첫 DSLR은 아버지의 SLR과 같은 브랜드, 펜탁스였다),

처음에 호기심으로 몇 번 만진 뒤 곧바로 장에 처박혔다. 그 카메라에겐 참 미안하다.

와이프와 결혼전 데이트를 할 때 잘좀 찍어보겠다고 몇 번 들고 나갔으나, 어차피 자동모드밖에 쓸 줄 몰랐던 나는 언제나 참담한 사진을 만들어냈다.

흥미는 더욱 떨어졌다.

그리고 예의상 신혼여행지에 들고도 가봤으나, 역시 사진은 별로였다.

그런 도중 결혼 첫 해 겨울, 싼 맛에 떠난 칭다오 겨울여행에서 와이프의 올림푸스 똑딱이 디카로 찍은 사진 한 장이 나를 바꿔버린다.

링크에 걸린 첫 사진이다. 우연히 잡힌 저 한 장면은 자꾸만 보고 싶은 장면이었고,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걸 출력해 액자에 걸게 됐다.

다시 사진에 관심이 생긴 나는, 카메라도 바꿔보고 관련 서적을 사서 공부를 하고 강좌도 들으면서 조금씩 조리개값과 셔터스피드를 조절하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전히 허접한 실력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걸리는 괜찮은 스냅샷이나 풍경샷에 혼자 괜히 뿌듯하게 미소짓는 병신같은 짓을 하기도 한다.

오디오, 자동차와 더불어 남자가 갖지 말아야할 취미(집안 거덜내는) 세 가지 중 하나라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것도 사진이다.

언젠가 직업적으로 쓰던 어떤 글에 이런 내용을 쓴 적이있다.

"남자의 카메라, 자동차, 오디오는 남성의 사냥/전쟁 DNA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보인다. 적의 소리, 맹수의 소리, 사냥감의 움직임을 귀를 쫑긋 세워 들어야 하는 옛 남자들은 그렇게 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자동차는 사냥과 전쟁에서 필요한 '탈 것'이자 '애마'의 개념이며, 카메라는 타깃(표적)에 포커스(조준)해 쏘는(shoot) 행위로 무기의 속성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이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사람들은 비유가 그럴듯하다며 재밌어하긴 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기억을 불러낸다. 시공간을 담는 매력은 참 놀랍다.

추억은 사진을 통해 더욱 미화되는 속성이 있다. 짐정리 하다 살며시 짓는 웃음. 옛 사진 보는 이들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그냥 더 늙기전에 와이프도 더 찍어주고, 내가 눈으로만 담아두기엔 아까울 거 같고 다시 제대로 보고싶은 장면들, 길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삶의 울림을 담아내기만 해도 좋다.

그리고 몇 개는 반드시 걸어 두리라.

돌아가신지 20년이 넘은 아버지의 사진과 나의 사진이 우리집에 걸려 세대를 넘어, 시공간을 넘어 대화를 하듯,

그렇게 사진을 통해 교감하며 내 후손들과 숨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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