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08/09 07:51:34
Name   뤼야
Subject   골목길 풍경 - 어린 시절을 떠올림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이사와 전학을 했습니다. 명색은 부모님이 오랜 객지 생활끝에 장만한 집으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심신이 허약하고 예민했던 저는 바뀌어버린 환경이 낯설기만 했지요. 전학가기 전 저를 맡아 가르쳐주셨던 담임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제게(정확히 이야기하면 반 전체 학생들에게)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리게하고, 추억에 젖게 하고, 가끔 그리워 눈물나게 하는 좋은 분이셨습니다. 두고 온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리워 한동안은 매일밤 베게를 적시며 울었습니다.

한옥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양옥도 아닌 것이, 머리에는 햇빛에 바랜 기와를 얹고, 좁은 땅을 활용하느라 수돗가가 전부인 마당이 있던 집이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의 모습입니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착해집니다. 봄에는 좁은 골목에 너나 할 것 없이 낡은 스티로폼 용기나 못쓰게된 대야에 물빠짐 구멍을 내고 흙을 채워 채소 모종을 심고, 여름에는 어느새 그것들이 자라 꽃을 피우고 가지나 호박이나 토마토 따위가 매달리고 익어가는 모습이 어린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골목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가 설핏 깨면, 술에 취한 중년의 남자들이 골목을 지나며 부르는 노랫소리도 저는 싫지 않았습니다. 헤어지기 아쉬운 연인들이 대문 앞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교복을 불량하게 입고 담배를 피워대는 언니, 오빠도 좋기만 했습니다. "야! 꼬마야! 너 여기 사냐?" 이렇게 물어오면, 저는 얌전하게 "네..." 이렇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제 대답이 우스운지 그들이 웃음을 터뜨릴때면, 그게 왜 우스운지 한참이나 생각하곤 했지요.

바닷가에 만들어둔 모래집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파도에 휩쓸려 가고나면 어리둥절해져서 그 흔적을 찾아보듯이, 골목만 보면 사진 한 장 담기 바쁩니다. 이 골목 어딘가에 이웃집 할머니가 낡은 매트에 고추나 나물을 말리던 모습과, 같이 놀자며 저를 부르던 친구들과, 가을 바람에 굴러다니던 낙엽과, 우리 강아지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체부동의 한 골목을 찍은 사진입니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215 여행스냅콜럼버스의 관 5 생존주의 17/05/11 5564 5
    713 여행스냅여름의 제주 7 Dr.Pepper 16/09/03 5564 5
    742 풍경/야경오사카 야경 2 최종병기캐리어 16/09/25 5548 2
    1417 이벤트시스터즈 1 아침 18/01/08 5540 7
    38 일상스냅골목길 풍경 - 어린 시절을 떠올림 11 뤼야 15/08/09 5531 0
    86 일상스냅흑백 사진 몇 장 (2) 3 ramram 15/08/31 5529 0
    55 풍경/야경피렌체 17 Beer Inside 15/08/17 5529 0
    526 이벤트노부부 3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5/09 5527 4
    647 풍경/야경숭례문 12 쿰척쿰척파오후 16/07/25 5517 5
    1574 일상스냅달밤의 뒷뜰 1 지금여기 18/05/21 5502 1
    903 풍경/야경제주도 애월&김녕 4 솔구름 17/01/20 5495 5
    121 기타힐 받으면 내 남자(feat.BattleBeast) 6 나단 15/09/09 5489 0
    1652 일상스냅제네시스 강남 BONG 18/08/08 5480 0
    99 풍경/야경산에서 일출찍기 25 싱크 15/09/03 5479 2
    1426 이벤트마스카라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그녀의 속눈썹 5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8/01/10 5477 3
    1615 여행스냅네덜란드 위트레흐트 6 생존주의 18/06/27 5476 6
    1316 인물/동물태국호텔 미소가 아름다움 신문안사요 17/08/18 5476 3
    1414 이벤트그와의 하룻밤 6 와이 18/01/08 5473 5
    471 여행스냅돼지찌개 10 쿰척쿰척파오후 16/03/14 5469 2
    627 일상스냅태어난지 9개월 이제 삼도류를 연마할 때가 되었다. 13 shadowtaki 16/07/11 5468 2
    1495 여행스냅내소사 / 고창읍성 6 classic 18/03/11 5460 3
    1432 이벤트휴식 3 *alchemist* 18/01/12 5450 3
    1933 기타고려청자 사진 1 풀잎 19/07/30 5448 3
    1317 인물/동물새... 10 o happy dagger 17/08/27 5448 3
    1342 여행스냅이탈리아 베니스 10 생존주의 17/10/10 5440 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