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20/12/09 02:13:29수정됨 |
Name | 쿠팡 |
Subject | 우리 사회가 더 개방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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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크게 변하고 있어서 정책적으로도 등장하는 중이고 개방적으로 바뀔거는 불보듯 뻔하다고 봅니다.
단 부작용도 만만치 아니할거 같은데 특히나 여성, 소수자들 관련 사안들인데 솔직히 외국에서는 동성애자 라고 밝히는 순간 받는 억압과 폭력, 여성이 받는 차별들이 외국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그나마 덜 한거다라고 하는 보수적인 것과 다른 의미의 색이 다른 반발도 만만치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잡음이 날듯 합니다.
단 부작용도 만만치 아니할거 같은데 특히나 여성, 소수자들 관련 사안들인데 솔직히 외국에서는 동성애자 라고 밝히는 순간 받는 억압과 폭력, 여성이 받는 차별들이 외국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우리나라는 그나마 덜 한거다라고 하는 보수적인 것과 다른 의미의 색이 다른 반발도 만만치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잡음이 날듯 합니다.
뭐 PC 를 지양하는 최근의 추세를 보면 , 한 번도 PC 하지 않았던 한국에서 저게 나올 일인가 싶긴 합니다만
20년전 1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개방적으로 바뀐 거라고 봅니다.
본문에 성소수자 얘기가 나와서 그 쪽 주제로만 적어보자면
20년 전에 옆동네 같은 곳에서조차도 동성애 얘기 나오면 정신병자, 변태, 패죽이고싶다 이런 말이 나와도 별 제재도 없고
그냥 냅두던 분위기 였습니다. 그냥 논쟁이 많아지니 작성자가 삭제해서 수습하는 식이었죠.
당시에 최대포털이던 다음에서 성소수자 관... 더 보기
20년전 1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개방적으로 바뀐 거라고 봅니다.
본문에 성소수자 얘기가 나와서 그 쪽 주제로만 적어보자면
20년 전에 옆동네 같은 곳에서조차도 동성애 얘기 나오면 정신병자, 변태, 패죽이고싶다 이런 말이 나와도 별 제재도 없고
그냥 냅두던 분위기 였습니다. 그냥 논쟁이 많아지니 작성자가 삭제해서 수습하는 식이었죠.
당시에 최대포털이던 다음에서 성소수자 관... 더 보기
뭐 PC 를 지양하는 최근의 추세를 보면 , 한 번도 PC 하지 않았던 한국에서 저게 나올 일인가 싶긴 합니다만
20년전 1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개방적으로 바뀐 거라고 봅니다.
본문에 성소수자 얘기가 나와서 그 쪽 주제로만 적어보자면
20년 전에 옆동네 같은 곳에서조차도 동성애 얘기 나오면 정신병자, 변태, 패죽이고싶다 이런 말이 나와도 별 제재도 없고
그냥 냅두던 분위기 였습니다. 그냥 논쟁이 많아지니 작성자가 삭제해서 수습하는 식이었죠.
당시에 최대포털이던 다음에서 성소수자 관련 포럼 게시판 같은 걸 만든 적도 있었는데, 저랑 논쟁하다가 서로 신상 까고 대화했던 극단적 호모포비아인 연세대 학생도 있었는데, 자기 신상 인증하고 쓰는 글인데 성소수자는 아예 주민증이나 공문서에 따로 낙인을 찍어서 기재해야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도 다들 박수 짝짝짝 치는 분위기 였고요 ㅎㅎ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사회가 무조건 발전적으로 가는 건 아니기에 후퇴하는 일들도 있지만
그래도 10년전, 20년 전 , 30년 전 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다고 체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해서 될 일은 아니기도 하죠. 지금 당장 보장받고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데
지금 이성애자들보고 "니넨 이쯤 되면 살만하자나. 그러니 눈에 띄지말고 결혼도 하지말고 그냥 평생 숨어살아" 라고 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고 싶겠어요 ㅎ
결론은 과거보다 나아지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쉽게 만족할만한 단계는 아닐거다 뭐 그런 얘기 긴 하네요.
20년전 10년 전에 비하면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개방적으로 바뀐 거라고 봅니다.
본문에 성소수자 얘기가 나와서 그 쪽 주제로만 적어보자면
20년 전에 옆동네 같은 곳에서조차도 동성애 얘기 나오면 정신병자, 변태, 패죽이고싶다 이런 말이 나와도 별 제재도 없고
그냥 냅두던 분위기 였습니다. 그냥 논쟁이 많아지니 작성자가 삭제해서 수습하는 식이었죠.
당시에 최대포털이던 다음에서 성소수자 관련 포럼 게시판 같은 걸 만든 적도 있었는데, 저랑 논쟁하다가 서로 신상 까고 대화했던 극단적 호모포비아인 연세대 학생도 있었는데, 자기 신상 인증하고 쓰는 글인데 성소수자는 아예 주민증이나 공문서에 따로 낙인을 찍어서 기재해야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해도 다들 박수 짝짝짝 치는 분위기 였고요 ㅎㅎ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사회가 무조건 발전적으로 가는 건 아니기에 후퇴하는 일들도 있지만
그래도 10년전, 20년 전 , 30년 전 보다 훨~~~씬 나아지고 있다고 체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해서 될 일은 아니기도 하죠. 지금 당장 보장받고 인정받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데
지금 이성애자들보고 "니넨 이쯤 되면 살만하자나. 그러니 눈에 띄지말고 결혼도 하지말고 그냥 평생 숨어살아" 라고 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고 싶겠어요 ㅎ
결론은 과거보다 나아지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쉽게 만족할만한 단계는 아닐거다 뭐 그런 얘기 긴 하네요.
짧은 생각으로는 전보다는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고, 앞으로도 좀 더 개방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생각, 개성, 자유가 보다 존중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모든 사람 혹은 대다수가 전면적으로, 모든 면에서 진보적이거나 개방적이거나 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개방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외국도 절대다수가 개방적인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사람, 집단도 많고, 인종, 국적, 성 등 여러 면에서 차별, 혐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들이 ... 더 보기
짧은 생각으로는 전보다는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고, 앞으로도 좀 더 개방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생각, 개성, 자유가 보다 존중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모든 사람 혹은 대다수가 전면적으로, 모든 면에서 진보적이거나 개방적이거나 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으로 개방적일 것으로 생각하는 외국도 절대다수가 개방적인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사람, 집단도 많고, 인종, 국적, 성 등 여러 면에서 차별, 혐오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들이 보수적인 모습, 생각들을 더 보여주고 심기도 하죠. 한편으로, 나이든 사람들에게서 더 쉽게 발견할 것 같은 전체주의적 혹은 집단주의적 사고나 배타성을 오히려 젊은 사람들, 어린 학생들에게서 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3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변화의 속도는 주관적으로는 엄청 빠른 듯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느려지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에 적응해서일지도 모르겠고, 반동을 감지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나 인터넷, 소셜 미디어처럼 기술의 발전이 사회 문화의 변화를 점프하는 느낌으로 급가속하는 상황이 또 올 것도 같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쉽게, 자주 접하게 하는 환경의 변화가 사람들을 개방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더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하기에 계속 한 방향으로만 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유럽 등에서의 극우의 대두도 생각납니다.
별개로 젊을 때부터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고 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변화의 속도는 주관적으로는 엄청 빠른 듯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느려지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에 적응해서일지도 모르겠고, 반동을 감지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나 인터넷, 소셜 미디어처럼 기술의 발전이 사회 문화의 변화를 점프하는 느낌으로 급가속하는 상황이 또 올 것도 같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쉽게, 자주 접하게 하는 환경의 변화가 사람들을 개방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더 배타적으로 만들기도 하기에 계속 한 방향으로만 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유럽 등에서의 극우의 대두도 생각납니다.
별개로 젊을 때부터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고 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얘기 말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글을 더 적어보자면
24년 전인 96년에 전국민에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30대 유부남 유부녀가 서로 좋아하는 얘기 였는데
정작 방송에선 스킨쉽은 하나도 안 나왔을 거에요. 손 정도만 잡았나? 근데 불륜을 미화했다고 방송위로 경고도 받고 난리였어요. 지금 막장드라마들 생각하면 우습죠? ㅎ
2000 년 초반 드라마에선 혼자 좋아해서 여자에게 매달리다가 겨우 여자허락 받고 결혼했더니
알고보니 여자가 예전에 결혼 몇 년 전에 다른 남자랑 동거를... 더 보기
24년 전인 96년에 전국민에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30대 유부남 유부녀가 서로 좋아하는 얘기 였는데
정작 방송에선 스킨쉽은 하나도 안 나왔을 거에요. 손 정도만 잡았나? 근데 불륜을 미화했다고 방송위로 경고도 받고 난리였어요. 지금 막장드라마들 생각하면 우습죠? ㅎ
2000 년 초반 드라마에선 혼자 좋아해서 여자에게 매달리다가 겨우 여자허락 받고 결혼했더니
알고보니 여자가 예전에 결혼 몇 년 전에 다른 남자랑 동거를... 더 보기
그리고 성소수자 얘기 말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글을 더 적어보자면
24년 전인 96년에 전국민에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30대 유부남 유부녀가 서로 좋아하는 얘기 였는데
정작 방송에선 스킨쉽은 하나도 안 나왔을 거에요. 손 정도만 잡았나? 근데 불륜을 미화했다고 방송위로 경고도 받고 난리였어요. 지금 막장드라마들 생각하면 우습죠? ㅎ
2000 년 초반 드라마에선 혼자 좋아해서 여자에게 매달리다가 겨우 여자허락 받고 결혼했더니
알고보니 여자가 예전에 결혼 몇 년 전에 다른 남자랑 동거를 했다는 거에요.
그걸 안 남편은 무슨 길길이 날뛰고 친정 부모는 와서 석고대죄하고 결국 이혼하고 쫓겨난 시청률 1위 주말드라마도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 일일드라마들은 이혼한 여성이 양육권을 가질 수 없던 시절에 만들어져서
툭하면 남편이 바람피고 이혼당했는데 애까지 뺏기려고 해서 여자가 울고불고하면 젊고 멋진 남자가 와서 애도 찾아주고 하는 내용들이 주류던 시절도 있었어요.
이런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뭔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극대노하면서 온국민이 분개하고 몰입하고 욕하고 하던 시절이 고작 20년전이었습니다 ㅎㅎ
24년 전인 96년에 전국민에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30대 유부남 유부녀가 서로 좋아하는 얘기 였는데
정작 방송에선 스킨쉽은 하나도 안 나왔을 거에요. 손 정도만 잡았나? 근데 불륜을 미화했다고 방송위로 경고도 받고 난리였어요. 지금 막장드라마들 생각하면 우습죠? ㅎ
2000 년 초반 드라마에선 혼자 좋아해서 여자에게 매달리다가 겨우 여자허락 받고 결혼했더니
알고보니 여자가 예전에 결혼 몇 년 전에 다른 남자랑 동거를 했다는 거에요.
그걸 안 남편은 무슨 길길이 날뛰고 친정 부모는 와서 석고대죄하고 결국 이혼하고 쫓겨난 시청률 1위 주말드라마도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 일일드라마들은 이혼한 여성이 양육권을 가질 수 없던 시절에 만들어져서
툭하면 남편이 바람피고 이혼당했는데 애까지 뺏기려고 해서 여자가 울고불고하면 젊고 멋진 남자가 와서 애도 찾아주고 하는 내용들이 주류던 시절도 있었어요.
이런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뭔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극대노하면서 온국민이 분개하고 몰입하고 욕하고 하던 시절이 고작 20년전이었습니다 ㅎㅎ
그나마 많이 나아진게 이정도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신의 추억 같은 다큐를 보면 확 느껴져요.
막말로 그시절은 남자가 머리 길면 경찰이 머리를 즉석에서 깎고 여자가 치마가 짧으면 경찰서 데려다가 훈계를 하고
젊은이들이 심야에 가수 콘서트에서 스탠딩으로 춤추고 있으면 최루탄 던져넣고 전경들이 들이닥쳐서 패서 잡아가던 시절이었고요.
8-90 년대는 그시절 드라마나 개그프로만 봐도 야만의 시대나 다름 없었죠. 게다가 노래가사가 심의에 어긋난다도 앨범을 못 내던 일도 있었... 더 보기
유신의 추억 같은 다큐를 보면 확 느껴져요.
막말로 그시절은 남자가 머리 길면 경찰이 머리를 즉석에서 깎고 여자가 치마가 짧으면 경찰서 데려다가 훈계를 하고
젊은이들이 심야에 가수 콘서트에서 스탠딩으로 춤추고 있으면 최루탄 던져넣고 전경들이 들이닥쳐서 패서 잡아가던 시절이었고요.
8-90 년대는 그시절 드라마나 개그프로만 봐도 야만의 시대나 다름 없었죠. 게다가 노래가사가 심의에 어긋난다도 앨범을 못 내던 일도 있었... 더 보기
그나마 많이 나아진게 이정도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신의 추억 같은 다큐를 보면 확 느껴져요.
막말로 그시절은 남자가 머리 길면 경찰이 머리를 즉석에서 깎고 여자가 치마가 짧으면 경찰서 데려다가 훈계를 하고
젊은이들이 심야에 가수 콘서트에서 스탠딩으로 춤추고 있으면 최루탄 던져넣고 전경들이 들이닥쳐서 패서 잡아가던 시절이었고요.
8-90 년대는 그시절 드라마나 개그프로만 봐도 야만의 시대나 다름 없었죠. 게다가 노래가사가 심의에 어긋난다도 앨범을 못 내던 일도 있었죠.
홍석천씨가 커밍아웃 (실제로는 아웃팅 당한거지만) 하고 방송 일 다 끊겼던게 무려 21세기 초입인 2000년 이었어요.
2010년 초반 까지도 구시대의 회식문화가 남아있었지만(사발식, 잔돌리기 등등등) 요즘 대기업들은 그런 회식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죠.
현재 일시적으로 혹은 한동안은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인 것 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봐요.
유신의 추억 같은 다큐를 보면 확 느껴져요.
막말로 그시절은 남자가 머리 길면 경찰이 머리를 즉석에서 깎고 여자가 치마가 짧으면 경찰서 데려다가 훈계를 하고
젊은이들이 심야에 가수 콘서트에서 스탠딩으로 춤추고 있으면 최루탄 던져넣고 전경들이 들이닥쳐서 패서 잡아가던 시절이었고요.
8-90 년대는 그시절 드라마나 개그프로만 봐도 야만의 시대나 다름 없었죠. 게다가 노래가사가 심의에 어긋난다도 앨범을 못 내던 일도 있었죠.
홍석천씨가 커밍아웃 (실제로는 아웃팅 당한거지만) 하고 방송 일 다 끊겼던게 무려 21세기 초입인 2000년 이었어요.
2010년 초반 까지도 구시대의 회식문화가 남아있었지만(사발식, 잔돌리기 등등등) 요즘 대기업들은 그런 회식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죠.
현재 일시적으로 혹은 한동안은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인 것 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봐요.
1. 개방적인 세계는 따로 있읍니다.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도 10선비국 조선이 있고 소돔과 고모라가 있어요.
2. 지금하고 별 차이 없을겁니다. 겉으로는 답답한 통제, 구석에서는(딱히 그곳 사람들에게는 구석도 아님) 할거 다하는 세상.
3. 해외로 갈거까지도 없어요.. 대한민국 안에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데 왜 고생스럽게 해외로 갑니까...
2. 지금하고 별 차이 없을겁니다. 겉으로는 답답한 통제, 구석에서는(딱히 그곳 사람들에게는 구석도 아님) 할거 다하는 세상.
3. 해외로 갈거까지도 없어요.. 대한민국 안에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데 왜 고생스럽게 해외로 갑니까...
한국에서 자발적인 개혁, 국제화, 진취적인 발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또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한국 내의 세계관 변화가 없다면 말이죠.
질문자를 폄하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보통 우리는 해외를 바라보는 시각을 주로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개방적이어서 어떤 이상적인 좋은 결과를 그들이 이뤘다기 보다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옳은 방향으로 옮겨가느냐에 따른 것이죠.
흔히 여러 다양한 문화권, 정치, 경제 등을 논할 때 절대적인 답은 없고(다른 것), 옳고 그름이 없다는 식의 ... 더 보기
질문자를 폄하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보통 우리는 해외를 바라보는 시각을 주로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개방적이어서 어떤 이상적인 좋은 결과를 그들이 이뤘다기 보다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옳은 방향으로 옮겨가느냐에 따른 것이죠.
흔히 여러 다양한 문화권, 정치, 경제 등을 논할 때 절대적인 답은 없고(다른 것), 옳고 그름이 없다는 식의 ... 더 보기
한국에서 자발적인 개혁, 국제화, 진취적인 발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또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한국 내의 세계관 변화가 없다면 말이죠.
질문자를 폄하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보통 우리는 해외를 바라보는 시각을 주로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개방적이어서 어떤 이상적인 좋은 결과를 그들이 이뤘다기 보다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옳은 방향으로 옮겨가느냐에 따른 것이죠.
흔히 여러 다양한 문화권, 정치, 경제 등을 논할 때 절대적인 답은 없고(다른 것), 옳고 그름이 없다는 식의 양비론적인 오류를 한국에서는 흔히 봅니다. 아무래도 유교적인 그리고 제국주의적 잔제에 의한 자기 의견을 두루뭉술하게 개진하는 것이 몹시 보편적인 문화이기 때문이죠.
명확히 옳은 테크트리는 뚜렷하게 세계의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한국에서는 한국 스스로가 어떠한 테크트리를 밟아나갔고 밟아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커녕 인지 자체가 없습니다.
저또한 서울 내지 수도권은 살기는 편하지만, 자유가 다방면으로 제한되어 답답한 점은 사실상 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문화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 만연해도 그러려니 하고 묻어버리는 그런 것들도 너무 싫고요.
아마 주변에 이미 해외로 진출하신 분, 혹은 해외의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대체로 약간 더 나아서 해외로 옮긴 것이 아닌 압도적인 차이를 여러 방면에서 체감해서 해외로 옮긴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회 전 분야에서 이상한 폐쇄성은 한국에서만 유독 허다합니다. 하나하나 고치는 방식으로 나아질 그런 것이 아니죠.
개인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정치인이나 특별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굳이 한국에 계속 자리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인생 평생이 걸린 이슈라면 인생 전체를 걸고서라도 해외로의 이주를 추천합니다.
질문자를 폄하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보통 우리는 해외를 바라보는 시각을 주로 개방적이라고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면 정말로 개방적이어서 어떤 이상적인 좋은 결과를 그들이 이뤘다기 보다는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옳은 방향으로 옮겨가느냐에 따른 것이죠.
흔히 여러 다양한 문화권, 정치, 경제 등을 논할 때 절대적인 답은 없고(다른 것), 옳고 그름이 없다는 식의 양비론적인 오류를 한국에서는 흔히 봅니다. 아무래도 유교적인 그리고 제국주의적 잔제에 의한 자기 의견을 두루뭉술하게 개진하는 것이 몹시 보편적인 문화이기 때문이죠.
명확히 옳은 테크트리는 뚜렷하게 세계의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한국에서는 한국 스스로가 어떠한 테크트리를 밟아나갔고 밟아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커녕 인지 자체가 없습니다.
저또한 서울 내지 수도권은 살기는 편하지만, 자유가 다방면으로 제한되어 답답한 점은 사실상 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문화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 틀린 것이 만연해도 그러려니 하고 묻어버리는 그런 것들도 너무 싫고요.
아마 주변에 이미 해외로 진출하신 분, 혹은 해외의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대체로 약간 더 나아서 해외로 옮긴 것이 아닌 압도적인 차이를 여러 방면에서 체감해서 해외로 옮긴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회 전 분야에서 이상한 폐쇄성은 한국에서만 유독 허다합니다. 하나하나 고치는 방식으로 나아질 그런 것이 아니죠.
개인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정치인이나 특별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이상 굳이 한국에 계속 자리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인생 평생이 걸린 이슈라면 인생 전체를 걸고서라도 해외로의 이주를 추천합니다.
개혁은 항상 원하는 속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속도를 강제로 높히면 충돌도 더 커집니다.
답답할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도 똑같이 본인의 의견이 정답이라 믿으며 상대방을 답답해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의견들이 서로 계속 충돌하기에 원하는 만큼 속도가 빨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만족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원하는 속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해외에 대한 인식도 생각해볼 것이, 한국에서 보는 한국에 비해 한국에서 보는 해외는 창구가 너무 좁... 더 보기
답답할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도 똑같이 본인의 의견이 정답이라 믿으며 상대방을 답답해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의견들이 서로 계속 충돌하기에 원하는 만큼 속도가 빨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만족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원하는 속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해외에 대한 인식도 생각해볼 것이, 한국에서 보는 한국에 비해 한국에서 보는 해외는 창구가 너무 좁... 더 보기
개혁은 항상 원하는 속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속도를 강제로 높히면 충돌도 더 커집니다.
답답할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도 똑같이 본인의 의견이 정답이라 믿으며 상대방을 답답해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의견들이 서로 계속 충돌하기에 원하는 만큼 속도가 빨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만족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원하는 속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해외에 대한 인식도 생각해볼 것이, 한국에서 보는 한국에 비해 한국에서 보는 해외는 창구가 너무 좁아요. 모든 면을 살펴보기가 힘들고, 특정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기가 쉬워져요. 그 곳에선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보수적 문화를 느낄 수도 있고 그런 것이라 비교를 명확히 하였는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할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도 똑같이 본인의 의견이 정답이라 믿으며 상대방을 답답해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의견들이 서로 계속 충돌하기에 원하는 만큼 속도가 빨라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만족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원하는 속도가 아닐 수 있다는 것까지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해외에 대한 인식도 생각해볼 것이, 한국에서 보는 한국에 비해 한국에서 보는 해외는 창구가 너무 좁아요. 모든 면을 살펴보기가 힘들고, 특정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기가 쉬워져요. 그 곳에선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보수적 문화를 느낄 수도 있고 그런 것이라 비교를 명확히 하였는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개방적이고 비차별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죠
2x년 전만 해도 암탉이 울면... 으로 시작되는 말을 공공연하게 썼었지요.
사회의 개방성의 확장이 진보주의적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의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고, 그들이 얼마나 보수적이든 그들의 의견을 묵살할 수도 없고, 묵살하는게 옳은것도 아니지요
https://redtea.kr/pb/pb.php?id=recommended&no=1008
이 글이 생각나네요
2x년 전만 해도 암탉이 울면... 으로 시작되는 말을 공공연하게 썼었지요.
사회의 개방성의 확장이 진보주의적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의 속도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고, 그들이 얼마나 보수적이든 그들의 의견을 묵살할 수도 없고, 묵살하는게 옳은것도 아니지요
https://redtea.kr/pb/pb.php?id=recommended&no=1008
이 글이 생각나네요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1. 한국의 개혁, 국제화, 발전이 손꼽힐 정도로 적다고 하셨는데,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일어난 사회 전반의 방대한 변화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지리적 요인을 감안하면 이민문호 확대를 제외하곤 더 국제화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국제화된 나라고, 생활수준은 어지간한 선진국에 크게 뒤쳐지진 않지요. 말씀하신 자유의 제한같은 문제는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개혁, 국제화, 발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2. 문화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틀... 더 보기
1. 한국의 개혁, 국제화, 발전이 손꼽힐 정도로 적다고 하셨는데,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일어난 사회 전반의 방대한 변화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지리적 요인을 감안하면 이민문호 확대를 제외하곤 더 국제화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국제화된 나라고, 생활수준은 어지간한 선진국에 크게 뒤쳐지진 않지요. 말씀하신 자유의 제한같은 문제는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개혁, 국제화, 발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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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1. 한국의 개혁, 국제화, 발전이 손꼽힐 정도로 적다고 하셨는데,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일어난 사회 전반의 방대한 변화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지리적 요인을 감안하면 이민문호 확대를 제외하곤 더 국제화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국제화된 나라고, 생활수준은 어지간한 선진국에 크게 뒤쳐지진 않지요. 말씀하신 자유의 제한같은 문제는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개혁, 국제화, 발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2. 문화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임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아마 서구의 개방적 문화가 확실히 옳다는 의미이실 것 같은데, 단순히 결과물이나 테크트리만 보면 서구보다 동북아 선진국들이 더 우위인 면도 있습니다. 고도성장, 과학기술의 발전, 민주화의 성공, Covid-19 대응의 상대적 성공(...) 정확히 어떤 의미로 우열을 가르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도 자유주의자로서 개방적인 서구 문화가 좋다는 입장입니다만, 요즘 서구사회를 보자면 '서구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성찰 정도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조건적인 '서구 최고 한국 별로'같은 주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거에요.
1. 한국의 개혁, 국제화, 발전이 손꼽힐 정도로 적다고 하셨는데,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일어난 사회 전반의 방대한 변화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은 지리적 요인을 감안하면 이민문호 확대를 제외하곤 더 국제화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국제화된 나라고, 생활수준은 어지간한 선진국에 크게 뒤쳐지진 않지요. 말씀하신 자유의 제한같은 문제는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개혁, 국제화, 발전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2. 문화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임은 어떻게 구분하나요? 아마 서구의 개방적 문화가 확실히 옳다는 의미이실 것 같은데, 단순히 결과물이나 테크트리만 보면 서구보다 동북아 선진국들이 더 우위인 면도 있습니다. 고도성장, 과학기술의 발전, 민주화의 성공, Covid-19 대응의 상대적 성공(...) 정확히 어떤 의미로 우열을 가르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도 자유주의자로서 개방적인 서구 문화가 좋다는 입장입니다만, 요즘 서구사회를 보자면 '서구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라는 성찰 정도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조건적인 '서구 최고 한국 별로'같은 주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거에요.
1.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눈부실만큼 뛰어나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성장했다고 해서 그것을 개혁적이거나 국제적이거나 진취적인 것과는 또다른 이야기 입니다. 하나의 인간으로 비유하면 아이가 같은 또래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튼튼하고 필수적인 분야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셈이죠.
개혁은 마치 구식 전화기에서 스마트폰 혹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뀐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을 겪으신 세대와 그 이후 세대,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든 세 세대 모두에서 개혁이 있었다기 보다는 목표를 향한 성실한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있을 뿐입니다. 같은... 더 보기
개혁은 마치 구식 전화기에서 스마트폰 혹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뀐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을 겪으신 세대와 그 이후 세대,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든 세 세대 모두에서 개혁이 있었다기 보다는 목표를 향한 성실한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있을 뿐입니다. 같은... 더 보기
1.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눈부실만큼 뛰어나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성장했다고 해서 그것을 개혁적이거나 국제적이거나 진취적인 것과는 또다른 이야기 입니다. 하나의 인간으로 비유하면 아이가 같은 또래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튼튼하고 필수적인 분야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셈이죠.
개혁은 마치 구식 전화기에서 스마트폰 혹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뀐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을 겪으신 세대와 그 이후 세대,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든 세 세대 모두에서 개혁이 있었다기 보다는 목표를 향한 성실한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있을 뿐입니다. 같은 연장선에 더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은 개혁개방을, 미국은 히피문화, 유럽에선 68혁명 등이 있었습니다. 과연 한국만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보다는, 성실한 노력까지는 있었다 정도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국제화는 몹시 빈약합니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비논리적인 비자 문제, 사실상 노골적 인종차별인 다문화라는 특이한 정책,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은 암묵적으로 국가가 앞서서 차단하고는 하죠.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도 관광객이 아닌 회사 내 사무직 직장 동료로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낯선 일이죠. 무슬림이나 유대인이라면 음식조차 어디서 편하게 먹기 힘들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국제화라는 것도 한국 내에서는 기형적으로 미국, 일본, 중국 세 나라를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보통의 중국인이라면 유럽 내 국가별 역사 및 정치 혹은 세계 주요국 역사 및 정치는 필수로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런 국제적 상식은 추가로 배울것이 아닌 기본 상식으로 갖춰야하지 않을까요?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가까운 이웃 국가 일본에서 홋카이도의 우유가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지도 모릅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해외산 우유는 암묵적으로 일종의 수입 금지 품목같이 여겨져왔죠.
한국에서 발전은 정말 많지만, 정말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찾기 힘듭니다. 편하게 말해서 먹고 살려고 발전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뜻이 있어서 발전하는 것을 한심한 것으로 취급하죠. 특히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아무리 한국인이어도 한국식 치킨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한국 제품을 고를 논리적인 타당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2. 저는 서구의 문화가 혹은 개방적인 문화가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근현대라고 일컫는 그러나 주목해야 할 근대화라는 것이 한국에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 대만의 후스같은 사람이 한국에는 아직 없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과 중반에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거나 논리적으로 가르치고 있지도 않습니다. 해외 자료를 찾다보면 citation을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관찰되는데, 한국 문화에서는 citation이라는 것이 몹시 빈약합니다. 즉흥적이죠.
이를 테면 기업 내지 기술의 발전에 대해 교육 혹은 과학의 밑바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 및 금융 제도의 사고관을 바꾸는 것이 더 영향이 큽니다. 이미 수백년전에 진리로 여겨지는 기업 운영의 유한 책임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 혁명도 있었고, 더욱 부유했던 프랑스를 앞지른 영국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한국 내 기업에 대한 유한 책임이라는 것은 재벌가에 대한 정경 유착의 형태 외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부분이죠.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인 이상 이러한 절름발이 제도로는 더 이상 발전 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18세기부터 발전된 선물 시장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설뿐더러 IMF 당시 고도의 규제 성격을 갖춘 제도에 따라 선물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금융 공학은 발전이 제자리 걸음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고교 과정에 주식 매매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과 무척 비교되지요.
아직도 한국 광고에서는 경쟁사에 대한 경쟁적 언급이 사실상 금지되고 있고, 한국 방송계 및 미디어 산업의 어두운 면은 전국민이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개방적인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테크트리가 탄탄한 발전은 개방적이어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러할 필요성을 느껴서 선별적인 옮음을 쫓아가는 것이죠. 이를 테면 대부분의 선진국가들도 행정처리의 느림, 여유가 너무 많아 여가 중심으로 작동되는 일상 생활, 느긋한 청소년기 등은 여러 단계의 인권, 노동권, 행복 추구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논의 등이 바탕된 것이지 개방과 같은 손쉬운 개념이 개입된 것이 아닌 것이죠. 한국이 이러한 부분들에서 더 발전되어 보이는 것은 고도 성장이 아니라 과잉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의 장점도 분명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여러 인간 관계와 행복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행복을 추구하거나 수백년전에 이미 당연하게 제도로 자리잡은 것들이 여전히 논의조차 힘든 한국에서 사는 것은 불리한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구라고 바라보는 발전된 선진적인 모습 또한 실상은 대체로 영국의 것이고, 여전히 우리가 어떤 단계로 어떤 현재를 살고있는지 스스로를 한국에서는 보통 잘 모릅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 보다 못하다는 표현이 있듯이, 논리적으로 과잉된 부분이 많은 한국 사회는 몹시 위험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을 이렇게 잘 돌아보지 못했던 한국이 스스로 과잉된 문제점을 고쳐나간다면 또 기적적인 성과와 개선이 있을거라는 희망은 갖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살아가는 시대 내에서는 힘들겠다는 생각입니다.
개혁은 마치 구식 전화기에서 스마트폰 혹은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뀐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쟁을 겪으신 세대와 그 이후 세대,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든 세 세대 모두에서 개혁이 있었다기 보다는 목표를 향한 성실한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있을 뿐입니다. 같은 연장선에 더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은 개혁개방을, 미국은 히피문화, 유럽에선 68혁명 등이 있었습니다. 과연 한국만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보다는, 성실한 노력까지는 있었다 정도로 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국제화는 몹시 빈약합니다.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비논리적인 비자 문제, 사실상 노골적 인종차별인 다문화라는 특이한 정책,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은 암묵적으로 국가가 앞서서 차단하고는 하죠.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서도 관광객이 아닌 회사 내 사무직 직장 동료로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낯선 일이죠. 무슬림이나 유대인이라면 음식조차 어디서 편하게 먹기 힘들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국제화라는 것도 한국 내에서는 기형적으로 미국, 일본, 중국 세 나라를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보통의 중국인이라면 유럽 내 국가별 역사 및 정치 혹은 세계 주요국 역사 및 정치는 필수로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런 국제적 상식은 추가로 배울것이 아닌 기본 상식으로 갖춰야하지 않을까요?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가까운 이웃 국가 일본에서 홋카이도의 우유가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지도 모릅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해외산 우유는 암묵적으로 일종의 수입 금지 품목같이 여겨져왔죠.
한국에서 발전은 정말 많지만, 정말 진취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찾기 힘듭니다. 편하게 말해서 먹고 살려고 발전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뜻이 있어서 발전하는 것을 한심한 것으로 취급하죠. 특히 해외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아무리 한국인이어도 한국식 치킨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한국 제품을 고를 논리적인 타당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2. 저는 서구의 문화가 혹은 개방적인 문화가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근현대라고 일컫는 그러나 주목해야 할 근대화라는 것이 한국에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 대만의 후스같은 사람이 한국에는 아직 없었습니다. 1900년대 초반과 중반에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거나 논리적으로 가르치고 있지도 않습니다. 해외 자료를 찾다보면 citation을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관찰되는데, 한국 문화에서는 citation이라는 것이 몹시 빈약합니다. 즉흥적이죠.
이를 테면 기업 내지 기술의 발전에 대해 교육 혹은 과학의 밑바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 및 금융 제도의 사고관을 바꾸는 것이 더 영향이 큽니다. 이미 수백년전에 진리로 여겨지는 기업 운영의 유한 책임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 혁명도 있었고, 더욱 부유했던 프랑스를 앞지른 영국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한국 내 기업에 대한 유한 책임이라는 것은 재벌가에 대한 정경 유착의 형태 외에서는 쉽게 찾기 힘든 부분이죠.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인 이상 이러한 절름발이 제도로는 더 이상 발전 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18세기부터 발전된 선물 시장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낯설뿐더러 IMF 당시 고도의 규제 성격을 갖춘 제도에 따라 선물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금융 공학은 발전이 제자리 걸음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고교 과정에 주식 매매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과 무척 비교되지요.
아직도 한국 광고에서는 경쟁사에 대한 경쟁적 언급이 사실상 금지되고 있고, 한국 방송계 및 미디어 산업의 어두운 면은 전국민이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개방적인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테크트리가 탄탄한 발전은 개방적이어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그러할 필요성을 느껴서 선별적인 옮음을 쫓아가는 것이죠. 이를 테면 대부분의 선진국가들도 행정처리의 느림, 여유가 너무 많아 여가 중심으로 작동되는 일상 생활, 느긋한 청소년기 등은 여러 단계의 인권, 노동권, 행복 추구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논의 등이 바탕된 것이지 개방과 같은 손쉬운 개념이 개입된 것이 아닌 것이죠. 한국이 이러한 부분들에서 더 발전되어 보이는 것은 고도 성장이 아니라 과잉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한국의 장점도 분명 많습니다. 하지만 굳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여러 인간 관계와 행복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행복을 추구하거나 수백년전에 이미 당연하게 제도로 자리잡은 것들이 여전히 논의조차 힘든 한국에서 사는 것은 불리한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구라고 바라보는 발전된 선진적인 모습 또한 실상은 대체로 영국의 것이고, 여전히 우리가 어떤 단계로 어떤 현재를 살고있는지 스스로를 한국에서는 보통 잘 모릅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 보다 못하다는 표현이 있듯이, 논리적으로 과잉된 부분이 많은 한국 사회는 몹시 위험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점을 이렇게 잘 돌아보지 못했던 한국이 스스로 과잉된 문제점을 고쳐나간다면 또 기적적인 성과와 개선이 있을거라는 희망은 갖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살아가는 시대 내에서는 힘들겠다는 생각입니다.
해외 또한 지역에 따라 몹시 다르며, 해외에 대한 경험을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형태로 나누는 것은 성숙은 물론이거니와 삶에서 유익한 것임에는 틀림없으니 권장드립니다.
정치, 경제, 제도 등 깊이 있는 이야기 또한 중요하지만, 외국인들과 점심 식사 혹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또는 직장 생활과 가족 관계 등과 같은 다방면의 이야기들도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또한 권장드립니다.
너무 성급하지도, 너무 무디지도 않게 적절하게 준비하시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입니다.
정치, 경제, 제도 등 깊이 있는 이야기 또한 중요하지만, 외국인들과 점심 식사 혹은 여행을 다니면서도 또는 직장 생활과 가족 관계 등과 같은 다방면의 이야기들도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또한 권장드립니다.
너무 성급하지도, 너무 무디지도 않게 적절하게 준비하시면 원하는 바를 이룰 것입니다.
추격자로서의 한국이, 충분한 철학적 고민 없이 선진국을 따라갔다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이 부분은, 선진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진 지금 해결하기 더 쉬울 것 같네요.
다만 사회 발전과 관련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테크트리'가 존재하고, 그 테크트리를 벗어나면 무조건 후진성이 되는듯한 뉘앙스엔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한국 사회가 서구와는 다른 길을 걸었고, 그 다름에는 후진적인 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다름이 후진성인 것은 아닙니다. 국제화가 말씀하신 부분에서 더디다는 건 인정하는데, ... 더 보기
다만 사회 발전과 관련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테크트리'가 존재하고, 그 테크트리를 벗어나면 무조건 후진성이 되는듯한 뉘앙스엔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한국 사회가 서구와는 다른 길을 걸었고, 그 다름에는 후진적인 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다름이 후진성인 것은 아닙니다. 국제화가 말씀하신 부분에서 더디다는 건 인정하는데, ... 더 보기
추격자로서의 한국이, 충분한 철학적 고민 없이 선진국을 따라갔다는 부분은 인정합니다. 이 부분은, 선진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진 지금 해결하기 더 쉬울 것 같네요.
다만 사회 발전과 관련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테크트리'가 존재하고, 그 테크트리를 벗어나면 무조건 후진성이 되는듯한 뉘앙스엔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한국 사회가 서구와는 다른 길을 걸었고, 그 다름에는 후진적인 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다름이 후진성인 것은 아닙니다. 국제화가 말씀하신 부분에서 더디다는 건 인정하는데, 그건 미국, 일본, 중국의 영향력이 막대한 지리적 요인과 근현대사도 크게 작동합니다. 이민유입의 역사도 짧고(어찌보면 시작도 안 된 레벨이기도 한데), 식민제국의 역사가 있는데다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을 들여보냈고, 세계 2차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정치/경제적인 통합을 했던 서구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요. 그리고 한국같은 수출주도 후발주자가 서구와 같은 금융개방도나 기업지배구조를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그걸 무리하게 도입하려다 탈 난 게 IMF고,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만들고 있지요. 논리적인 옮음 운운하기 전에 서구와 한국의 기본 조건의 차이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말씀하신 부분에선 서구 사회에 맞춰 발전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요. 노동 시간은 OECD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1,2위 하던 나라라 그게 맞지만), 학교의 엄격한 교칙은 점차 완화되는 분위기이고, 개인주의적인 문화는 최근 청년 세대에 많이 퍼졌지요. 이러한 발전을 실용주의적 결론에서 나온 천박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발전 속도가 눈부시고,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실용주의적 고민이 아예 없는 사회 진보가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중국의 교육의 한국보다 더 발달한 면을 언급하셨는데, 중국의 교육 수준을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보편적인지 실질적인 의미는 얼마나 되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국제고/자립고도 교육커리는 엄청나거든요.
다만 사회 발전과 관련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테크트리'가 존재하고, 그 테크트리를 벗어나면 무조건 후진성이 되는듯한 뉘앙스엔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한국 사회가 서구와는 다른 길을 걸었고, 그 다름에는 후진적인 면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다름이 후진성인 것은 아닙니다. 국제화가 말씀하신 부분에서 더디다는 건 인정하는데, 그건 미국, 일본, 중국의 영향력이 막대한 지리적 요인과 근현대사도 크게 작동합니다. 이민유입의 역사도 짧고(어찌보면 시작도 안 된 레벨이기도 한데), 식민제국의 역사가 있는데다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을 들여보냈고, 세계 2차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정치/경제적인 통합을 했던 서구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요. 그리고 한국같은 수출주도 후발주자가 서구와 같은 금융개방도나 기업지배구조를 만드는 건 어렵습니다. 그걸 무리하게 도입하려다 탈 난 게 IMF고,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만들고 있지요. 논리적인 옮음 운운하기 전에 서구와 한국의 기본 조건의 차이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말씀하신 부분에선 서구 사회에 맞춰 발전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요. 노동 시간은 OECD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고(1,2위 하던 나라라 그게 맞지만), 학교의 엄격한 교칙은 점차 완화되는 분위기이고, 개인주의적인 문화는 최근 청년 세대에 많이 퍼졌지요. 이러한 발전을 실용주의적 결론에서 나온 천박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발전 속도가 눈부시고, 나름의 고민이 있습니다. 실용주의적 고민이 아예 없는 사회 진보가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중국의 교육의 한국보다 더 발달한 면을 언급하셨는데, 중국의 교육 수준을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보편적인지 실질적인 의미는 얼마나 되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국제고/자립고도 교육커리는 엄청나거든요.
분명한 옳은 테크트리가 있다는 것은 중국의 악행을 통한 성장을 보면 답이 쉽게 나옴니다.
사실상 해외 경험이 있는 중국인 중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는 수준이고, 장기 적출, 고문, 심지어 자동차 주행 기록까지 바이두와 협업해서 사생활 침해하는 그러나 그러한 고도의 기술력과 빠른 발전을 달성한 모습이죠.
지금의 한국이 여러 조건을 붙여가며 반성없는 발전에만 목맨다면 그것은 결국 중국처럼 되는 길 뿐입니다.
핀란드의 경우도 한반도를 뛰어넘는 길고 긴 식민 지배 이후에도 지금은 모두가 핀란드 내에서 살고 싶... 더 보기
사실상 해외 경험이 있는 중국인 중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는 수준이고, 장기 적출, 고문, 심지어 자동차 주행 기록까지 바이두와 협업해서 사생활 침해하는 그러나 그러한 고도의 기술력과 빠른 발전을 달성한 모습이죠.
지금의 한국이 여러 조건을 붙여가며 반성없는 발전에만 목맨다면 그것은 결국 중국처럼 되는 길 뿐입니다.
핀란드의 경우도 한반도를 뛰어넘는 길고 긴 식민 지배 이후에도 지금은 모두가 핀란드 내에서 살고 싶... 더 보기
분명한 옳은 테크트리가 있다는 것은 중국의 악행을 통한 성장을 보면 답이 쉽게 나옴니다.
사실상 해외 경험이 있는 중국인 중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는 수준이고, 장기 적출, 고문, 심지어 자동차 주행 기록까지 바이두와 협업해서 사생활 침해하는 그러나 그러한 고도의 기술력과 빠른 발전을 달성한 모습이죠.
지금의 한국이 여러 조건을 붙여가며 반성없는 발전에만 목맨다면 그것은 결국 중국처럼 되는 길 뿐입니다.
핀란드의 경우도 한반도를 뛰어넘는 길고 긴 식민 지배 이후에도 지금은 모두가 핀란드 내에서 살고 싶은 중국 국민과는 혹은 한국 국민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만들어냈죠.
IMF 사태도 조지 소로스가 시작한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한 영국과 태국발 때리기 일뿐, 한국이 내부에서 잘못한 것은 딱히 없습니다. 마치 일본 프라자 합의랑 별 다를 바가 없죠.
식민 지배 이후에 금융 중심 국가를 성공 시킨 예는 싱가폴과 아일랜드도 있으며, 한국은 탄탄한 산업 기반과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춘 만큼 미래 방향은 더더욱 금융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을 상용화시킨 나라지만 이것을 국가 단위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도록 만든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강기동 박사가 있겠지만, 그 분은 지금 제대로 된 대우를 하나도 받지 못 하고 팽 당하는 것이 마치 중국과 비슷하죠.
서구의 면을 모두, 혹은 특정한 국가의 면을 모두 100%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성공적인 사례들은 적절한 혼합과 논리적으로 옳은 선택에 기반한 경우들입니다.
한국의 후진성 중에 돋보이는 점은 노골적인 불법 유흥의 암묵입니다. 이것은 특히 일본풍 문화와 일제 시대 한반도 내에 뿌리내린 일본풍 요정등에서 기반하는데, 그 어느 정치 세력이든 권위 집단 중에서 이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혹은 일반적인 시민 입장에서 살기 좋은 나라 중에서는 주택가와 교육 시설 인근까지 이러한 불법 유흥을 정부가 힘을 합쳐 묵인하는 경우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교육은 특히나 과잉입니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은 사실상 모두 동의할 만한 사실이죠. 이것 역시 과거 일본과 중국의 모습을 본 딴 것인데, 중국은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중국 교육은 궁극적으로 대입 시험에서도 공산당 지식을 필요로 하는 기형적인 형태지만 그러한 기형 속에서도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한국 교육과 대비가 되죠.
최근 10여년간의 한국은 삼성을 통해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이것을 뭔가 근사한 미래를 그리는 듯한 것으로 포장하는데, 식민 지배를 뼈저리게 겪은 한국으로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말문이 막힙니다.
옳은 삶에 대해서 심지어 실용의 측면에서도 한국은 별다른 고민이 없습니다. 2020년의 중산층의 삶은 2000년의 중산층의 삶보다 각박합니다. (지난 20년간 편의점 즉석식품 가격 변화 대비 중산층 월급 변화와 비교하면 답이 나오죠)오히려 문제 해결이 20년 넘게 뚜렷하게 없자 다소 전체주의적인 색깔만 더 강화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2000년대 대중음악은 음악이었지만, 2020년의 대중음악은 모두 상품으로 바라보죠. 2040년의 한국이란 한 사람으로서는 행복한 삶을 사는데에 더더욱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해외 경험이 있는 중국인 중에는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는 수준이고, 장기 적출, 고문, 심지어 자동차 주행 기록까지 바이두와 협업해서 사생활 침해하는 그러나 그러한 고도의 기술력과 빠른 발전을 달성한 모습이죠.
지금의 한국이 여러 조건을 붙여가며 반성없는 발전에만 목맨다면 그것은 결국 중국처럼 되는 길 뿐입니다.
핀란드의 경우도 한반도를 뛰어넘는 길고 긴 식민 지배 이후에도 지금은 모두가 핀란드 내에서 살고 싶은 중국 국민과는 혹은 한국 국민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만들어냈죠.
IMF 사태도 조지 소로스가 시작한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한 영국과 태국발 때리기 일뿐, 한국이 내부에서 잘못한 것은 딱히 없습니다. 마치 일본 프라자 합의랑 별 다를 바가 없죠.
식민 지배 이후에 금융 중심 국가를 성공 시킨 예는 싱가폴과 아일랜드도 있으며, 한국은 탄탄한 산업 기반과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춘 만큼 미래 방향은 더더욱 금융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을 상용화시킨 나라지만 이것을 국가 단위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도록 만든 인물 한 명을 꼽으라면 강기동 박사가 있겠지만, 그 분은 지금 제대로 된 대우를 하나도 받지 못 하고 팽 당하는 것이 마치 중국과 비슷하죠.
서구의 면을 모두, 혹은 특정한 국가의 면을 모두 100%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성공적인 사례들은 적절한 혼합과 논리적으로 옳은 선택에 기반한 경우들입니다.
한국의 후진성 중에 돋보이는 점은 노골적인 불법 유흥의 암묵입니다. 이것은 특히 일본풍 문화와 일제 시대 한반도 내에 뿌리내린 일본풍 요정등에서 기반하는데, 그 어느 정치 세력이든 권위 집단 중에서 이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혹은 일반적인 시민 입장에서 살기 좋은 나라 중에서는 주택가와 교육 시설 인근까지 이러한 불법 유흥을 정부가 힘을 합쳐 묵인하는 경우는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의 교육은 특히나 과잉입니다.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은 사실상 모두 동의할 만한 사실이죠. 이것 역시 과거 일본과 중국의 모습을 본 딴 것인데, 중국은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중국 교육은 궁극적으로 대입 시험에서도 공산당 지식을 필요로 하는 기형적인 형태지만 그러한 기형 속에서도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한국 교육과 대비가 되죠.
최근 10여년간의 한국은 삼성을 통해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이것을 뭔가 근사한 미래를 그리는 듯한 것으로 포장하는데, 식민 지배를 뼈저리게 겪은 한국으로서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말문이 막힙니다.
옳은 삶에 대해서 심지어 실용의 측면에서도 한국은 별다른 고민이 없습니다. 2020년의 중산층의 삶은 2000년의 중산층의 삶보다 각박합니다. (지난 20년간 편의점 즉석식품 가격 변화 대비 중산층 월급 변화와 비교하면 답이 나오죠)오히려 문제 해결이 20년 넘게 뚜렷하게 없자 다소 전체주의적인 색깔만 더 강화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2000년대 대중음악은 음악이었지만, 2020년의 대중음악은 모두 상품으로 바라보죠. 2040년의 한국이란 한 사람으로서는 행복한 삶을 사는데에 더더욱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단지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도움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평소 인류와 세계의 변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하여 투자 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몇몇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이런 발상과 실행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이후, 다양한 시야가 곧 탁월한 발상과 실행 그리고 삶의 질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 이후 저의 0순위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인간인지라 제가 성인 시기에 살아갈 때에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큰 의문이 있었고,... 더 보기
평소 인류와 세계의 변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하여 투자 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몇몇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이런 발상과 실행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이후, 다양한 시야가 곧 탁월한 발상과 실행 그리고 삶의 질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 이후 저의 0순위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인간인지라 제가 성인 시기에 살아갈 때에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큰 의문이 있었고,... 더 보기
저 또한 단지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도움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평소 인류와 세계의 변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하여 투자 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몇몇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이런 발상과 실행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이후, 다양한 시야가 곧 탁월한 발상과 실행 그리고 삶의 질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 이후 저의 0순위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인간인지라 제가 성인 시기에 살아갈 때에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큰 의문이 있었고, 종합적으로 한국은 적어도 60여년 사이에는 살기 좋아지기 힘들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쟁 및 여러 악조건에 겹쳐 나라 자체가 사라지거나 와해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살기 좋은 곳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위 1% 내외의 상류층이라면 모를까, 인프라 및 복지 등에서 중류층의 문화 및 정책이 주목받는 곳 자체가 아니죠. 범죄 또한 첨단이라는 표현이 필요할 만큼 만연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번화가 및 주택가에서도 총기 사고가 매주 일어나는 곳은 어쩐지 꺼려지네요. 그렇지만 특정한 배경과 플랜을 갖춘 분이라면, 미국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정치 및 경제 여러 분야에서 일종의 세습적 귀족층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위와 유관한 생활을 하시거나, 그들이 만족할만한 분야의 산업 등에서 유관한 생활을 하실 경우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다고 본 케이스가 한국에서 프로그래밍을 전공할 수 있는 특성화고 졸업 이후 바로 미국에서 취업하고 하루 4시간 이하로 일하며 영주권 받는 경우가 감탄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국가입니다. 고를 수 있다면 굳이 문화적으로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곳 보다는 인터내셔널로 받아들여지는 곳을 추천합니다.
일본 자체는 일본인으로서 살기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부분도 있지만 여러 면에서 한국의 상위 호환입니다. 적어도 현실적인 가격에 역세권에서 주택 생활이 가능하고, 40여년 넘게 생필품의 인플레이션이 0(일본 물가, 콜라 등으로 검색하면 많이 나옵니다.)에 가까운 나라죠.
저는 태국에 살고 있고, 태국 등 아세안 국가를 추천드리는 편입니다.
우선 현지에서 청소년기 경험이 없는 이상, 해당 문화권 이해에 한계가 있고 또한 법적 문화적 차별 등에서 유리하기 위해서는 백인 위주 국가는 위험도가 높다(이력서 실험을 살펴보면 동양계 및 아랍계는 백인 사회에서 동일 경력이라도 이력서를 읽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고 생각합니다.
대륙 유럽은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는 것처럼, 기피되는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저임금 노동은 흑인 난민의 차지이며,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준수해야 합니다. 대륙 유럽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곳입니다. 우스개 소리같지만 프랑스 법률에 여성의 바지 착용이 경범죄에 해당하던 곳이었죠.
아시안으로서 이주하여 저임금 노동이 아닌 것으로 성공하는 지역을 살펴보면, 주로 중국인과 일본인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좋습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이주 역사가 몹시 짧고 빈약하죠.
저는 해외 이주를 생각하기 이전에 한국의 주요 도시(서울, 대구, 부산, 창원, 인천, 천안, 부천, 안양 등) 및 지역들을 1년여간 직접 둘러보았고, 또 몇 개의 지역을 수개월간 바꿔가며 자취하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선호하는 형태의 보다 구체적으로 찾아나갔습니다.
태국의 몇 가지 장점이자 제가 선호하며 중시하는 점이라면, 역사적으로나 현대에서나 국제적인 문화로 작동하는 곳이며 도시에 사는 것이 편리한 편에 속합니다. 또 문화적으로 온화하며 긍정적이고,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산업들이 넓은 분야에 고루 발전했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의 국가 중에서는 가장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기회가 넘치는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주변국의 중심국이자 롤모델로 여겨지는 국가이기 때문에 상시 국제 업무가 많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일본인, 인도인, 프랑스인, 영국인 등 다방면으로 교류 할 수 있는 것도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국제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인류와 세계의 변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를 통하여 투자 하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몇몇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이런 발상과 실행이 가능한지 의문을 가진 이후, 다양한 시야가 곧 탁월한 발상과 실행 그리고 삶의 질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 이후 저의 0순위 관심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인간인지라 제가 성인 시기에 살아갈 때에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큰 의문이 있었고, 종합적으로 한국은 적어도 60여년 사이에는 살기 좋아지기 힘들겠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쟁 및 여러 악조건에 겹쳐 나라 자체가 사라지거나 와해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살기 좋은 곳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위 1% 내외의 상류층이라면 모를까, 인프라 및 복지 등에서 중류층의 문화 및 정책이 주목받는 곳 자체가 아니죠. 범죄 또한 첨단이라는 표현이 필요할 만큼 만연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번화가 및 주택가에서도 총기 사고가 매주 일어나는 곳은 어쩐지 꺼려지네요. 그렇지만 특정한 배경과 플랜을 갖춘 분이라면, 미국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정치 및 경제 여러 분야에서 일종의 세습적 귀족층이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위와 유관한 생활을 하시거나, 그들이 만족할만한 분야의 산업 등에서 유관한 생활을 하실 경우 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정말 훌륭하다고 본 케이스가 한국에서 프로그래밍을 전공할 수 있는 특성화고 졸업 이후 바로 미국에서 취업하고 하루 4시간 이하로 일하며 영주권 받는 경우가 감탄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서는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국가입니다. 고를 수 있다면 굳이 문화적으로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곳 보다는 인터내셔널로 받아들여지는 곳을 추천합니다.
일본 자체는 일본인으로서 살기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부분도 있지만 여러 면에서 한국의 상위 호환입니다. 적어도 현실적인 가격에 역세권에서 주택 생활이 가능하고, 40여년 넘게 생필품의 인플레이션이 0(일본 물가, 콜라 등으로 검색하면 많이 나옵니다.)에 가까운 나라죠.
저는 태국에 살고 있고, 태국 등 아세안 국가를 추천드리는 편입니다.
우선 현지에서 청소년기 경험이 없는 이상, 해당 문화권 이해에 한계가 있고 또한 법적 문화적 차별 등에서 유리하기 위해서는 백인 위주 국가는 위험도가 높다(이력서 실험을 살펴보면 동양계 및 아랍계는 백인 사회에서 동일 경력이라도 이력서를 읽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고 생각합니다.
대륙 유럽은 영국이 브렉시트를 하는 것처럼, 기피되는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저임금 노동은 흑인 난민의 차지이며, 중산층이 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준수해야 합니다. 대륙 유럽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곳입니다. 우스개 소리같지만 프랑스 법률에 여성의 바지 착용이 경범죄에 해당하던 곳이었죠.
아시안으로서 이주하여 저임금 노동이 아닌 것으로 성공하는 지역을 살펴보면, 주로 중국인과 일본인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좋습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이주 역사가 몹시 짧고 빈약하죠.
저는 해외 이주를 생각하기 이전에 한국의 주요 도시(서울, 대구, 부산, 창원, 인천, 천안, 부천, 안양 등) 및 지역들을 1년여간 직접 둘러보았고, 또 몇 개의 지역을 수개월간 바꿔가며 자취하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선호하는 형태의 보다 구체적으로 찾아나갔습니다.
태국의 몇 가지 장점이자 제가 선호하며 중시하는 점이라면, 역사적으로나 현대에서나 국제적인 문화로 작동하는 곳이며 도시에 사는 것이 편리한 편에 속합니다. 또 문화적으로 온화하며 긍정적이고,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산업들이 넓은 분야에 고루 발전했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의 국가 중에서는 가장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기회가 넘치는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주변국의 중심국이자 롤모델로 여겨지는 국가이기 때문에 상시 국제 업무가 많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일본인, 인도인, 프랑스인, 영국인 등 다방면으로 교류 할 수 있는 것도 오히려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국제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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