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17/10/06 20:36:47
Name   [익명]
Subject   연구직에 대한 심한 회의감이 듭니다
홍차넷 여러분

저는 연구직에 몸담고 있는 연구원입니다.
넋두리라고 해야 할까요, 최근 연구라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이 들어 앞으로의 진로에 큰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는 특히 논문을 쓸때 연구윤리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외의 교수로서 가져야할 기본윤리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몇년, 현재 아시아권 대학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참고로, 어쩌다 보니 모두 한국인 교수님들과 일을 했습니다. 이점 양지하시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
연구, 특히 실험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를 진행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통제된 환경에서 한다고 하지만,
1. 애초에 가설이 잘못 되었을 수 있고
2. 실험 설계가 잘못 되었을 수 있고
3. 실험을 잘못 진행하였을 수 있고
4. 데이터 분석이 잘못 되었을 수 있고.. 등등
여전히 이런 가능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진행한 실험에서,
A의 효과를 b,c,d,e,f,g의 차원에서 측정하였고
그 중에 b,c,d,e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결과를
f,g는 애매한.. p value가 marginal한 0.05-0.1 사이의 값을 얻었습니다.

교수님께 보고드렸더니 대뜸 하는 말이..
특이값을 제거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이값이 없었다고 말씀드렸지요. (box plot에서 2.2*IQR 심지어 3.0까지도 적용했더니요..)

그러더니..
데이터를 내림차순으로 쫙 정렬하시면서,
교수 "이거 보세요, (max, min값들을 가리키며) 얘네들 좀 튀잖아요"
나 "그럼 무슨 기준으로 특이값을 분류해 없애란 말씀이시지요?"
교수 "그냥 튀어 보이는 것들 위주로 몇개씩 없애면 marginal 한 것들이 significance가 p<0.05로 나올 수 있잖아요, 한번 해보고 보고해주세요"

?????????

제가 모시는 교수님은 국내 명문대를 졸업후 미국과 유럽의 명문대에서 학위를 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utlier의 정의조차 이런 느낌으로 가자는 건가? 고작 튀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도 p value를 낮추기 위해서?!

교수 "그리고 b,c,d,e는 실험에서 사용 하지 않은 것으로 빼시죠"
나 "....."

다음날 다른 측정치 "i"를 가지고 보고드렸습니다.
A의 효과를 i의 차원에서 분석해보니 significance가 역시 애매하게 나왔습니다.
역시 교수님은 또 특이값 타령을 하십니다.. (특이값은 없앴다고요... 교수님!!)
교수 "이런저런 데이터를 좀 빼면 p값이 낮게 나올거 아니겠냐, 샘플수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특이값?을 빼라"
나 "i의 샘플수를 줄이면 b,c,d,e,f,g의 샘플수도 같이 맞춰야 되서 전부 분석을 다시 해야 합니다."
교수 "그래도 해라"
나 "..."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하면 무엇하나요. 다 구라인데..
학계는 허상뿐인 이론과 거짓으로 쌓아올린 지식을 공유하며 발전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심하게 듭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를 논문에 싣고 무슨 생각이 들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논문으로, 그 논문의 갯수로서 평가받는 학계의 풍토속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안듭니다.
교수님에게 아니요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2. 고백합니다.
2.1 논문대필
한국에서 학위를 할 때는 참 힘들었습니다.
석/박사 과정중에 소위 논문 대필을 11번을 했습니다. 제 연구를 하는 시간보다 남 논문 써주는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주로 직장인 대학원 분들이 고객이었습니다. 일하느라 바쁘신 분들이 언제 연구논문을 쓰겠어요..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그 일을 맡기고, 그 대가로 커미션을 챙겨드셨지요. 교수님은 논문 한편에 100-150만원정도 가져가셨습니다.
1년에 졸업인원이 많을때는 10명 이상이었으니, 꽤 쏠쏠하게 챙겨드셨겠네요.
저희는 30-100만원 정도를 주셨지요. +알파가 아니라 장학금의 일부로서 말이죠.
이건 잘못된건지도 모르고 그냥 했습니다. 연구 논문을 가장한 가짜논문을 양산했습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잘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2.2 정부 연구비
이건 얼마나 정부 연구비가 허술한지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저희 분야는 음.. 어느 분야인지는 비밀로 할게요.
정부 산하 기관에서 "연구 중장기 계획" 이란걸 세워서 향후 5년간의 중점 연구 과제와 연구비 지출 계획을 세웁니다.
이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용역으로 발주되고, 주로 가장 큰 학회에서 (기계 전자 건축 학회 등등 학계의 대표 학회가 있겠지요) 수주해서 진행합니다.
어쩌다 보니 저희 연구실이 학회 소속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 드렸다 싶이, "중점 연구 과제"라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주로, 산/학/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주로 설문)하여 정리합니다.
어떤 연구가 중요합니까?
그게 얼마나 시급한 것인가요?
파급 효과는 얼마나 클까요? 등의 잣대를 가지고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절차를 깡그리 무시합니다.
그저, 우리 교수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구가 최우선 과제, 즉 설문에서 1등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어떻게 하냐고요? 설문 업체와 짜고 그 결과를 조작합니다. 그 설문업체는 학회의 하청을 받아서 하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결과를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해서 수립한 중장기 과제를 가지고 약 2년 뒤에 우리 교수는 연구비 150억짜리 프로젝트를 가져갑니다. 경쟁자는 없었습니다.
저희 교수만 이랬을 까요? 중장기 계획에 참여한 모든 교수님들이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마다 각자 잘하는 연구과제를 밀어넣었고
역시 몇년뒤에 그 과제를 수주해 갔습니다.
저는 그 실무를 잘.. 처리했지요.
아 교수님 말듣고 사는게 영혼을 파는 일이구나.. 졸업하기 더럽게 힘들구나..
저는 껍데기만 남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냥 심은대로 거두는 솔직하고 정직한 삶을 사고 싶습니다.
자꾸 연구자가 아니라 전문 조작꾼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저만 이런건가요?? 여러분들의 경험과 조언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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