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19/02/28 18:04:06 |
Name | Fate |
Subject | 프랑스 철학은 과대평가 되어 있을까요? |
제가 예전에 철학을 공부할 때 도서관에 가보면 온통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이 꽂혀 있곤 했는데요. 대략 생각나는 사람들을 열거해 보면 미셸 푸코, 레비-스트로스, 루이 알튀세, 라깡,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메를로-퐁티, 앙리 베르그송, 피에르 부르디외, 가스통 바슐라르 등이 있고, 그보다 좀 마이너한(?) 혹은 인용이 상대적으로 좀 덜 되는 이들은 보드리야르, 리오타르, 지젝 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분야도 다양해서 문학비평, 현상학, 역사학,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과학철학, 언어학 등으로 나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나중에 어디선가 본 바로는(아마 퍼트냅이나 설 등을 공부하신 분의 블로그에서 본 댓글일 겁니다) 실제로 프랑스 철학은 한국에서 워낙 많이 그쪽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번역이 많이 된 것이지 푸코나 바슐라르를 제외하면 계속해서 현재까지 연구되는 학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도 하더라구요. 저도 분석철학이나 미국 프래그매티즘(실용주의) 철학에 대해 많이 들어본 것 같지는 않아서 또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혹시 현재 철학의 객관적인 흐름이나 위상, 논문 인용수에 대해 알려주실 분이 계실까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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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레비스트로스, 부르디외 정도는 여전히 아카데미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해요. 베르그송은... 원래도 큰 인기는 없었고 지금은 전체 판이 (급속히) 작아진 데 비례해서? 알튀세는 진짜 마이너한 것 같은데, 그건 뭐... 그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오늘날 극히 비주류인데, 그 안에서 철학을 하는 사람은 더욱 소수라서... 하지만 제자격인(그러나 딱히 충실히 계승하는 것은 아니고 비판적 거리를 나름대로 유지하는)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이들이 여전히 ... 더 보기
푸코, 레비스트로스, 부르디외 정도는 여전히 아카데미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해요. 베르그송은... 원래도 큰 인기는 없었고 지금은 전체 판이 (급속히) 작아진 데 비례해서? 알튀세는 진짜 마이너한 것 같은데, 그건 뭐... 그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오늘날 극히 비주류인데, 그 안에서 철학을 하는 사람은 더욱 소수라서... 하지만 제자격인(그러나 딱히 충실히 계승하는 것은 아니고 비판적 거리를 나름대로 유지하는)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같은 이들이 여전히 활동 중이며 국내에서도 다소는 알려져 있죠. 들뢰즈나 라깡은 68이 낳은 철학자들이자 반아카데미, 반정전주의라 해야 할 이들이라, 이들이 유의미하게 널리 읽힐 수 없는 것도 당연한... 분석철학 전공한 지인이 힘겹게(단순히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스타일이 너무 싫어서) 들뢰즈를 읽어 내고서 했던 말이, 나름 의미 있는 철학이란 건 알겠는데 이따위로 써야 했는지에 대해선 아주 비판적이라고... 데리다는 문학비평 쪽에서나 가끔 언급되지만 이제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많이 남지 않은 듯하고... 하지만 그 영향을 받은 이들이 여전히 있긴 하죠. 아무튼 역시 그들이나 데리다나 주류일 수는 없는 게 당연하고, 한국에서 한때 하이프가 있었던 게 오히려 비정상이라면 비정상이랄 수 있을 듯해요. 바슐라르도 문학 전공자면 여전히 (찔끔) 읽긴 하겠죠. 보드리야르도 소소하게 읽히긴 할 테고, 리오타르는 애초에 깊이가 없는 사람 아니었나 회의되는 것 같고...
정성들여 작성해주신 댓글 감사합니다. 저는 예전 고등학교 시절에 포스트모더니즘 관련해서 수유 너머 쪽의 책들을 많이 읽었었고 그래서 철학을 좀 그쪽으로 경도되어서 읽은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라깡 관련해서 (과학도로서) 좀 실망을 많이 하고 강유원 선생님의 철학강의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쉽게 지나쳤던 흄이나 로크, 홉스 등이 의외로 읽을 거리가 많다는 것에 놀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갖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
그래서 혹시 제가 갖고 있는 bias가 얼마나 경도된 것인지 업계 분들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서 ^^;; 쓴 질문인데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혹시 제가 갖고 있는 bias가 얼마나 경도된 것인지 업계 분들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서 ^^;; 쓴 질문인데 정성스럽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ㅎ 댓글에는 다 적지 않았지만... 전 한국에서 포스트담론의 유행은 일본에서 선행됐던 유행의 반향인 면이 크다고 생각해요.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수용된 양상이과는 또 다른 거죠. 물론 일본의 '영향'이 있었던 거지 단순 수입은 아니었겠습니다만... 아무튼 한국에서 잠깐 유행처럼 번졌던 게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이론 생산자들의 의도로부터는 탈각되어 수용되었다는 느낌. 여전히 국내에서 그들을 읽는 이들 가운데는, 단순한 시대착오인 경우와 더불어 '이제라도 생산자들의 의도를 제대로 짚어 가며 읽어 보자'는 쪽이 있긴 할 듯합니다.
아, 그리고 아카데미 안과 밖 공기가 90년대랑 지금은 아주 다르지 않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 그리고 아카데미 안과 밖 공기가 90년대랑 지금은 아주 다르지 않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미국 중심으로 철학을 볼 땐 말씀하신 것 같은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모든 분야의 중심이 미국인 건 부정할 순 없긴 하죠. 하지만 미국이 사상의 중심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생산을 해내야 하는데, 논문이야 많겠지만(일단 저널 수가 많으니) 글쎄요. 피인용수가 그렇게 중요한지는 최근 교수 업적 평가에 관한 비판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고요.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은 비트겐슈타인 이래로 간극이 계속 벌어져 왔기 때문에 분석철학하신 분의 들루즈 독해는 소설 읽은 소감이랑 차이가 없습니다. 저도 사이에서 최대한 노력 중... 더 보기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은 비트겐슈타인 이래로 간극이 계속 벌어져 왔기 때문에 분석철학하신 분의 들루즈 독해는 소설 읽은 소감이랑 차이가 없습니다. 저도 사이에서 최대한 노력 중... 더 보기
미국 중심으로 철학을 볼 땐 말씀하신 것 같은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모든 분야의 중심이 미국인 건 부정할 순 없긴 하죠. 하지만 미국이 사상의 중심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생산을 해내야 하는데, 논문이야 많겠지만(일단 저널 수가 많으니) 글쎄요. 피인용수가 그렇게 중요한지는 최근 교수 업적 평가에 관한 비판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고요.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은 비트겐슈타인 이래로 간극이 계속 벌어져 왔기 때문에 분석철학하신 분의 들루즈 독해는 소설 읽은 소감이랑 차이가 없습니다. 저도 사이에서 최대한 노력 중이지만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고요. 미국 친구들한테 들루즈 물어보면 진짜 철학 덕후 아닌 담에야 철학 전공자도 몰라요..
국내는 대학/학회마다 중심이 되는 분과가 다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유학을 간 곳이 시대마다 다른 탓이 크긴 하겠죠(-80: 독일, 90년대: 프랑스, 21세기: 미국 포함). 국내에서 프랑스 철학의 위상이라, 글쎄 정치적 요소 때문에 요새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대평가일까요? 공론장을 내세운 하버마스나 해석의 지평을 더 전개한 가다머를 논의하지 않고 논문 내기 어려운 시절이 얼마 전이었는걸요.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은 비트겐슈타인 이래로 간극이 계속 벌어져 왔기 때문에 분석철학하신 분의 들루즈 독해는 소설 읽은 소감이랑 차이가 없습니다. 저도 사이에서 최대한 노력 중이지만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고요. 미국 친구들한테 들루즈 물어보면 진짜 철학 덕후 아닌 담에야 철학 전공자도 몰라요..
국내는 대학/학회마다 중심이 되는 분과가 다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유학을 간 곳이 시대마다 다른 탓이 크긴 하겠죠(-80: 독일, 90년대: 프랑스, 21세기: 미국 포함). 국내에서 프랑스 철학의 위상이라, 글쎄 정치적 요소 때문에 요새 인기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대평가일까요? 공론장을 내세운 하버마스나 해석의 지평을 더 전개한 가다머를 논의하지 않고 논문 내기 어려운 시절이 얼마 전이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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