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게시판입니다.
Date | 19/11/04 22:38:12 |
Name | 세란마구리 |
Subject | 자유의지가 부정된다면 형법은 어떻게 돌아가려나요? |
요새 신경과를 공부하다보니 뻘생각들이 많이 드는데, 그 중 하나가 형법에 관한 의문입니다. 뇌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원론은 거의 폐기되었고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형법에 있어서는 자유의지가 근간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과학과 법학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들이 쌓일지라도 형법이라는 제도가 근시일 내에 타격을 입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언젠가는 형사전문 변호사님이 태클을 걸어올 터. 이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 추가로 뻘질문을 하자면, 판결에 있어서도 진단과 비슷하게 양성/음성/위양성/위음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형법에 있어서는 In dubio pro reo 라는 말이 있듯이, 위양성(죄가 없는자를 죄인으로 판단)을 줄이기 위해서 위음성(죄가 있는자를 죄가 없다고 판단)을 어느정도 허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판사마다 다르겠다만 각각을 대략 어느정도 용인한다는 선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공부가 안되면 뻘 생각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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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상으로는 그 부정된다는 자연과학상 자유의지는 법률적/통상적 의미의 자유의지가 아님 이라고 적어주고 무시할 것이고..
위양성은 허용되지 않고 위음성은 허용된다는게 원칙이고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법학자는 한명도 없지만 실무적으로는 개판입니다.
처벌이 가벼울 때는 위음성 줄이기 위해 위양성도 어쩔수없다 식으로 운용하는 면이 있었는데
성범죄는 처벌의 경중과 관계없이 위음성을 내면 안된다 식으로 운영하고 있죠.
위양성은 허용되지 않고 위음성은 허용된다는게 원칙이고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법학자는 한명도 없지만 실무적으로는 개판입니다.
처벌이 가벼울 때는 위음성 줄이기 위해 위양성도 어쩔수없다 식으로 운용하는 면이 있었는데
성범죄는 처벌의 경중과 관계없이 위음성을 내면 안된다 식으로 운영하고 있죠.
책임주의와 자유의지와 관련된 문제는 꽤 예전부터 논의가 있어왔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책임주의란,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함에도 불법을 택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형벌)을 진다는 개념이기에 선택의 자유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는 책임주의를 폐기하자는 입장도 있고, 유지하자는 입장도 있습니다만 과학의 발전과 자유의지에 관한 부정적인 결과가 쌓인다는 것이 책임주의와 상충되는 것으로 볼 이유는 없고, 오히려 책임의 범위를 명확하게 확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살인죄를 저지른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면, 그 질병이 어느 정도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지, 재사회화의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지 등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는 책임주의를 폐기하자는 입장도 있고, 유지하자는 입장도 있습니다만 과학의 발전과 자유의지에 관한 부정적인 결과가 쌓인다는 것이 책임주의와 상충되는 것으로 볼 이유는 없고, 오히려 책임의 범위를 명확하게 확인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살인죄를 저지른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면, 그 질병이 어느 정도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지, 재사회화의 가능성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일지 등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수십년 전에도 형법에서 책임주의는 폐기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 있어 왔습니다. 책임주의를 폐기한다면, 일반예방적인 관점으로 형벌의 부과여부 및 부과 정도를 정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철학적으로 자유의지(자유의지라는 것이 뭔지 개념정의부터 난관이 예상됩니다만)의 존재를 부정한다고 해서, 형법의 존립근거가 위태로워진다거나 책임에 대한 추궁이 힘들어지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에요.
결정론은 거시적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결정론을 일반적 규제의 타당성과 연결시키면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이산화탄소 배출이라는 행위가 거시적 관점에서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산화탄소배출 규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여기에 결정론이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결정론은 거시적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결정론을 일반적 규제의 타당성과 연결시키면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이산화탄소 배출이라는 행위가 거시적 관점에서 '결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산화탄소배출 규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여기에 결정론이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법은 잘 모르지만 신경과학 발견이 부정하는 자유의지란 ~을 할 수 있는 자유로,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이미 몸에서 결정된 다음 의식 차원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의지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반면, 여전히 ~을 하지 않을 자유, 즉 의지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의지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형법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유의미하지요.
반면, 여전히 ~을 하지 않을 자유, 즉 의지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의지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기 때문에 형법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유의미하지요.
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하는데 있어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과, '무언가를 하지 않는데 있어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겠읍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A : 뇌의 물리적 성질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B : 모든 행동이 지금까지의 뇌의 물리적 성질에 의해 정의가 된다
C : 모든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의 C가 참이라 할 때, 형법에서 책임을 지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어서입니다.
전제 B의 경우 거의 참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고, A도 참에 가까운... 더 보기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A : 뇌의 물리적 성질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B : 모든 행동이 지금까지의 뇌의 물리적 성질에 의해 정의가 된다
C : 모든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의 C가 참이라 할 때, 형법에서 책임을 지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어서입니다.
전제 B의 경우 거의 참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고, A도 참에 가까운... 더 보기
개인적으로는 '무언가를 하는데 있어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과, '무언가를 하지 않는데 있어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겠읍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A : 뇌의 물리적 성질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B : 모든 행동이 지금까지의 뇌의 물리적 성질에 의해 정의가 된다
C : 모든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의 C가 참이라 할 때, 형법에서 책임을 지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어서입니다.
전제 B의 경우 거의 참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고, A도 참에 가까운 것 같고.
제가 세운 3단 논법이 구멍투성이라면 될 것 같은데, 이게 스스로 구멍을 찾기는 어려워서...
사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A : 뇌의 물리적 성질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B : 모든 행동이 지금까지의 뇌의 물리적 성질에 의해 정의가 된다
C : 모든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에 매우 의존적이다.
의 C가 참이라 할 때, 형법에서 책임을 지우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어서입니다.
전제 B의 경우 거의 참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고, A도 참에 가까운 것 같고.
제가 세운 3단 논법이 구멍투성이라면 될 것 같은데, 이게 스스로 구멍을 찾기는 어려워서...
주신 주장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무용해지지는 않습니다. 행동이 유전자와 환경에 의존적이라고 해도, 최종적으로 의식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이를 전통 철학에서의 강한 자유의지 개념과 구별하여 약한 자유의지라고 불러도 되지 싶긴 하죠. 결정이론에선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하고요. 요새는 완전한 자유의지, 완전한 합리성, 완전히 이성적인 선택은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거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정도예요. 그렇다고 윤리학/심리학(법학도?)에서 자유의지 없어졌으니까 큰일이야라고 생각하진 않고, 몇몇 사례는 좀 골치아프... 더 보기
주신 주장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무용해지지는 않습니다. 행동이 유전자와 환경에 의존적이라고 해도, 최종적으로 의식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이를 전통 철학에서의 강한 자유의지 개념과 구별하여 약한 자유의지라고 불러도 되지 싶긴 하죠. 결정이론에선 제한된 합리성이라고 하고요. 요새는 완전한 자유의지, 완전한 합리성, 완전히 이성적인 선택은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거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정도예요. 그렇다고 윤리학/심리학(법학도?)에서 자유의지 없어졌으니까 큰일이야라고 생각하진 않고, 몇몇 사례는 좀 골치아프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주장을 따라가는 게 설명하기 쉽겠죠. <바른 마음> 2장은 도덕적 판단은 이성이 아닌 직관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기수와 코끼리' 비유를 듭니다. 도덕적 직관이 코끼리고, 이성적 추론 능력은 기수인데 도덕적 결정은 주로 코끼리가 내린다는 것이죠. 기수 또는 추론 능력이 그럼 하는 일이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기수는 코끼리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직관적 판단에 대한 추론 능력의 이의 제기, 즉 머리가 몸한테 ~하지 마! 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코끼리가 그렇게 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직관적 판단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실례로,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려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 이는 이전에 가정하던 자유의지의 발현보다는 유전과 환경에 의한 직관적 판단이라고 보는 것이 최근 신경과학적 관점에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이렇게 하면 큰 벌을 받을꺼야'라고 생각하여 결국 행동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는 추론 영역이 활동한 것이지요. 이 '이렇게 하면 큰 벌을 받을꺼야'라는 생각,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자유의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법에서 죄를 물을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충동에 따른 것에 죄를 묻는 대신, 충동을 제어하지 않은 것에 죄를 묻는다는 차이는 있겠지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사람이 강자 앞에서 분노를 알아서 조절하게 되는 상황 같은 거랄까요.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의 주장을 따라가는 게 설명하기 쉽겠죠. <바른 마음> 2장은 도덕적 판단은 이성이 아닌 직관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기수와 코끼리' 비유를 듭니다. 도덕적 직관이 코끼리고, 이성적 추론 능력은 기수인데 도덕적 결정은 주로 코끼리가 내린다는 것이죠. 기수 또는 추론 능력이 그럼 하는 일이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기수는 코끼리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것이 직관적 판단에 대한 추론 능력의 이의 제기, 즉 머리가 몸한테 ~하지 마! 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물론 코끼리가 그렇게 순종적인 것은 아니지만, 직관적 판단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실례로,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려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 이는 이전에 가정하던 자유의지의 발현보다는 유전과 환경에 의한 직관적 판단이라고 보는 것이 최근 신경과학적 관점에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이렇게 하면 큰 벌을 받을꺼야'라고 생각하여 결국 행동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는 추론 영역이 활동한 것이지요. 이 '이렇게 하면 큰 벌을 받을꺼야'라는 생각,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자유의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법에서 죄를 물을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충동에 따른 것에 죄를 묻는 대신, 충동을 제어하지 않은 것에 죄를 묻는다는 차이는 있겠지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사람이 강자 앞에서 분노를 알아서 조절하게 되는 상황 같은 거랄까요.
땜빵을 각종 학설로 메꿉니다. 어떻게 보면 결론을 내려놓고 논리를 취사선택하며 정해진 결론을 유도하는거죠. 재밌게도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 중 상당수에서는 누가봐도 당연한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기존 법리로는 당연한 결론을 유도하기 어려워서 새로운 법리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리까리한 경우에 한쪽이 100프로 틀렸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학설에도 통설과 비주류 의견이 있고 판례에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있기에 그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위기를 극복하는거 같네요.
보통 학계랑 실무랑 주거니 받거니 ... 더 보기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리까리한 경우에 한쪽이 100프로 틀렸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학설에도 통설과 비주류 의견이 있고 판례에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있기에 그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위기를 극복하는거 같네요.
보통 학계랑 실무랑 주거니 받거니 ... 더 보기
땜빵을 각종 학설로 메꿉니다. 어떻게 보면 결론을 내려놓고 논리를 취사선택하며 정해진 결론을 유도하는거죠. 재밌게도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 중 상당수에서는 누가봐도 당연한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기존 법리로는 당연한 결론을 유도하기 어려워서 새로운 법리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리까리한 경우에 한쪽이 100프로 틀렸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학설에도 통설과 비주류 의견이 있고 판례에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있기에 그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위기를 극복하는거 같네요.
보통 학계랑 실무랑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어떤 학설이 기존 판례를 비판하며 세를 불려 통설이 되면 판사들이 슬그머니 적용하는식?
논리적 정합성이 현저히 떨어지면 전원합의체 판결로 아예 기존 판결을 갈아치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리까리한 경우에 한쪽이 100프로 틀렸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학설에도 통설과 비주류 의견이 있고 판례에도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있기에 그 사이사이를 넘나들며 위기를 극복하는거 같네요.
보통 학계랑 실무랑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어떤 학설이 기존 판례를 비판하며 세를 불려 통설이 되면 판사들이 슬그머니 적용하는식?
논리적 정합성이 현저히 떨어지면 전원합의체 판결로 아예 기존 판결을 갈아치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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