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12/03 18:59:32
Name   경계인
Subject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대한 단상
뉴스에 서울대병원 기사 올리고 나니 옛생각이 납니다.
 
15년전 지방대 사립대학병원에서 인턴한지 얼마 안되어서 주치의 명을 받고 중환자 1분을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라는 명을 받고 앰불런스에서 환자 옆에서 킵하고 앰부(ambu)짜면서 4시간을 가게 됩니다. 서울시내가 그렇게 막히는 줄 대전을 벗어나 본적이 없는 저는 몰랐습니다. 결국 4시간 걸려서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당직의사는 환자 못내리게 하면서 연락 받은거 없다고 돌아가라고 생난리를 칩니다. '입원 못해요. 누가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 연락도 안하고 보내는 그런 나쁜 xx들은 대체 어떤 병원이야!' 하면서 발광을 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병원 주치의는 연락한적이 없습니다. 보호자가 서울대병원 가고 싶다고 하니, 소견서 써주고 조심해서 잘가시라 인턴 하나 붙여준거죠.

당직의사도 이해는 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전국에서 중환들을 올려보내는 곳이고, 그런 중환들이 입원병실이 없어서 응급실 구석에 자리 날때까지 간이 침대에 2박3일 누워있던 시절이니까요.

보호자는 뭐 잘못이 있겠습니까? 지방대 병원에서 상태가 호전이 안되니 주치의한테  '선생님, 죄송한데 못미더워서가 아니라 혹시 서울대 병원에 가 볼 수 있을까요' 물어보면 환자 상태에 골치아프던 주치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 아쉽네요. 그럼, 저희가 다 (서류만) 준비해 드릴테니 치료 잘 받으세요. 응급실로 가시면 입원할 수 있을거에요' 이렇게 말하니, 보호자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짐쌌죠.

여기서 가장 만만한 사람은? 그렇습니다. 앰부짜고 있는 인턴이죠. 철저히 제 앞에서 모욕을 줍니다. 네가 의사 맞냐고 이야기좀 해보라고, 진단명은 뭐고 무슨 치료 했었냐고 제대로 인계하라며 저를 조집니다.(알턱이 없죠.)...그 당직의사는 철저히 저에게 화살을 돌리지만,

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환자 옆에서 끝까지 앰부만 짜고 있었습니다. 느낌이 왔거든요. 괜히 말섞었다가 싸움 길어지면 혹시나 삔또상한 보호자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럼 이 환자 상태는 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상황을 끝낸건 잠시 후 보호자가 당직의사에게 사정사정 하면서 부탁하고, 간이침대에서 기다리더라도 절대로 병원에 컴플레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당직의사가 받아낸 후 였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되게 속상했습니다.

'그래 나 서울대도 못가고, 서울대병원도 못들어가고 환자 치료 뭐했는지도 모르는 못난 의사다. 

그래도 그냥 환자는 좀 받아주면 안되나. 당신네 믿고 간건데, 뭐 그리 대단한 권력이라고....'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12-14 09:3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4
  • 저런저런..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47 일상/생각빙산 같은 슬픔 10 골든햄스 23/12/17 1823 37
1333 일상/생각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 자들과 솎아내기의 딜레마 12 골든햄스 23/10/01 2734 20
1327 문학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 폴 콘티 골든햄스 23/09/14 1906 19
1323 영화콘크리트 유토피아 - 각자에게는 각자의 하느님이 6 골든햄스 23/08/27 2060 12
1317 일상/생각사랑하는 내 동네 7 골든햄스 23/08/01 2286 34
1313 일상/생각벗어나다, 또는 벗어남에 대하여 11 골든햄스 23/07/24 2135 27
1311 일상/생각(기이함 주의)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부모와의 분리를 적극 주장하는 이유 45 골든햄스 23/07/12 2965 44
1299 일상/생각널 위해 무적의 방패가 되어줄게! 9 골든햄스 23/05/07 2635 49
1296 일상/생각힐러와의 만남 6 골든햄스 23/04/24 2738 18
1280 일상/생각자격지심이 생겨났다가 해소되어가는 과정 14 골든햄스 23/02/22 3992 43
1245 일상/생각"교수님, 제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24 골든햄스 22/10/20 4268 53
1147 일상/생각둘째를 낳았습니다. 15 고양이카페 21/11/29 3980 32
214 과학Re : Re : 국내의 에너지 산업 혹은 태양광산업 동향은 어떤가요? 29 고양이카페 16/06/06 7413 10
466 의료/건강나의 갑상선암 투병기2 - 부제: 끝 없는 기다림, 그리고 포폴짱은 넘모 대단해. 25 고라파덕 17/07/05 5597 15
440 의료/건강나의 갑상선암 투병기 -부제: 워보이와 나 37 고라파덕 17/06/01 5955 20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748 22
1148 기타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대한 단상 6 경계인 21/12/03 4628 14
1336 여행북큐슈 여행기 1 거소 23/10/15 1843 9
1130 일상/생각합리적인 약자 9 거소 21/09/19 4727 32
1096 정치/사회누군가의 입을 막는다는 것 19 거소 21/06/09 5143 55
1087 일상/생각어느 개발자의 현타 26 거소 21/05/04 6990 35
1042 정치/사회편향이 곧 정치 20 거소 20/12/23 5103 34
1001 일상/생각타임라인에서 공부한 의료파업에 대한 생각정리 43 거소 20/08/25 8224 82
30 과학쥬라기 월드흥행에 적어보는 공룡이야기(3)-모든걸 새로쓰게한 공룡 9 개평3냥 15/06/20 7402 0
28 과학쥬라기월드흥행에 적어보는 공룡이야기(2)-공룡은 파충류가 아니다 20 개평3냥 15/06/17 8510 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