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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3/08/01 18:33:54수정됨 |
Name | dolmusa |
Subject | 우리 엄마 분투기 |
- 사실 출장 다녀오면서 초전도체 떡밥이 살아나서 몬가... 큰거?? 오냐?? 마음에 이 글을 이어 쓸 생각이 없어졌는데.. 기다려 주신다는 횐님이 계셔서.. 조금 정제해서 각을 잡아 써보겠습니다. 껄껄. - 그냥 흔한 인생 하나인 거 같은데, 이게 뭐라고 여태까지 이야기 꺼내기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고, 화두만 꺼내면 쏠리는 과분한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생각해보면 남들이 고되다고 하니 그 고되었던 삶을 나누면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 사실 형제된 입장에서는 부모의 관점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혹시나 불측하게 마음의 상처를 입으시거나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개인정보 얘기를 자꾸 하는 게 도움이 될지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엄마 보여준다는 가정을 하고 글을 쓰면 알아서 잘 거를거 거르겠지 싶어서 일단 써보겠습니다. - 대부분의 관점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대고 있고, 교양 수준의 심리학, 정신의학, 발달장애학을 훑어본 얕은 전문지식에서 쓰여진 글이어서 신뢰성을 전혀 담보하지 않고, 대부분의 경험은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므로 현시점의 관점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1. 복지카드 제 동생은 복지카드를 스물이 넘어 받았습니다. 복지카드 받아오고 받은 신검에서는 군대가 6급이 떴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신검 날짜를 받아든 다음에야 엄마는 전전긍긍하며 인생의 최후의 최후까지 미뤄놓고자 했던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간단한 검사와 종이 한 장을 들고 수원 병무청으로 향했습니다. 향후 절차상 2년 후 재판정에 대해서도 불만이 한가득이었지만 일단 받은 복지카드를 굳이 다시 날리는 것도 이상하고.. 이 정도면 스물이 넘어서 굳이 또 받은 사유와 그 정도는 대충 짐작하실거 같습니다. 제 동생이 가진 장애의 정식 진단명은 40여년간 여러번 이름이 바뀌었고, 현행은 ICD-11 및 DSM-V 상에서 공통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 입니다. 2. "장애" 라는 단어 그 전까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어느 정도는.. 엄마는 "DISABLED"에 해당하는 한국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하셨습니다. 남들이 직접 우리에게 "장애" 관련 얘기하는 것도 겉으로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매우 불쾌해 하셨지요. 물론 장애를 원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복지카드를 받으면서도 떨떠름해 하셨습니다. 1) 상황에 관한 부정은 결코 아니에요. 이 글의 주요 내용인 우리 엄마의 분투기를 밑 섹션에 쓸텐데, 엄마는 누구보다도 공부를 많이 하고, (이바닥에 관심 있으실 분들은 다들 아실) 홍강의 선생을 포함한 많은 전문의의 치료에 참여하고 자문을 받았으며, 당시 싹트고 있던 발달장애 재활 프로그램(=사교육)에 수많은 자본을 투입했고, 당시 미약하게 존재하던 장애가족 네트워크를 잘 활용했습니다. 어린 제 눈에도, 현재 어른이 된 제 눈에도 엄마는 대부분의 정신을 동생의 관리 및 적응훈련에 투입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동생의 상황을 정면에서 받아들였지요. 2)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주요 요인은 아닙니다. - 손가락질에는 "혐오" 뿐만 아니라 "동정"도 포함됩니다. 동정과 칭찬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군요. 사실 이건 신체장애를 포함한 포괄적인 장애 가족들이 느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빨리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부분은 부모와 형제의 관점에서 약간 차이는 있는데.. 형제자매는 애초에 그냥 세상에 나와서 보니 이런 상황이더라, 라는 꼴이 되기 때문에 "다른" 것이 무엇인지 조차 핀트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혐오" "동정" 등 관련한 손가락질을 애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막연한 불쾌감이 있을 뿐이고, 나중에 사회화가 완성된 이후에 "왜 혐오나 동정의 눈길을 받는가" 에 대해서 학습하게 됩니다만, 애초에 이해가 안되다보니 (장애를 정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so what? 으로 가게 됩니다. 물론, 직접적인 발화 또는 행위로서의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단호히 방어하게 됩니다만 보통 그냥도 누가 내 동생 욕하면 지랄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의 방어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물론 철이 든 이후에 겪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진단 당시에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갖게 됩니다, 만 잘 지내는, 앞으로 잘 적응하는 가족일수록 상황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은 연구도 많이 되어 영유아기의 대처가 향후 인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들도 나와서 부모 입장에서는 최대한 신속히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하고, 제도로서도 많이 지원이 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소위 "단단해지기" 때문에 외부 자극에 관한 역치가 많이 증가합니다. 형제는 애초에 역치를 적용할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면, 부모는 분명 개념 자체는 존재하지만 그 역치가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높아진다고 이해하시면 될 거 같아요. 3) 그래서 엄마는 그 단어를 왜 싫어하냐? 사실 저도 몰라요. 안 물어봤어요. 아마 물어봐도 모를 겁니다.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왜 국가의 부름이라는 파국을 면하기 전까지 국가 인증을 받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다 알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시면서, (아무 제도도 없다시피하던 그 당시에도) 일단 받으면 금전적으로나 본인의 책임감으로나 훨씬 편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계와 격리되는 제도를 직면하게 되는 그 마지막까지 차마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 있었을까요? 거의 아무것도 모를 때였기에, 오히려 그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일은 좀더 나아질거라는, 점점 더 나아질거라는, 내가 저놈 가는 다음날 갔으면 한다는 평생의 소망을 더이상 빌지 않아도 되는 그날이 올 거라는. 3. 20세기의 통합교육? 엄마는 복지관 수녀님들께 책 쓰라는 권유도 진지하게 받았고, 저도 어릴적 이런저런 연구조사나 인터뷰에 몇 번 불려다녔습니다. 일종의 "모델"로 받아들여졌던 거 같아요. 물론 엄마는 결국 현시점까지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건 물어봤어요. 진지하게 저는 지금도 썼으면 하는데.. 고된 경험을 되짚고 싶지 않은게 첫번째고, 내가 안써도 다른 사람들이 잘 하고 있다는 게 두번째입니다. 두 이유가 모두 타당해서 저도 강권은 못하겠습니다. 현재는 제도화된 "통합교육"을 엄마는 아무 제도도 없던 맨땅에서 대학교까지 이루어냈습니다. 아예 없던 논리는 아니었고, 당시 연구가 활발히 되고 있었고 구체적인 시범운영 이라던가 이런건 제 동생이 취직하고 나서야 시작됐지요. 오롯이 엄마의 공이라고 할 수는 없겠고, 수많은 선의에 기대어진 결과물입니다만 어쨌든 제 동생은 공교육 체제에서 특수반 문앞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1) 자원 아버지가 그래도 잘 버는 직장인이었고, 저도 딱히 사교육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 아이였기 때문에, 엄마는 그 자원을 오롯이 동생에게 박았습니다. 특수교육 관련 사교육은 당연히 쓰는 돈이었고.. 사교육이아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것이 유구한 역사이지요. 하지만 공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시스템과 관행으로 돌아가는 구조잖습니까? 우리 엄마는 (시스템을 부수지 않고, 부수면 욕을 먹으니까) 시스템에 녹아들어가 관행을 바꾸었습니다. 매년 학년이 바뀌는 타이밍마다 받아줄 수 있는 담임을 수소문하기 위해 직접 학교 높은 누구를 찾아가 협의하고 읍소하고, 신학기가 시작되면 복도에 전전긍긍하며 있다가 반 아이들을 만나며 우리 아이 잘 부탁한다 사탕 하나라도 쥐어주고.. 학부모 회의라던지 꾸준히 나가서 밝고 활동적이지만 무해함을 어필하고, 혹시나 뒤에서 책잡힐 거리가 나올까봐 학교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잘 어울려주는 아이가 있거나 하면 귀신같이 캐치해서 학생을 상대로 로비하고 ㅋㅋㅋ 동생이 가끔 사고라도 치면 쏜살같이 달려가 사죄하고 수습하고.. 중학교 진학 이후로 꼭 챙기는 것이 "같은 학교 출신" 이었습니다. 연속성을 만들어갔던 거죠. "얘는 (여러분들과 같은 장소에 있어도) 큰 문제 없어요." 라는. 금전을 포함한 물적 자원이야 대면 되는 것인데, 인적 자원은 한번 고갈하면 다시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엄마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동기요인이 아닌 위생요인이었지요. "친구들 사이에 나쁜 소문"이 퍼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학교가 바뀔 때마다 엄마는 옅은 수준으로 다시 떨어지는 인적 네트워크를 어떻게든 강화하는데 집중했고, 중학교 고등학교 갈수록 다행히 아이들의 머리도 점점 커지고 선의도 점점 커져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심각한 괴롭힘" 이 없었다는 의미는 엄마가 읍소하고 빌고 가끔은 얼굴도 붉히는 수준에서 괴롭힘이 대처되었다는 뜻입니다. 괴롭힘이 없을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인생의 연속이었습니다. 핵심은 "다니게만 해달라." 였지요. 2) 운 (1) 가족의 도움 - 아버지는 흔치 않게 당시에 돈을 많이 벌어오셨습니다. 중동맨이시거든요. - 지금은 홍차넷의 뻘글대마왕 지위를 독차지하고 있지만, 정말 놀랍게도 우리 엄마의 큰아들은 사고도 안 치고, 나름 학원같은 데 안 보내도 학교에서 우등생이었답니다? 저는 진짜 1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제가 (오락실 다니는 거 빼고) 속을 썩이지 않아서 고맙다고 지금도 이야기합니다. (오락실 때문에) 리터럴리 알아서 잘 큰 건 아닌데.. 그래도 손이 덜 간것에 대해서 미안함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엄마가 제게 가진 기조는 "최대한 평범하게" "이런 우리집만의 특수한 상황에 신경쓰고 성장하지 않도록" 이었다고 합니다. 동생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를 최대한 제게 풀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항상 미안하고 블라블라.. who cares? 를 40여년째 떠들고 있지만 부모 마음이 자식 마음과 같을수는 없겠지요. - 이상한 사람의 자랑같이 보이는 쓸데없는 글이 많지만, 엄마가 주양육자로서 작은 아들 케어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이 다른 신경을 최대한 안 쓸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콩가루같이 지냈다는 건 아닙니다!;;) (2) 우연한 사회적 환경 - 당시 저와 동생이 다니던 국민학교는 개교 10년 미만, 서울 외곽 신규지구였습니다. 나름 젊은 선생님 또는 의욕있는 선생님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고, 시설도 현대적이었습니다. - 생활권 역시 비슷한 수준의 중산층이 모여 있는 곳이었지만, 강남권에서도 우범지대에서도 살짝씩만 비껴간 학군이었습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 생활권에 의한 도움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아파트였지만 계단형이었고, 1층부터 5층까지 다 문이 열려 있었고, 엄마 없으면 어느집에 가서라도 앉아 있으면 아주머니가 물을 주고, 친구던 형누나던 동생이던 그 집 아들딸 들어오면 자연스레 같이 노는.. - 엄마의 노력이 많이 받쳐주긴 했지만, 어쨌든 이런 사회적 환경 하에서, 뒤에서의 담화가 사회적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에서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3) 본인 - 동생은 DSM-V 진단지표에 있는 항목을 대부분 만족합니다. - 그런데 아예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중증이냐 하며는 그런 건 또 없습니다. 웩슬러 지능검사의 총합 결과는 일반인과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세부지표로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만.. - 그러니까, 이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현상적으로 일반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합교육이 가능할 정도로 중증은 아니어서 받은 것인지, 통합교육이 사회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인지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받았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운이 겹쳐 엄마는 무사히(?) 아들을 전문학사 취득시켰습니다. 제도권의 도움 없이. 3) 이후 여러 가지 사회 적응 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만, 결국 동생은 다른 중증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취업지원 채널을 통하여 현재 모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전문대 쯩이 큰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1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묵묵히 (남들이 보시기에는 가끔 불가측적인 행동을 하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4.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통합교육은 무조건 없어지면 안된다는 겁니까? 아니요. 없애야 하는 당위와 존치해야 할 당위를 교량해서 없애야 하는 당위가 중대하게 더 크면 당연히 없애야지요. 제 동생을 이용해서 이슈몰이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주장을 할 정도로 제가 어떤 마음의 상처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고요. 가끔 갑론을박을 보다가 일부 주장은 모르니까 저렇게 주장하실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은 하긴 하는데, 설득시킬 마음은 진작에 없구요. 몇십년 전에 접었는지 생각도 안나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었습니다. 안 떠들어서 잘 모르시겠구나 싶은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고.. 근데 또 떠든다고 제가 느끼는 것이 명확히 전달이 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이건 제 가장 친한 친우들 몇몇에게 실험해봐서 확실히 느끼는 것이고.. 그래도 안 떠드는 것보다는 떠드는 게 "나를 위해서도" 낫겠다 싶은 생각을 가진 건 최근입니다. 생각보다 말을 꺼내는 거 자체가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지금도 사실 모 횐님이 안 기다리셨으면 LK-99 보러갔(...) 그래도 연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앞으로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뮤니티 20여년 하면서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했는데 오늘은 기어이 다 써봤습니다. 이건 그냥 경험담이니까요. 각자 본인의 의견을 가져가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8-13 12:48)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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