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 15/12/29 21:51:14 |
Name | moira |
Subject | 더 힘든 독해 |
독서를 하다가 발견한 말 중에 "더 힘든 독해가 더 힘센 독해이다"(lectio difficilior potior)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뒤의 potior를 빼고 그냥 렉티오 디피킬리오르라고만 쓰기도 합니다. 서양 문헌학에서 연구자가 텍스트의 역사성을 판단할 때 염두에 두는 원칙들 중 하나입니다. '오컴의 면도날'과 함께 두면 칼의 양날, 또는 모와 순처럼 보입니다. 얕은 지식을 무릅쓰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문헌학은 원텍스트(urtext)를 찾아가는 과정의 체계입니다. 성경이나 그리스 비극을 생각해 봅니다. 가장 처음으로 저자가 작성해서 이 세상에 띄워보낸 글이 있고, 그것을 읽고서 펜을 들어 베껴쓰는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필사자들이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 카피본을 보고 베껴쓰고, 또 그 카피본의 카피본을 베껴썼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남은 것은 사라진 원텍스트의 그림자들뿐입니다. 원텍스트 A가 파생시킨 카피본 1000개가 문서고에 있다면 그 중 한 개는 진짜 원텍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카피본 1000개를 방사능 탄소 분석기로 돌려서 제일 오래된 양피지를 찾아낸들 그것이 원텍스트라는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장 원저자의 의도를 잘 반영한다고 판단되는 필사본을 A'라고 이름붙여 후보좌에 잠정적으로 놓아둘 뿐입니다. 그리고 A'는 원텍스트에 필적하는 세속적 권위를 허용받습니다. 연구자들은 A'를 가지고 논문을 쓰고, 학생들과 일반인들은 양심에 별 가책 없이 A'를 '원문'이라고 부릅니다. 복사기가 없었던 시절 필사자들은 베껴쓰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을 저질렀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에 지친 한 필사자가 텍스트를 잘못 읽었든지 펜이 미끄러져서 for라고 쓸 자리에 from을 썼습니다. 그렇게 왜곡된 카피본을 베끼는 다음번 필사자는 from을 그대로 베껴쓸 수도 있고, 아니다 이건 맥락상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해서 for로 돌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엉뚱하게 of로 초월필사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짐작하기 힘든 이유로 원래 없던 단어를 집어넣기도 하고 원래 있던 단어를 빼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주의하거나 자질 없는 필사자들의 손을 타 '타락'해버린 고전 텍스트의 원형을 찾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르네상스인들 가운데 에라스무스가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언어를 전달하는 메신저들은 중간에 메시지를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장 해석의 난이도를 좀더 어렵게 만드는 쪽이 원형에 가까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I love her for her intelligence와 I love her for his intelligence 중에서라면 후자를 좀더 신경써 줘야 합니다. "사라진 이스라엘의 옛 부족 수는 9와 2분의 1개이다"라고 적힌 필사본이 있고, "사라진 이스라엘의 옛 부족 수는 10개이다"라고 적힌 필사본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좀더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후자입니다. 상식적으로 부족 수를 0.5 단위로 계산할 리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힘든 독해가 더 힘세고 좋은 독해"라는 원칙을 염두에 두고 '읽는 이를 더 힘들고 성가시게 하는' 독해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가상의 원 저자 또는 필사자가 정말로 '2분의 1짜리 부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했을 가능성까지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9와 2분의 1을 10으로 단순화할 확률은 높지만 10을 9와 2분의 1로 복잡화할 확률은 낮으니까요. 물론 이 원칙은 절대 깨지지 않는 법칙이 아닙니다. 탄소 연대 측정을 해봐서 부족 10개짜리 필사본이 기원전 5세기본으로 나오고 9.5개짜리 필사본이 기원후 15세기본으로 나온다면, 도중에 원텍스트가 왜곡된 무슨 변고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창조적 감흥에 도취된 스페인의 에케 호모 벽화가와 같은 돌발적인 존재는 나타난다는 것도 고려해야겠지요. 저는 이 원칙을 일종의 넓은 비유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독해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 내 상식과 어긋나는 문장들,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치를 떨게 만드는 발언들이 사실은 '실체'에 좀더 가까운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많은 문과생들이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복잡하고 위태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가능한 한 소거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아 누군가의 골머리를 썩이게 될 것이라고. 이것이 '인간 중심적 사고', 인간의 정신 양태와 그 활동 양상이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하는 사람들의 한계이자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집착하는 것은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일 수도 있고, 세계의 진화를 방해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순간 우리는 정말 결단을 내리고 과거(원텍스트)와, 그 과거로부터 추정되는 미래와 과감히 단절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결단을 거부하는 결단도 가능하겠죠. 저는 원텍스트를 향한 열망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광주의 진실 A에 우리가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A'는 가짜이며 B가 팩트다"고 말하는 주장들을 오컴의 면도날로 쳐내야 할지 lectio difficilior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할지,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을 원텍스트 A를 갈구하는 발화자의 열망의 정도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힘든 독해"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자면 '호의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한윤형 같은 키워가 전형적으로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그런 타입이었습니다. 논쟁하는 상대의 의도를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고 가능한 한 그 의도 내에서 상대방의 텍스트를 해석, 해체하는 노고를 일부러 떠맡는. 상대방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골라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논지 중 가장 강하고 힘센 부분을 논쟁의 핵심으로 선택해 링 위로 끌고 오는 것이 옳다고 믿는 타입 말입니다. 실제로 그런 링이 만들어지는 경우 자체가 극히 희귀하고, 논쟁 상대방은 언제든 더티한 술수를 쓸 수 있으므로, 만일 만들어진 링이 있다면 구경꾼들은 반드시 그것을 보호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원텍스트는 무엇이었을까? 뇌과학에 관한 짧은 동영상을 봤습니다. 인간의 뇌가 장애를 입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니, 겉으로는 장애가 없어 보이는 인간의 경우에도 뭔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입밖으로 발화하기까지, 또는 자판으로 치기까지, 그의 몸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수히 작은 필사가들의 손에 무수한 필사본들이 차례차례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사라지고 변형되고 단순화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손실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거나 복원하는 기술을 어느 선까지 수긍해야 할지, 이미 훼손된 데이터를 자유의지의 결과물로 받아들이고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에 대한 의심을 소거하지 않은 채 실수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에 어느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p.s.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와요 외로운 홍차항에 p.s.2 저기요! 이딴 생각을 하는 인간은 자문단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저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1-09 13:5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3
이 게시판에 등록된 moira님의 최근 게시물 |
굉장히 치기 어린 개인적인 고민? 궁리? (...) 중에 하나로, 본문의 내용과 관련해 사법부(어떤 공적기관이든)는 뭘하든 늘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면도날을 잠시 빌리자면 사법부가 다루는 법률이 그러하고, 법률이란 권리의무의 관계이며, 권리의무란 결국 권원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권원에 대한 무수한 사회적 가치 판단을 이유(더불어 법률은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는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식에 맞게 행동한다는 어떤 보편적인 행동이 \"더 힘든 독해\"를 하고 있는 전문성 있는 집단의 가치를... 더 보기
굉장히 치기 어린 개인적인 고민? 궁리? (...) 중에 하나로, 본문의 내용과 관련해 사법부(어떤 공적기관이든)는 뭘하든 늘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면도날을 잠시 빌리자면 사법부가 다루는 법률이 그러하고, 법률이란 권리의무의 관계이며, 권리의무란 결국 권원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권원에 대한 무수한 사회적 가치 판단을 이유(더불어 법률은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는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식에 맞게 행동한다는 어떤 보편적인 행동이 \"더 힘든 독해\"를 하고 있는 전문성 있는 집단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신의 상식에 따르는 개인의 판단에도 마땅한 이유가 있겠고 법률은 절차적으로도 그 청구 취지를 고려하여 보충합니다만, 자신의 상식이란 이름 아래 기본적으로 생략되는 과정이 천차만별로 자의적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폭력적입니다. 또 다른 어떤 현실적인 한계에 의해 사람이 사람을 구속하게 되는 형태일 수밖에 없기에 이를 감수하는 것이 어쩌면 차라리 보다 더 정의로울 일입니다만, 이는 이러한 열망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또 어쩔 수 있는 내용은 아니어서 잘 모르겠네요. 평소 아닌 척, 균형 있는 척 한답시고 애쓰는 척 하는 편인데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글.또.보.고.싶.네.요. ^ㅡ^ (궁서체)
이.런.글.또.보.고.싶.네.요. ^ㅡ^ (궁서체)
제가 생각하는 사법부의 문제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로 판결문이 너무나 읽기 어렵습니다. 저는 판결문은 (논리구조 및 기타의) 적합성 또는 완결성과 가독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판결의 중요성과 권의를 생각할 때 가독성보다 논지의 적합성, 문장의 완결성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를 감안하고라도 판결문이 독해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대중이 독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뭔 x소리야!\" 라는 반응기 나오기 십상입니다.
둘째는 법원의 기준이 대중의 상식과 괴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식\'이 법 앞에 우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함에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더군요.
권위상실의 시대에서 사법만은 그 권위를 지켰으면 하는데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것 같아 아쉽습니다.
첫째로 판결문이 너무나 읽기 어렵습니다. 저는 판결문은 (논리구조 및 기타의) 적합성 또는 완결성과 가독성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판결의 중요성과 권의를 생각할 때 가독성보다 논지의 적합성, 문장의 완결성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를 감안하고라도 판결문이 독해하기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대중이 독해하기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뭔 x소리야!\" 라는 반응기 나오기 십상입니다.
둘째는 법원의 기준이 대중의 상식과 괴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식\'이 법 앞에 우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함에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있더군요.
권위상실의 시대에서 사법만은 그 권위를 지켰으면 하는데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것 같아 아쉽습니다.
뭐 어쨌든, 우리 사법체계가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니까요. 어느 교수님 말씀에 토달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미 영어가 학문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큰 비중을 차지하며 또 자리잡은 이 시점에서 일본식 한자이기 때문에 법제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식 한자\"라고 보지 않고, \"법적 용어\"라고 본다면 \"원전\"의 가치를 고려할 때,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범위 내인 것 같습니다. 물론, 법을 완전히 떼어놓고 언어의 소통이라는 기능이나 목적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비단 법학계만의 문제는 아닌거 같습니다. (다 문제니까 개선할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의)
문제로 제기해주신 첫번째는 제가 막 법학을 접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은 판결문은 \"이의있소!\"를 꿈꾸던 절 자체 휴강으로 인도했지만 아무튼, 제 딴의 생각에는 판결문은 어느 정도 그럴만 하니까 그렇다라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적절한 비문과 더 쉽게 써도 될 것을 그저 해오던 대로 쓰다보니 \"원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법조계도 나름 노력중이라고 하던데 마뜩잖은 정도는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아니 잘난 양반들이 그게 힘들어도 해야지 싶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더 보기
문제로 제기해주신 첫번째는 제가 막 법학을 접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대체 이게 뭔 소린가 싶은 판결문은 \"이의있소!\"를 꿈꾸던 절 자체 휴강으로 인도했지만 아무튼, 제 딴의 생각에는 판결문은 어느 정도 그럴만 하니까 그렇다라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적절한 비문과 더 쉽게 써도 될 것을 그저 해오던 대로 쓰다보니 \"원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법조계도 나름 노력중이라고 하던데 마뜩잖은 정도는 아닌거 같기도 하고, 아니 잘난 양반들이 그게 힘들어도 해야지 싶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판결문이란 청구 취지에 대한 모든 실체적, 절차적 법적 판단과 적용을 포함한, 이를테면 법적전문성이 최대한으로 포함된 공정문입니다. 게다가 문안은 두고두고 법적구속력을 가지며 그 존재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증권이 됩니다. 이 정도 지위의 문서를 허투루 작성할 수 없는 법관의 법적전문성까지 포함하여 아주 그냥, 수 개의 \"법적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친 대체 뭔 소린가 싶은 것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판결문을 쉽게 쓰라는 것은, 이 수준에 걸맞는 언어적? 어휘적 능력까지 그 \"법적전문성\"의 수준과 같게 갖추라는 요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죽을동 살동 다 쏟아냈는데, 거기에 더 쏟아내라는 요구요. 잘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로써 이해가 가기 쉽게 잘 쓴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합니다만, 판결문은 오직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로써의 역할만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어렵다는 것에 앞에 생략된 것으로, 익숙하지 않아서의 경우가 있는데 판결문도 그와 유사한 경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제사를 따지면 뭐 어디까지 올라가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문서주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조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실-법률-판단-결정의 사법심사구조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고, 대개의 사람들은 오직 결정에만 심중을 둘 뿐, 사실-법률-판단의 과정은 은연중인지, 의도중인지 법률이 아닌 자신의 상식에 따라 생략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판결문은 사실-법률-판단-결정의 모든 과정을 다 기록한 문서이고 \"어떻게 봐야하는가\"의 \"법적전문성\"으로써의 일부만 갖추면(익숙해지면) 일정 체계를 늘 유지하고 있는 만큼 독해가 마냥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어쨌든, 이런 의미에서 판결문 자체는 일반대중이 독해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목적도 있지않나 싶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법조계가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수작이라고 보아 매우 안좋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는 법적전문성을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싶으며, 그럼에도 사실 그런 점도 없잖아 있다고 생각하고 개선하면 좋겠지만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것이 정의일 수 있는 사회에서 쉽게 뭐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닌거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잘난 사람들이고,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있으니까 그런거 모르겠고 계속해서 개선해나가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별개로 권위상실이라는 것은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만, 권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만연한 권위주의라는 측면에서)합니다. 지킨다는 개념은 누군가 배타적으로 완전히 가졌을 때나 그걸 뺏기지 않기 위해 지킨다는 것이고, 권위란 누구 말마따나 \"부여\"된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이 귄위를 지키길 바라거든, 권력의 주체인 권리자가 그를 부여해야합니다. 물론 부여자든, 수권자든 잘해야된다는 것은 아주 기본 중의 기본조건(현실…… 너 임마, 파이팅!)이고요. 서로를 비춰야지, 혼자 빛날 것을 마냥 바라기엔 무리가 있고, 그래서도 안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어, 음. 뭔가 대댓글이 달려서 답변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연습도 해볼겸 써봤는데, 역시 늘 하고 나면 후회가 되네요. (...) 그냥 어떤 모지리의 생각은 이렇다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개로 권위상실이라는 것은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만, 권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만연한 권위주의라는 측면에서)합니다. 지킨다는 개념은 누군가 배타적으로 완전히 가졌을 때나 그걸 뺏기지 않기 위해 지킨다는 것이고, 권위란 누구 말마따나 \"부여\"된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이 귄위를 지키길 바라거든, 권력의 주체인 권리자가 그를 부여해야합니다. 물론 부여자든, 수권자든 잘해야된다는 것은 아주 기본 중의 기본조건(현실…… 너 임마, 파이팅!)이고요. 서로를 비춰야지, 혼자 빛날 것을 마냥 바라기엔 무리가 있고, 그래서도 안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어, 음. 뭔가 대댓글이 달려서 답변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연습도 해볼겸 써봤는데, 역시 늘 하고 나면 후회가 되네요. (...) 그냥 어떤 모지리의 생각은 이렇다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첫번째로 답변에 대해서는,\'기본적으로 법적전문성이 최대한으로 포함된 공정문\'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두번째에 대해서는, 저는 권위는 이미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체계적으로, 혹은 국민의 인식상에서 \"배타적으로 완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명의 사람이 법률적 판단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권위에 기초합니다. 사실 당연히 권위는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보기
첫번째로 답변에 대해서는,\'기본적으로 법적전문성이 최대한으로 포함된 공정문\'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두번째에 대해서는, 저는 권위는 이미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체계적으로, 혹은 국민의 인식상에서 \"배타적으로 완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명의 사람이 법률적 판단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권위에 기초합니다. 사실 당연히 권위는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보기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첫번째로 답변에 대해서는,\'기본적으로 법적전문성이 최대한으로 포함된 공정문\'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두번째에 대해서는, 저는 권위는 이미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체계적으로, 혹은 국민의 인식상에서 \"배타적으로 완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명의 사람이 법률적 판단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권위에 기초합니다. 사실 당연히 권위는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니 조금 당황했습니다^^;
현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은 \'법\'이며 사법부는 그 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법치국가\'라는 말이 있는 것이고요. 이렇게 말하면 무책임해보일수도 있지만, 정치와 사법은 일정부분 혼자 빛날 것을 강요받는, 그리고 그래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와 사법의 갖는 힘과 권력이 부분적이라기보다 전체(국가)적이며, 다른 분야에 비해 무척 그 중요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쓰면서도....정치와 법에 대한 잣대가 유독 강한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만큼 두 분야가 중요하면서 가진 힘이 큰만큼 그만한 책임이 부여되는 위치라고 봅니다.
첫번째로 답변에 대해서는,\'기본적으로 법적전문성이 최대한으로 포함된 공정문\'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두번째에 대해서는, 저는 권위는 이미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체계적으로, 혹은 국민의 인식상에서 \"배타적으로 완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명의 사람이 법률적 판단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권위에 기초합니다. 사실 당연히 권위는 주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니 조금 당황했습니다^^;
현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은 \'법\'이며 사법부는 그 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법치국가\'라는 말이 있는 것이고요. 이렇게 말하면 무책임해보일수도 있지만, 정치와 사법은 일정부분 혼자 빛날 것을 강요받는, 그리고 그래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와 사법의 갖는 힘과 권력이 부분적이라기보다 전체(국가)적이며, 다른 분야에 비해 무척 그 중요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쓰면서도....정치와 법에 대한 잣대가 유독 강한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만큼 두 분야가 중요하면서 가진 힘이 큰만큼 그만한 책임이 부여되는 위치라고 봅니다.
조금 당황스럽습니다만...아니 이런 뜻하지 않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받아본 게 처음이라서 말입니다;;;
저는 그 두 코멘트에 대해 별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구요, 못간다고 전하라는 말을 보고는 혹시나 뤼야님이 탈퇴를 안 하셨는데 내가 잘못 봤나? 그랬던 겁니다. 실제로 그랬으면 좋았겠죠... 그런데 회원정보를 눌러보니 역시나 탈퇴한 회원 표시가 뜨길래 실망도 하고 약간 약도 오르고 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자음연타도 뭐.. 재밌게 읽은 부분이 있나 보다 했구요. 제가 그렇게 예민하진 않아서.
혹시 두 분께 폐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Toby님께는 감사하고, 대승적 차원에서(농담 아닙니다) 조치에 동의합니다.
저는 그 두 코멘트에 대해 별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구요, 못간다고 전하라는 말을 보고는 혹시나 뤼야님이 탈퇴를 안 하셨는데 내가 잘못 봤나? 그랬던 겁니다. 실제로 그랬으면 좋았겠죠... 그런데 회원정보를 눌러보니 역시나 탈퇴한 회원 표시가 뜨길래 실망도 하고 약간 약도 오르고 해서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자음연타도 뭐.. 재밌게 읽은 부분이 있나 보다 했구요. 제가 그렇게 예민하진 않아서.
혹시 두 분께 폐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Toby님께는 감사하고, 대승적 차원에서(농담 아닙니다) 조치에 동의합니다.
설사 원전을 찾는다 해도, 글쓴이의 생각을 오롯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필자가 착각하면서 쓴 부분일수도 있고,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문장일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꼬투리\'잡는 키워를 무척 싫어합니다. 9줄의 주제문과 부연설명, 1줄의 잘못된 예시가 있을때 그 1줄을 갖고 죽을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이 몇번 오가다보면 서로 하고싶은 얘기는 잊혀지고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보자면, 저는 디테일보다는 글 전체의 함의나 주제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보기
저는 \'꼬투리\'잡는 키워를 무척 싫어합니다. 9줄의 주제문과 부연설명, 1줄의 잘못된 예시가 있을때 그 1줄을 갖고 죽을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이 몇번 오가다보면 서로 하고싶은 얘기는 잊혀지고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보자면, 저는 디테일보다는 글 전체의 함의나 주제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보기
설사 원전을 찾는다 해도, 글쓴이의 생각을 오롯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필자가 착각하면서 쓴 부분일수도 있고,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문장일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꼬투리\'잡는 키워를 무척 싫어합니다. 9줄의 주제문과 부연설명, 1줄의 잘못된 예시가 있을때 그 1줄을 갖고 죽을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이 몇번 오가다보면 서로 하고싶은 얘기는 잊혀지고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보자면, 저는 디테일보다는 글 전체의 함의나 주제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향한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본능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를 찾고 싶어하거나, 우주를 탐구한다거나, 사후세계를 고뇌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아무리 연구하고 수정해도 \'원전\'임을 추정할뿐 확신할 수 없다는 것도 위의 문제들과 유사하고요. 어떻게 끝맺음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는 \'꼬투리\'잡는 키워를 무척 싫어합니다. 9줄의 주제문과 부연설명, 1줄의 잘못된 예시가 있을때 그 1줄을 갖고 죽을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이 몇번 오가다보면 서로 하고싶은 얘기는 잊혀지고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보자면, 저는 디테일보다는 글 전체의 함의나 주제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향한 노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본능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를 찾고 싶어하거나, 우주를 탐구한다거나, 사후세계를 고뇌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아무리 연구하고 수정해도 \'원전\'임을 추정할뿐 확신할 수 없다는 것도 위의 문제들과 유사하고요. 어떻게 끝맺음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 힘든 독해가 더 힘센 독해이다\"라는 말이 참 인상깊네요. 안그래도 아침 일찍 공부하러 나왔는데, 좋은 글을 읽으니 더 힘이 나네요.
저도 독해에 대한 문장 하나 투척하고 갈게요. 프랑스사람이라 그런지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지 말이 좀 어렵지만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철학자 알튀세르입니다.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순진한 독해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죄(有罪)가 되는 독해방법이지만 유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필연성을 입증함으로써 철학적 독해를 옹... 더 보기
저도 독해에 대한 문장 하나 투척하고 갈게요. 프랑스사람이라 그런지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지 말이 좀 어렵지만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철학자 알튀세르입니다.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순진한 독해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죄(有罪)가 되는 독해방법이지만 유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필연성을 입증함으로써 철학적 독해를 옹... 더 보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 힘든 독해가 더 힘센 독해이다\"라는 말이 참 인상깊네요. 안그래도 아침 일찍 공부하러 나왔는데, 좋은 글을 읽으니 더 힘이 나네요.
저도 독해에 대한 문장 하나 투척하고 갈게요. 프랑스사람이라 그런지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지 말이 좀 어렵지만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철학자 알튀세르입니다.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순진한 독해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죄(有罪)가 되는 독해방법이지만 유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필연성을 입증함으로써 철학적 독해를 옹호하고 ‘정당한 범죄’로서 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유죄가 되는 독해방법에 대해 그 순진성의 가면을 벗겨버리는 문제, 즉 읽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순진성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독특한 독해 방법이다.\"
저도 독해에 대한 문장 하나 투척하고 갈게요. 프랑스사람이라 그런지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지 말이 좀 어렵지만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철학자 알튀세르입니다.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것은 순진한 독해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죄(有罪)가 되는 독해방법이지만 유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죄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필연성을 입증함으로써 철학적 독해를 옹호하고 ‘정당한 범죄’로서 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유죄가 되는 독해방법에 대해 그 순진성의 가면을 벗겨버리는 문제, 즉 읽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그 순진성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독특한 독해 방법이다.\"
오 뭔가 적절한 인용을... 정말 그럴듯한 것에 대한 믿음이 현재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낸 거 같아요. 중세 필사가들에게도 밈이 있었겠지요. 연구가들은 밈의 원래 정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medieval meme으로 검색하면 이런 (?)(?)한 그림들이 많이 뜨는군요. http://www.buzzfeed.com/babymantis/20-bizarre-examples-of-medieval-marginalia-1opu
목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