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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6/02/24 22:07:29
Name   다마고
Subject   지능의 희소성이 흔들릴 때

1. 지능의 위상 변화
현대 경제는 오랫동안 지능의 희소성을 전제로 작동해왔습니다. 고임금 화이트칼라 직종은 단순한 노동 시간의 보상이 아니라, 복잡한 판단과 분석 능력이 제한적으로 양성되던 구조 하의 가격이었습니다. 정보를 해석하고 전략을 설계하며 위험을 계산하는 능력이 쉽게 복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희소성이 지난 수십년간 임금 프리미엄을 형성해왔던 거지요.

AI는 이러한 전제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동일한 인지적 작업의 한계비용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문서 작성이나 데이터 분석이 더 이상 오랜 경험과 숙련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 시장은 가격을 조정하게 됩니다. 기존 직업은 유지될 수 있지만 보상 수준이 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임금 체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연결됩니다.



2. 아이디어의 병목현상
로머(Paul Romer)의 내생적 성장모형은 아이디어의 증가가 장기 성장률을 결정한다고 설명합니다. 연구 투입이 늘어나거나 연구 효율이 개선되면 아이디어 생산이 증가하고 경제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AI는 이러한 구조를 자극하는 기술입니다. 연구 과정의 자동화와 보조가 확대되면 아이디어 생산 속도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AI는 아이디어의 생산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생산과 경제 전반으로의 확산은 동일한 과정이 아닙니다.

실제로 "AI and the Real Bottlenecks to Growth"는 최근 수십 년간 연구개발 투입이 증가했음에도 기술의 파급이 제한적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생산성 향상이 상위 기업에 집중되고 기업 간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관찰은 확산 과정에 마찰이 존재하는 병목현상을 보여줍니다.

AI가 아이디어 생산을 가속하더라도 확산 경로가 제한적이라고 한다면요. 이 경우에 생산성 이득은 일부 기업과 인프라 보유자에게 먼저 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AI가 연산력, 데이터, 플랫폼 인프라에 기반하여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원은 이미 특정 기업과 자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생산성 상승이 발생할 경우 그 효과는 먼저 기업 이익과 자본 수익률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노동이 생산에 기여하더라도 소득의 몫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노동을 보완하기보다 대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이러한 경향은 현저히 강화됩니다.

총생산이 증가하더라도 그 증가분이 노동소득으로 충분히 보상되지 않으면 임금 체계는 압박을 받습니다. 성장과 임금의 움직임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성장률이 상승하면서 임금 구조가 악화될 가능성도 높다는 겁니다.



3. Ghost GDP의 도래
"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는 앞에서 설명한 성장과 분배의 분리를 “Ghost GDP”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GDP는 증가하지만 가계의 체감 소득이 감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생산성 상승이 통계상 성장으로 이어지더라도 가계의 소득 기반은 도리어 약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는 구조에서 이러한 현상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테지요. 기업의 생산성과 이익이 개선되어도 그 성과가 임금으로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 경우 소비 기반이 약해집니다. 특히 고소득 화이트칼라 계층의 소득이 압박을 받을 경우 소비 감소의 파급 효과는 작지 않을 겁니다. 소비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비 감소는 기업 매출과 투자에 영향을 미칩니다. 매출이 둔화되면 기업은 비용 구조를 재검토하게 되고, 자동화와 AI 도입을 통해 비용을 추가로 절감하려는 유인이 강화됩니다. 이는 다시 노동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소비 위축과 비용 절감이 반복되면 성장의 통계와 체감 경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생산성 상승과 소비 기반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를 형성합니다. 겉으로는 성장률이 유지되거나 상승하더라도 경제 내부의 균형이 왜곡되는 겁니다.



4. 노동시장의 미시적 조정
이러한 거시적 변화는 노동시장 내부에서도 점진적으로 나타납니다. "Your Job Isn’t Disappearing. It’s Shrinking Around You in Real Time"은 직업의 소멸이 아니라 역할과 보상의 축소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일자리 개수보다는 가격과 역할 변화에 먼저 반영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AI의 성능 개선은 비교적 짧은 주기로 이루어집니다. 반면 개인의 인적자본 축적은 수년의 시간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이 속도 차이는 협상 구조를 변화시킵니다. 기업은 대체 가능한 기술을 이미 확보한 상태에서 임금 협상에 임하게 됩니다. 노동이 완전히 대체되지 않더라도 동일한 업무를 더 낮은 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격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중간 숙련 화이트칼라 영역에서는 업무의 성격이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략적 판단이나 전문성으로 분류되던 활동이 실제로는 반복적 실행과 정교한 패턴 인식의 결합이었다면, AI는 이 영역을 빠르게 흡수합니다. 이는 해당 업무의 공급이 사실상 확대되는 효과를 낳습니다.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늘어나면 시장 가격은 하향 조정됩니다.

이 과정은 단번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생산성 보조 도구로 도입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업무 설계와 인력 배치 구조가 재편됩니다. 업무는 더 세분화되거나 통합되고 일부 역할은 자동화되며, 남는 역할에는 더 높은 책임과 조정 능력이 요구됩니다. 그 사이에서 중간 영역의 임금 프리미엄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업이 유지되더라도 보상 구조는 변합니다. 고용의 유지와 임금의 안정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노동시장 조정은 해고보다는 임금 상승의 둔화, 보너스 축소, 역할 축소와 같은 방식으로 먼저 나타날 겁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시장 내부의 점진적인 가격 재조정 과정으로   자리잡을 겁니다.



5. 열린 미래
위 논의는 하나의 가능성을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AI가 인간의 생산성을 확대하고 새로운 산업과 소득 구조를 창출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기술 발전이 장기적으로 고용과 소득을 확대해온 역사적 사례도 있습니다.

지능의 한계비용이 하락하면 기존의 가격 구조는 조정됩니다. 다만 그 조정이 노동소득의 축소로 이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보상 구조로 재편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제도와 시장의 적응 속도, 그리고 인간의 역량이 어떻게 재구성되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미래를 단정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항상 열려있습니다.


---
참고:

1. AI and the Real Bottlenecks to Growth
https://agglomerations.substack.com/p/ai-and-the-real-bottlenecks-to-growth

2. 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https://www.citriniresearch.com/p/2028gic

3. Your Job Isn’t Disappearing. It’s Shrinking Around You in Real Time https://newsletter.jantegze.com/p/your-job-isnt-disappearing-its-shr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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