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02/14 20:16:14
Name   커피최고
Subject   드래곤볼의 획기적인 컷(프레임) 연출
드래곤볼은 일본만화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만화입니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는 데즈카 오사무에 이은 2대 만화신으로 꼽히고 있죠.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스토리라인, 능력 및 변신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초사이어인' 같은 설정,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까지.... 이처럼 다양한 요인들이 드래곤볼을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드래곤볼은 가독성이 정말 뛰어난 만화입니다. 그 비밀은 바로 컷(프레임) 연출에 있는데, 드래곤볼은 그 정점에 위치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http://nikaidorenji.blogspot.kr/2014/03/blog-post.html

이에 대한 일본웹의 글인데, 흥미로워서 관련된 내용을 올려봅니다.



손오공과 상대의 위치가 앞의 컷과 뒤의 컷에서 서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드래곤볼에서는 이러한 연출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이는 독자의 시선의 흐름을 의식한 연출입니다. 일본만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죠. 그래서 만화 한페이지를 읽을 때, 독자의 시선은 '역 Z' 형태를 띕니다. 즉 상기한 번호는 독자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순서이고, 이야기의 시간 축인 셈이죠.

두번째 컷의 2번(손오공의 공격)과 3번(넘어지는 상대방) 중 독자의 시선상으로나, 시간적인 순서상으로나 2번이 먼저입니다. 독자의 시선과 시간적인 순서가 일치하기 때문에 독자는 매우 편하게 이 컷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만약 2번과 3번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매우 어색하겠죠.

세번째 컷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번째 컷의 마지막 정보는 '상대가 넘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번째 컷의 첫 정보는 '그가 넘어진 장면'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른쪽에 배치되어있죠. 그리고 공격을 시도했던 손오공이 사뿐히 착지한 이후에서야, 말풍선이 등장합니다. 이와 같은 정보의 나열은 손오공이 '여유'를 가지고 상대하고 있다는 형식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드래곤볼은 불필요한 상황에서 시간축을 절대로 반전시키지 않는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첫 작품입니다. 만화가를 지망하는 모든 이들이 이 작품을 참고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ex1) 공격->방어의 흐름을 시간적인 순서와 독자의 시선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오른쪽->왼쪽)


ex2) 마찬가지. 공격과 그에 대한 반격을 잘 배치해두었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만화에서 '왼쪽'은 '미래'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토리야마 아키라는 이를 캐릭터성에 활용하는 천재적인 감각을 보여주죠. 혹성베지터의 고귀한 왕자 베지터의 야심만만한 비행방향이 왼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번 말풍선이 오른쪽에 위치해있는 것 역시 이를 상정해둔 것임과 동시에, 과거(오른쪽) 발언이 그가 떠난 자리에 여전히 남아있어 '메아리'와 같은 효과를 주죠.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크리링이 반대로 날아갑니다. 만화적인 도치인 셈인데, 이는 크리링이 상대방을 저지하기 위한 것임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죠.



비행방향이 바뀌니, 전체적인 컷의 형태 역시 달라지는 장면입니다. 천재적이죠.



이 외에도 토리야마 아키라는 액션감을 살리기 위해 컷(프레임)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는 시선의 흐름과 상대방의 공격방향을 의도적으로 충돌시키고, 그 사이에 '얻어맞는' 캐릭터를 삽입하여 쾌감을 더해주고 있죠.



이렇게요


이처럼 드래곤볼은 단순한 재미 외에도, 만화문법이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데즈카 오사무와 함께 만화신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가 만화문법을 재정립한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데즈카 오사무는 가부키의 '미에'라는 표현방식을 만화에 적용하였죠.) 그의 천재적인 컷(프레임) 연출은 여전히 연구대상이고, 이는 드래곤볼이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컷(프레임) 연출이 나타나기 힘든 스크롤형태의 한국웹툰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2-28 15:43)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7
  • 그냥 재밌는것에 대해서 자세히 알면 알수록 왜 그게 재밌는지 알 수 있어서 더 재밌다고 하죠
  • 만화의 예술적 영역을 기웃거린 기분입니다.
  • 이런 심오한 배치까지 들어있다니
  • 잘 읽었습니다. 만화 컷 배치에 이런데 있는줄 처음 알았어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72 역사국내 최초의 이민자, '하와이 한인'들에 대해 -하- 10 메존일각 19/10/03 6158 17
948 일상/생각아싸, 찐따,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11 이그나티우스 20/04/17 6176 17
826 일상/생각. 4 BLACK 19/07/02 5423 17
759 IT/컴퓨터컴퓨터는 메일을 어떻게 주고 받을까? 13 ikuk 19/01/18 7740 17
674 과학지구 온난화와 원전. 56 키시야스 18/08/01 7492 17
670 여행(스압, 데이터 주의) 오키나와 여행기 ~첫째 날~ 9 소라게 18/07/27 6440 17
643 체육/스포츠Tour de France 소개(1) 20 Under Pressure 18/06/05 6940 17
624 기타예비 아빠들을 위한 경험담 공유를 해볼까 합니다. 19 쉬군 18/04/30 6527 17
614 정치/사회슬라보예 지젝과 정치적 올바름 17 Eneloop 18/04/10 7743 17
579 체육/스포츠미식축구 입문 :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처럼 생각하기 (스압, 용량 많음) 10 Danial Plainview(Profit) 18/01/19 7223 17
800 일상/생각불안 애착 유형과 회피 애착 유형의 연애/이별기 4 자일리톨 19/05/01 15393 17
511 체육/스포츠타이거! 타이거! : 게나디 골로프킨-사울 카넬로 알바레즈 전에 대해 19 Danial Plainview(Profit) 17/09/16 7908 17
448 일상/생각우연한 합석 8 Liebe 17/06/10 6282 17
429 정치/사회웅동학원과 한국의 사학법인 62 moira 17/05/13 6987 17
927 의료/건강세계 각국의 중국과의 인적교류 통제 상황판 (업데이트끝. 나머지는 댓글로) 8 기아트윈스 20/02/28 5842 17
417 정치/사회군사법원은 왜 군의 입맛에 맞게 돌아가는가. 8 烏鳳 17/04/23 6798 17
377 일상/생각너무 힘들었던 일이 끝났습니다. 17 마녀 17/02/28 5423 17
316 기타마, 얼굴만 봐도 알겠네! 너지! 26 Azurespace 16/11/29 10035 17
232 정치/사회경향 김서영 기자 유감 44 당근매니아 16/07/13 9562 17
150 정치/사회생생함, 그 이상의 효과 38 마스터충달 16/02/05 6580 17
145 기타천재 소년의 마음 속 온도 12 Darwin4078 16/01/22 6932 17
154 문화/예술드래곤볼의 획기적인 컷(프레임) 연출 19 커피최고 16/02/14 13108 17
88 IT/컴퓨터간략하게 살펴보는 웹디자인의 역사 24 Toby 15/10/16 10974 17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1867 16
1411 기타『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949 16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