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09/28 17:51:10
Name   길도현
Subject   미국의 트럼프 열풍에 대한 소고
어제 트럼프대 힐러리의 토론이 있었죠. 저도 토론을 시청하긴 했는데, 뒷 1시간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트럼프가 많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CNN 해설가들은 초반 30분은 트럼프가 우세, 그 이후 1시간 반 동안은 힐러리의 우세로 힐러리의 압승으로 여기는 분위기였고, 시청자 투표도 62-27로 힐러리의 압승이었죠. 그렇게 저도 힐러리가 한점 따냈구나 생각했습니다만 오늘 뉴스 게시판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힐러리 압승은커녕 동률도 아닌 트럼프 우위일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일단 제가 생각하기에  CNN 시청자투표와 각 뉴스들의 온라인 조사의 극명한 차이는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으로는 이 차이는 각 투표에 참여하게 되는 인구들의 차이에 그 이유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CNN 토론을 보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정치관련 담론에 관심이 있고, 어느정도 이 토론에 방관자로서 참여하기를 희망한 정치적으로 비교적 깨어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개중 대부분은 힐러리가 현재까지 정치가로서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지 기억하는 자들일 겁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 10단의 매서운 여성 정치가로서의 힐러리를요. 그들에게는, Crooked Hilary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힐러리 끌어내리기는 가소롭게 보였을 터입니다. 그리고 이번 토론에서 힐러리는 트럼프를 (몇몇 부분에서는) 시원하게 짓밟음으로서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이번 트럼프의 열풍 중심에는 새로운 분파가 있습니다. 바로 트럼프를 공화당의 개에서 머리로 끌어올린 표를 행사한 그들입니다. 이들은 트럼프가 오바마의 출생을 문제삼았던 추태도, 셀럽으로서 입방정을 떨고 다녔던 그의 과거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겉치레없이 시원하게 미국 시민들에게 자신을 표출하는 트럼프에게 자신들의 울분섞인 지지를 보냅니다. 이쯤 오면, 이게 어디서 들어보았던 이야기가 아닌지 생각하실 분이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브렉시트죠. 트럼프의 첫번째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트럼프 지지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지층은 아마 토론 따위는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자기 살기에 바쁜 그들일 것입니다.

영국의 그들에 대해서는 기아트윈스 님의 글이 있는데, https://redtea.kr/pb/pb.php?id=free&no=3116&divpage=1&ss=on&sc=on&keyword=%EB%B8%8C%EB%A0%89%EC%8B%9C%ED%8A%B8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글에서 한 가지 동의하지 않는 점은, 미국의 이민자국가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전인수격으로,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 미국이지만 그들의 이민에 관한 정서는 그들의 옛 주인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특히 하위권 노동자들 계층에서 그런 경향이 더욱 더 두드러집니다. 그들에게 이민자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자신들의 직장을 위협하는, 또한 듣도보도 못한 문화를 수용할것을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파렴치한 이방인들이고, 때문에 그들은 이 이방인들을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수용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시원한 답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살기에 급급한 그들은 인터넷 투표 따위엔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온라인 투표에서 트럼프의 압승, 혹은 판정승을 주도한다는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점에 대해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온라인 상에서 강세를 보여주는 이유에는, 트럼프 열풍에는 또 한가지 간과할수 없는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입니다.

왜 하필 네티즌들이냐? 뜬금없지 않느냐. 등의 생각이 드실 만 합니다. 보통 이들은 리버럴한 성향을 보이는데, 트럼프를 지지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전부 옳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미국 대선의 상황은 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가장 큰 지지자층 중의 하나가 이 네티즌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설명해야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때는 2014년 후반기로 돌아갑니다. 아시아나항공 추락 사건에 이어 에어 아시아 실종사건으로 다사다난하던 그 무렵, 미국의 인터넷에서는 게이머게이트라는 사건이 한창이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에 앞서 이 사건에 관해서는 여러 관점이 혼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본 글은 네티즌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묘사하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하 서술하는 사건의 관점은 철저하게 네티즌들 (더 엄밀하게는 이 사건에 관여한 게이머게이터들) 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이 사건에 대해 반대 입장에서 서술된 문서를 보시려면 Wikipedia의 gamergate 문서나, 각종 언론들의 당시 게이머게이트에 대한 기사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당부드리건대, 이하의 서술은 편향된 서술이기 때문에, 이 글로 게이머게이트 사건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유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건의 시작은 조이 퀸  (Zoe Quinn)이라는 한 여성 게임개발자가 자신이 제작한 인디 게임인 Depression Quest를 스팀에 승인받고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 개발자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게임은 호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이 Depression Quest라는 게임은 게임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물건이었고, 유저들의 불평은 이 게임을 넘어서 이 게임의 유통사였던 스팀까지 다다릅니다. (스팀의 인디게임 판매 시스템에 대해 조금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게임을 만든다고 스팀에서 마음대로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정 심사를 통과한 게임만이 스팀에서 판매될 수 있습니다.) Depression Quest가 스팀의 quality standard에 훨씬 못 미치는 게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팀에 출시될 수 있던 원인을 찾던 네티즌들에게 유착관계로 보여지는 여러 정황들이 포착되고, 이에 따라 조이 퀸이라는 개발자는 트위터에 폭격을 맞게 됩니다.

여느 다른 트위터 난리와는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가던 이 사건은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트위터로 감행되는 폭력을 감당하지 못한 이 불행한 여인은 그녀의 적 전체를 반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에 이르렀고, 예의 공격은 그녀가 여성 개발자로서 감히 남성들의 전유물인 인디 게임계에 발을 들이려 했던 것이 죄가 되어 받게 된 공격이라는 논조를 펼치게 됩니다. 하지만 더 큰 전환점은 언론이 조이 퀸의 편을 드는 순간 발생합니다. 유착관계의 일부로 지명되어 난관을 겪고 있던 유명 게임 웹진 Kotaku는 이 논조에 동의하여, 게이머들의 도덕적 파산과 여성혐오가 이 사건의 원인이라는 논조의 기사를 게시하고, 이어 “Gamers are dead”라는 구호를 앞세워 게이머 컬쳐 전반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하게 됩니다. 게이머게이터 운동에 동조하던 네티즌들은 이에 크게 반대했으나, 각 대형 언론은 코타쿠의 논조를 따라서 게이머들을 비판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네티즌들은 그 자신들의 방법으로 언론에게 반격의 실마리를 노리는데요, 그들의 가장 큰 힘인 밈화는 이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현재 영미권 넷에서 쉐미니스트를 칭할때 으레 사용되는 SJW-Social Justice Warrior-라는 단어도 게이머게이트가 시작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언론의 거대한 힘 앞에 무너지고, 게이머게이트의 논란은 (다르게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만은) 네티즌들의 판정패로 끝나게 되고, 잔당들은 영미 인터넷 대형커뮤니티 reddit의 Kotakuinaction이라는 그룹(디시의 갤러리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에 남아 후일을 도모합니다.

게이머게이트를 겪은 네티즌들은 그 자신들을 대표해야 할 언론에게 배신을 당하였고, 또한 그 모든 일의 전조가 된 뒤틀린 페미니즘-쉐미니즘-에 큰 환멸을 갖게 됩니다. 또한, 대개 쉐미니즘을 싫어하는 성향의 이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PC정서에 대한 큰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리버럴한 성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의 페미니즘과 PC정서를 상징하는 힐러리 클린턴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찍이 버니 샌더스 파와 트럼프 파로 나뉘어져 샌더스의 열풍에 기여하였지만, 샌더스가 무너진 이후 이들은 대부분 트럼프 쪽으로 흡수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온라인 조사에서의 트럼프의 강세는 이들의 인터넷 주도권과 큰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반이민정서, 반페미니즘 (혹은 반쉐미니즘), 반PC 정서들은 그들을 도널드 트럼프라는 깃발 아래 하나로 규합시켰습니다. 이들이 바로 Alt-Right입니다. 끝으로 보여드릴 동영상은 이 Alt-Right의 전령 역할을 하는 Milo Yiannopoulos라는 사람의 CNBC 인터뷰입니다. (영어입니다).


이 Milo Yiannopoulos씨는 저번에 다른 게시글에서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같은 분입니다. 말은 정말 달변이에요.

https://redtea.kr/pb/pb.php?id=fun&no=14730&page=12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0-10 10:55)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 다양한 내용 깔끔히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ㅊㅊ
이 게시판에 등록된 길도현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1 일상/생각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1615 20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2084 16
1340 경제주식양도소득세 정리(2022. 12. 31. 법률 제19196호로 일부개정된 소득세법 기준) 7 김비버 23/11/22 2465 8
1320 경제사업실패에서 배운 교훈, 매출 있는 곳에 비용 있다 7 김비버 23/08/12 3253 28
882 의료/건강마음의 병에도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12 김독자 19/10/31 6685 47
271 정치/사회미국의 트럼프 열풍에 대한 소고 23 길도현 16/09/28 6465 11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881 23
1319 정치/사회개평이 필요하다 19 기아트윈스 23/08/05 3339 65
1174 문화/예술한문빌런 트리거 모음집 27 기아트윈스 22/03/06 4993 53
1077 철학/종교사는 게 x같을 때 떠올려보면 좋은 말들 34 기아트윈스 21/04/02 7655 31
1010 경제주식투자, 튜토리얼부터 레이드까지 37 기아트윈스 20/09/23 7448 28
981 철학/종교자제력, 지배력, 그리고 이해력 13 기아트윈스 20/07/10 6076 30
942 정치/사회[데이빋 런시만] 코로나바이러스는 권력의 본성을 드러냈다. 10 기아트윈스 20/04/02 5951 22
936 역사[번역] 유발 노아 하라리: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13 기아트윈스 20/03/21 7827 33
937 과학[코로나] 데이터... 데이터를 보자! 20 기아트윈스 20/03/22 6356 12
923 문학일독김용(一讀金庸): 김용 전집 리뷰 40 기아트윈스 20/02/16 7690 27
879 기타영국 교육 이야기 16 기아트윈스 19/10/23 6564 34
842 정치/사회한일간 역사갈등은 꼬일까 풀릴까? 데이빋 캉, 데이빋 레헤니, & 빅터 챠 (2013) 16 기아트윈스 19/08/10 5993 14
820 일상/생각전격 비자발급 대작전Z 22 기아트윈스 19/06/19 5731 50
811 일상/생각생각을 명징하게 직조하기 10 기아트윈스 19/06/01 6650 42
807 역사모택동 사진 하나 디벼봅시다 18 기아트윈스 19/05/24 7741 44
801 문학고속도로로서의 템즈강: 18세기 템즈강 상류지역의 운항과 수송에 관한 연구 34 기아트윈스 19/05/11 6308 16
777 일상/생각영국은 섬...섬... 섬이란 무엇인가? 38 기아트윈스 19/03/04 6214 26
772 일상/생각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죠 (without even being asked) 10 기아트윈스 19/02/19 5548 64
769 정치/사회북한은 어떻게 될까 - 어느 영국인의 관점 85 기아트윈스 19/02/12 8801 7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