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6/10/18 05:46:53
Name   팟저
Subject   문학과 문학성



뮤지션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에 관한 시시비비를 듣고 말하는 와중 대상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이해와 태도의 차이 때문인지 이야기가 자꾸 겉도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서로 합의할만한 지점은 있으니 [문학상은 문학성을 평가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놈의 위화감에 대해 떠들려면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요. 이조차 부정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이 글이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지점이 아닌 만큼 배제해도 무방할 겁니다.

1. 문학성을 추구하는 게 문학이다
2. 문학이 추구하는 게 문학성이다

1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뮤지션의 문학상 수상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겁니다. 그 문학성을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허나 2번에게라면 논의의 여지도 없지요.

앞뒤를 뒤집은 두 진술이 특정 사례 앞에서 극단적인 입장 차를 보이는 건 여기 시간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1번이 의식적인 플라톤주의자만을 가리키지 않는 이유인데요. 하지만 '의식적인'이란 수사를 굳이 붙이는 건, 또한 시간 때문이지요.

문학적 이데아로서 문학성을 개별 사례의 집합인 문학보다 앞서 상정하는 이들을 생각해봅시다. 이 부류를 의식적 플라톤주의자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들의 '문학성'에 시간은 개입하지 않지요.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개별 작품이 자신의 문학성에 부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이지, 그 문학성에 대한 회의가 아닙니다.

한편 시간의 흐름에 따른 문학(이란 사례)의 변화에 따라 문학성을 재구성한다면 그를 의식적 플라톤주의자라고 말하긴 어렵겠죠. 편의상 그중 1번에 해당하는 이들을 역사주의자라 부르겠습니다. 역사주의자는 문학이 추구했고 추구하는 것에 비추어 문학성을 사유합니다. 그들에겐 기원전의 문학도, 18세기의 문학도 문학이며 그 각자의 관계는 비교적 동등합니다. 역사주의의 문학 개념에서 과거의 문학들은 오늘날의 문학을 경유하지 않고도 문학성과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맺습니다.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호메로스와 사포를 언급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은 이 역사주의에 해당할 겁니다.

모두 2번과 무관한 이야기죠. 2번에게 과거의 문학과 현대의 문학은 동등하지 않습니다. 과거 문학은 현대 문학의 기반에 불과하며, 결코 그 문학성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지 못합니다. 이들에게 문학성이란 현대 문학의 문학성이지 문학이 추구했던 것과는 무관합니다. 역사주의에 있어 과거의 문학은 의문의 여지없이 문학이지만 이들에겐 그저 '문학이었던 것'이죠. 이들의 세계에서 개별 작품이 문학이냐 아니냐는 오늘날 문학이란 이름으로 향유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지 않은 과거의 문학이라면? 문학이 아닙니다. 과거의 문학에서 오늘날의 문학성을 찾으며 이를 문학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역사주의의 태도는 이들에게 키치일 뿐입니다. 기저에 깔린 태도며 역사주의에 대한 입장 등을 고려하여 이들을 구조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네, 위 도식에 비춘다면 전 구조주의자입니다. 스스로 구조주의자라고 하다니 참 기분 더러운데 달리 적당한 표현이 없으니 별수 없네요.

제게 밥 딜런은 문학이 아닙니다. 문학성이란 말을 쓴다면 그것이 철저히 문학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문학(혹은 문학이었던 것)과 유비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가당할 겁니다. 그 점에 한정한다면 밥 딜런은 문학성을 갖습니다. 영화 버드맨이나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그런 정도로요. 실제 문학 작품과 비교한다면? 차라리 귀여니 소설이 밥 딜런의 노래보다 더 문학적일 겁니다. 적어도 귀여니가 쓰는 이모티콘은 문자 매체의 표현 가능성 중 하나니까요. 단지 그녀가 넓힌 지평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났고 선택받지 못했을 뿐이죠. 반면 밥 딜런의 노랫말 어디를 읽어봐도 거기엔 멜로디도, 발성도 없습니다. 밥 딜런의 노래를 그 가사에 한정하여 접근하는 건 그 작품에 대한 온전한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죠. 설혹 일정한 목적을 위해 그 관심 대상을 한정한다고 할지언정, 이는 음악의 영역이지 문학의 영역이라고 할 순 없지요. 귀여니 소설에 적당한 리듬감과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든다고 생각해보죠. 없는 멜로디를 만들어 넣는 것 이전에 그 이모티콘은 인간의 구강 구조로 표현이 불가능하니 모두 떨어져나갈 겁니다. 밥 딜런을 문학으로 즐긴다는 건 그런 겁니다.

역사주의자들이라면 중세 시대까지 구전 문학이나 곡조가 붙었을 서사시를 근거로 들지 모르겠네요. 스웨덴 한림원이 호메로스와 사포의 사례를 든 것처럼요. 허나 말했다시피 제게 이는 문학이었던 것일 뿐입니다. 밥 딜런의 문학상 수상은 사진의 회화상 수상과 다를 바 없어요. 호메로스와 사포? 과거의 특정 시점, 회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현실의 모사였다는 점을 들어 그 기능을 실제로 구현했으니 사진을 두고 회하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사진이 회화보다 덜 떨어진 예술이란 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현대 회화계가 그리 기능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엄연히 회화와 사진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기능합니다. 둘을 같은 미술로 묶을 수 있을지언정 둘은 같지 않아요. 임의의 관점 속 공통점이 존재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요. 아, 앤디 워홀 같은 사례가 있으니 이쯤에서 제 이야기가 '역사주의적 논거로 밥 딜런을 문학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걸 강조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앤디 워홀을 회화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위에서 말했듯 적어도 그 근거를 논할 때 과거 회화의 기능이었던 현실의 모사 따위를 운운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밥 딜런은 그렇지 않죠. 밥 딜런에게 문학적 의의라는 게 있다면 그건 철저하게 과거 문학, 혹은 기존 문학과 유비성 하에서 성립합니다. 그러니 그의 문학상 수상은 세평과 달리 파격이 아닙니다. 반면 앤디 워홀은? 화가로서 그에 대한 판단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회화의 틀을 부수고 그 지평을 넓혔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죠. 파격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이고요. 밥 딜런도 넓히기야 넓혔죠. 시적 가사를 통해 포크송에 대한 인식을 유행가에서 파인 아트에 버금가는 무언가로 끌어올렸죠. 헌데 그가 넓힌 건 문학의 지평이 아니라 음악의 지평이라는 게 문제죠. 

몇세기 전이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밥 딜런이 문학이었을 수 있겠죠. 그 특성상 악보에 적히기보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거나 편집되더라도 노랫말 위주로 전해졌을텐데 그런 식으로 전해졌다면 분명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판소리를 비롯한 구전 문학이 그러하듯요. 하지만 지금은 21세기고, 밥 딜런은 20세기에 활동했으며, 그의 예술은 LP와 테이프, CD, 음원 등을 통해 전해집니다. 거기엔 멜로디와 목소리가 담기죠. 매체가 달라진 겁니다. 매체의 변화는 당연히 예술의 변화도 추동하죠. 산업 체계를 바꾸고 이는 향유 방식을 엎어버리는걸요. 사진기의 발명이 회화를 바꾸었단 건 중등 미술 교과서에도 실리는 상식입니다. 문학이라고 여기서 자유롭진 못하죠. 단지 기보법의 발전과 민스트럴의 존재로 인해 그 과정이 회화만큼 극단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뿐, 레코더의 발명은 그 전후의 문학을 다른 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벨상 수상 리스트만 봐도 알 수 있죠. 시인의 수가 줄고 있습니다. 운문 문학이 단일하고 독립된 장르로 남아있으며 창작 시집이 근래에도 활발히 출판되며 일군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습니다. 한국은 그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고요. 비슷하게 희곡가도 줄어드는 추세죠. 영화의 등장으로 연극 무대가 좁아졌으며 그 변천 과정에서 희곡과 달리 시나리오는 문학의 범주에서 상당히 멀어졌으니까요. 그럴 수밖에요. 희곡과 달리 시나리오는 독립된 예술로서 향유되지 않습니다. 장르가 갖는 한계로 인해 연극을 무대 위에서 즐기는 건 그 향유층들 사이에서도 제한된 경험이었고, 따라서 음유시인의 노랫말을 채집하여 훑던 것처럼 무대 밖에서 희곡을 읽는 이들은 많았지만 영화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 특성으로 말미암아 영화는 시나리오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예... 근년간 노벨 문학상 수상 리스트 대부분은 산문 문학, 소설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장 좀 보탠다면 오늘날 세계 문학계는, 세계 소설 장르 업계라고 일컬어도 무리가 없어요. 보편적이고 유의미한 교류가 일어나며 그 교류 속에서 장르내적 발전이 추동되고 이 단일한 계가 근시일 내에 별다른 부침 없이 유지되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 유일한 문학 장르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경향은 심화되지 줄어들지 않을 겁니다. 과거 운문 문학의 특징이며 고유의 미감을 표현한다며 평가받던 양식이며 장치들의 형성 및 변화 양상은, 정작 운문 문학보다 포크나 랩과 같은 음악 장르에서 더욱 잘 드러나죠. 아마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제 아무리 역사주의자라고 한들 운문 문학을 문학이라고 할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 희곡으로 말미암아 과거 분명 문학의 범주였던 대본/각본이, 영화의 발전으로 그 취급이 모호해졌듯 말이죠. 적어도 예전과 같은 것, 좀 더 정확히 말해 음악의 영역으로 들어간 게 문학으로서 창작되며 향유되진 않을 겁니다. 아니, 이미 그렇죠.

이러한 맥락 위에서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일부 운문 문학 및 구전 문학의 전통을, 호메로스와 민스트럴, 판소리 등을 이미 멸종된 과거의 문학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거겠죠. 음원이 박제일 뿐인 노랫말조차 쓰인 말이 아니냐는 핑계로요. 하여 어떤 분들은 '너무 늦었다'고 말씀하시는 거고요.  물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너무 늦은 게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걸 돌려보겠다며 억지 쓰는 격입니다. 음악은 문학이 아니에요. 그 지경에 이르면 그건 진짜로 매체와 구분된 예술의 내적 본질 운운하는 플라톤주의자가 되는 꼴이에요. 포크송과 랩의 발전에 문학적 장치들이 발견된다고 해서 그걸 문학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밥 딜런을 문학가라 부르는 건 레너드 코언 말마따나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가장 높은 산이라 깃발 꽂는 격'이나 다름 없어요. 그 발전 양상이 과거의 문학과 유사한 과정을 밟는다고 한들, 그건 음악의 발전이지 문학의 발전이 아닙니다. 아무리 시적 가사를 우겨넣어봐야 소리를 울려 시간을 인식케 하는 음악을 담을 수는 없어요. 예술 비평은 매체 분석에서 출발하고 결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당장 베르그송이나 몸젠, 무엇보다 처칠 등의 수상 사례를 통해 이미 스웨덴 한림원 자신이 때론 용인될만하고 때론 덜떨어진 방식으로 보여오지 않았나요?) 매체를 초월하여 예술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드는 순간 그건 예술을 종교화한 플라톤주의의 저열한 반복이 될뿐입니다. 과격하게 말해볼까요? 그동안 우리가 운문 문학이라고 말해온 많은 것들조차 그 시절에 레코더가 있었다면 문학이 되지 않았을 거에요. 영화의 발전을 문학의 발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요. 영화의 발전을 통한 문학의 발전이란 인히어런트 바이스와 같은 문학적인 장치를 효과적으로 영화화한 작품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정반대죠. (여기서 사례로 꺼내기에 천변풍경은 그 장치의 승화 수준이 좀 떨어지지만)박태원의 천변풍경이나 로브그리예의 질투, 하일지의 경마장 연작, 그리고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와 같은 영화적인 양식에서 힌트를 얻은 문학 작품을 통해 문학은 발전하는 겁니다. 이때 우리는 다른 장르, 다른 매체가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발전을 추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음악가에게 문학상 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0-31 09:42)
* 관리사유 : 추천 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
  • 밥딜런이 수상한 덕분에 좋은 글 읽었네요 ㅎ 사실 너무 당연한 얘긴데... 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32 일상/생각울진 않을거 같습니다. 14 aqua 17/10/21 8044 57
807 역사모택동 사진 하나 디벼봅시다 18 기아트윈스 19/05/24 8046 44
8 일상/생각잘 지내요?.. (4) 8 박초롱 15/06/06 8051 0
606 요리/음식THE BOOK OF TEA 개봉기 24 나단 18/03/25 8051 11
414 체육/스포츠Elo rating으로 보는 주요 클럽들의 피크 포인트 25 구밀복검 17/04/19 8061 7
375 과학외계 행성을 (진지하게) 발견하는 방법 11 곰곰이 17/02/24 8063 12
936 역사[번역] 유발 노아 하라리: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 13 기아트윈스 20/03/21 8068 33
750 일상/생각2018년의 사회진화론 21 구밀복검 18/12/28 8070 37
738 여행온천, 온천을 가보자 38 Raute 18/11/30 8072 29
471 역사 영화 "덩케르크" 의 배경이 되는 1940년 독일-프랑스전투 2 모모스 17/07/14 8073 8
796 일상/생각축구지를 펴내기까지... 그 나름의 철학 ㅋ 18 커피최고 19/04/18 8073 26
335 철학/종교산타가 없다는 걸 언제쯤 아셨어요? 51 기아트윈스 16/12/30 8080 11
660 문학왜 일본 만화 속 학교엔 특활부 이야기만 가득한가 - 토마스 라마르 31 기아트윈스 18/07/09 8090 30
935 의료/건강자존감은 꼭 높아야 하나요? 42 호라타래 20/03/20 8092 45
290 정치/사회외국인 범죄에 대한 진실과 오해 6 tannenbaum 16/10/24 8093 6
17 과학음, 그러니까 이게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 말이지?... 12 neandertal 15/06/10 8094 0
1187 꿀팁/강좌꼬맹이를 위한 마인크래프트 서버 만들어주기 17 덜커덩 22/04/19 8096 21
719 체육/스포츠펩빡빡 펩빡빡 마빡 깨지는 소리 : 과르디올라는 왜 UCL에서 물을 먹는가 34 구밀복검 18/10/30 8100 14
318 기타아직도 이불킥하는 중2병 썰, 20 마투잘렘 16/12/06 8106 16
20 정치/사회이명박근혜식 통치의 기원(2) 6 난커피가더좋아 15/06/11 8118 0
285 문학문학과 문학성 52 팟저 16/10/18 8125 3
383 게임홍차넷 F1 : 난투 - 현재까지의 순위.Araboza 31 SCV 17/03/09 8126 16
247 기타원어민도 못푸는 수능34번 문제? 34 Event Horizon 16/08/09 8132 12
684 여행관심 못 받는 유럽의 변방 아닌 변방 - 에스토니아 6 호타루 18/08/15 8135 16
694 정치/사회서구사회에 보이는 성별,인종에 대한 담론 29 rknight 18/09/08 8141 2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