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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0/26 00:00:38
Name   tannenbaum
Subject   꼬마 절도범
엄밀히 따지면 주범은 아니었다. 변명을 해보자면 동네형 말을 잘들었던 것 뿐이었지만... 어찌되었던 그 범죄 행위에 가담했던 건 사실이니까 자의던 타의던 절도범들 중 하나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요즘도 시골장터나 풍물시장에 가면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엿장수들이 많이들 보인다. 요즘이야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상품에 가깝지만 80년대 초반 시골마을엔 전방부대 황금마차보다 더 반가운 존재였다. 한달에 두어번 동네 어귀에서 '촥촥촥촥~~'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동네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마음은 강아지 꼬리마냥 흔들거렸다. '촥촥촥촥~~' 소리가 가까워져 올수록 아이들은 온 집안을 뒤져 낡은 양은냄비, 비닐포대, 빈병, 빵꾸난 리어커 타이어를 귀신같이 찾아 손에 들고 엿장수에게 달려 갔다.

기대 가득한 눈으로 양손에 고물을 한아름 엿장수 아저씨에게 내밀면 커다란 엿판을 현란한 가위질로 쪼개 신문지를 접어 만든 봉투에 담아주었다. 땟국물이 질질 흐르는 손으로 밀가루가 잔뜩 묻은 엿을 한입 물으면..... 캬아~~~ 청와대에서 먹었다던 트뤼플? 캐비어? 푸아그라??? 다 꺼지라 그래. 지금도 그때 베어물고 빨아먹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지금 기준으로야 먼지 다 뒤집어 쓴 불량식품이겠지만 뭐 어떤가. 먹고 안죽었으면 되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청담동 R 쇼콜라티에 뺨치는 부드러움과 달콤함일진데..... 어느 누가 거부할 수가 있겠는가..

그날도 동에 어귀에 '촥촥촥촥~~' 가위질 소리가 들려 왔다. 역시나 온 집안을 이 잡듯 싹싹 뒤졌지만...... 그날은 엿 바꿔먹을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비료포대 한장도말이다. 심하게 낙심해 못먹는 감 찔러.. 아니 구경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당산나무로 터벅터벅 걸어 갔다. 그곳엔 이미 동네 아이들이 빈병이며 비료포대며 구멍난 냄비를 가져와 엿과 바꾸어 하나씩 엿 봉투를 들고 있었다. 전혀 먹고 싶지 않은 척 일부러 딴 곳을 보며 당산나무 밑 친구들 옆에 철푸덕 앉았다.

난 절대 네 손에 있는 엿이 먹고 싶지 않지만 혹시 줄 생각이 있다면 거절하지는 않을거라 말하듯 '너 내일 숙제 했니? 숙제 안해가면 맞을텐데... 아. 우리 메리 강아지 낳았다. 구경갈래?' 엄한 소리로 대신하며 제발 한입만 달라고 간청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친구들은 부스러기 하나도 주지 않았다. 아마 조금 그네들에게 조금 화가 났던지 '엿 많이 먹으면 이빨 썩는댔어' 한마디 던지고 고개를 돌려 친구들 손의 엿봉투를 부러 보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때였다. 엿장수 아저씨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리어카를 놔두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아저씨가 리어카를 놔두고 사라지자 저만치에 있던 동네형들이 날 손짓해 불렀다. 쫄래쫄래 다가가니 형들이 지령을 내렸다. '너 여기 골목 입구에 서있다가 아저씨가 보이면 우리한테 알려줘. 알겠지?' 이유는 몰랐지만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골목 입구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땅에 낙서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형들을 쳐다보니 엿장수 아저씨 리어카에 놓인 엿을 훔치려 하고 있었다. 지금생각하면 아무래도 단단한 엿판이 잘 깨지지 않아 이리저리 용을 썼나보다. 그러다 안되겠는지 옆에 있던 큰 돌을 들어 엿판을 내리 찍었다. 거리가 있어 잘 안보였지만 그 형들은 부서진 엿들을 주워 먹으며 계속 엿을 부시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저만치에서 엿장수 아저씨가 어느집에서 무쇠솥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말 잘듣는 착한 아이였던 나는 형들과 약속을 지켰다. 형들에게 잘 들리도록 큰 소리로 '00이 혀~~엉. 엿장수 아저씨 왔어~~!!' 외쳤다. 그말을 듣자마자 형들은 부서진 엿 덩어리 하나씩을 들고 논을 가로질러 산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마찬가지 엿장수 아저씨도 무쇠솥을 집어 던지고 리어카로 달려왔다. 이내 엿판을 살피고 산으로 도망가는 형들을 쫒아 갔지만.... 쌕쌕거리는 시골 아이들을 따라 잡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잠시 쫒는듯 하던 아저씨는 이내 다시 리어카로 돌아왔다. 동네형들과의 짧은 추격전을 뒤로하고 헉헉 거리며 나에게 아저씨가 물었다.

' 넌 왜 안도망갔냐?'

그 물음에 말똥말똥 눈을 뜨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나의 행위도 절도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진정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생각하고 또박또박 대답을 하니 얼마나 뻔뻔하게 아저씨가 생각했을지 예상이 된다. 도둑질 망보다 걸린 주제에 도망도 안가고 하나도 잘못한게 없다는 듯 눈 동그랗게 뜨고 엿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대답하던 꼬맹이가 어처구니가 없으셨는지 너털 웃음을 터뜨리셨다. 화가 난 아저씨 얼굴에서 무언가 체념하신듯 살작 미소를 보이셨다. 그리고 형들이 훔쳐가고 남은 엿들을 잘라 한봉지 담아 손에 드셨다.

'자 이거 줄테니까 이놈자식 다음부터 두번 다시 그러면 안된다'

'아저씨한테 약속 할래 안할래?'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아저씨 손에 들린 엿봉투에 홀려 그러겠노라 몇번이고 다짐했다. 아저씨는 여러번 약속을 받은 뒤 엿봉투를 내 손에 쥐어 주셨다. 그리곤 '요놈!!' 하시며 꿀밤을 때리셨다. 눈물이 쏙 날만큼 아팠지만 엿봉투는 마약보다 강력했다. 정말 아팠지만 하나도 안아팠다. 아저씨에게 몇번이고 감사합니다 인사를 드린뒤 깡총깡총 뛰면서 집으로 돌아 갔다. 물론 입에는 달달한 엿을 물고 말이다.



아!!

그리고 그날 저녁 엿을 훔쳐 산으로 도망갔던 00이 형과 XX형네 집에서는 매타작 소리와 함께 울음 소리가 한참동안 계속되었던 기억도 난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1-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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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생생하고 순수하고 귀여운 이야기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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