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1/24 13:57:30
Name   사슴도치
File #1   얼그레이.png (220.1 KB), Download : 32
Subject   어떤 백작과 짝퉁 홍차


홍차 좋아하시나요?

홍차의 종류야 다종다양하지만, 일단 산지로 나누면 다즐링, 실론, 아쌈 정도로 나뉘고(물론 훨씬 더 많음) 가향,블렌디드로 나누면 (물론 더 많지만) 얼그레이, (잉글리시)브렉퍼스트, 스톡홀롬블렌드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카페 같은 곳에 가면 홍차라는 섹션에 함께 들어가있긴 하지만 산지로 구분하는 것과 가향/블렌디드로 구분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죠.

커피로 따지자면 산지로 구분하는 것은 원두로 구분하는 것이고, 가향/블렌디드로 나누는 것은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등 제법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티-라떼라던가 하는 티베이스 음료들도 있긴 하지만요.

여튼 오늘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것은 홍차 중에서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얼 그레이(Earl Grey)입니다. 즉 홍차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 제일 잘 알려진 홍차라면 아마 단연 얼그레이 일텐데, 커피로 치면 카페라떼 정도의 포지션의 홍차입니다. 그리고 모든 브랜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블렌디드기도 하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가 가장 좋아하는 홍차이기도 했던 그런 홍차죠.

얼그레이는 대부분 실론, 경우에 따라서는 다즐링이나 기문을 베이스로 하여 홍차잎에 소량의 베르가못 오일과 향을 첨가하여 만듭니다. 베르가못은 감귤같이 생긴 상큼한 과일이구요.

이 차는 유래가 좀 재밌는데 이 블렌드의 이름은 베르가못 기름의 향이 첨가된 차를 선물받은 것으로 유명한 영국 수상이자 그레이 백작 2세인 찰스 그레이 백작의 이름을 따 지어진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구한 진품 정산소종(랍상소우총-중국 남부 복건성의 무이산(武夷山) 인근 정산(正山) 지역에서 나는 훈연차, 고급 찻종이고 꽤 비쌌고, 지금도 비쌉니다)을 선물받은 그레이 백작이 트와이닝스에 이 차를 주문하자, 너무도 귀한 찻종이라 재고가 없던 트와이닝스에서 진품 정산소종이 훈연향과 함께 용안이라는 과일향이 난다는 점에 착안하였고, 용안이 라임과 유사한 향이 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트와이닝스는 유럽에서 구할 수 없는 용안 대신 라임과의 베르가못을 블렌드하여 홍차를 만든 것이 얼그레이의 시초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레이 백작의 이름을 따서 Earl Grey. 즉 짝퉁 정산소종이었던 것이죠. 비슷한 맥락에서 원래는 그레이 백작이 정산소종을 흉내내어서 만든 차였는데, 영국 여왕이 그레이 백작이 보낸 차를 마셔보고, "그레이 백작이 보낸 차"를 달라고 요청해서 Ear Grey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짝퉁 홍차가 백작의 칭호를 얻게 되는 순간이었곘죠

그 외에도 한 전설에 따르면, 1803년에 그레이 백작의 부하들 중 한 사람에 의해 익사할 뻔 했던 아들이 구해진 한 중국 관료가 감사의 선물로 백작에게 블렌드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레이 백작은 중국에 방문한 적이 없고,  베르가못 기름을 차의 향을 내는 데 사용하는 방법은 당시 중국에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출처가 불분명해 보이긴 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외교관에 의해 전해졌다” 라는 형태로 트와이닝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얼 그레이’ 차는 그레이 경을 위해 가문의 거주지인 노섬버랜드의 호윅 홀의 물에 맞게 중국 관료가 블렌딩하였으며, 그 지역의 물에 많이 포함된 석회 성분을 상쇄하기 위해 특별히 베르가못를 사용했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레이 부인은 이 차를 정치적 호스티스로서 접대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인기가 매우 좋은 것이 밝혀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해도 좋겠냐는 제안을 받고 이 차를 트와이닝스 사에 의해 하나의 브랜드로서 상업화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따르든 그레이 백작이 이 베르가못 오일이 첨가된 홍차를 좋아했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리고 최초로 상업화한것도 트와이닝스구요. 그래서 얼그레이 만큼은 트와이닝스가 원조격입니다. 원조 할머니 보쌈 같은거죠. 가향하기 쉽고 레몬슬라이스와도 잘 어울려서 모든 브랜드가 다 만들기도 하구요. 대체로 Grey 가 들어간 블렌드들은 전부 얼그레이계열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베르가못의 상큼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죠. 특히 트와이닝스의 얼그레이는 원조답게 베르가못 향이 꽤 강한 편입니다. 트와이닝스는 중국 현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문을 베이스로 한 얼그레이를 지금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현재에 와서는 수많은 티브랜드들이 기본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블렌디드기도 하고, 각 회사별로 비슷한 향과 맛에 개성이 살짝씩 드러나는 그런 홍차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식사하시고 나서 디저트로 얼그레이 한잔 해보시는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2-06 09:0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6
  • 홍차넷에 어울리는 글 감사합니다.
  •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후에는 한 잔의 홍차.
  • 공지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41 음악Cool Jazz - 그대여, 그 쿨몽둥이는 내려놓아요. 4 Erzenico 17/11/07 6416 7
915 의료/건강BBC의 코로나바이러스 Q&A 14 Zel 20/01/27 6413 31
483 일상/생각인생은 다이어트. 12 프렉 17/07/26 6413 24
617 일상/생각건설회사 스케줄러가 하는 일 - 입찰 20 CONTAXS2 18/04/18 6411 21
495 기타국제법이 헌법보다 위에 있을까? 8 烏鳳 17/08/16 6410 12
642 의료/건강애착을 부탁해 11 호라타래 18/06/03 6407 21
357 정치/사회문재인과 안희정의 책을 일독하고 나서... 61 난커피가더좋아 17/02/03 6406 15
135 일상/생각더 힘든 독해 35 moira 15/12/29 6405 13
429 정치/사회웅동학원과 한국의 사학법인 62 moira 17/05/13 6403 17
729 기타첫 정모 후기 24 하얀 18/11/11 6396 29
603 음악Bossa Nova - 이파네마 해변에서 밀려온 파도 7 Erzenico 18/03/16 6396 9
551 일상/생각고3, 그 봄, 그 겨울 19 aqua 17/11/21 6395 47
470 과학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20 유리소년 17/07/11 6394 14
198 기타커피 이야기 - Caffeine (리뉴얼버전) 15 모모스 16/04/29 6394 3
106 문학[2015년 노벨문학상]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여성은 전쟁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16 다람쥐 15/11/01 6391 11
715 여행이별 후 홀로 여행 6 곰돌이두유 18/10/14 6388 35
550 역사아우슈비츠로부터의 편지 11 droysen 17/11/20 6384 18
714 음악 쉬어가는 페이지 - 음악으로 이어 보는 근대 유럽사의 한 장면 호타루 18/10/10 6380 5
480 IT/컴퓨터재미로 써보는 웹 보안이야기 - 1 19 Patrick 17/07/25 6378 7
645 정치/사회다문화와 교육 -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15 호라타래 18/06/08 6377 16
353 요리/음식어떤 백작과 짝퉁 홍차 10 사슴도치 17/01/24 6376 16
620 일상/생각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26 탐닉 18/04/22 6374 25
567 일상/생각할머니가 돌아가셨다. 8 SCV 17/12/28 6374 27
1140 창작개통령 1화 47 흑마법사 21/11/02 6372 27
527 기타게임 개발에 대한 개인적인 잡담과 잡설.. 14 Leeka 17/10/11 6372 1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