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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30 22:51:22
Name   에밀
Subject   쉽게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맞춤법.
0.왜?

전 맞춤법 나치 기질이 좀 있습니다. 강박증과 비슷한 건데요. 대단한 얘기는 아니고, 마치 청소에 집착하는 이가 지나가다 먼지가 쌓인 모니터를 보면 속으로 부들부들하고 있다 남들 보지 않을 때 몰래 슥 닦고야 직성이 풀리는 거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물론 이런 기질은 맞춤법에만 반응하는 게 아니기에 각종 어법에도 비슷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만, 아무래도 어법은 맞춤법보다 어려워 아리송할 때가 많습니다. 맞춤법에 한정한다 해도 저 역시 제법 틀리기도 하고요. -.-... 왜 이런 성격이 됐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릴 적, 타락하기 이전의 몹시 성실했던 제 모습의 잔재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법은 법, 선생님 말씀은 선생님 말씀, 시키는 건 시키는 대로! 뭐 그런 바른 생활 어린이였거든요. 아마 그 습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맞춤법에 대한 지적도 보통 사람보다는 자주 하는 편입니다. 물론 자주 한다고 해서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꺼낸다는 건 아니고, 제가 애정을 가진 이들에게만, 아주 쉬운 것들만 얘기합니다. 저도 눈치 있어요.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몹시 많다는 걸 알고 있으며, 특히 잘난 체한다고 해석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저야 어디까지나 이과놈답게 마치 일 더하기 일은 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뿐이지만, 듣는 입장에서야 그런 거 알 게 뭐겠습니까. 그래서 보통 사람보다 자주 한다고야 했습니다만, 사실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 피지알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종종 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는 공지로 맞춤법 등을 정확히 지키는 걸 지향한다고 했고 따로 운영진에게 물어보니 예의를 지켜 정중히 말한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도 답하더군요. 'ㅋㅋㅋ'도 쓰지 않는 곳이잖아요. 그래 몇 번 해 봤는데, 잘 받아주는 이가 있는 반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도 많았습니다. 개중에는 인생을 왜 그렇게 사냐는 식으로 말하는 이도 있었어요. 닉네임이 기억나는군요. 근데, 왜 지켜야 하냐며 답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죠. 저도 왜 맞춤법을 지켜야 하는가를 아주 완벽하게 스스로 설득하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저 역시 언어가 언중들의 쓰임에 의해 변하는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고, 특히 현대로 올수록 그랬고 또 미래로 갈수록 빠르게 변하리라 예상도 합니다. 저도 'ㅋㅋㅋ' 많이 쓰기도 하고요. 맞춤법을 지킬 때 보다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긴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당위성을 갖기 약한 것 같고요. 그래서 설득하기는 어려운데요, 그래도 알면서 의도적으로 틀리게 쓸 필요는 없잖아요. 아, 문학적 허용은 인정. 어쨌든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 틀리기 쉽고, 인상적인 것들만 몇 개 써 봤습니다.



1.부시다와 부수다
- '부셨다'라는 표현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는데요. 많은 경우 이는 '부쉈다'의 잘못된 쓰임입니다. '부셨다'를 뜯어보면, '부시/었/다'가 되는데요. '-었-'은 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입니다. 과거형과거형. '-다'는 평서형 종결 어미이고요. 문제가 있는 부분은 '부시-'인데요. 이 '부시-'는 동사 '부시다'의 어간입니다. '부시다'는 그릇을 씻는다와 눈 등이 부시다의 뜻을 가진 동사죠. 흔히 뭔가를 부쉈을 때 '부셨다'뿐 아니라 '뿌섰다', '뿌셨다', '뿌샀다(?)' 등이 많이 쓰이는데 '부쉈다'가 맞습니다. '부쉈다'를 뜯어보면 '부수/었/다'가 되는데 여기서 줄이지 않고 '부수었다'라 써도 되고, '부쉈다'라고 써도 됩니다. 한국어에 이런 축약이 허용되는 경우는 많이 있거든요. 대신 '부수다'는 골치 아픈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어간 뒤에 연결 어미 '-어-'와 보조 동사 '-지다'가 붙어 피동문을 만들 때입니다. 이때는 '부서지다'가 됩니다. 어간 '부수-'에서 모음 'ㅜ'가 빠지는데요. '이루다'를 같은 방식으로 피동형으로 만든 '이루어지다'가 '이뤄지다'로 쓰일 수 있고, '메꾸다' 역시 마찬가지로 모음 'ㅜ'가 탈락하지 않은 채 변하는 것과 달리 '부수다'는 '부서지다'가 됩니다. 이유를 배웠던 것 같기도 한데 -.- 아무튼 까다로운 녀석이죠. 아는 분은 가르쳐 주세요. 헤헿.

어쨌든 물건을 부쉈을 때는 '부쉈다'가 맞고 나머지 '부셨다', '뿌셨다' 등은 틀렸습니다.

2.맞추다와 맞히다
- 이것도 상당히 많이 틀리는 표현입니다. 다만 많이 틀리는 것에 비하면 몹시 간단합니다. '줄을 맞추다.'를 뺀 나머지는 '맞히다'로 쓰면 됩니다. 줄을 맞추거나 조각을 맞추거나 옷의 치수를 맞추는 등으로 무언가를 무언가에 대어 맞게 하는 경우요. 이들 외의, 답을 맞히거나 과녁에 맞히는 일 등은 '맞히다'입니다. 아주 쉬워요.
'맞추다'와 '맞히다'는 모두 동사 '맞다'에서 나온 표현인 것 같아요. 일단 '맞히다'는 따로 있는 동사가 아니라, '맞다'에 사동 접사 '-히-'가 붙은 사동사입니다. '맞추다'는 의미가 조금 다르기에 다른 단어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습니다만, 역시 '맞다'가 어원일 것 같습니다. '맞다'에 다른 사동 접사 '-추-'가 붙은 형태가 기원일 것 같아요. 그 뜻에도 '맞다'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요. 혹시 잘 아는 분이 계신다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헤헿... 아무튼 '맞추다'와 '맞히다'는 발음이 비슷하며 의미 역시 비슷하기에 많이 틀리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틀리지 않기가 아주 쉽기도 합니다.

정답과 과녁은 맞히고, 조각 퍼즐은 맞추는 겁니다. 아 참, 답을 맞혀 보는 것 말고 답을 맞춰 보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뭘까요? 서로 시험 끝나면 니는 몇 번 찍었는데 하며 대조하는 거요. 그건 이 답을 저 답에 대보는 거죠. 그러니까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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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얇다와 가늘다
- '얇다'는 반대말로 '두껍다'가 있고, 두께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가늘다'는 반대말로 '가늘다'가 있으며 굵기를 표현하는 말이죠. 두께와 굵기는 둘 다 물체의 양감을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책은 두껍거나 얇고, 기둥은 굵거나 가늘죠. 대신 비슷한 개념을 다루므로 혼동하기 쉽습니다. 다리가 얇다거나 팔이 두껍다거나 하는 표현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엔 맞추다와 맞히다의 사례만큼 많이 혼용되고 있고, 그래서 혹시 이대로 혼용이 지속된다면, 양쪽 모두의 쓰임을 인정해야 하는 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늘다'가 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근데 이건, 단순히 관습적으로 맞춤법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멍청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지킬 실리가 있습니다. 그림은 제가 어설프게 그림판으로 그린 배관인데요. 어떤 게 두께고, 어떤 게 굵기인지를 그렸습니다. 굵고 얇은 배관, 굵고 두꺼운 배관, 가늘고 얇은 배관, 가늘고 두꺼운 배관. 다 다르죠. 물론 이걸 구분해 얻을 실리가 얼마나 클지는 저도 모르겠고 -.- 그리 크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구별해서 사용하면 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므로 좋긴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요약하면 팔과 다리는 두껍거나 얇은 게 아니라 굵거나 가는 겁니다.

4. 할꺼야 vs 할 거야
- '이걸 할꺼야.', '이건 내꺼야.' 등의 표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둘을 원형으로 돌리면 '이것을 할 것이야.'와 '이것은 나의 것이야.'가 됩니다. ㅋㅋㅋㅋㅋㅋ 이건 좀 웃기네요. ㅋㅋㅋㅋ 축약하면 '이걸 할 거야.'와 '이건 내 거야.'가 됩니다. 이건 익숙하죠. 일단 짚을 건 '것'입니다. '것'은 의존 명사로 앞에 용언의 활용형이나 의미를 줄 수 있는 다른 친구(ex. 관형격 조사 '-의')가 와야 하는 명사입니다. '할 것', '탈 것', '먹을 것' 등으로 마구 쓸 수 있는 편한 친구죠. '것'만 있는 것도 아니죠. 가령 '하는 데', '먹는 데' 등으로 쓰이는 '데'도 있고 '뿐'도 있고 '대로'도 있고 '만큼'도 있고 아무튼 엄청 많습니다. ('데'도 '하는데'와 '하는 데'의 차이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쟤는 안 할래용... 너무 길면 지루행...) 쉽게 만들 수 있는 만큼 유연하게 쓸 수 있고, 그래서 한국어 화자를 편하게 만드는 유용한 친구예요. 근데 얘는 엄연히 하나의 명사고 다른 단어이기 때문에 띄어서 써야 합니다. 그럼 '할 꺼야.'와 '내 꺼야'가 돼야겠죠. 여기서 또 쌍기역으로 표기하는 실수가 발생하는 건 발음이 된소리이기 때문인데요. 된소리로 발음하는 건 관형사형 '-(으)ㄹ' 뒤에서 된소리로 나는 것 때문이기에 표기와는 무관합니다.

그래서 '할 거야.'와 '내 거야.'가 맞습니다.

+.보여지다
- 얘는 유명하죠. '이중 피동의 오류'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보여지다'를 뜯어보면 '보/이/어/지/다'인데요. '보-'는 '보다'의 어간이고 끝의 '-다'는 앞서 말한 평서형 종결 어미입니다. 얘들은 됐고, '-이-'와 '-어지'는 앞서 말한 동사를 피동형으로 만드는 표기들입니다. '-이-'는 피동 접사이며 '-어-', 그리고 함께 쓰인 '지-'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어지-'의 형태가 되어 통사적 피동문을 만들기 위해 쓰입니다. 그럼 피동을 두 번 했네요? 이걸 이중 피동의 오류라고 합니다.

'보이다'면 충분합니다.

끝.
사실 운영진께는 맞춤법으로 귀찮게 군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쓰신 글이나 댓글 말고, 사이트의 공지 등에서는 맞춤법 및 어법에 맞는 표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니 그냥 막말로(?), 사이트 대문이니까요. 없어 보이잖아요. 고작 맞춤법으로 없어 보인다는 니가 문제 아니냐고 하신다면 저도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 역시 맞춤법을 비롯한 언어의 사용은 언중의 쓰임에 따라 변하기 마련임을 알고 있고 이를 억지로 붙들어야 할 당위성을 그리 크게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알면 좋으니까 정도로만 받아 주세요. 또 이 방면으로 저보다 훨씬 깊게 알고 계신 분들이 이 글을 보고 코웃음을 치실 수도 있고, 제가 틀리게 쓰는 점을 꼽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그런 걸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고도 물은 물이며 산은 산이라 말할 수 있는 이과놈이라서요. 다만 다른 분들이 제가 지적하는 일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정말, 거의, 말을 꺼내지 않습니다. 단지 틀리기 쉬운 맞춤법 몇 가지를 쓴 글이며, 그 이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곱씹어 본 글이라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용들도 함께 기억해 주신다면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아응, 하필 맞춤법 글을 쓰려니 제가 뭘 틀리진 않았을지 걱정이 됩니다. 미리 말씀드렸듯 저 역시 아는 게 적어 많이 틀리고 특히 어법에서는 더 틀립니다. 다만 개중 많이 틀리나 쉽게 틀린 걸 알 수 있어 고치기 쉬운 표현들 몇 개를 꼽았을 뿐입니다. 모쪼록 너그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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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춤뻐블 잘 직히는 홍차넷이 됍시다.
  • 글 쓰신 분의 고통에 공감합니다. 요즘은 모르거나 실수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비틀어서 알아보기 힘들게 글을 써서 인지능력을 낭비시키는 나쁜 사람들도 있어서 더 괴롭습니다.
  • 나치는 추천
  • 외않되?
  • 마춤뻡 자라고 시퍼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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