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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5/15 22:50:55 |
Name | tannenbaum |
Subject | 가난한 연애 |
전에 말씀드렸듯 이러저러한 이유로 서른에 신불이 되었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신불에 벗어나 재취업을 했습니다. 다행히 경력을 인정받아 연봉은 나쁘지 않았지만.... 친구들이 빌려준 돈을 어떻게든 빨리 갚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주소는 친구네 집으로 돌려 놓고 15만원 고시원에 들어 갔습니다. 창문도 없는 0.5평 고시원.... 생각하면 어떻게 거기서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다행이 라면, 밥, 김치가 제공되었기에 식비는 많이 아낄 수 있었습니다. 받은 월급에서 50만원을 제하고 나머지는 전부 친구들에게 빌린돈을 갚기 위해 모았습니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더라도 핸드폰요금, 고시원비, 교통비, 정장세탁비 등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10만원 남짓이었죠. 그돈에서 헬스장 등록비를 또 빼면 7만원이 남습니다. 그래도... 7만원으로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더라구요. 어떻게든 살아졌습니다. 그러다 알고 지내던 동생이 제게 고백을 해왔습니다. 당시 저에게 연애는 사치였기에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다시 고백을 해오더군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난 앞으로 최소 2년은 더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고시원에 살며, 차도 없다, 남들처럼 연애할 자신도 없고 할 수도 없다. 지금이야 돈은 상관 없다 말하지만.... 그거 얼마 안간다. 그친구는 상관없다 하더군요. 나라는 사람이 좋아서 같이 하고 싶은거라고요.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한 1년은 좋았습니다. 아니...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다 영화 한편 보거나 낙성대 2천원 대패삼겹살집에서 술한잔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 친구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음식을 해먹거나..... 그친구와 사귀는 동안 여행은 딱 한번 비발디파크 다녀온게 전부였지요. 항상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던 그친구가 언젠가부터 그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느낌이 왔지만 애써 외면했습니다. 한참 피 뜨거울 나이였던 그친구도 남들처럼 하고 싶은게 많다는 걸 알았지만 외면했습니다. 그래야 그 친구와 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이기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참 모질었다 싶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친구들에게 빌린돈을 다 갚던 달 급여일이었습니다. 큰 맘먹고 그친구를 데리고 상당히 비싼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적당한 와인 한잔하면서 이제 다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동안 진심으로 고마웠다고요. 그친구는 저보다 더 기뻐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그 친구와 평범한 일상을 상상하며 전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순간 그친구가 말했습니다. '형... 우리 헤어지자.' 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제 빚도 다 정리했고 앞으로 나갈일만 남았는데 얘가 왜 이러나 이해가 안되었죠. '미안해... 여전히 난 형 좋아하고 또 좋은 사람이란거 잘 아는데.... 많이 힘드네. 아닌 줄 알았는데. 나도 겨울엔 사포로에서 같이 노천탕 하고 싶고 가끔 무박으로 바다보러 가고 싶더라. 어쩌다 외식할 때 돈 때문에 형이 멈찟할 때... 참 싫더라... 돈 없는 형이 싫은게 아니라 그 모습을 불편해 하는 내가 싫더라고... 우리 좋아하는 횟집에서 맘편히 먹자고 내가 사려해도 형 자존심 상할까 미리 걱정하는 것도 싫더라... 이제 형 다 정리되어서 다행이야. 내가 이러더라도 조금은 덜 미안해서... ' '미안하다. 그런데 이제 다 끝났으니 이제는 여행도 다니고 먹고 싶은것도 먹고 하면 되잖아. 이젠 그럴 수 있어...' '어떡하냐... 나 형 잘 아는데... 이제는 전세집이라도 만들려고 이전처럼 형은 또 그렇게 살거 다 아는데... 전세 만든 다음엔 집을 또 사려고 할거잖아...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것도 아는데... 그럴려면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거릴거라는 것도 아는데... 그동안 형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아버렸어. 그래서.. 그 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네... 미안해.. 속물이라서 정말 미안해....' 그렇게 제가 빚에서 탈출하던 날 그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친구는 이별선물이라며 노트북을 주었습니다. 제가 쓰고 있던 낡고 오래된 노트북이 걸렸었나 봅니다. 이 노트북으로 일 열심히 해서 빨리 부자되라구요.... 그 친구가 옳았습니다. 빚은 정리했지만 여전히 저는 고시원에서 월 50만으로 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전세로 옮기는데 3년이 걸리더군요. 6년간 살던 고시원에서 전세집으로 옮기고 며칠이 지난 뒤 그 친구에게 연락했습니다. 뭐 건강하냐 잘 사냐 사귀는 사람은 있냐...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다시 시작할래?' '아이고... 우리 형 그동안 하나도 안변했네. 그날 이후 나도 형 많이 생각나더라. 나도 몇번이나 형 찾아가 다시 시작하자 하고 싶더라. 그런데말야... 그 상황에서 도망친 건 나야.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아마 우리 잘 지낼지도 몰라 아니 충분히 잘 지낼거야. 그런데.... 내가 행복할 것 같지가 않네. 이전의 일들을 없는걸로 하더라도 없어지는게 아니니까 아마 계속 난 그일이 생각 날거야. 그런거 같아. 지금 우리가 만나지 않고 그때 만난게 우리의 인연이었고 거기까지였던거 같아... 억지로 붙이면 붙기야 하겠지만 그리고 오래 가긴 하겠지만.... 별로 예쁘지가 않을거 같아...' '그래. 알겠다.' '대신 섹파는 될 수 있는데 어때? 크크크크' '시끄러 임마!!' 또 2년이 지난 뒤 전 아파트를 샀습니다. 물론 60퍼센트는 은행꺼였지만요. 달라진 건 그때 내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고 그 친구 옆에도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거지요. 연애를 많이 했지만 힘들때 만난 사람이라 그런지 그 친구가 가장 생각나네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5-29 11:0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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