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5/24 13:50:05
Name   수박이두통에게보린
Subject   [회고록] 그녀의 환한 미소
수박이는 대학생이 되었어요. 수박이는 학구열을 불태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몹시 신이 났습니다. 수강신청일에 가장 먼저 '성과 문화' 라는 교양선택 과목을 신청했어요. 수박이는 문과력이 충만한 지성인이기 때문에 올바르고 건전한 수업을 듣고 싶었거든요. 교양 필수 따위는 알게 뭐람요. 수업 첫 날 강의실에 갔어요. 대학생이란 학구열을 불태우는 청춘이라는 말답게 수박이와 같은 생각을 한 학우들이 참 많았답니다.

첫 날은 평이하게 진행이 되었어요. 교수는 '성과 문화' 라는 과목데 대한 전반적인 커리큘럼을 알려줬답니다. 커리큘럼을 다 들은 후 첫 수업이 종료 되었어요. 오늘도 학구열을 불태웠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 수박이는 룰루랄라 강의실을 나갔습니다. 강의실에서 나가는 도중에 굉장히 아름다운 학우를 보았어요. 첫 눈에 그녀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여학우였어요. 그녀에게 모든 햇살이 쏟아지는 것 같았어요. 아, 이런게 사랑인걸까요. 사랑은 열린 문. 수박이는 다음 시간부터 신입생의 패기를 이용하여 그녀에게 접근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수업부터 좌석이 지정좌석제로 되었어요. 오, 이런 맙소사. 지정좌석제라니. 수박이는 신입생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뒤에 앉았고, 그녀는 의외로 맨 앞에 앉았답니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지누션이 부릅니다. 전화번호.

수업이 끝났어요. 수박이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기 위해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수박이보다 훨씬 빨랐어요. 그녀는 이미 나가버리고 없었답니다. '성과 문화' 강의실은 계단형 강의실이었어요. 뒤에 앉은 수박이가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신속함이 요구 되었어요. 매번 수업이 끝나고 그녀를 잡기 위해 수박이는 노력했지만 실패하였어요.

중간고사가 다가왔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였어요. 시험 답안지만 내면 바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수박이는 최대한 답안지를 일찍 제출하고 그녀를 건물 정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샤샥샥샤갸샤샤샥샥. 답안지에 쓰고 있는게 정답인지, 오답인지, 한글인지, 영어 혹은 히브리어인지 수박이는 알 수 없었어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시험이 시작된지 10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수박이는 답안지를 제출했어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의실에서 나갔답니다.

후하후하.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수박이는 조금씩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부정맥인가봐요. 부정맥을 가슴에 품은 채로 그녀를 기다렸답니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나오라는 그녀는 나오지 않았어요. 오히려 수박이의 몇 안되는 남자 동기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들은 수박이에게 PC방에서 스타나 한 판 하자면서 아주 못된 유혹을 하고 있었어요. 학우들에게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더 기달려달라. 라고 이야기 하고 그녀를 계속 기다렸어요. 동기 학우들은 신나하며 수박이 주위에서 수박이를 관찰하고 있었어요.

몇 분이 지나자 계단에서 서서히 한 줄기 빛이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녀였답니다. 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몸을 돌려 좌회전을 해요.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어요. 쪽문으로 나가려 할 줄이야. 당연히 정문으로 나갈 것이라 예상했는데, 좌회전이 비보호였던 것일까요. 교통법규를 잘 준수합시다, 여러분. 오늘이 아니면 그녀의 전화번호를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수박이는 급히 그녀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동기 학우들도 졸래졸래 뒤를 따라오고 있었어요.

마침내 수박이는 말을 걸었어요.

"저긻!"

그 때였어요. 어떤 흉칙하고 올바르지 못하게 생긴 손이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흉칙하고 올바르지 못하게 생긴 손에 잡히자 그녀가 환한 미소를 보이며 그 녀석을 꼭 안았답니다. 남자친구인 것 같았어요. 이럴수가, 남자친구가 있었다니. 수박이의 슴가가 무너져내렸답니다. 설상가상으로 수박이의 "저긻" 외침을 흉측하고 올바르지 못하게 생긴 손을 가진 남자친구가 먼저 들었어요. 이런 귀까지 밝은 못된 사람 같으니라고. 그 남자는 돌아보며 수박이를 응시했어요.

"저긻, 선배. 저에요, 수박이~!"

수박이는 당황해하지 않고 허공에 소리를 지르며 계속해서 뛰어갔습니다. 쪽문을 빠져나가서 그녀와 그 놈이 보이지 않을 거리만큼 뛰어갔어요.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얼마나 달렸을까요. 부정맥을 앓고 있는 수박이는 숨이 가빠 그 자리에 멈췄습니다. 수박이가 멈추고 얼마 되지 않아 남자 학우들이 도착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저긻 선배, 저긻 선배, 저긻긻긻긻 선배선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

남자 학우들은 수박이를 보고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수박이는 몹시 창피했어요. 학우들에게 조용히 닥치고 PC방이나 가자며 발걸음을 재촉했어요. PC방에서 스타를 하는데 손이 발이 된 것 같아요. 게임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답니다. 학우들과 게임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그녀의 환한 미소가 생각났어요.

빨리 헤어졌으면 좋겠다. 미사 드릴 때 기도해야지. 하느님이 절실한 수박이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 굳게 믿었어요.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녀는 종강 때까지 헤어지지 않은 것 같았어요. 니체가 옳았어요. 신은 없었습니다. 수박이는 '성과 문화'  C+를 받고 다시는 계단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85%의 사실, 15%의 픽션.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6-05 08:1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3
  • 박제가 되어버린 과거를 아시오?
  • ㅋㅋㅋㅋ 흡입력 쫭이네여 춫천
  • 이불킥각ㅋㅋㅋ
  • 추게로 보내드리겠읍니다.
  • 자문단 위원님들 여기에요 여기
  • 프리미엄 돼지는 춫천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3 문화/예술한복의 멋, 양복의 스타일 3 아침커피 20/08/30 4861 5
1034 의료/건강심리 부검, 자살사망자의 발자취를 따라간 5년간의 기록 4 다군 20/11/28 4874 5
460 역사삼국통일전쟁 - 2. 살수대첩 22 눈시 17/06/26 4894 14
1172 정치/사회비전문가의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향후 추이 예상 20 호타루 22/02/28 4894 28
1100 일상/생각안티테제 전문 29 순수한글닉 21/06/29 4900 34
1091 정치/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완) - 성교육의 이상과 실제 18 소요 21/05/18 4907 27
1160 일상/생각리을 이야기 23 아침커피 22/01/10 4909 68
437 일상/생각[회고록] 그녀의 환한 미소 17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5/24 4915 13
459 일상/생각급식소 파업과 도시락 3 여름 소나기 후 17/06/30 4925 5
1052 정치/사회건설사는 무슨 일을 하는가? 13 leiru 21/01/13 4925 16
747 역사1592년 4월 부산 - 충렬공(忠烈公) 1 눈시 18/12/19 4935 8
1159 경제OECD 경제전망 - 한국 (전문번역) 8 소요 22/01/06 4941 21
1256 기타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세계관 최강자가 68 문학소녀 22/12/09 4941 74
284 일상/생각보름달 빵 6 tannenbaum 16/10/14 4953 14
957 기타출산과 육아 단상. 16 세인트 20/05/08 4953 19
814 역사삼국통일전쟁 - 14. 고구려의 회광반조 3 눈시 19/06/03 4959 12
1058 문학오늘부터 5월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20 순수한글닉 21/02/04 4971 24
1004 철학/종교나이롱 신자가 써보는 비대면예배에 대한 단상 14 T.Robin 20/08/31 4973 6
968 정치/사회미국 제2의 독립기념일과 트럼프 - saying the quiet part out loud 8 다시갑시다 20/06/12 4991 15
893 역사역사 교과서 속 신문들, 어디로 갔을까? 2 치리아 19/11/25 5001 6
1053 일상/생각34살, 그 하루를 기억하며 8 사이시옷 21/01/21 5005 30
768 역사삼국통일전쟁 - 11. 백제, 멸망 8 눈시 19/02/10 5013 19
954 일상/생각큰고모님 4 Schweigen 20/05/02 5025 27
1195 정치/사회검경수사권 조정- 국가수사총량은 얼마나 증발하였나 36 집에 가는 제로스 22/05/02 5027 44
1148 기타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대한 단상 6 경계인 21/12/03 5031 1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