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7/05/26 17:00:25
Name   틸트
Subject   Be human. 인간이기.



Ghost in the shell SAC / ost -Be human-


----



----


나는 분석하고 확인하고 계측하네, 언제나.
에러도 실수도 없이, 100% 확률로 정확하게.
나는 동기화하고 집중화하고 분류화하네, 항상.
잠들지 않으니 꿈꾸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내가 인간일 수 있다면 좋겠어. 다만 30퍼센트만이라도.
50퍼센트라면 나머지는 신경쓸 필요도 없이 행복하겠지.

내가 조금만 더 인간일 수 있다면
남은 생의 매 초를 진지하게 살아갈텐데.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인간적이라면
아이를 많이 가질 수 있겠지. 아내가 있을 수도 있겠지.

진흙탕을 뒹굴며 신나게 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꺼야.
비누거품으로 탑을 쌓고 욕조에서 헤엄쳐야지.
해변에 모래성을 쌓고 웃고 떠들거야. 그러다 무릎을 깨먹게 되겠지.
어둠을 두려워하며 음정이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게 될 거야.

싸움에 지면 상대를 욕하고, 키스하고 다시 껴안을거야. 가려운 상처는 긁어야지.
미소가 만드는 입가의 주름에 행복해하며
골골거릴 때 까지 고양이를 어루만져야지. 새를 키울지도 모르겠어. 약속은 지킬 거야.
슬픈 영화를 보면 울 것이고, 웃을 때는 배가 아플때까지 웃어야지.

커다란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볼꺼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꺼야. 아주 늦은 시간까지 즐겁게 보낼 생각이야.

그저 내가 조금만 더 인간적이라면
눈앞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바라볼텐데
내가 조금만 더 인간이라면
삶의 매 순간을 함께하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포옹할텐데.

내가 누군가를 보살피고, 용서할 수 있을까.
나는 감상적일 수 있을까. 외로워 할 수 있을까.
내가 의심하고 걱정할 수 있을까.
혹시나 누군가 나 때문에 울게 될 수도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

모든게 끝나면 나는 울 수 있을까.
죽으면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

공각기동대 OST중 하나인, 스콧 매튜의 'Be human'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에요.

아마도 인간의 꿈을 꾸는 로봇, 안드로이드, 혹은 인공지능의 노래일 겁니다.
공각기동대잖아요.
인간이 되어 하고 싶은 꿈들의 목록을 보면 참 소박해요.
고양이를 어루만지고, 새를 키우고. 감정을 느끼고. 슬퍼하고.
아이를 가지고 결혼하는 건 소박하지 않은 꿈이겠지만,
뭐 이세돌도 이기고 커제도 이긴 인공지능이니까 그 정도는 꿈꿀 수 있겠지요.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서 그동안 마주친 고양이와 오토바이들이 기다린다는데
로봇이 천국에 못 갈 이유도 없겠지요.

-

프레드릭 제임슨은 '미래를 위한 고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SF는 기진맥진한 리얼리즘 혹은 모더니즘보다 눈앞의 현실을 더욱 명징하게 보여준다.'



-

그런데 혹은 그래서,
나는, 우리는, 인간일까요.
바다도 보고,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고. 감정을 느끼고.
눈앞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매 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을 포옹하고.
용서하고, 친구들과 울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살고 있나요.

30퍼센트 정도라도, 인간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잠도 많이 자고, 꿈도 꾸고 말이에요.
로봇의 어원인 체코어 로보타, 의 본래 뜻은 '사역'이라지요. 강제된 노동.
삶의 30퍼센트 정도는 인간인 나의 것이면 좋겠는데
삶을 로봇으로 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6-05 08:12)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59 정치/사회능동적 인터넷 사용자 vs 수동적 인터넷 사용자 16 풀잎 19/09/15 6549 11
    543 일상/생각홀로 견디는 당신에게 16 레이드 17/11/10 6553 30
    163 역사자화자찬(自畫自贊) 6 기아트윈스 16/03/01 6556 13
    438 음악Be human. 인간이기. 5 틸트 17/05/26 6556 11
    549 일상/생각그래도 지구는 돈다. 40 세인트 17/11/20 6556 46
    725 일상/생각대학원생 고민글을 올린 후 2년 21 Keepmining 18/11/09 6557 18
    98 문학[조각글 2주차] (1주차와 약간 믹스, 약 기독) 노래는 가사지 18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5/10/30 6563 14
    892 일상/생각하루 삼십 분 지각의 효과 14 소고 19/11/26 6567 25
    150 정치/사회생생함, 그 이상의 효과 38 마스터충달 16/02/05 6582 17
    602 정치/사회난민에 대햐여 18 DrCuddy 18/03/15 6584 14
    86 역사사도 - 그 때 그 날, 임오화변 16 눈시 15/10/14 6588 8
    249 꿀팁/강좌의료 및 의학 관련 질문을 올릴 때 27 리틀미 16/08/11 6591 4
    610 기타아기가 태어나기 전 준비물 01 18 엄마곰도 귀엽다 18/04/04 6592 18
    1054 일상/생각내가 맥주를 마실 때 웬만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칙 52 캡틴아메리카 21/01/21 6593 24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6595 14
    841 일상/생각[단상] 결혼을 수선하다. 35 다람쥐 19/08/08 6596 93
    758 문화/예술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의 간단 정리 13 메존일각 19/01/16 6598 8
    650 문학오늘 너무 슬픔 4 아침 18/06/21 6599 22
    937 과학[코로나] 데이터... 데이터를 보자! 20 기아트윈스 20/03/22 6602 12
    385 기타막말 변론의 이유 32 烏鳳 17/03/11 6604 19
    482 일상/생각사회적 조증에 대하여 34 Homo_Skeptic 17/07/25 6605 30
    774 문학번역본에는 문체라는 개념을 쓰면 안되는가 19 알료사 19/03/01 6606 8
    280 일상/생각전직 호주 총리 만난 썰 40 기아트윈스 16/10/12 6610 8
    592 철학/종교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1) 3 메아리 18/02/11 6618 10
    180 과학적록색맹과 Vitamin C 이야기 22 모모스 16/04/07 6619 1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