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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9/13 01:58:04
Name   호라타래
Subject   개인의 유년기 경험은 성인기 이후 세계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 가족의 돌봄구조, 그리고 에스니시티를 중심으로
- 오랜만에 논문 소개로 왔습니다. Chung, A. Y. (2013). From Caregivers to Caretakers: The Impact of Family Roles on Ethnicity Among Children of Korean and Chinese Immigrant Families. Qualitative Sociology, 36(3), 279–302. http://doi.org/10.1007/s11133-013-9252-x 입니다. 지난 방학 때 연구실 스터디 중 제가 맡았던 부분인데, 할 일이 많아서 읽기만 하고 발제는 못한 채 흐지부지 되었었어요. 최근 교육에 대해서만 사이트에 글을 올린 듯하여, 이주 및 가족을 주제로 삼는 논문을 끌어와봅니다.
- 사이트 내에도 이주 혹은 초국적인 삶의 궤적을 경험한 분들이 있으니, 그 분들에게는 이 논문이 어떻게 다가올런지 모르겠네요.
- 생소한 표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댓글로 질문 주시면 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답변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 언제나처럼 번역의 신뢰성은 객관적으로 담보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표현이라 생각하는 것은 직역 혹은 원문을 병행합니다.
- 내용을 전부 직역한 후 요약하면서 다시 문장을 가다듬고 의역했기에 원문의 표현과는 달라진 내용도 있습니다. 혹시나 공식적인 목적으로 이 글을 참고하고자 하신다면, 원문을 같이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각 절 마다 1/3 정도의 내용은 덜어냈기 때문에 중층적인 설명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들어가며

이 글에서는 미국 내 한국계/중국계 이주자 자녀들이 유년기 동안 가족 내에서 맡았던 역할이, 성인기 이후 각자의 에스니시티(ethnicity)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관한 질적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국 맥락의 특성상, 이 글을 읽을 독자 분들은 에스니시티라는 용어가 생소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소 무리가 있는 전환이지만, 개인이 유년기에 가족 내에서 경험한 바가 어떻게 성인이 된 이후의 세계관을 조형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서 글을 읽어주셔도 될 것입니다.

'다문화'라는 껍질을 빌려 한국 사회 내에서도 이주민의 삶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체류외국인 숫자가 200만을 넘어섰다고 하더라도, 단기순환원칙 등의 정주화 방지 방안을 표면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국가 방침상 한국 내 이주민들에 대한 경험적 사례연구는 이미 이주의 역사가 길고, 이주민들의 비중이 높은 다른 나라의 연구와 비교해 볼 때 다루는 주제가 제한적이지요. 사회에 대한 연구가 개별/구체적인 맥락과 유리될 수 없기 때문에, 해외의 맥락을 한국에 기계적으로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이주사회화가 빠르게 진행된 다른 국가의 경험에 기반한 연구들은 향후 한국에서 일어날 변화를 상상하는데 도움이 될 도구를 제공하리라 봅니다.

연구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맥락들을 소개한 후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에스니시티(ethnicity)는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대개 민족 집단. Ethnic group이라는 표현을 통해 따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혹은 그 집단이 공유하는 문화적 특징을 가리킵니다. 인종적(racial)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문화적인 측면에 주안점을 두어 구성된 개념입니다. 다만 에스니시티 개념을 이해할 때는 이것이 문화적이기에 개별 국가의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에스닉 집단 간의 상호 이해나, 권력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종적으로는 같을지라도, 에스니시티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요. 이주 연구에서는 에스니시티, 혹은 에스니시티가 각 에스닉 집단에 끼치는 영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미국에서 흔히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라 불리는 아시아계(특히 한국, 베트남 등) 이주민들이 자녀의 교육적 성취를 강조하는 문화적 규범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규범이 자녀들의 생활 세계에서 항상 마주치는 같은 에스닉 집단의 '어른들'을 통해 강화되고 유지되어서(사회적 자본), 결과적으로 높은 학업 성취를 이끈다는 연구 결과가 대표적이지요. 2) 가족의 돌봄 제공 구조(caregiving arrangements)는 저도 이 논문을 통해서 새로 접한 용어입니다. 이미 학문적으로 성립된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문에서 중요하게 활용하기 때문에 지적하고 넘어갑니다. arrangements를 구조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은 꼭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서 조심스럽네요. '배치'라는 느낌을 섞어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이 연구에서는 글로벌 경제라는 맥락에서 이 돌봄 제공 구조가 과거와는 달라지며, 대안적인 돌봄제공 구조(alternative caregiving arrangements) 속에서 자녀들이 맡는 역할은 전통적인 부모-자녀 관계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주의 시대(the age of migration)라 불릴 정도로 국경을 넘나는 인적 이동이 가속화, 가시화 되고 있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높은 현대 사회 속에서 주로 부모(그리고 어머니가)가 자녀의 일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지도하는 전통적인 돌봄 제공 구조는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읽으면 파악이 가능하실 겁니다. 또한 꼭 이러한 구조적인 맥락에만 주목하지 않더라도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으로 돌보는 것은 아닙니다. 3) 사실 본문에서 다루는 형태의 이주 사례들은 한국에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가족 이주가 일부 전문직을 대상으로만 제한되어 있고, 미숙련 노동자들에게는 가족 재결합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정책적 주목도가 높은 '다문화 가정/국제결혼이주 여성'은 한국인 배우자와 외국인 배우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돌봄제공 구조(alternative caregiving arrangements)에 대한 논의들은 가족의 위기를 논하는 한국 맥락에서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한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이전까지의 선행연구들이 가족 내 역동을 경시했다는 점을 들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즉, 미국 내 가족/이주에 대한 연구들은 이주자 가정이 구세계의 전통적 가치를 전달하는 고정된 역할을 하며, 2세대들이 그것을 받아들여 미국적 문화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미국적 문화에 재적응하리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흔히 첫째와 둘째가 성격이 다르다고 농반진반 이야기하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가족 내에서 각 자녀들이 지니는 사회적 위치(social standing)는 동일하지 않고, 이것은 각자의 성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이주자 자녀는 상대적으로 적응이 빨라 가족의 이주 후 적응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가족 내 역동(internal familial dynamics)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현상을 보다 적실하게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가족 내 역동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 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과거에는 부모에게 집중되어 있던 권한, 책무가 이른 시기에 자녀에게 넘어간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덕분에 자녀들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감정적인 관리자(Emotional Manager)의 역할을 맡아 감정 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저자는 감정 노동(emotion work)에 관한 호스차일드(Hothschild, 2003: 7)의 정의를 끌어옵니다. 감정 노동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적절한 상태를 만들어내는 외적인 공손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요구(requires one to induce or suppress feeling in order to sustain the outward countenance that produces the proper state of mind in others)”하는 종류의 노동을 말하지요. 이러한 감정 노동은 돌봄(care)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회적 위치를 지닌 자녀들이 돌봄 노동의 결과로 말미암아 생겨난 감정적인 부담을 어떻게 다루며, 이것이 부모-자녀 사이의 애착, 부모의 문화 및 같은 에스닉 커뮤니티에 대한 애착, 종국에는 에스닉 정체성에 대한 태도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연구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방법론에 대한 개괄적 소개


심층 면담 방식을 이용한 질적 연구입니다. 뉴욕/뉴저지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 중국, 대만계 미국인들과 각 1시간 반 가량 면담을 실시했습니다. 2004-2008년 사이 54명과 인터뷰를 수행했고, 그 모두를 분석했지만, 논문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그 중 14명과의 인터뷰 자료입니다. 연구참여자의 표집은 25-40세의 인구집단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생애발달주기 이론에서 볼 때 이 시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정체성이 보다 안정적이며, 결혼/가족/경력/문화와 같은 문제들을 고심하는 편입니다. 과거의 가족 경험이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각자 회고적으로 재구성한 시각을 파악하기 용이하지요. 여기서 회고적(retrospective)이다, 과거의 재구성이다라는 표현이 암시하듯이 이러한 시각은 때로 객관적인 증거와는 위배될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의 주관적인 세계에서는 (설령 왜곡되었을지라도) 이러한 시각이 영향을 끼칩니다.

인터뷰 자료의 분석 방법 및, 질적 연구에서 중요하게 간주하는 연구자 자신의 편견/배경 제시는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방법론에 관심이 더 가시는 분은 본문을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 가족 내에서 맡은 역할을 통해 감정을 협상하기(Negotiating Emotion through Family Roles)

문화적 중개자(Cultural Brokers)

연구에서 사용하는 "문화적 중개자"라는 표현은 비단 이 연구만의 독특한 표현은 아닙니다. 이주/가족에 대한 선행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어서 명명된 표현이지요. 이주자 자녀들은 이주한 사회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에, 혹은 아예 그 곳에서 태어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적응 속도가 느린 부모를 위해 두 세계 사이의 문화를 중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연구에서 문화적 중개자들은 가족을 돌보는 역할(caretaker)을 하고, 가족 내에 책임을 지닙니다. 떼문에 가족 구조에 잘 통합되고, 가족의 문제들에 깊이 관여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전통적인 젠더 역할에서는 가족을 돌보는 책임이 여성에게 부여되기 하기 때문에, 문화적 중개자들은 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향후에 논할 자율적인 돌봄수행자(autonomous caretakers)들이 소외감과 박탈감을 표현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문화적 중개자에 속하는 연구참여자들은 가족 구성원들을 돕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어린 시절에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였는가 아닌가와는 상관이 없었지요. 결과적으로 부모와의 관계는 상호 호혜적 의존에 기반을 둡니다. 그 결과 부모-자녀 사이의 권력 균형이 변화하고, 심지어 전통적인 젠더 역할이 전복되기도 합니다.

문화적 중개자는 노동 계급 출신들 중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부모님의 영어 숙련도가 부족하고, 가족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망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친척을 자녀 양육을 위해 불러온다거나 하는 대안적인 돌봄 제공 선택지는 택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자녀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어른들이 맡고 있던 의무와 부담을 이전받게 됩니다. 하지만 중간/상위 계급 가정 자녀들 사이에서도 문화적 중개자 역할을 맡는 경우는 있습니다. 부모가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나, '기러기' 가족처럼 자녀와 떨어져서 사는 경우가 그렇지요.

흔히 딸이나, 첫째 자녀는 문화적 중개자의 의무를 맡으리라는 기대를 받고는 합니다. 젠더, 출생 순서에 따라 돌봄 수행 역할을 다르게 위임하는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가치 때문이지요. 첫째 자녀들은 나이도 많고, 가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 했기 때문에 다른 자녀들에 비해 정착의 초기 단계에서 부모가 경험한 어려움을 목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부모가 분투해 온 삶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지요.

25세 한국계 미국인인 Suzanne은 Queens의 저소득 가정 출신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 삶이 이주자인 부모에 대한 의무와 공감의 감정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는 가족 사업을 돕거나, 어린 동생들을 돌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현재는 가족과 떨어져서 살고 있지만, 그 덕분에 가족이 얼마나 그녀의 일상적인 삶에 의미를 끼쳤는가를 성찰하고, 이민자로서 부모님이 겪었던 고생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조사관들이 상점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들이 터무니없다고 느끼는 바람에 (항의를 해서) 조사관들에게서 폭행으로 인한 처벌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는 Department of Consumer Affairs에 가서 아버지를 대변해야 했지요. 벌금을 줄이거나, 처벌에 항의하기 위해서요. 나는 판사 앞에 가야 했고, 거기 있는 조사관들에게 우리 사건에 대해 애원해야 했어요. 그 때 나는 열네살이었어요(짧은 웃음).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즐겁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뭐든지 마지못해서 했지요. [현재,] 부모님이 나를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내 생각에 나는 부모님을 더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떨어져 살아보니 내가 어떻게 자라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더군요. 덕분에 부모님에게 새로운 형태의 존중을 지니게 되었어요. 이 존중 덕분에 부모님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지요.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내 부모님들이 우리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하셨는지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던 것 같아요. 우리는 학교에서 열심히 해서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을 느꼈어요"]

희생, 공감, 그리고 의무라는 주제들은 이 범주에 해당하는 다른 이들의 서사 전반에 걸쳐 공명합니다. Stacey는 가족 내에서 문화적 중개자의 역할을 맡았고, 수많은 가사, 돌봄, 통역 업무를 받아들였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미국과 캐다나 국경을 몰래 넘어갔던 일을 모호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모호한 기억은 부모의 희생에 대해 느끼는 그녀의 개인적 죄책감과 뒤섞입니다. 그녀가 친구나, 진지하게 교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이주자 부모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표출하고, 자신의 배경과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기 편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문화적 중개를 수행한 친구들과는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어린 시절 그들이 부모를 돕고/돌보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직면해야 했던 스트레스 때문이지요. 이 스트레스는 평범하지 않은 에스닉 그리고 계급 배경에 기반을 둡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Stacey는 그녀의 집에서 언어, 전통, 그리고 문화를 가르치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문화적 중개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번에는 가족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세대 구분을 가로질러 서로를 잇고자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녀는 추가적으로 광동어를 공부하고, 홍콩을 방문하고, "[내 부모가] 완전히 나에게 이질적으로 느끼는 태도들을 가지지 않고자 노력"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녀들을 중국어 학교에 보내고, 월요일에는 가정에서 광동어를 사용하는 등 계속해서 부모님의 문화적 뿌리와 접촉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연결 유지(maintain)가 왜 중요하냐고 느끼는지 물어봤을 때, 그녀는 할아버지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아들이 가족 간의 유대를 잃지 않기를 원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확대가족과의 이러한 유대는 그녀는 결코 지녀본 적이 없는 것이지요. 에스니시티에 대한 Stacey의 접근이 개인적 희생, 가족의 유대감을 형성하기(family bonding), 그리고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뚜렷해 보입니다.

문화적 중개인의 또다른 좋은 사례는 필리핀에서 3살 때 이민 온 27세 중국계 미국인 남성인 Mark입니다. 비록 여성 중개인이 남성 중개인보다 더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Mark는 가사일 뿐만 아니라 부모가 하는 돌봄수행 의무(parental caretaking responsibilities)까지도 담당했습니다. 이유는 그의 여동생이 당시에 너무 어렸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여동생이 이러한 의무를 담당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을 때, Mark의 부모는 미국에 정착했고 경제적인 안정도 획득했습니다. Mark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맡은 돌봄제공 의무는, 그가 전통적인 젠더 구분을 가로 지르도록 추동했지요. 에스닉 정체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Mark는 대만어에 능숙하고, 친한 친구와 연인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입니다. 자신이 가족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크게 중시했기 때문에, Mark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기회를 포기하고 대신에 동생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Mark는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자신보다 더한 희생을 했고, 자신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Mark가 부모와 부모의 문화에 여동생보다 더 많이 애착을 느끼는 것은 전통적인 젠더 역할 기대와는 차이가 있지요. 그것과는 별개로 두 문화를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이 범주에 해당하는 연구참여자들은 가족의 불화를 중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그들 부모의 유산과 가치를 더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전수하는 것을 돕습니다.

가족 구조가 불안정한 경우는 어떨까요? 가정 폭력이나, 부모 중 한 쪽과의 부정적인 관계가 가족 문화에 대한 존중을 약화시키리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출신의 중국-대만계 미국인인 29세 Kimberly의 사례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이 증가하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보호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집을 떠나도록 독려하고, 정부 보조를 찾도록 돕고, 어린 여동생을 돌보고, 상황이 어려울 때 가구의 문제를 돌보았습니다. 비록 그녀가 가족 간 강력한 유대에 수반되는 "아시아계 가족의 추악한 면"을 인정하지만, 또한 이러한 강력한 유대가 어려운 시기 동안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유지시켜주고, 그들이 아버지의 폭력이 남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말합니다. 다음의 진술은 그녀가 어떻게 어머니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부모님이 심각하게 싸웠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나는 밤에 깼어요. 어머니가 나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어요. 나는 어머니에게 경찰을 불러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자고 말했어요. 경찰은 Crisis Center로 가라고 말했고, 우리는 다음에 어찌해야 하는지 알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냈어요. 나는 확실히 [우리 어머니도] 가슴 깊숙히에서는 떠나기를 원했다고 확신해요. 하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여성 – 아시다시피 그녀가 실제 일할 수 있는 곳은 당시에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 어떻게 삶을 헤쳐나가고 두 아이를 키우겠어요? 나는 어머니가 겁에 질렸엇다고 확신해요. 그녀는 어떠한 정부 지원을 얻을 수 있는지 몰랐고,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도울 수 있었어요. 이러한 점에서, 다시 말하자면, 나는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빠르게 자랐어요. 어머니는 내 여동생과 나를 위해 희생했어요. 어머니는 자신이 어리고, 내가 아기였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자살하기를 원했었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여성으로서, 나는 내가 어머니와 이어질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내 어머니가 겪어온 고통들과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언급한 바와 같이, Kimberly가 가족에 대해 지니는 유대는 어머니가 이주자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겪었던 고난과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 사이에서 계속해서 해석자와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가족을 하나로 유지하고 있지요. 결과적으로 그녀는 오직 다른 중국인 친구나 중국인 남자 친구만이 가족 내에서 그녀가 맡아야만 했던 중개자 역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배경 때문에 자신이 대학 시절 “미국화 된” 아이들보다 “낙하산 아이”(타이완 출신 조기 유학생들, 혼자 살거나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과 생활함)의 가치에 더 끌렸다고(related to)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가족 의존자(Familial Dependents)

세 가지 범주 중 가장 전통적인 경로를 대변하는, “가족 의존자”로 범주화되는 이 개인들은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을 당연시하는/이성애규범적인(heteronormative) 가족 구조 내에서 성장합니다. 이 가족에서 부모들은 가정과 직장 양 쪽에서 어른의 역할과 책임을 맡아 자녀들에게 돌봄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의 저자는 가족 의존자의 범주에 친척이나 나이 든 성인 형제자매 같은 “대리” 부모들 손에서 자란 자녀들을 포함했다고 적습니다. 왜냐면 이러한 대리 부모들이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일상적인 필요를 충족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전달했기 때문이지요. 전통적인 한국 혹은 중국계 가족 위계 내에서 의존자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자녀들이 효, 복종, 의무의 대가로 어른들로부터 돌봄, 지지, 지도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부모는 단지 규칙적으로 자녀를 지도하고 감독할 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 딸과 아들의 적절한 역할에 대한 젠더화 된 규범과 기대를 강화합니다. 의존적인 관계를 함양시키는(cultivated) 것이지요. 하지만 부모의 이러한 이상이 언제나 현실로 구현되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적절한 의사소통 경로 없이 한국 혹은 중국 문화의 보다 전통적 측면을 포용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종종 부모 자녀 사이에서 씁쓸한 갈등을 야기하지요.

대부분의 이주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린시절부터 성인의 의무를 지우기보다는, 어떻게든 자녀를 돌보는 것을 선호합니다. 연구참여자들의 사례는 노동 계급 가족이라 하더라도 여성에게 생계유지에 더해 어머니 역할에 대한 압박까지 가하거나, 다른 친척들을 데려오거나 하는 식으로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부모-자녀 관계가 경제적인 수단이나, 확대 친족 네트워크를 지닌 가구 내에서 보다 쉽게 유지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중 혹은 상위 소득 가구는 자녀들이 가구의 생산 혹은 재생산 노동에 기여하도록 하는 대신 가족 의존자로 남아있도록 하기가 용이한 편이지요.

가족 역할이 가족 내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순위에 따라 구조화 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모의 에스닉 전통을 높이 평가하는 가족 의존자는 효와 가족 위계라는 틀(framework) 내에서 행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부의 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란 34살 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인 Grace는, 그녀의 부모를 그들의 핵심 가치가 무엇보다도 가족, 종교, 효, 그리고 교육이라는 점에서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라고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가 미국식 휴일을 축하하고, 부모님들이 감정을 “미국 식의” 단어나 포옹을 통하여 표현한다는 점을 통해 그녀의 가족이 미국적인 가치와 전통을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 편입시켰다는 점도 빠르게 눈치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이주자 부모님이 얼마나 많이 전통적이거나 혹은 “미국인다운”가가 아니라, 그들이 이러한 문화를 혼합하여 결혼, 가족 그리고 전통의 조각들을 창조해내는 방식입니다. 그녀는 이러한 방식들을 그녀의 삶에서도 모방하기를 원하지요.

["제 부모님은 모두 대단하신 분이고, 저는 진심으로 부모님을 역할 모델로 받아들여요. 제 아버지는 매우 사랑이 많으셨지요. 사랑이 많으셨지만 매우 엄격했어요. 저는 제 아버지가 저를 가장 좋아하셨다고 느껴요. 의도가 있으셨다기 보다는 제가 첫째였고, 제가 아버지를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언제나 아버지 같은 남자를 원했고, 제 남편도 정말 제 아버지를 닮았어요(짧은 웃음)… 비록 제 남편이 능숙하지는 않지만, 그는 대부분의 친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우리 문화를 이해해요.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는 비슷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제 남동생이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어요. 그녀는 우리 부모님께 매우 무례했고, 우리 모두 이것이 관계를 파괴할 정도의 큰 문제라고 느꼈지요(that’s a deal breaker), 어떻게 당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존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어요."]

Grace는 그녀의 가족과 확대 친족 양 쪽 모두에서 존재하는 자신의 “장녀” 역할에 가치를 부여했고, 효 관계를 나름의 방식으로 재창조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저는 제 어린 사촌들에게 일종의 누님이었어요. 저는 계속해서 그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그들이 학교에서 좋은 SAT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했지요… 저는 제 모든 사촌들을 그들의 동생들에게 책임감을 지니게 했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저는 그러한 방식으로 사촌들을 돌보았어요” 그녀의 경우, 주로 한국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이든,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유지하는 것이든, 한국인 교회에 가는 것이든 혹은 형제자매와 조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는 것이든, 에스닉 뿌리를 지킨다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녀 부모님의 문화적 유산과 종교적 가치의 측면을 보존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가족 의존자들에게 주요한 문제는 그들을 부모와 분리시키는 많은 문화적 차이들을 조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전통적 가족 가치” 그리고 양부모 구조는 세대 간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반을 놓기도 하지만, 연구참여자들이 주장에 따르자면 이러한 형태의 가구에서 자란 2세대들은 반드시 가족 내에서 안정적인 감정적 공간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공간은 미국적인 준거의 틀(frame of reference) 내에서도 타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족 내 존재하는 층화된 관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두어 놓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족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을 찾습니다. 비록 그들이 부모의 삶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a measured degree) ”존중”을 표현할지라도, 감정적인 거리는 두고 있는 것이지요.

인터뷰에 참여한 두 한국계 미국인, Young과 Jinah는 가족 위계 내에서 서로 다른 위치와 연관되는 부담 때문에 부모님과의 감정적인 연결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표현했습니다. Jinah는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룩한 30살의 젊은 전문직입니다. 어린 시절, Jinah는 친척도 없었고, 가족은 유일한 남동생에게만 집중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에, 가족 내에서는 안정적인 사회적 역할과 감정적 둥지를 확보하기가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감정적/경제적으로 독립을 했지요. Jinah의 부모님은 그녀를 한국인 교회에 가게 하고, 지역의 한국인 커뮤니티에 깊이 참여하게 했지만, Jinah는 부모로부터 자신이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에 가치를 매우 크게 부여했습니다. Jinah는 부모님의 시각과 전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편협한 지역주의로만 보였지요. 오히려 Jinah는 부모님들이 한국계 미국인들의 작은 우리(Korean American niche)에 국한되기보다는, 영어를 더 잘 배우고 미국 사회로 통합되기를 바랐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Jinah의 사례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문화적인 격차가 완화되지 않으면, 단순히 에스닉 기반 커뮤니티와 제도(institutions)에 노출시키는 걸로는 2세대들 사이에서 강한 에스닉 동일감을 배양하기 부족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지요.

Jinah는 자신을 "지구적(global)" 그리고 "세계적(cosmopolitan)"인 미국인으로 정체화하고 있었으며, 그녀를 "전형적인 한국인" 혹은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정형화하여 인식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대학교(college) 때부터, 그녀는 전세계에서 온 외국인들과 친밀한 관계와 낭만적인 관계를 발전시켰지요. 다른 한국인들과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한국인" 대 "미국인"이라는 그녀의 단어 병치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인들이 그들 자신을 유지하는 방식이 "미국인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높은 계급/교육적 배경에 기반을 두어 형성한 "세계시민적 정체성"을 통해 자신이 가족 내에서 그리고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감각(sense of social displacement)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의 성공을 세계시민주의적 미국인의 렌즈로 해석하여, 가족에서 겪었던 문제와도 화해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해석은 가족 문화 내에서 그녀의 소속감을 형성하기 보다는, 부모와의 갈등적인 관계를 감정적으로 화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저는 한국인이에요. 제 부모님은 한국에서 무일푼으로 이민와 이러한 큰 사업을 일구어냈고,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요. 저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않았고, 이 점에 자부심을 느껴요. 그리고 제가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사랑해요. 제 부모님은 아메리칸 드림 자체이고, 저는 그러한 유산이 일종의 영속화가 된 것이지요. 따라서 저에게 이건 중요해요."]

Jinah가 부모에 대해 지니는 자부심은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그들의 능력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부모가 성취한 "아메리칸 드림"은 그녀에게 미국 사회 내 정체성과 중요성을 제공하지요. "세계시민적 미국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은 그녀 부모님의 분투에 대한 이러한 해석과 잘 맞물립니다.
Young도 비슷한 감정적 단절을 느끼지만, 그 이유는 부모의 관심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친척들 사이에서 유일한 남성이기에 생겨나는 자신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한국계 미국인" 보다는 "미국인"이라고 뚜렷하게 주장하는 Young은 여자 형제와 사촌 사이에서 유일한 "남자 후계자(male heir)라는 압박이 어떻게 자신을 반항아로 만들었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 아닌 여성과 사귀었고, 과보호하는 부모로부터 물리적인 거리를 두었지요. Jinah와 마찬가지로 Young도 가족과 가족의 문화 모두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그러면서 개인성, 다양성 그리고 자유라는 그의 미국적인 이상을 침해하지 않는 가치를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족에서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Young은 아버지의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해라(pull-yourself- up-by-the-bootstraps)"는 철학을 자신도 물려받았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쟁과 가난을 뚫고 좋은 대학을 졸업했지요. 이러한 놀라운 성취는 Young이 아버지의 발걸음을 따르도록 고무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서사가 Young과 공명하는 이유는 이것이 능력주의라는 미국적 이상에 대한 Young의 개인적 믿음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흥미롭지요.

자율적인 돌봄수행자(Autonomous Caretakers)


논문에서 "자율적인 돌봄수행자"로 간주되는 자녀들은 가정 내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아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오랜 시간 일을 하거나, 물리적으로 부재했거나, 가족에 무관심했기 때문이지요. 이 경우 자녀들이 부모와 맺는 감정적인 관계는 약합니다. 부모가 기본적인 부모-자녀 관계를 유지하고자 거의 노력하지 않았고(be rarely around to), 자녀와 건강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을 저해하는 정신적/물리적 문제를 안고 있었기 떄문입니다. 문화적 중개자들과 비슷하게, 이 유형의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가족 내에서 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고, 자율성을 행사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역할이나 책무는 다른 가족 구성원을 돌보기 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에 방점이 찍혀져 있습니다.

부모의 도움이 거의 없이, 자신들을 돌보게 되는 과정은 연구참여자들 사이에서 각기 달랐습니다. 몇몇은 부모님이 대안적인 돌봄제공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강요 받았습니다. 노동 계급 가정에서 가장 자주 직면하는 구조적 제약이지요. 이러한 어려움은 자녀들이 당면한 지역 사회 혹은 학교 동료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견뎌내는 일반적이지 않은 어려움과 소외와 혼합됩니다. 자녀들이 당면한 지역 사회 혹은 학교가 특히 도심 내부의 가난한 소수자 중심 지역(poor minority-dominant inner-city areas)일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지지요. 하지만, 자율적인 돌봄수행자들이 불안한 가정 구조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감정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물리적으로 학대하거나 혹은 역기능적인(dysfunctional) 가족 구조에서 자란 경우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비록 경제적인 어려움이 확실히 이러한 문제들을 악화시키지만, 연구참여자들은 이러한 형태의 정신적인 무질서가 오직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가족 구조를 통틀어서 발생할 수 있으며, 젠더 혹은 출생순서와는 상관 없이 가족 내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절에서는 이러한 자율적인 돌봄수행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부모와의 의사소통, 친척과의 관계 수립, 에스닉 커뮤니티 내에서 대안적인 동료 지지의 탐색에서 경험하는 어려움(inabilty)으로 인해 어떻게 악화되는지를 논합니다.

부모가 드라이 클리닝 회사에서 장시간 일해야 했기 때문에, 현재 25살인 한국계 미국인 재단사 Esther는 2살 때부터 이웃인 독일계 미국인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들을 "Mommy", "Pop-pop"이라고 다정하게 불렀지요. 하지만 10살 때, 그녀는 그의 일반적이지 않은 양육의 결과로 말미암아 인종적인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결국에는 유년의 남은 시기들을 혼자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녀가 다음의 진술에서 설명하기로는:

["네, 우리는 정말, 정말로 이웃과 친했어요. 그래서 그들의 집에서 하루 종일 머무르고는 했지요. 부모님은 우리를 8시쯤, 7시에서 9시 사이에 데리고 갔어요. 부모님이 언제 일을 끝내건 그 이후에요. 그리고 우리는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과 저녁을 먹었어요... 내가 이웃 집에 가는 것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2살 때 나는 백인이 아니고 그들은 백인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깨닫게 되면서부터에요. 그리고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식료품 쇼핑을 가고,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은 "입양하신 거예요?"라고 물었지요. 나는 그것이 내 부모님들께 매우 모욕적이라고 느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악의없이 한 말 때문에, 저는 어린 시기부터 정체성 위기를 경험했지요. 그리고 이것은 고등학교를 끝마칠 때까지 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내가 어린 아이였던 시점까지 가야해요. 저는 "저는 입양아가 아니에요. 저는 지금 보모와 있을 뿐이에요"라고 적혀진 광고판을 입고 싶었어요. 이상한 상황이라 할 수 있지요. 왜냐하면 내가 다른 아시안들에게 이거에 대해서 말했을 때,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자신의 문화적 커뮤니티, 이를테면 할아버지나, 일요 학교, 혹은 그런 곳 내에서 안락하게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별다른 문제가 아니였어요. 저에게는, 이것은 "너 한국인이야?" 혹은 "너 미국인이야?" 같은 것이었어요.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저는 저에게 자리잡아, 제가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러한 것이 미국적인 사고 방식이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요."]

위 진술에서는 그녀가 다른 가족들과 강력한 감정적 연결을 느끼고 있지만, 이러한 대안적인 돌봄제공 구조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녀에게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을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인종적 소수자 지위에 대한 강한 인식을 심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분리된 양육 경험 때문에, 그녀는 친구 대부분과 남자 친구는 비아시아계에서 구했으며, 스스로를 장난 섞어 "Twinkie"라고 불렀지요(그녀의 외적인 특징에 있어서의 Yellow와, 내적인 페르소나에 있어서 White를 가리킵니다).

그녀는 유년기 동안 부모님과의 관계가 격정적이었고,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부모님의 부재 뿐만 아니라 남동생에 대한 특별 대우 때문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녀가 양육된 다른 돌봄 제공 맥락은 그녀가 부모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배양할 수 있을 편안한 가족 공간과 같은 것을 형성하지 못하게 했지요. 또한 그녀는 청소년 시기 때 형성되기 시작한 인종적 파벌과 관계맺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협상하는 것을 힘들어했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켰습니다.

부모의 영향에 대한 문화적 그리고 감정적 거리는 단지 이러한 아시아계 미국인이 단순히 백인 앵글로 미국인의 주류로 "동화"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26세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Peter는 "중국계 미국인" 정체성을 넘어 "아시아계 미국인"로서 정체성을 더 강하게 지닙니다. 소위 "미운 오리 새끼(black sheep of the family)"로서, 그는 자신과 중국어로 의사소통 하기 힘든 부모와의 사이에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보다 "안정적"이라 느끼는 누나와의 사이에서, 거의 보지 못한 몇 안 되는 친척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것이 매우 적다고 느낍니다.

Peter는 부모님이 오랜 시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누나의 도움을 받으며 맞벌이 부부의 자녀로 자랐습니다. 누나와는 돌봄수행 행위를 공유하지만, 그가 가족으로부터 느끼는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거리는 연결되지 않지요. 부모의 문화에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Peter는 반복해서 "저는 제가 중국계 미국인이라고 인식하기 이전에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인식하는 편이에요"고 말했습니다. 그 증거로, Peter는 그가 "자문화중심주의"로 향하는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사귀는 것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비슷한데, 대부분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에서 일했지요. Peter는 결국에는 자신이 가족들로부터 받지 못한 지지를 구하기 위해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는 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지만, 많은 친구들과는 정말로 강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고등학교 시기, 저는 어떤 아시안 조직 혹은 그런 무언가에 속해있지 않았지만, 이후에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지요. 당신은 여러 방식으로 커뮤니티에게서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매우 열정적이고 70년대의 시민권 운동의(Civil Rights movements) 일부였던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혹은 무언가를 하도록 자극하는 이야기를 하는 예술가나 영화제작가를 만날 수도 있지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제가 열정을 느끼는 무언가라는 뜻이에요.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들을 위한 공중 미디어에 노출된다는 면에서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 관여하고 있고, 제가 여기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Peter의 소속감은 그의 가족이나, 가족이 속한 소위 "자문화중심적" 연결망이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가와 영화제작자들의 더 큰 커뮤니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광범위한 아시아계 미국인 범에스니시티(panethnicity)의 우산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자신의 부모가 중국인 에스니시티에 좁은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배제와 같다고 여깁니다.

27세의 중국계 미국인이자, 언어 프로그램 보조인 Jasmine은 코네티컷에 있는 저소득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장시간 일했고, 학교 생활을 지도하기에는 문화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본질적으로) 언니가 나를 키웠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녀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척이 없었고, 어떠한 에스닉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았고, 교회에 갈만큼 충분히 종교적이지도 않았습니. 두 자매는 성장해가면서 식사를 스스로 차려야 했고, 세금도 스스로 내야 했지요. Jasmine은 그녀의 인종적 정체성과 성적 정향 모두를 두고 상당히 고통을 겪었는데, 아시아계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반의 흑인 학생들로부터 고등학교 시절 내내 인종적인 조롱과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지원망도 없었지요. 그녀는 "저는 제 외모를 증오했어요. 제 부모님이 저에게 중국어를 하는 것을 증오했어요. 단지 부모님이 중국어로 이야기 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를 제가 증오했으니까요. 저는 모두가 우리들이 외계인인 것마냥 자신들의 머리를 돌리는지를 증오했어요"고 인정했습니다.

비록 그녀가 이러한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녀의 쫓겨난 지위가 계속해서 그녀의 깊은 고립감과 이질성을 어떻게 불어넣는지를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Jasmine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다른 아시아계와 어울리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어떠한 종류의 정체성에 너무 깊이 결부되는 것은 위험해 보였으며, 그 이유는 그녀의 가족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 경험한 잔인함에 방책을 거의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밝혔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가 제 자리가 아니라는 것 이상을 느껴요. 제 정체성은 정체성이 아닌 것(non-identity)로 변화한 듯해요. 저는 고등학교 신입생 때 있었던 한 상황이 특히 기억나요. 인종적 멸칭을 수없이 들었고, 집에서 울었던 기억이 나요. 저는 학교로 돌아가기를 절대 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여기 앉아서, 어떻게 일을 해결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대신에, 너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던 기억이 나요. (하) 그래서 저는 매우 독립적이었어요, 사람들을 정말로 쉽게 잘라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절대로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았어요. 어떻게 사람들이 집단 속에서 일반적일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저는 언제나 따돌림 당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사고방식(mentality)는 언제나 당신이 커뮤니티가 없을 때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했던 것이었어요. 당신은 특별해지는 감각을 원하고, 그래서 매우 개인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내지만 이것은 매우 취약해요. 왜냐면 당신에게 자신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당신은 무리를 많이 벗어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니까요."]

비록 그녀가 다른 인종적 배경 출신 사람들과 사귀기는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흑인과는 유년기의 괴롭힘 때문에, 백인과는 그들이 그녀가 인종적 정체성에 대하여 항구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계들과는 그녀가 내면화했다고 느끼는 고정관념 때문에 관계에 있어 불안함을 해소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Jasmine의 경험은 "동화"로는 잘 정의되지 않고, 그보다는 어떠한 집단적인 정체성에도 그녀가 느끼는 "고립"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대다수의 자율적인 돌봄수행자들은 다른 자녀들이 경험하는 젠더화 된 부담 중 다수를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몇몇 경우 가족으로부터의 성별 분업적인/이성애 규범적인(heteronormative) 이상으로부터 갈등이 유발되기도 합니다. 25세 중국계 미국인인 Logan은 그의 어머니가 그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안 10대 이후 가족으로부터 배척 당했습니다. 어머니가 Logan이 쓰레기통에 버린 남성 동성애자 신문을 발견한 후 그와 그의 어머니는 극적인 갈등을 겪었고, 결국에는 그가 집 밖으로 쫓겨났지요. 부모 둘 모두 중국인 커뮤니티 이벤트 혹은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날 때마다 그를 인정하기 거부했습니다. 

비록 Logan이 광둥어에 능하고, 그의 문화적 배경에도 친숙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성적 정향을 둘러싼 갈등이 자신의 가족 유대를 약화시켰으며, 때문에 순탄한 환경에 있는 다른 중국계 미국인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뚜렷히 밝혔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버려지면서, Logan은 자신이 홀로 살아가며 겪었던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중국계 미국인들과 단절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Logan이 다른 중국계 미국인들이 의지하고는 하는 전통적인 에스닉 커뮤니티의 지지를 찾지 않게 했지요. 그는 문화적 지식과, 성장하면서 함양한 중국계 미국인의 자부심에 의지하여 살아왔지만, 인종적으로 다양한 친구들을 통해 LGBT 활동가로 사회화 되고,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제작자이자 정치적인 옹호자로서의 범에스닉 정체성을 얻었습니다.

논의 및 결론

연구 결과는 자녀들이 이주자 가족으로 통합되는 다양한 방식이 성인기에 그들이 에스니시티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성인기로 이행하면서 2세대들은 양육의 감정적인 맥락 및 이주자 가정 내 삶의 다양한 긴장, 부담, 갈등, 모순과 최대한의 타협을 이루도록 허락하는 에스닉 정체성을 전략적으로 주조(forge)합니다. 이 연구는 가족 역할이 존중과 애정으로부터 소외감과 다소의 억울함까지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며, 이것이 부모의 에스닉 유산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에스닉 커뮤니티에 대한 그들의 정향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주자 자녀들은 이러한 복잡한 정서들을 감정적인 "틀 규정(framing)" 혹은 에스니시티와 문화의 다른 측면을 강조하여서 협상하며, 이러한 방식은 그들이 가족 내 역할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이 가족 내 혹은 그 바깥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문화적 중개인의 실천은 자녀들이 부모의 모국과 맺는 상징적/실질적 연결을 강화합니다. 그들이 핵/확대 가족의 문제와, 에스닉 공동체에 종사하기 때문이지요. 에스니시티에 대한 그들의 접근은 일종의 상호호혜적 공감입니다. 두 세계와의 지속적인 협상 속에서, 소위 "문화적 중개자"라 불리는 이들은 다른 미국 출신 동료들보다 부모의 취약한 지위나, 주류 사회로부터 부모들이 경험한 차별에 크게 공감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부모의 전통과 고난에 대해 더 알려는 경향이 있고, 희생, 의무, 그리고 공감이라는 주제를 따라 자신들의 에스닉/문화적 동일시를 구체화합니다다. 이 개인들은 또한 부모와 강력한 감정적 관계를 발전시킵니다.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가 확대 가족 혹은 지역 에스닉 커뮤니티와의 강력한 유대를 설립하기 때문이지요. 이 유대는 성인기 때도 계속되며, 그들이 지니는 가족 전통의 "문화적 수호자" 역할을 재확인합니다.

비록 부모들이 자신들의 돌봄제공 역할을 완수하고자 노력했지만, 부모에 의존적인 자녀의 관계는 부모의 문화적 가치와 이주 경험에 대한 공감적 이해보다는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은 의무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주에 해당하는 응답자들은 이주자 부모의 안정적인 현존과 관리로부터 이득을 받았지만, 언어적 장벽, 공유된 경험의 부재, 부모-자녀 관계에서 지닌 종속적인 역할 때문에 문화적 안내인인 동료들보다는 부모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가족의 주요 부양자와 의사결정자인 부모는(그리고 전통은) 가족 위계 내에서 복종, 존중, 반란하거나 혹은 공포를 느끼야 하는 역할 모델 혹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세대들이 지닌 에스닉 애착에 대한 시선은 거리를 둔 모방부터 공손한 모방까지(from detached to deferential emulation) 다양했고, 이것은 그들이 가족 내에서 그들의 미국적인 이상과 들어맞는 감정적인 공간을 어느 정도까지 확보할 수 있는가에 따라 좌우되었습니다. 이 범주에 해당하는 연구참여자들은 다른 두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광범위합니다 - 이 차이는 부모-자녀 관계의 위계적인 특징 때문에 이 중간적 범주의 자녀가 부모에 대한 감정적 애착과, 문화적 차이로 겪는 어려움 사이에서 직면하는 모순적인 긴장을 반영합니다. 그 결과 아이로서 그들이 느끼는 미발전된 에스닉 정체성 감각은 가정과 학교 사이에서 이중 정체성 갈등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인으로서 그들이 가족과 맺는 사회적으로 친밀한 상호작용은 부모의 세계관과 문화와 연결되는 외부 매개물을 찾을 가능성을 남겨둡니다. 에스닉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생기는 이러한 긴장을 그들이 어떻게 협상하느냐는 가족 밖의 중개 요소들에 더 많이 의지합니다. 2세대들이 자신 부모의 에스닉 유산과 더 잘 연결되거나, 대안적인 인종적 그리고 에스닉 정체성을 발전시키는데 이용 가능한 문화적 렌즈를 제공하는 에스닉 조직 혹은 확대 가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부모와의 약한 관계 때문에, 논문에서 자율적인 돌봄수행자라고 부르는 개인들은 보다 강한 독립감과 개인성을 발전시키며, 외부 에스닉 공동체의 문화적 압박이나 영향에 거의 노출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응답자들은 부모의 문화를 억압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에스니시티를 자신들이 추방된 자문화중심적인 배타성과 동일하게 간주합니다. 인종적 괴롭힘, 고정관념,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이 없는 경우 깊은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수치심은 감정적으로는 해결될 수 있지만, 강력한 에스닉 친밀성을 형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또한 역으로, 만약 다른 대안적인 인종 그리고 에스닉 공동체(예를 들어 범에스닉, "백인" 혹은 세계시민적 미국인 네트워크)가 집안에서 경험한 갈등과 압박을 상쇄하는 안전한 성지를 제공한다면, 2세대들은 이러한 대안적인 정체성에 대한 호의에서 그들 부모의 유산을 거부하는 것을 택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문화적 양육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가족 내에서 갈등과 불화를 심화시키고, 이러한 자녀들은 액글로 미국인 혹은 도시 내부 소수자 문화에 동화되는 것을 택하거나, 미국화 된 아시아계 미국인 정체성을 수용하거나, 혹은 모든 형태의 커뮤니티로부터 자신들을 소외시키기도 합니다.

많은 연구는 교육적인 성취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서 인종적 그리고 에스닉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논문에 전반에 걸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이러한 정체성이 가족 내에서 증가하는 감정적인 분리를 자녀들이 이해하도록 돕는지 탐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가족 내 친밀성에 대한 더 큰 이해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분기하는 에스닉 결과들을 설명하는 것을 돕는 것 외에도, 우리에게 왜 어떠한 이주자 자녀들은 그들 부모의 에스니시티에 대한 좁은 시야를 넘어, 광범위한 미국화 된 정체성(ex 범에스니시티)를 수용하는지 우리에게 통찰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내부 역동에 의지하여, 몇몇은 대리의 돌봄제공자로서 감정적인 공허를 채우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이고, 반면에 다른 몇몇은 그들의 가족적 공간을 그들의 직접적인 가족과 친족 네트워크 밖에서 재창조하는 것을 택할 것이며, 몇몇은 여전히 슬프게도 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 논문 전반에 걸쳐 논의한 가족 내부의 역동은 한국계와 중국계 이주민 가정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계 그리고 라틴계 이주자 가정에도 특징적이라고 말합니다. 가족 분리와 다른 구조적인 제약의 결과 전통적인 돌봄제공 가능이 자녀에게 전이되지요. 예를 들어, 수많은 연구에서는 멕시코 이주자 가족 또한 그들의 제약된 법적 지위, 좁은 구직 선택지, 제한된 자원 때문에 대안적인 돌봄 제공 구조와 자녀의 문화적 중개에 의지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록 백인 이주자 가정의 자녀들 또한 계급에 연관된 비슷한 부담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것이 유사한 에스닉 결과를 야기할지 아닐지는 불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자녀의) 문화적 중개 행위를 문화적으로 수용가능한가에 있어 몇몇 국가에서 드러나는 차이 뿐만 아니라, 또한 백인 시민 사회 내 인종적 특권과 참여의 역학이 2세대 백인들에게 다른 사회적 선택이나 감정적인 배출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족 내부 역동의 협상이 인종과 에스닉 집단에 상관 없이 비슷한 결과를 야기하는지 혹은 특정한 그룹에 속한 다른 특권과 주변성의 자원들이 자녀들이 다른 형태의 에스닉 정체성을 주조하도록 하는지를 보기 위해 서로 다른 인구집단에 대한 연구가 가능합니다.

더 많은 이주자들이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필요와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가족들이 부모, 이웃, 확대 친족 혹은 심지어 자녀가 중심이 되는 대안적인 돌봄제공 구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안적 구조는 2세대들의 장기적인 세계관에 상당히 영향을 끼치며, 따라서 미국 사회로의 동화 경로에 영향을 끼칩니다. 향후의 연구는 어떻게 아들과 딸이 전통적인 젠더, 일, 그리고 가족의 경계를 대리의 부모, 역할 모델, 그리고 부모, 형제자매, 확대 친족을 위한 중재자로서 넘어서는지를 더 탐색해야 합니다.  이 연구는 자녀를 이주와 적응 과정에서 적극적인 행위자로 포함하면서, 어떻게 경제적 지구화가 어떤 의미로는 가족 내 관계를 완전히 재구조화 하고, 이것이 향후 세대의 에스닉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광범위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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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을 뺀 김에 마무리하자고 달려봤는데, 영혼이 빠져나가는 줄 알았네요. 직역 -> 의역/요약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은 처음인데 무지막지하게 비효율적인 것 같아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문에서 복잡하게(articulated) 표현한 내용 중 많은 부분을 한글로 옮기면서 잘라냈기 때문에, 전달을 잘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남네요. 영어로 읽을 때는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넘겼던 부분이, 한글로 번역하고 보니 아리송해가지고 쩝...
2) 논문에서 중요한 맥락으로 다루는 에스닉 커뮤니티(ethnic community), 부모 자녀 관계의 역전과 에스닉 정체성 등을 한국 사례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해요. 대림동 인근의 조선족/중국동포 커뮤니티를 재외하면 거주지 분리 현상이 광범위하게 관찰되지는 않거든요. 물론 광주 광산구 인근에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행안부 통계가 아직 업데이트 되지 않아 확인은 못하겠네요. 부모-자녀 관계의 역전 이야기를 들으면 몇몇 분들은 '국제결혼가정'을 떠올리실텐데, 이 또한 단정지을 수는 없어 보여요. 제가 학위논문 작성할 때도 이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 살펴보려고 했는데, 숙련도가 부족해서인지 뚜렷하게 양상을 잡아내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언어적인 측면에서는 자녀가 외국계 부모를 도와주는 모습이 보이는데, 돌봄노동이라는 측면에서는 (대부분 여성인) 외국계 부모가 전담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다만 학위논문과는 별개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관찰했던 내용으로는 이주민 가정에서 [부모 두 분은 모두 일을 하고, 언니가 동생을 돌보는] 사례는 보이더라고요.
3) 본문에서 주목하는 주제와는 별개로, 논문을 읽으면서 재미있던 부분은 개인이 유년기에 가족 내에서 경험한 감정적 요소가 성장한 후 개인이 누구와 친밀한/낭만적인 관계를 맺는가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이었어요.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9-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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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추천 후정독. 이런 글 너무 좋읍니다. 감사합니다.
  • 닥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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