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8/01/16 04:56:10
Name   HanaBi
Subject   이불킥하게 만드는 이야기.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어요.
무슨 생각이 났는데 전혀 상관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라 나를 좀먹는 것 같은 그런 거.

거기에 빠진 저는 잠 못 들고 멍하니 누워있네요.

저는 글을 참 못써요. 아무리 써봐도 제가 쓴 글은 재미가 없어요. 말투도 그렇고 태생이 주절거리는 타입이라 금방 삼천포로 빠져버리거든요.

그래서 이때까지 인터넷을 그리 오래 하면서도 커뮤니티에 제대로 글 한 번 안 써봤어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다 아무런 얘기만 마구마구 써 내려 가보고 싶은 욕망은 언제나 있었는데 그게 지금이 될 줄이야.


아까 톡이 하나 왔어요.

'난 연애가 어려워서 결혼은 아직 생각 없어~' 라는 친구의 말이었는데

근데 왜 이 톡을보고 전 제 찌질했던 과거가 하나 떠올랐는지...


저는 예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없어요.

항상 남들이 저보고 못생겼다고 그랬어요. 특히 저희 오빠가.

근데 지금 제가 봐도 좀 못생겼었어요. 얼굴도, 덩치도 크고 남자같이 생겼는데 꾸미는 데는 관심도 하나 없고 옷도 남자애처럼 입고, 성격마저도 남자애 같았네요.

그러고 살고 있었는데 어디서 갑자기 저 좋다는 사람이 하나 생겼어요. 뜬금없이

저보다 한 살 많은 동아리 선배였는데
이 사람은 대체 날 뭐라고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피했어요.

무서웠거든요.

제가 못났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데 남자친구 사귀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싶어서...

이뭐병... 인데 그땐 그랬어요. ㅠㅠ

어쨌든 그래서 그 후 선배는 저보다 한 살 더 어린 평범한 후배를 만나 사귀더라고요. 에라이

선배가 절 왜 좋아했는지는 나이를 먹고 나니 알게 되었어요.

저는 사람들 얘기를 참 잘 들어주는데 거기다 추임새를 잘 넣어요. 상당히

전화로 몇 시간씩 수다 떨다가 전화기 들고 잠든 적도 있고, 하교할 때 둘이서 20분이면 걸어올 거리를 한 시간 동안 얘기하며 걷기도 하고 주말에 따로 만나 공부도(!) 하고 뭐 그랬어요.
그때도 선배한테 제 얘기는 거의 안 하고 들어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네요.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저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 생각보다 그렇게 못나지 않았구나. 나 좋다는 남자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그래서 그 찌질이는 먼 훗날 남자 울리고 다니는 또라이가 되었답.....


그 선배, 만날일은 없겠지만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네요.

"나도 오빠 좋아했었어. 나도 몰랐는데. 그 이후 즐거운 인생 사는데 도움이 많이됐어. 고마워."


그리고 절 이불킥 하고싶게 한건 그 선배가 보낸 고백메일이었어요.

진짜 느끼했거든요... 어쩜 글을 그리 느끼하게 써서 고백을 하는지. 그냥 말로하지. 어우
내가 쓴 글도 아닌데 왜 내가 민망해지는걸까. 싶은 그런거요.

선배 얼굴은 생각도 잘 안나는데 그 메일에 깔려있던 노래가 아직도 생각나네요.

포지션 알러뷰. 좋아했던 노랜데. 이런 젠장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1-29 09:2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1
  • 춫천
  • 팜므파탈이시군요!!!
  • 메일 고백이라니....신세대
  • 이 글은 좋은 자기고백글이다.
  • 포지션 아이러브유, 좋은 노래죠. 저도 좋아합니다.
  • 무겁게 시작해서 포지션 알러뷰로 빵 ㅋㅋㅋ
  • 글 잘 쓰십니다!!!! 흡입력 백점!!
이 게시판에 등록된 HanaBi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93 IT/컴퓨터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 41 기쁨평안 18/02/13 10446 26
592 철학/종교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1) 3 메아리 18/02/11 6465 10
591 철학/종교한국 사회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종말. 9 quip 18/02/11 8032 18
590 일상/생각자아비판 - 커뮤니티의 유혹 7 epic 18/02/09 6578 18
589 게임최근에 한 어떤 게임의 후기 19 모선 18/02/08 9346 20
588 문화/예술사라진 세계, 우아한 유령(Vanished World, Graceful Ghost) 9 하얀 18/02/06 7739 16
587 체육/스포츠2017-18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 단평 14 구밀복검 18/02/04 11082 14
586 일상/생각조카들과 어느 삼촌 이야기. 9 tannenbaum 18/02/02 7444 33
585 여행힐링이고 싶었던 제주 여행기 上 15 소라게 18/01/31 7010 23
584 문화/예술프사 그려드립니다. 72 1일3똥 18/01/28 8407 24
583 체육/스포츠테니스를 araboza 22 무더니 18/01/25 8162 18
582 과학국뽕론 44 기아트윈스 18/01/25 7590 36
581 일상/생각 19 기쁨평안 18/01/23 5885 27
580 일상/생각포맷과 탄띠 10 quip 18/01/21 6923 14
579 체육/스포츠미식축구 입문 : 오펜시브 코디네이터처럼 생각하기 (스압, 용량 많음) 10 Danial Plainview 18/01/19 7051 17
578 일상/생각이불킥하게 만드는 이야기. 28 HanaBi 18/01/16 5998 21
577 음악자장가의 공포 81 문학소녀 18/01/15 9741 65
576 경제원전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 24 소맥술사 18/01/10 8155 18
575 역사작전과 작전 사이 (1) - 이대도강 1 호타루 18/01/09 6200 12
574 문학내 것이 아닌 것에 낄낄대며 울기. 메도루마 슌, 물방울 4 quip 18/01/08 6294 8
573 체육/스포츠잉글랜드 축구는 왜 자꾸 뻥뻥 차댈까요. 35 기아트윈스 18/01/07 8117 10
572 역사무굴제국의 기원 26 기아트윈스 18/01/06 6261 24
571 일상/생각고3담임이 느낀 올해 입시 20 당당 18/01/04 7563 26
570 IT/컴퓨터정보 기술의 발달이 지식 근로자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추억 11 기쁨평안 18/01/03 9536 23
569 의료/건강타 커뮤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홍차넷 탐라를 찾는 이유 31 소맥술사 18/01/03 7812 16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