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8/02/02 18:19:58
Name   tannenbaum
File #1   왜와.jpg (9.1 KB), Download : 28
Subject   조카들과 어느 삼촌 이야기.


막내조카에게 맥북프로 털리고 근처 카페에 와 저는 홍차넷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스무살 덩치 산만한 조카놈은 꼭 변신로봇 선물받은 예닐곱살 어린아이마냥 신이나 포장을 뜯고 이것저것 다운받고 설치하면서 신나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꼭 자기가 사겠다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주더군요. [참.고.맙.구.나.이.놈.아!!!] 어차피 내려갈때 용돈 또 뜯어갈거면서!!

이놈자식 언제 어른될까.... 싶네요. 그래도 저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것도 나름 좋으네요. 다음달은 좀 많이 타이트해지겠지만요.

조카들을 보면 안스러운 마음이 항상 앞섭니다. 엄밀히 따지면 나랑 피한방울 안섞인 존재들이죠. 유전자가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그냥 언제고 연이 끊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남에 가깝겠지요. 생판 남보다 좀 더 친밀한 존재들... 그정도... 그럼에도 마음이 쓰이는 존재들...

예전에 잠시 신세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천하의 개망나니 우리 형이요. 지금은 병원에 누워 오늘내일 하고 있는 그인간이요. 큰조카가 태어나면서부터 밖으로 나돌며 할 수 있는 못된짓 나쁜짓만 골라 해대던 그인간은 왜 안죽나 모르겠네요. 병원비 축나게... 언능 디졌으면 합니다. 조카들은 그런 말종 아버지를 둔 죄로 어릴적부터 부재속에 자라났습니다. 있으나 없는것보다 못한 아버지.. 1년이면 몇번 얼굴 볼까말까한 아버지... 시때로 채권자들 빚쟁이들 쳐들어 오게 만든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다 죽어가는 병자가 되어 나타났지요. 그렇게 자라왔으면서도 엇나가지 않고 이만큼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줘서 제가 다 고맙더라구요.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사고 한번 친적 없고 수재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공부도 잘하고 최고대학은 아니어도 인서울 나름 좋은 대학에 입학 했으니... 상황은 다르지만 저도 어릴적 부모의 부재속에서 자라나 참 많은 일들을 겪었지요. 잘은 몰라도 우리 조카들도 제가 겪었던 그런일들 많이 겪었을거에요. 그럼에도 항상 밝에 웃는 모습이 이뻤습니다. 저 어릴적도 생각나고요.

누군가는 그럽니다. 너가 백날 그래봐야 결국엔 남이다. 걔들 커서 다 잊는다. 감사한 마음 하나 남지 않을거다.

그럴지도 모르죠.

근데 그렇게 되어도 별로 상관없습니다. 저도 결국엔 남이기 때문에요. 확신할수는 없습니다만... 우리 조카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을 때 누군가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우리 형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 자신 없어요. 제아무리 좋은 삼촌, 마음 넒은 삼촌 코스프레를 하더라도 전 제가 우선이거든요. 어머니란 이름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들 형수와는 다르게요... 또한 백번 장담하는데 제가 목구멍에 풀질하는 상황이었으면 조카들이 무슨말을 하던 무시하고 외면했을 것입니다.

긍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는 그런 삼촌인거죠. 있으나 없으나 한 남편 때문에 하루하루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아끼고 또 아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형수보다 좋은 삼촌 포지션 잡기가 수월한 것이지요.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번 얼굴 보고 용돈 쥐어주고 필요한 거 사주는게 딱히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거나 삶의 밑천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모와 삼촌의 차이겠지요.

여튼간에... 그래도 놋북들고 저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참 좋으네요. 아마... 이런 삼촌 노릇 할 기회도 얼마 안남았겠지요. 몇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해볼랍니다.

p.s. 간만에 형수에게 전화해 00이 놋북 사줬다고 말했더니 또 난리가 났네요.(조카가 시켰음 내가 사준걸로 해달라고)

워메~~ 거까지 끼대가가꼬  먼 염병을 하고 있다요? 대련님은 사달라고 그거를 또 사주요? 속이 있소 없소? 워메 워메~~ 징한그~~ 대련님이 자꾸 그랑께 아가 배래부렀당께요. 다리몽둥이 뿐질러불기 전에 언능 환불하쇼!! 속 터져 디져블것구마잉.

역시 우리 형수 불같아요. [근데요 형수... 속으론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욧!!]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2-12 08:2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3
  • 천사삼촌은 춫천
  •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 님 최고!
  • 나도 삼촌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57 문화/예술100억 짜리 애니메이션이 쥐도 새도 모르게 개봉되는 이유 14 Toby 16/08/31 8293 3
224 일상/생각서로 다른 생각이지만 훈훈하게 29 Toby 16/06/28 5773 6
219 문화/예술돌멩이를 모으는 남자 28 Toby 16/06/15 8347 21
186 음악홍차넷 지상파 입성 기념 뮤직비디오 241 Toby 16/04/20 13785 9
173 IT/컴퓨터최근 국내 PC 웹브라우저 점유율의 변화 43 Toby 16/03/24 10092 5
210 기타아들이 말을 참 잘합니다. 37 Toby 16/05/30 6521 25
142 요리/음식탕수기 제작기 28 Toby 16/01/11 8614 7
115 IT/컴퓨터웹 프론트엔드(front-end)란? 24 Toby 15/11/17 13644 8
88 IT/컴퓨터간략하게 살펴보는 웹디자인의 역사 24 Toby 15/10/16 10975 17
74 꿀팁/강좌imgur로 게시판에 이미지 올리기 5 Toby 15/09/23 7559 5
825 정치/사회정전 66년 만의 만남, 2019년의 대한민국은 빚을 졌다 6 The xian 19/06/30 5236 14
765 일상/생각돈이 없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 10 The xian 19/01/31 7458 24
262 일상/생각하나님 한 번만 더 할아버지와 대화하게 해주세요. 7 Terminus Vagus 16/09/09 5288 10
1337 일상/생각적당한 계모님 이야기. 10 tannenbaum 23/10/30 2683 48
682 정치/사회넷상에서 선동이 얼마나 쉬운가 보여주는 사례 16 tannenbaum 18/08/14 8783 9
586 일상/생각조카들과 어느 삼촌 이야기. 9 tannenbaum 18/02/02 7617 33
515 일상/생각조카사위 이야기. 47 tannenbaum 17/09/21 8212 24
510 일상/생각이별의 종류. 6 tannenbaum 17/09/16 8820 19
500 정치/사회노 키즈 존. 24 tannenbaum 17/08/22 7708 18
489 일상/생각익숙한 일 13 tannenbaum 17/08/08 5742 18
472 일상/생각고시낭인이라 욕하지마라. 17 tannenbaum 17/07/14 6831 26
449 일상/생각아재의 신비한 디시갤러리 탐험기. 14 tannenbaum 17/06/10 7088 7
434 일상/생각가난한 연애 11 tannenbaum 17/05/15 6668 18
424 일상/생각나도 친구들이 있다. 3 tannenbaum 17/05/03 4838 14
421 정치/사회무지개 깃발. 61 tannenbaum 17/04/28 7123 22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