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8/03/29 07:42:31
Name   은우
Subject   동생의 군생활을 보며 느끼는 고마움
어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강원도 모 부대에서 통신병(전산)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생은 말로는 잘 지낸다고 했다. 말로는.

하지만 캐물으면 수없이도 많은 불만을 얘기한다. 나는 그걸 들어준다.
어제는 이랬고 오늘은 저랬고 이래서 싫고 저래서 힘들고.

아직까지 동기 한명도 없이 선임만 가득한 부대에서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동생과의 전화는 끊어지질 않는다.
아마 동생도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다. 친구들은 미필이거나 복무중이고 부모님에겐 괜한 걱정 끼치기 싫으니 형한테 전화한 거겠지.

난 내 동생이 군 생활에 잘 적응할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나보다는.
근데 동생은 내 생각보다 더 군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내가 개인주의자인만큼 동생도 개인주의자였다는 것을.
또 컴공과 1학년에 덕후 기질이 다분한 애를 '군대는' 그런 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니까 받는 거지.

동생의 통화를 듣고 있으니 내 군생활과는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군대는 동생이 더 늦게 갔는데 부대 내 분위기는 오히려 내가 더 나았다.


그러자 문득 생각이 났다.

행정보급관.

우리 부대 행정보급관은 의무부사관이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였다.
부조리를 그냥 두지를 못했다. 모든 일은 공평하게 해야 했고 선임과 후임이 하는 일의 경계를 나누지 않았다.
가장 사소한 일이더라도 무조건 같이 해야만 했다. 그게 나가서 풀을 뽑는 것이던 청소를 하는 것이던.

후임들 짐 옮기는데 가만히 있던 선임은 다음날 짐 싸서 GP에 보내버렸다.
부대 내에서 사수/부사수가 업무로 논쟁이 생기니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을 찾았다. (본인은 조금 귀찮아졌지만)

단순히 부대원의 숫자가 적어서, 의무병만 있는 의무중대여서 그랬던 걸까?

잠깐잠깐 파견 근무를 나가서 다른 부대를 볼 때엔 여기는 이런 부조리가 있네, 하며 신기해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게 디폴트값이였나 보다. 누군가가 그걸 없애고 있던 거구나.

우리 부대가 좋은 거였고 우리 간부가 최선을 다해 바꾸고 있었던 거구나.

고마워졌다.


갑자기 예전 문자를 돌려봤다. 전역 전날이였다.

"저녁 먹고 늦지않게 복귀해"
"낼 전역 축하한다"









+ 동생에겐 아무런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위에다 찔러서 바꾸라고 하기엔 동생이 받을 불이익이 걱정이 됬고 그냥 조금만 버티라고 하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서 그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도 얘기를 해 줬어야 되는데.....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4-09 07:5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0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47 일상/생각둘째를 낳았습니다. 15 고양이카페 21/11/29 4563 32
81 역사두 형제 이야기 - 황형의 유산 10 눈시 15/09/30 5464 6
659 일상/생각두 원두막 이야기 9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8/07/08 5169 20
27 역사두 신화의 엔딩 17 눈시 15/06/16 9213 0
1038 역사두 번째 기회를 주는 방탄복 6 트린 20/12/11 4946 22
752 문화/예술동양의 디즈니를 꿈꾼 일본 애니메이션 백사전의 피 1 레이즈나 19/01/05 6033 11
419 정치/사회동성애 이슈와 팬덤정치 이야기 137 기아트윈스 17/04/26 9628 34
607 일상/생각동생의 군생활을 보며 느끼는 고마움 7 은우 18/03/29 6135 10
1116 정치/사회동북아에서 급증하는 무자녀 현상 (부제: 초저출산이 비혼'만'의 문제인가?) 23 샨르우르파 21/08/13 6099 24
123 일상/생각동국대 학생 48일 단식과 평화시위 4 nickyo 15/12/01 5381 10
305 정치/사회동교동계. 부끄러운줄 알라. 7 Bergy10 16/11/20 5423 10
219 문화/예술돌멩이를 모으는 남자 28 Toby 16/06/15 8469 21
765 일상/생각돈이 없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 10 The xian 19/01/31 7546 24
951 일상/생각돈으로 헌신에 감사 표하기 28 구밀복검 20/04/22 7526 25
545 일상/생각독일에서 들었던 수업들 4 droysen 17/11/16 6638 4
540 일상/생각독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정리하며: 1편 19 droysen 17/10/30 9576 25
37 게임독수리의 눈으로 입문자를 노리는 HOMM3 소개 (1) 기초 14 조홍 15/06/22 19404 0
241 과학도핑테스트와 질량분석기 10 모모스 16/07/30 9467 9
949 역사도철문, 혹은 수면문 이야기 2 Chere 20/04/18 5316 16
1153 일상/생각도어락을 고친 것은 화성학과 치과보철학이었다 3 Merrlen 21/12/15 4517 31
205 요리/음식덴뿌라와 튀김의 기원 29 마르코폴로 16/05/14 15450 11
620 일상/생각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26 탐닉 18/04/22 6836 25
60 요리/음식더운 여름에 마셔볼만한 값싸고 시원한 화이트와인 13 마르코폴로 15/08/11 11442 2
135 일상/생각더 힘든 독해 35 moira 15/12/29 6848 13
1070 일상/생각대학원생으로서의 나, 현대의 사제로서의 나 5 샨르우르파 21/03/15 4707 17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