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8/10/16 22:36:13수정됨
Name   메아리
Subject   은탄환의 딜레마
  There is no silver bullet. ‘은탄환은 없다’라는 영어 속담입니다.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은탄환, 다시 말해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시겠지만, 이 속담의 기원은 늑대인간 전설입니다. 늑대인간을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이 바로 이 은탄환입니다. 그런데 은탄환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대체 무엇일까요?

  유명한 SW 설계자인 프레드릭 브룩스의 논문 제목이기도 한 이 속담은 SW업계의 금언으로 자리 잡아 있습니다. 브룩스는 이것을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해결이 힘든 문제는 복합적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해결책도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단 하나의 방책으로 문제가 일소에 해결되는 것은 요원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비단 프로젝트에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사실상 문제의 연속,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기도 전에 다음 문제가 들이닥치기 마련입니다. 혹은 이전 문제의 해결책이라 생각했던 것이 다음 문제의 촉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삶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 단 하나의 해결책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문제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단 하나의 해결책, 은탄환을 바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해결이 정말로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은 환상을 만들 게 하고 비현실적이 되게 합니다. 그 복잡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힘듬, 버거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은탄환을 찾게 합니다.

  근대 무렵 인류는 과학기술이 은탄환인 줄 알았습니다. 그 당시 온갖 과학기술들이 인류를 질병과 기아의 위협으로부터 획기적으로 구해낸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을 은탄환이라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많은 과학기술의 성공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나, 또 다른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더 과학적이지 못해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문제는 은탄환 자체에 있다기보다, 은탄환에 대한 바램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은탄환을 원하는 바램은 은탄환처럼 보이는 무엇을 계속 만들어 내게 합니다. 이 은탄환을 향한 갈망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히려 또 다른 유형의 문제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탄환의 딜레마입니다. 그러한 갈망이 다른 차원의 문제를 발생시켜 결국 해결책과 더욱 거리를 두게 만들고 만다는 겁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이러한 식의 접근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일부의 맹목적 숭배도 그러한 모습 중 하나였고, 이전 세기의 막시즘, 종교나 신비주의에 대한 맹목적 접근도 마찬가지입니다. 돈과 우상에 대한 숭배 등도 은탄환을 원하는 갈망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은 과학기술, 막시즘, 종교, 신비주의, 돈, 우상 등,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문제였던 겁니다.  

  문제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면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갑자기 복합적이고 어려운 수학 문제가 던져지면 그것의 풀이를 쉽게 포기하듯이 말입니다. 은탄환을 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문제를 일거에 초월해 버리려는 태도의 투사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런 갈망은 문제 자체도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문제와는 다른 방향의 문제를 더불어 출현시키기도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그것의 해결방법으로 은탄환을 원하면 원할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의도만으로는 소용없습니다. 더불어 수단도 적절해야 합니다. 비록 결과는 장담하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해봐도 소용없을 테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맞는 걸까요? 마치 수학시험에서 모르는 문제는 과감히 포기하고 아는 문제에 집중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린 문제와 그 해결책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요?

  은탄환이 없다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인정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은탄환을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있지도 않은 은탄환을 찾는데 에너지를 쏟는 대신에 좀 더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는 솔루션을 찾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적어도 있지도 않은 은탄환에 대한 갈망으로 생기는 문제는 피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직면한 문제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문제를 예측하고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없습니다. 사회, 그리고 개인의 문제 역시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기 때문에 결코 쉽고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초월적 해결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초월은 해결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확실하게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삶에 은탄환이 없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안다는 것과 바란다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은탄환이 없다는 사실을 알긴 하지만 동시에 은탄환이 있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양가(楊家)적입니다. 그 어려움을 다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그런 마법적 해결책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문제를 인정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문제가 주는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너무 짧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어려운 문제로 인정하고 그 어려움을 견디면서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를 그 어려움에서도 견딜 수 있게 해줄까요?

* Toby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10-31 11:0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4
  • 명탐정코난에서 은탄환얘기가 나오더니 이런얘기였군요
  •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 곱씹어보게 되는 글 감사합니다
  • 아 .. 이가슨 탐 조은 글입니다
  • 좋은 글 입니다.
  • 공감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0 경제주식투자, 튜토리얼부터 레이드까지 37 기아트윈스 20/09/23 7842 28
72 역사보스턴홍차사건 (Boston Tea Party) 12 모모스 15/09/19 7831 3
393 문학채식주의자 - 90년대 이후 국내 여성 문학 속 일련의 작품군에 대한 단상 48 팟저 17/03/21 7809 14
354 기타우리 아들의 신박한 표현들 29 Toby 17/01/25 7804 11
386 일상/생각치킨값에 대한 단상.. 76 Zel 17/03/14 7802 10
611 체육/스포츠산 속에서 안 써본 근육을 쓰다가 5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8/04/04 7800 23
571 일상/생각고3담임이 느낀 올해 입시 20 당당 18/01/04 7795 26
320 일상/생각면접으로 학부신입생 뽑은 이야기 47 기아트윈스 16/12/10 7792 22
500 정치/사회노 키즈 존. 24 tannenbaum 17/08/22 7790 18
939 정치/사회가속주의: 전세계의 백인 지상주의자들을 고무하는 모호한 사상 - 기술자본주의적 철학은 어떻게 살인에 대한 정당화로 변형되었는가. 18 구밀복검 20/03/24 7776 23
830 정치/사회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적정비용을 찾아서 41 Fate 19/07/10 7773 38
717 철학/종교은탄환의 딜레마 15 메아리 18/10/16 7768 24
478 일상/생각... 37 켈로그김 17/07/21 7739 21
1005 일상/생각어른들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사람 되지 마세요. 27 Schweigen 20/09/07 7736 70
722 여행이름부터가 북쪽의 땅 - 노르웨이 16 호타루 18/10/28 7736 18
688 문학책 읽기의 장점 2 化神 18/08/27 7732 13
1021 경제내집 마련을 위하는 초년생들을 위한 짧은 팁들 24 Leeka 20/10/21 7719 19
176 IT/컴퓨터최초의 웹브라우저 Mosaic 이야기 22 블랙자몽 16/03/30 7715 4
586 일상/생각조카들과 어느 삼촌 이야기. 9 tannenbaum 18/02/02 7711 33
544 일상/생각무죄 판결 21 烏鳳 17/11/14 7701 31
980 일상/생각40대 부부의 9급 공무원 도전기 36 4월이야기 20/07/08 7700 51
626 문화/예술북유럽 신화 한토막 - 블랙기업 아스갈드 편 12 제로스 18/05/04 7695 10
742 철학/종교인생은 아름다워 22 기아트윈스 18/12/08 7690 50
1087 일상/생각어느 개발자의 현타 26 거소 21/05/04 7688 35
345 일상/생각타임라인과 속마음 나누기 36 Toby 17/01/13 7685 3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