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06/11 20:51:21수정됨
Name   치리아
File #1   유석_조병옥.jpg (45.9 KB), Download : 31
File #2   조병옥m자탈모.png (535.6 KB), Download : 33
Subject   조병옥 일화로 보는 6.25 사변 초기 혼란상




 [첫번째 이미지-동아일보의 퍼블릭 도메인]
 유석 조병옥. 1894년 갑오년에 태어나 역동의 시대를 살아간 풍운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간회 재정부장·총무부장, 미군정 경무부장, 대한민국 5대 내무부 장관, 민주당 최고대표위원이었으니, 그야말로 독립운동가이자 건국의 아버지이며 민주화운동가입니다.
 그러나 경무부장 재임기에 친일파 경찰을 기용해 백색테러를 자행했다는 점과, 4.3 사건과 여순사건의 책임자라는 점에서 절대 좋게만 볼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반공주의를 고수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소앙 조용은을 떨어뜨리려고 추잡한 관권선거를 자행하기도 했었죠.

 [두번쨰 이미지-자제님의 '야인들의 마피아게임' 캡쳐.]
 다만 저같은 꼬꼬마들에게는 역사적인 것보다 M-자 탈모로 더 유명합니다. 업보라면 업보랄까, 야인시대물에서 열심히 활약중이십니다.

 이 글은 6.25 사변 발발 즈음의 조병옥의 일화를 정리한 겁니다. 조병옥의 자서전 내용에 기초하며, 교차검증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일화를 보면 당대의 혼란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6.25 사변이라고 쓰는 이유는 갑작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절대 제가 아재라서가 아닙니다.


 6월 25일 새벽, 조병옥의 집에 전화가 걸려옵니다. 친분이 있던 장교가 건 전화로, 북한군의 침입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6.25 사변 이전에도 남북간의 작은 국지전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6.25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작은 충돌로 끝날 줄 알았다고들 하죠. 그런데 조병옥은 그런 국지전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회고합니다.
 낮이 되자 조병옥은 친구를 만납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조병옥 되는 사람의 친구면 장삼이사는 아닐거고 나름 엘리트였을 겁니다. 그런데도 전쟁 소식을 몰랐다면 하도 국지전이 빈번해서 사람들이 전쟁소식에 둔감해졌거나, 아니면 정보가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밤에는 경무대(현 청와대)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때 조병옥은 딱히 내각의 인사 등은 아니었습니다만,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지 회의에 불려갔습니다. 논의 끝에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으로 피신하지만 조병옥 개인은 그냥 서울에 남았습니다.

* 우남 이승만. 일명 '이박사'. 모두가 아는 대한민국 초대 국회의장이자 대통령입니다. 조병옥은 미국 유학시절부터 이승만을 알았고, 미군정이 이승만에게 비우호적인 반응을 보일때마다 압력을 넣어 이승만의 권력쟁취에 기여했습니다. 조병옥은 이승만과 정적이 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는 예를 갖추었습니다.


 6월 26일 조병옥은 민주국민당 간부회의에 참석합니다. 민주국민당은 한국민주당의 후신으로, 당대의 최대야당이자 정당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신익희*, 김성수*가 있었죠. 그러나 정부인사도 아닌 이들이(신익희는 국회의원이긴 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낼 수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별다른 결론을 못내리고 해산합니다.

* 해공 신익희.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민주당계 정당의 아버지. 현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민주당 시절을 부정하고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신익희를 자당의 시초라 주장합니다. 실제로 한국민주당은 한국국민당을 이끌던 신익희와 힘을 합침으로서 친일파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었죠.
* 인촌 김성수. 대한민국 2대 부통령. MCU의 토니 스타크가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독지가'라면 김성수는 '언론인, 사업가, 정치인, 교육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아일보, 경성방직, 민주당, 고려대학교의 아버지니까요. 친일행적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높게 평가합니다.

 이후 조병옥은 무초* 미국대사를 찾아갑니다. 무초 대사는 미국이 한국을 지킬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조병옥을 안심시킵니다.

* 존 조지프 무초. 초대 주한 미국대사. 1921년부터 1962년까지 외교관으로 활동했고, 한국에선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대사로 일했습니다. 한국대사 이후로는 UN 신탁 통치 이사회 미국 대표, 아이슬란드 주재 공사, 아이슬란드 대사, 과테말라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습니다.

 그 말에 마음을 놓고 집에 돌아온 조병옥.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정을 알고보니, 흉흉한 소식에 겁에 질린 가족들이 조병옥의 친구가 운영하는병원으로 피신한 것이었습니다. 조병옥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병원에서 잠을 잡니다.


 6월 27일
새벽부터 조병옥은 김성수의 집을 찾습니다.
 그런데 김성수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옆집에 물어보니, 가족 전체를 데리고 부산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당황한 조병옥은 신익희의 집에 찾아갑니다.
 신익희는 아예 옆집 사람도 어디갔는지 몰랐습니다.

 조병옥은 어제 한국을 지켜줄테니 안심하라고 했던 무초 미국대사를 찾아갑니다. 그도 대사관에 없었습니다.
 미국대사가 머문다는 호텔로 찾아가보니, 대사는 물론 주재관도 밤새 손님을 맞이하다가 지금 겨우 눈을 붙인 참이라며 직원들이 쫓아냅니다.

 상황이 수틀려도 단단히 수틀렸단 걸 깨달은 조병옥. 자동차에 잡히는 짐만 던져싣고 가족과 수원으로 내달립니다.
 조병옥은 그때 집에 두고 갔던 수많은 고서와 자료들이 사라진 걸 두고두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수원에 도착해보니 미국대사는 서울 호텔이 아니라 대전에 있답니다. 황당해할 틈도 없이 수원 농과대학에서 피난 국회의원 및 국무위원의 긴급 간담회가 열립니다.
 민주국민당 회의처럼 사람들이 모였다고 딱히 마땅한 방책이 나오진 않았지만, 조병옥은 화끈하게 서울 사수 및 환도를 주장합니다.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고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조병옥은 진심이었습니다.

 간담회가 끝나고, 조병옥은 어떻게 하면 서울 사수에 힘을 보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울의 방송국을 떠올립니다. 처칠이 그랬던 것처럼, 전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방송을 하겠단거죠.
 그래서 방송을 하겠다고 서울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오후 4시에 한강철교에서 군인들에게 제지당합니다. 당시의 한강다리는 한강철교 하나뿐이었죠. 하는 수 없이 조병옥은 수원으로 돌아갑니다.

 수원에 돌아간 조병옥은 오후 5시에 한강철교를 폭파할 예정이었으나 폭파가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걸 안 조병옥은 또다시 서울로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군인들도 막지 않았지만,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시간이 너무 흘러 한강을 지났을 때 이미 밤 10시 45분이었습니다. 방송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죠.
 하는 수 없이 조병옥은 방송을 포기하고...

 자기 집에 가서 잡니다.


 그러다가 12시쯤 누군가가 조병옥을 흔들어 깨웁니다. 조병옥의 장남 조준형이 아버지를 찾으러 올라온거지요. 아들은 서울에 있으면 안된다고 조병옥을 일으킵니다. 새벽부터 돌아다닌 조병옥은 피곤하다고 하루만 자고 가겠다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억지로 일어나서 자동차에 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조병옥은 한강철교를 건넙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인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철교가 폭파됩니다. 그 날 서울은 북한군에 함락되지요.
 조병옥은 그때 아들이 아니었으면 분명 북한에 잡혀죽었을거라고 회고합니다.


 저는 처음 읽으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회의하던 김성수, 신익희가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소위 빵 터졌습니다.
 그리고 혼란이 얼마나 심했는지,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가 와닿아서 등골이 송연해졌죠.

 당대 정계의 거물이자 전쟁 발발일에 경무대 회의에 참석했던 조병옥이 저렇게 상황을 판단할 정도라면, 일반 민초들에게 어땠을까요. 그리 생각하면 참 씁쓸한 일입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6-25 13:0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4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56 정치/사회트럼프와 패권이라굽쇼?.... 25 깊은잠 17/02/02 5832 14
    427 체육/스포츠스트존 확대는 배드볼 히터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12 애패는 엄마 17/05/12 5838 4
    927 의료/건강세계 각국의 중국과의 인적교류 통제 상황판 (업데이트끝. 나머지는 댓글로) 8 기아트윈스 20/02/28 5846 17
    303 역사러일전쟁 - 그대여 죽지 말아라 4 눈시 16/11/17 5850 9
    820 일상/생각전격 비자발급 대작전Z 22 기아트윈스 19/06/19 5850 50
    315 기타ISBN 이야기 17 나쁜피 16/12/02 5853 15
    547 여행상해(상하이) 여행기 1 pinetree 17/11/17 5853 5
    264 기타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왜 "추석 차례 지내지 말자"고 할까 9 님니리님님 16/09/13 5854 5
    1278 정치/사회인생을 망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 22 아이솔 23/02/13 5854 18
    1002 요리/음식토마토 파스타 맛의 구조와 설계 그리고 변주 - 1 21 나루 20/08/26 5855 14
    1143 정치/사회개인적인 투자 원칙 방법론 공유 16 Profit(Profit) 21/11/09 5855 15
    1056 IT/컴퓨터주인양반 육개장 하나만 시켜주소. 11 Schweigen 21/01/24 5866 40
    450 역사6세기, 나제동맹의 끝, 초강대국의 재림 36 눈시 17/06/11 5870 13
    664 일상/생각커뮤니티 회상 4 풀잎 18/07/17 5877 15
    638 정치/사회권력과 프라이버시 32 기아트윈스 18/05/28 5885 27
    1049 요리/음식평생 가본 고오급 맛집들 20 그저그런 21/01/03 5887 17
    161 정치/사회필리버스터와 총선, 그리고 대중운동. 11 nickyo 16/02/24 5897 13
    953 일상/생각한국인이 생각하는 공동체와 영미(英美)인이 생각하는 공동체의 차이점 16 ar15Lover 20/05/01 5898 5
    537 일상/생각낙오의 경험 10 二ッキョウ니쿄 17/10/30 5901 12
    878 일상/생각체온 가까이의 온도 10 멍청똑똑이 19/10/21 5901 16
    816 역사조병옥 일화로 보는 6.25 사변 초기 혼란상 2 치리아 19/06/11 5902 14
    655 꿀팁/강좌집단상담, 무엇을 다루며 어떻게 진행되는가 4 아침 18/07/02 5903 14
    728 일상/생각추억의 혼인 서약서 12 메존일각 18/11/14 5909 10
    378 일상/생각내 잘못이 늘어갈수록 20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7/03/02 5910 35
    863 정치/사회'우리 학교는 진짜 크다': 인도의 한 학교와 교과서 속 학교의 괴리 2 호라타래 19/09/23 5912 1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