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08/15 22:44:33수정됨
Name   Jace.WoM
Subject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환자
옆동네나 여기 AMA의 글을 읽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작년에 한 8개월 정도 공황장애를 증상을 아주 크게 겪었습니다. 제일 심할떄는 편의점도 못 가서 가다가 돌아와서 계단에서 울고 그랬을정도로 맛이 갔었죠.

제가 한창 많이 아플때 주위에서 요새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볼때 공황이 좀 있다고 얘기하면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니가 요즘 운동을 안해서 그렇다 약먹을것도 없다 운동 더 해라'
'니가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 맘을 굳게 먹어라'
'그거 죽는병도 아니고 걍 별것도 아니다 나와서 놀고가라'

이런 얘길 되게 많이 했었어요. 아마 아프신 분들, 특히 정신증이나 신경증을 겪으시는분들은 많이 공감하실거에요 주위에 저런 얘기 하는 사람들 많다는거, 안 좋은 경우 가족들이 저런 얘기 옆에서 달고 사는 경우도 있구요.

이게 아파보면 알게 되지만 아픈 사람 입장에선 택도 없는 소리죠 ㅋㅋ 저게 안되니까 환자인건데요. 근데 저는 저런 주위 사람들의 툭 던지는 얘기를 듣고 화를내는 대신 그냥 그래 이것들아 하고 운동하고 맘을 굳게 먹고 나가서 놀고 그랬어요. 말하는 대로 해줬죠.

그 이유는 두가지가 있어요.

첫째. 나도 안 아플땐 내가 이럴줄 몰랐어요. 즉 저치들도 어차피 나처럼 아파보기전엔 이게 어떤 느낌이고 의지만으로 단기간에 극복이 힘들다는걸 알수가 없을거에요. 그 머리 좋고 이해심 좋던 나도 몰랐는데,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죠. 그래서 저런 얘길 하는것 자체를 이해해주기로 했습니다.

둘째, 저 사람들도 어쨌든 내가 더 아파서 죽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닐거에요 ㅋㅋㅋ 사고방식이나 대화방식 알고 있는 지식과 공감할만한 환경등이 부족해서 그렇지 결국 내가 낫길 바라는 맘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하는 얘길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죠.

뭔가 되게 만화같고 이상적인, 꾸며낸거 같은 마음가짐이죠? 음... 사실 꾸며낸거라 그런게 맞습니다 ㅋㅋㅋ 제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저렇게 생각해서 괜찮았을리가 없죠 아니 아파 죽겠는데 언제 저렇게 타인을 배려하고 있어요. 환자들이 괜히 까칠해지는게 아니에요 인심도 곳간에서 나온다 아생연후살타 이런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죠 내가 죽겠으면 남을 배려하는 생각이 절로 덜 생깁니다 ㅋㅋㅋ 저런 아름다운 사고를 할수가 없죠.

이유는 꾸며낸거지만 행동 자체는 맞아요. 저는 화를 안 냈고, 싸우는 대신 진짜 운동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억지로 나가 놀고 그랬어요. 여기서부턴 진짜 이유를 써볼게요

정말 아플 당시, 제 머리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만 아프고 싶다' 솔직히 다른건 다 내 알바 아니었어요. 세상 모든게 내가 그만 아프게 되는 것에 비하면 다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그 전까지 중요시하던 논리, 성공, 가족, 친구, 재미, 아픔속에선 아무것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른건 주위 사람들의 저런 말같지도 않은 얘기 듣고 화내면 저 사람들이 아픈가요? 아니죠 나만 더 아프죠 ㅋㅋㅋㅋ

화내느라 부신피질 호르몬 관리 안돼서 컨디션 박살남
소리 지르느라 근육에 피 몰려서 어지럽고 소화안됨
어떻게 쟤도 기분 나쁘게 만들까 머리 굴리느라 뇌에서 활동 에너지 소모함 몸이 쓸것도 얼마 없는데

반면 운동은 실제로 공황 증상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과학적으로 그렇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당장 완치는 안되지만 억지로 하는게 아니면 어느정도는 도움이 됩니다
나가서 놀기? 역시 결국 극복을 위해서는 해야 할 일입니다 ㅋㅋ 당장 100%는 아니어도요.

그 결과 저는 괜히 저 사람들한테 넌 틀렸어 뭘 알고 말해 하고 치받는거보다, 걍 아 그러세요 하고 대충 풀밭에서 벌레우는 소리 취급해서 뇌로 보낼 필요도 없이 척수에서 리액션 매크로 틀어서 그 자리만 넘긴 뒤에 실제로 나한테 필요한 정보만 캐치해서 필요한데 써먹는게 최선이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누가 기분 거슬리게 해도 오냐오냐하고 좋게 넘기라는 얘기냐구요? 아닙니다 ㅋㅋㅋ 어디까지나 저건 제가 생각하는 이기적인 기준이 그랬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일 뿐이죠.

만약 제가 저런사람들한테 한소리 듣고나서 한번 치받지도 못하고 지나가면 나중에 그걸로 아 그때 화낼걸 스트레스 받아서 건강이 더 악화되는 타입이다? 그러면 상대가 비트코인 사라고 추천했던 은인이라도 확 치받았을거에요.

다니던 많은 병원에서 의사썜들 전부 놀랄만큼 모든 잡다한 병치레에서 빨리 회복했습니다. 피검사 결과도 다들 6개월 봤지만 꼴랑 2달만에 확 좋아지고 ㅋㅋㅋ 여튼 그렇게 될 수 있었던게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주위 사람들이 많이 돕고 믿어줬고 원래 유전자적으로 건강하고 운이 좋고 이런것도 물론 큰 영향을 줬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핵심적 이유는 제가 '그 어떤 환자보다 이기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철저히 내가 낫는것만 생각했고 그 외의 모든걸 다 하찮게 여겼기 때문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일찍 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맛있는거 먹고 싶다는 욕구? 내가 낫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한달내내 맛없는 죽 먹으면서 식이조절 하고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욕구? 내가 낫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걍 일 때려치고

물론 모두 이렇게 살 수는 없겠죠 ㅋㅋㅋ 잃을게 있을테니까요 사람들이 다 바보도 아니고 누군가 아파 죽겠는데도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건 그 사람에겐 당장 내가 낫는것보다 회사를 다니는게 더 중요하기 때문일거에요. 그 뒤에 걸린게 가족들의 생계일수도 있고 본인의 인생의 궁극적 가치를 위한 커리어일수도 있고 당장 오늘 먹고 살기 위해 그래야 할 수도 있고.

그러나 언젠가, 정말 너무 그만 아프고 싶다고 생각해서 모두 내려놓고 싶을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았으면 좋겠어요. 가족 사랑 커리어 성공이 소중해도 결국 내 가족 내 사랑 내 커리어 내 성공이 소중한거고, 옆짚 사는 김철수씨의 가족 태평양 건너 짐 존스의 사랑 일본인 경극 배우 고토 마치나미의 커리어가 중요해서 희생하려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아마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도 내가 한계에 부딪히기전에는 나를 먼저 돌보길 원할거에요. 내가 있고 세상이 있는거니까, 많은 환우들이 조금 더 이기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환우들이 있던 단톡방에서 나오기전에 마지막으로 이 얘길 길게 했는데 (여러분들은 너무 착해요!! 하면서 ... 다들 천사같은 사람들이었음) , 탐라나 질게를 보니까 정신/신경증으로 고생하시는분들이 여기도 많은거 같아서 적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8-24 18:28)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34
  • 이기적인 남자는 춫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87 기타당연한 육아는 없답니다 16 밀크티티 16/10/20 6623 22
289 창작[한단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8 SCV 16/10/24 6631 11
969 일상/생각참 사람 맘은 쉽게 변한다.. 25 whenyouinRome... 20/06/13 6631 49
131 정치/사회인용의 실패와 승리, 두 정치인의 경우 9 moira 15/12/15 6632 15
539 일상/생각아주 작은 할아버지 20 소라게 17/11/03 6635 36
271 정치/사회미국의 트럼프 열풍에 대한 소고 23 길도현 16/09/28 6636 11
755 일상/생각노가대의 생존영어 이야기 25 CONTAXS2 19/01/06 6636 25
1151 음악2021 걸그룹 36 헬리제의우울 21/12/13 6638 58
323 기타딸바보와 바보딸 28 민달팽이 16/12/16 6639 26
639 일상/생각나의 사춘기에게 6 새벽유성 18/05/30 6643 25
118 일상/생각아버지의 다리가 아픈 이유는 26 YORDLE ONE 15/11/25 6646 16
677 기타러시아와 미국의 전술 교리에 대해 알아봅시다 17 기쁨평안 18/08/08 6648 33
146 일상/생각운명적인 이별을 위한 기다림에 대하여 22 YORDLE ONE 16/01/26 6649 13
1045 요리/음식(내맘대로 뽑은) 2020년 네캔만원 맥주 결산 Awards 34 캡틴아메리카 20/12/27 6656 34
619 정치/사회범죄의 세계 - 임대차보증금 대출사기 17 烏鳳 18/04/20 6658 21
266 기타양자역학 의식의 흐름: 더 퍼스트 어벤져 37 Event Horizon 16/09/16 6661 13
613 정치/사회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여덟 가지 생각 5 Danial Plainview(Profit) 18/04/08 6661 14
965 일상/생각흑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국가 미국 21 가람 20/06/05 6664 68
434 일상/생각가난한 연애 11 tannenbaum 17/05/15 6671 18
260 체육/스포츠국내 축구 이야기들 8 별비 16/09/02 6672 5
245 일상/생각아재의 대학생 시절 추억담들. 27 세인트 16/08/03 6677 5
879 기타영국 교육 이야기 16 기아트윈스 19/10/23 6678 34
845 의료/건강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환자 11 Jace.WoM 19/08/15 6682 34
705 기타퇴근하기전에 쓰는 나의 창업 실패기 7 HKboY 18/09/28 6683 16
455 일상/생각여사님을 소개합니다 (스압, 일기장류 징징글. 영양가X 뒤로가기 추천) 31 알료사 17/06/19 6684 20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