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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8/17 19:46:26
Name   그리부예
File #1   photo_2017_08_17_18_58_55.jpg (125.6 KB), Download : 22
Subject   [연남동] 연경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유명한 중국집 연경에서 올해 연남동에 연 가게입니다. 아주 야심차게 2층짜리로 시작한 것 같은데 위치와 외관 컨셉의 애매함 때문에 아직 손님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위치가 애매하다는 건 홍대역 기준으로 봤을 때 연남동 번화가에서 몇 블럭 더 안쪽이라는 점 때문이고요, 외관은 너무 화려해서 속빈 강정일 것 같은 느낌을 많이 줍니다. 연남동 중국집이라 하면 약간 허름해도 가성비가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가게가 다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쪽 지날 때마다 눈길을 잘 안 주었는데 어느 날 중국식 냉면이 먹고 싶어져 불쑥 들어가 보았습니다.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니까 대학생 시절 차이나타운 데이트하며 연경에서 백짜장을 먹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아무튼 중국식 냉면을 시켜서 한입 먹어본 다음에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식 냉면은 여름이면 자주 생각이 나지만 좀처럼 '아 시키길 잘했다'는 느낌을 주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땅콩버터, 겨자, 식초 따위를 대충 때려넣어서 그냥저냥 자극적인 맛에 질깃한 면을 잡다한 부재료랑 같이 씹어먹는 음식...이었을 터인데 여기 중국식 냉면은 베이스 스프의 맛이 잘 잡혀 있고 위에 언급한 소스류도 적절히 배합해 내와서 중국식 냉면이 족보 없는 엉터리 음식 아니냐는 회의를 단번에 불식시켜 줬습니다. 고명도 아주 실했는데 채소류, 해산물의 선도도 좋고 장육과 송화단의 상태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면도 단단한데 질기지 않고 잘 끊어졌던 것 같아요. 이건 전에 먹은 거고 그땐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후 새우볶음밥, 하얀짜장을 한 번씩 먹어 봤는데, 둘 다 준수했지만 그렇게 맛이 인상적이진 않았어요. 그래도 무얼 시켜도 대충 데워 나오는 게 아니라 제대로 지지고 볶고 조리해 나온다는 것, 1인 손님이어도 사장님이 나서 깍듯하게 접객해 준다는 것 등에서 매번 좋은 인상을 받긴 했습니다. 아, 가격은 약간 있는 편이에요. (짜장 빼고) 식사류 9000원에서 출발한다 보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식사 메뉴에서 중국집 솜씨를 보려면 일단 볶음밥이고 다음이 짬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우볶음밥은 재료 좋고 밥알들 기름에 잘 코팅되게 볶았는데 그날 입맛이 없었던 탓인지 인상은 약했어요. 새우는 대하를 씹는맛 있게 큼지막하게 썰어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짜장을 같이 줬고 볶음밥 자체 간은 약했던 것 같은데 제가 볶음밥에 짜장 곁들이는 것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볶아서 수분 날린 밥에 왜 굳이 찐득한 짜장을... 이라는 게 제 취향입니다.

하여 드디어 (삼선)짬뽕 얘기인데요, 좋습니다. 아주요. 이것도 대하 두 마리가 올라가 있는데, 일단 옷 안 입히고 기름에 튀겨낸 듯한 새우 껍질에서 나는 고소한 향이 단번에 좋은 인상을 주고 입맛을 돋웁니다. 이제야 눈으로 관찰을 하게 되는데 대하는 다리를 다 뗐고 등도 땄으며 뾰족한 수염이 있는 주둥이까지 잘라냈습니다. 기본 개념이 잡힌 가게라는 거죠. 국물은 아주 빨간 편인데 매운냄새는 심하지 않습니다. 애호박, 배추, 양파, 당근 정도가 기본 야채인데 애호박 초록빛이 먹음직스럽습니다. 양파는 다른 곳보다 가늘게 썰어 볶아 물크러지지 않으며 단맛을 잘 살렸습니다. 새우를 접시에 덜어놓으니 작은 낙지가 한 마리 통째로 들어 있습니다. 목이버섯은 많은 경우 꼬들꼬들이 아니라 꼬깃꼬깃한 인상을 주는데 여긴 야들함과 꼬들함이 공존하는 목이버섯이 두셋 들어가 있습니다. 야채와 면을 함께 잡아 입에 넣고 씹는 감각이 무척 훌륭합니다. 앞서도 말했듯 색깔보다 안 매운데 이것도 좋은 테크닉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조리에 대해 잘 알진 못하는데 고추를 잘 다루면 발색 효과는 잘 나고 찌르는 매운맛은 어느 정도 통제가 된다는 얘길 들은 것도 같네요. 면은 이 역시 살짝 단단한 감이 있는 상태로 나와서 다 먹을 때까지 풀어지지 않습니다. 온도도 서빙된 즉시 먹어도 입천장 까질 일은 없는 정도로 맞춰 나옵니다. 기억 나는 재료는 이 정도입니다. 아, 길게 썬 하얀 오징어살(몸통)이 세 점 정도 들어 있었습니다. 삼선짬뽕 치고는 꽤 단촐하죠. 제가 양이 많은 편이 아닌데 아쉬워서 국물을 조금 떠먹다 나왔습니다. 그래도 물크러진 야채,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는 새송이, 느타리 따위, 불쾌한 뒷맛을 남기는 홍합 등등으로 푸짐한 척만 하는 짬뽕들을 생각하면 무척 만족스러운 한 그릇입니다. 국물로 말하자면 야채의 시원함이 가장 지배적입니다. 그냥 나가면 첫인상이 약하니 튀긴 대하를 돌격대장으로 앞세운 거겠죠. 결과적으로 다 먹은 뒤 입 안이 얼얼하거나 속이 쓰리지 않고 꽤 개운합니다. 나오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서 마시니 입맛이 싹 정리됩니다(이 가게에서 길따라 조금 올라가면 유명한 테일러커피가 나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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